보통 우리나라 전통사상이라고 생각되는 것 중에 三神과 三韓과 三京 사상이 있습니다.

마한 진한 변한도 우리전통사상에 맞춘 삼한이라 하고

삼신할미도 우리전통사상의 3神이라 말하며

삼경도 전통사상에 맞게 도읍을 3개를 둔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 마한은 원래부터 삼한이 아니라 秦과의 役을 피하여 도망온자들을 동쪽에 두었기에 삼한이 된 것이죠.
  • 삼신할미는 神이 3명이 있는 할미가 아니라 아이를 삼아서 배속에 심어주는 할미라는 뜻으로 3神할미가 아니라 그대로 삼심할미로 써야 할 것입니다.
  • 삼경에 대해서는 정확히 틀렸다고 말할 수 없으나, 아마도 고조선때에는 三京이 아니었는데 시대가 흐름에 따라 변질되지 않았나 합니다.

다행히도 신지비사의 구절을 인용한 것이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으니 그것을 한번 풀이해 보도록 합시다.


如秤錘極器. 秤幹扶踈樑, 錘者五德地, 極器百牙岡, 朝降七十國. 賴德 護神 精首尾 均平位, 興邦 保大平. 若廢三諭地, 王業有衰傾.
저울(秤) 과 추(錘)와 극기(極器)와 같다. 저울대(秤幹)는 부소량(扶踈樑)이고, 추(錘)는 오덕지(五德地)고, 극기(極器)는 백아강(百牙岡)이니 80국이 항복해 올 것이다. 덕(德)에 힘입고 신(神)을 호위하여 머리와 꼬리를 깨끗하게 하고 평위(平位)를 고르게 하면 나라가 흥하여 태평을 보전하리라. 만약 삼유(三諭)의 땅을 폐하면 왕업이 쇠하리라....


예전에 저울을 보면 긴 막대기가 있고 이 막대기의 한쪽 끝에 추를 달고 다른 한쪽 끝에는 그릇같이 생긴것을 달아놓고 그 그릇같이 생긴 것에 물건을 놓아 질량을 측정했죠. 아마도 신지비사의 기록은 이런 저울을 말할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저울대죠.
여기서는 이땅을 부소량(扶踈樑)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려사에 부소산으로부터 나뉘어 좌소(左蘇)가 된 것이 아사달(阿思達)이라 하였죠(自扶踈山分爲左蘇曰阿思達).
따라서 가장 중요한 저울대로 상징되는 부소량은 고조선이 처음 도읍하였던 아사달과 가까운 곳에 있었던 성지였던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저울의 추(錘)입니다.
이 추에 써있는 무게와 그 추의 실제무게가 같아야 무게를 달 물건을 극기(極器)에 달아 정확한 물건의 무게를 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저울추에 해당되는 오덕지(五德地)가 하나의 땅이냐?
제가 보기에는 이것은 5개의 땅입니다.
부여는 5加의 정치를 했고, 고구려는 5부로 국토를 나누어 정치를 했으며 백제 역시도 5부로 국토를 나누었습니다.
즉, 저울추는 전국의 행정구역을 5개로 나눈 곳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울추에 해당되는 오덕지는 京이 아니라 국토를 나눈 部인 것이지요.

그리고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극기(極器)인데, 이는 백아강에 해당된다고 하였습니다.
백아강이 무엇일까요... 확실하지는 않으나 고조선의 실질적인 도읍인 평양이 아닐까 합니다.
즉, 부소량이라는 聖地를 두어 일차적이고 상징적인 도읍은 설치하여 나라의 근간을 잡아야 하는 것이지만, 실제 정치는 극기(極器)인 백아강 즉 평양성에서 해야하는 것이며 이 평양성의 힘이 五德地로 불리는 각 지방 제후들과 힘과 균형이 잘 맞아야 나라가 발전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있죠.


賴德 護神 精首尾均平位, 興邦 保大平
5개의 德地 즉 5제후들에게 힘입고[賴德]...중략... 평양성과 5제후의 땅인 五德地간의 힘의 균형을 잘 유지하면[均平位] 나라가 흥하고 태평을 보전하리라.


즉, 신지비사의 구절은 3京 사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2京 5加 사상에 가깝기는 하나 저울대에 해당되는 부소량은 실질적인 도읍라기보다는 신성한 땅을 부소량에 두어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던 땅으로 생각됩니다. 淸國이 만주를 금지구역으로 둔 것과 비슷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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