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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지리지 낙랑군(樂浪郡)은 위작이다. 한서지리지를 보면 낭야군(琅邪郡)이라고 나옵니다. (邪는 음이 "사", "야", "여" 등으로 읽히는데 낙랑군과 연관성을 의심하는 글이므로 편의상 "야"라고 읽겠습니다.) 그리고 한서지리지에 보면 낙랑군(樂浪郡)이 나옵니다. 한자로는 쓰면 다른 군 처럼 보이나 琅邪郡과 樂浪郡 모두 "낭라군" 정도로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신채호 선생의 조선사연구초에서는 "라"로 읽어야되는 이두글자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 邪와 浪도 포함됩니다. 참고를 위해서 아래 조선사연구초를 인용합니다. 『하 나는 “라”이니, 사라(沙羅)가 되기도 하고 사량(沙良)이 되기도 하며, 가슬라(加瑟羅)가 가서량(加西良)도 되며, 平壤이 平穰, 平那, 百牙, 樂浪, 樂良 등도 되며, 大良이 大耶도 되어, 加羅가 駕洛, 加耶, 狗邪, 加良.. 2013. 9. 5.
[백송] 내원성은 요녕성 법고현에 있었다. 내원성의 위치에 관해서 제가 연구해본 것은 아래와 같습니다. 원문기록은 제가 출간을 준비중인 만주원류고에 실려있는 것입니다. 來逺城 내원성 遼史 來逺城 本熟女真地 統和中伐髙麗 以燕軍驍猛 置兩指揮 建城防戍 兵事屬東京統軍司 元一統志 來逺城 本熟女真地 遼伐髙麗 於此建城 先是侵髙麗 軍敗 值冬雪彌旬不止人馬多斃 軍㑹鴨緑江 餘軍漂溺 遼主隆緒次來逺界 有防邊猛軍數十人 遇而刼之 逮問所從來 開襟示其金製環甲 衆軍驚散 遼主至遼城 收不在營中者誅之 金陞來逺軍 『요사』 내원성(來逺城)은 본래 숙여진의 땅이다. 통화 연간(982~1011)에 고려를 칠 때에 연군(燕軍)이 날래고 용맹하므로 두 지휘(指揮)를 두어 성을 세우고 수비토록 하였다. 군사 사항은 동경통군사(東京統軍司)에 속하게 하였다. 『원일통지』 내원성(來逺城)은 본래 숙여.. 2013. 9. 5.
만(蠻), 융(戎), 적(狄)은 남쪽, 서쪽, 북쪽을 나타내는 우리말에서 기인한 것 지나인은 북쪽 사람을 적(狄), 남쪽 사람을 만(蠻), 서쪽사람을 융(戎), 동쪽사람을 이(夷)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들 용어들은 이(夷)를 제외하고는 상(商)나라때 지배민족이던 신단민족(辰檀民族)의 고유어이었음을 가설로 내세워볼까합니다. 1. 이(夷) 다 들 아시다시피 이것은 동쪽의 활 잘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오랑캐라는 뜻은 진(秦)때나 이르러서야 생기게 됩니다. 이(夷)는 대(大)와 궁(弓)으로 이루어진 단어죠. 그래서 그들에게는 동쪽의 민족을 이(夷)라고 하게 된 것이죠. 2. 융(戎) 이것은 신단민족(辰檀民族)의 서쪽을 나타내는 단어를 음차한 것으로 보입니다. 고구려 5부 중에 서부(西部)를 연나(掾那), 연노(涓奴), 소노(消奴)라고 합니다. 여기서 那와 奴는 나라를 나타내는 단어로 서.. 2013. 9. 5.
한서지리지 上谷郡 기록, 造陽은 없고 沮陽만 나온다. 한漢나라 사마천이 지은 에는 조양造陽이 언급되어 조양朝陽의 옛 이름으로 조양造陽이 많이 언급되어 왔습니다. 조양造陽은 한漢나라의 상곡군上谷郡에 해당한다고 모든 사가들이 말합니다. 기본적으로 상곡군上谷郡은 한漢나라때 한무제때등 일부 강성할때를 제외하고는 한漢나라의 최전방 지역이었고 은 그 중에서도 가장 북쪽에 위치한 요새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놓친 부분이 있으니 바로 한漢나라시대를 대표하는 사서인 후한의 반고(班固 : 32~92)가 완성한 입니다. 당연히, 에 조양造陽이 언급되었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뜻밖에도 상곡군上谷郡편에는 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오로지, 저양沮陽이란 지명만이 나올 뿐입니다. 도대체, 상곡군上谷郡편에 그 유명한 조양造陽이란 지명이 언급되지 않다니 이것이 어찌된 연유일까요? 먼저, .. 2013. 9.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