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1/0837

거란고전 전문 번역 契丹古傳 祖光 濱名寬祐가 지은 契丹古傳(거란고전)의 주석서인 契丹古傳詳解 중에서 원문만 뽑아 해석한 것이다. 본인은 契丹古傳(거란고전)의 영인본 직접 본적은 없으므로 濱名寬祐이 판독한 한자에 근거하여 해석하였다. 그리고 띄어쓰기와 쉼표와 마침표 등은 본인이 임의로 찍은 것이다. 장(章)은 契丹古傳詳解을 지은자가 붙인 것이나 이에 따른다. 제1장. 鏡(경)의 본래의 뜻 曰若稽 諸傳 有之曰.., 神者 耀體 無以能名焉. 維鑑能象, 故稱鑑曰日神體, 讀如 戞珂旻. 曰若稽(왈약계)의 여러 傳(전)에 이렇게 말하였다. “神(신)이라는 것은 빛나는 물체이고 능히 이름할 것이 없다. 다만 비춤「鑑」으로 형상화가 가능하다. 따라서 그 비춤을 日神體(일신체)라고 하며 戞珂旻(알가민)[1]과 비슷하게 읽는다.” 제2장. 日祖.. 2011. 8. 25.
[펌: 코리안루트를 찾아서](26) 난산건의 비밀 ㆍ고조선문화 토대로 창조 독특한 발해연안 청동검 이쯤해서 ‘삼국유사’(제1권 고조선 왕검조선조)를 인용해보고자 한다. “(단군 왕검은) 1500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주나라 호왕(무왕을 뜻함)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했다. 이에 단군은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겨갔다가 뒤에 돌아와서 아사달(阿斯達)에 숨어 산신이 되니 나이는 1908세였다고 한다.” ■단군신화는 ‘신화’가 아니다 자, 이제 우리가 지금까지 검토해왔던 각종 고고학 자료를 토대로 복원한다면 아주 흥미로운 시사점을 끌어낼 수 있다. 즉 주나라 무왕이 은(상)을 멸한 시기는 BC 1046년쯤이다. 물론 이 연대는 최근 중국 측의 하·상·주 단대공정으로 결정된 것으로 100% 확신할 수 없다. 어쨌든 그쯤(BC 1046년)을 기준으.. 2011. 8. 25.
[펌: 코리안루트를 찾아서](25) 기자의 본향 ‘고죽국’ ㆍ‘천하통일 상징’ 청동솥은 신앙의 대상 그렇다면 기자(箕子)가 은 유민(遺民)들을 이끌고 찾아간 본향, 즉 고죽국의 정확한 위치는 어디일까. 고고학 자료와 문헌을 잘 따져보자. 이형구 선문대 교수는 기자가 돌아간 옛 조상의 땅으로 대략 4곳을 꼽는다. 카줘 베이둥 2호 교장갱에서 확인된 짐승 문양의 청동솥(정). 정은 원래 정권의 상징물이자, 천·지·인을 연결해주는 보물로 여겨졌다. 먼저 롼허 하류설. ‘사기정의(史記正義·주석서)’는 “고죽성은 노룡현 남쪽으로 12리 떨어진 곳에 있으며, 은나라 제후국인 고죽국(孤竹城在盧龍縣 南十二里, 殷時諸侯孤竹國也)”이라 했다. 누룽셴은 오늘날의 롼허 하류에 있다. 두번째는 산하이관(山海關)설. ‘요동지(遼東志)’ 지리지는 “순임금~하나라 땐 북기(北冀)의 동북을 .. 2011. 8. 25.
[펌: 코리안루트를 찾아서](24) 기자, 본향으로 돌아가다 ㆍ기자조선, 中 제후국 아닌 동이족 독립국 BC 1046년. 주나라 무왕이 은(상)의 주왕(紂王)을 죽이고 은(상)의 554년 역사를 종식시켰다. 이것은 동북아 고대사의 판도를 뒤바꾼 대사건이었다. 한족(漢族)의 하(夏·BC 2070~BC 1600년)를 무찌르고 동아시아의 주인공이 된 동이족의 천하가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이다. 한족(하)~동이족(은상)~한족(주)으로…. 베이둥 방정(사각 솥) 속 바닥에는 ‘기후(箕侯)’ 명문 그 과정은 너무도 드라마틱하다. 주 무왕은 주나라의 수도인 펑이(풍읍·豊邑, 산시성 치산·岐山 부근)에서 전차 300대와 용·갑사 4만5300명을 직접 이끌고 출정했다. 그러자 주왕의 학정에 못이긴 은(상)의 제후들도 전차 4000여대를 지원했다. 은 주왕은 70만 대군을 동원, 그.. 2011. 8.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