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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코리안루트를 찾아서](11)뉴허량의 옥기묘 “옥기 쥔 巫人은 神과 소통한 왕” 1989년 가을. 뉴허량(우하량·牛河梁) 제2지점 1호 적석총을 발굴 중이던 조사단은 기이한 모습에 꿈을 꾸는 듯했다. 21호묘에서 무려 20점의 옥기가 쏟아진 것이다. 이것은 훙산문화(홍산문화·紅山文化) 무덤 한 곳에서 나온 가장 많은 옥기였다. 무덤에는 옥기로 도배하다시피한 성인 남성이 누워 있었다. 입을 활짝 벌린 채 반듯이 누워 있는 인골은 짐승 얼굴 모양의 옥패(玉牌), 옥거북이, 옥베개 등으로 잔뜩 치장했다. -옥으로 도배한 인골- 뉴허량 제1지점 중심대묘에서 확인된 인골. 양손에 옥거북이를 쥐고 있는 것을 비롯, 7점의 옥기만 부장돼 있다. 일인독존의 무인(巫人)으로 추정된다. 뉴허량·선양/김문석기자 희한했다. 다른 부장품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은 것이다. .. 2011. 6. 12.
[펌: 코리안루트를 찾아서](10)랴오허 동서쪽의 적석총 “돌무덤이 고인돌로 발전했을 것” 혹 맹목적인 순혈·민족주의에 사로잡혀 ‘우리 것’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다. 우리 문화의 원류와 정체성을 찾는 것이 단순한 피가름이 아니다. 한민족이 단일민족이 아니라 다종족으로 이뤄졌다면 그 여러 종족이 힘을 모아 이뤄낸 역사와 문화를 탐구하는 것 역시 뜻깊은 일이다. -외줄타기-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여전히 식민·분단·냉전사학은 떠도는 원혼처럼 우리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북한·중국·러시아 등 우리 역사의 중요한 무대에 대한 현장 조사가 시작된 것은 20년도 되지 않았다. 이형구 교수처럼 일찍이 한·중 수교 이전에 중국 본토의 역사와 고고학을 공부한 이도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런 가운데 중국은 동북공정, 하·상·대 단대공정, 중국문명 탐원 공정 등 장기 프.. 2011. 6. 12.
[펌: 코리안루트를 찾아서](9)뉴허량의 적석총들 제단(壇)과 신전(廟), 무덤(적석총), 그리고 옥기(玉器). 흔히 집과 금속, 문자를 문명의 3요소라 하지만 인간의 정신세계와 관련 깊은 제단과 신전, 무덤은 이 3요소를 초월한다. 또한 옥기는 계급·사회분화, 그리고 제정일치 사회의 상징물이다. 바로 발해문명의 뼈대가 된 훙산문화(홍산문화·紅山文化·BC 4500~BC 3000년)의 빛나는 창조물들이다. 이형구 교수가 뉴허량 제2지점에 있는 계단식 적석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2지점은 제단과 적석총, 그리고 26기의 석관묘가 묻힌 적석유구 등으로 구성됐다. 뉴허량/김문석기자 지난 7월30일 탐사단은 바로 그 훙산문화의 정수를 엿볼 수 있는 뉴허량(우하량·牛河梁) 유적을 찾았다. 이제 훙산문화의 정수인 돌무덤과 제단·신전, 그리고 옥 문화 등을 차근차.. 2011. 6. 12.
[펌: 코리안루트를 찾아서](8)차오마오산과 홍산문화 제단과 무덤, 여기도 동이의 흔적… “우한치 쓰자쯔(四家子) 차오마오산(초모산·草帽山) 유적에서 5500년전 홍산문화 시기의 제단+무덤 결합형식의 의례(儀禮) 건축물이 발견됐다. 이는 원시종교와 장례풍습, 제사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새로운 자료다.” 가장 최근에 확인된 차오마오산 유적. 이형구 교수와 기자가 석관묘를 실측하고 있다. 차오마오산/김문석기자 2006년 6월5일, 네이멍구 츠펑 방송은 ‘5500년전 홍산문화(BC 4500~BC 3000년) 시대 적석총의 발견’ 소식을 숨가쁘게 전했다. 그로부터 1년여 뒤인 올 7월 28일. 경향신문 탐사단 은 폐부를 뒤덮는 자욱한 황토먼지, 그리고 뜨거운 불볕더위가 숨을 턱턱 막아버리는 따끈따끈한 유적, 바로 차오마오산을 찾았다. 늘 그랬듯 목표지점은 오리무중이.. 2011. 6.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