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1/054

桓雄(환웅)과 檀雄(단웅)과 神雄(신웅)은 왜 같은가? 삼국유사에 桓因(환웅)이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기록에도 桓을 사용하고 보편적으로 이것이 맞다고 알려져있다. 그러나 제목에 쓴 3가지 글자... 즉, 桓(환)과 檀(단)과 神(신)은 서로 닮았다. 그래서 아주 오래된고 낡은 기록을 베껴적다가 잘못베껴적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으므로 어느 글자가 맞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고려대상이 되는 神은 神과 같이 생긴 글자가 아니라 神의 옛글자인 (示旬旦)을 말한다. 아래 언급한 3 글자의 비슷한 이체자를 모아놓았다. 桓(환)과 檀(단)과 神(신)의 공통점과 차이점 이 세 글자의 공통점은 좌변이 나무 木이거나 그와 비슷한 示의 변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잘못필사한다면 위 세 글자는 같은 글자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차이점이라면 오른쪽이 좀 다.. 2011. 5. 13.
구당서 지리지 섬주대도독부陝州大都督府와 괵주虢州 한토강역의 당나라때 지명의 변천추적에 참조용 자료입니다. 신교본구당서新校本舊唐書/ 지志 / 권卷 三十八 지志 第十八 / 지리地理一 / 십도군국十道郡國 / 하남도河南道 / 섬주대도독부陝州大都督府 섬주대도독부陝州大都督府 수隋나라때 하남군河南郡 섬현陝縣이었다. 수공제隋恭帝 양유楊侑 의녕義寧 원년元年(617년), 홍농군弘農郡을 설치하여 섬陝、효崤、도림桃林、장수長水의 4현縣을 거느렸다.의녕義寧 2년二年(618년),효현崤縣을 없앴다. 당唐 고조高祖 이연李淵 무덕武德 원년元年(618년),섬주총관부陝州總管府로 고치고 섬陝、정鼎、웅熊、함函、곡穀의 5주州를 다스렸으며 더하여 장수長水는 나누어 괵주虢州에 속하게 하였다.그해,다시 효현崤縣을 세웠다.무덕武德 2년(619년),다시 효현崤縣을 함주函州에 귀속하였다.무덕武德 3년(.. 2011. 5. 13.
개로왕 때의 백제의 영토 백제의 영토라고 하면 어디라고 생각되는가? 요즘도 백제라고 하면 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전라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강단사학에서 말하는 백제의 첫 도읍을 지금의 서울이다. 즉, 한성백제가 있던 곳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남하하여 공주와 부여에 도읍을 하고 이곳에서 멸망하였다. 보통 전라도라고 하는 사람들은 후백제 견훤의 영역을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백제는 그 역사가 잘 알려져있지 않아서 삼국사기 기록을 서울에 맞추어 보려고 하더라도 잘 들어맞지 않는다. 백제는 북쪽에 말갈이 있었다. 그리고 백제는 동쪽에 낙랑이 있었다. 서울의 북쪽에 말갈이 있고 서울의 동쪽에 낙랑이 있었다니... 말이 안되고도 남음이 있다. 이제 이러한 백제의 이상한 영토를 다시 비정하여 고대사를 다듬어보자. 삼.. 2011. 5. 13.
사성과 숭산으로 바라본 백제의 위치 백제의 역사는 많이 왜곡되어 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개로왕은 AD475년에 사성(蛇城)에서 숭산(崇山)까지 둑을 쌓았다고 말하고 있다.[1] 그러나 어느누구도 이곳의 위치가 어디인지 정확히 말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강단사학에서 말하는 위치에서는 이 사성과 숭산을 찾을 수 없기때문이다. 백제는 생각보다 북쪽에 위치해 있었던 것이다. 삼국사기를 읽다보면 도무지 이해못하는 기록이 있는데 낙랑과 말갈과 백제의 위치관계이다. 김부식은 말갈이 백제의 북쪽에 있고 낙랑이 백제의 동쪽에 있다고 했다.[2] 말갈은 우리가 보통 여진족이라고 하는 종족이고 낙랑은 낙랑군이던 낙랑국이던 평안도와 요녕성을 벗어날수가 없다. 그러나 강단사학에서는 백제가 지금의 서울이라고 말하고 있다. 위치관계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다. .. 2011. 5.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