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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

發朝鮮(발조선)의 실체 파악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7. 2.

신채호 선생은 그의 저서 《조선사연구초》와 《조선상고사》에서 말하기를 고조선(古 朝鮮)은 세 개의 영역으로 나뉘어 다스려졌는데 신조선(眞朝鮮)과 불조선(番朝鮮)과 말조선(馬朝鮮)이라 하였다. 그리고 이 3개의 조선을 다스리는 군왕(君王)의 명칭이 각각 신한(辰韓), 불한(番韓, 번한), 말한(馬韓, 마한)이라 하였는데, 신한의 ‘신’은 太(태)의 뜻이며 總(총)의 뜻이며 上(상)의 뜻이고, 불한의 ‘불’은 地(지)의 뜻이고, 말한의 ‘말’은 天(천)의 뜻이라 하였으니, 신한이 가장 높고 불한과 말한은 신한을 보좌한다고 하였다. 그 위치는 대략 불한이 신한의 서남쪽이고 말한이 신한의 동남쪽이라 하였다. 그리고 《관자(管子)》에 기록된 發朝鮮(발조선)은 ‘불조선’의 전음(轉音)이고 지나국(支那國)에서 가까우므로 기록에 보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현재 고조선이라 불리는 신단(辰 檀)은 3개의 영역으로 나뉜바 없으며 불조선(番朝鮮)이 신단(辰檀)의 서남쪽에 위치한 적도 없었고 말조선(馬朝鮮)이 신단(辰檀)의 동남쪽에 위치한 적도 없었다. 오히려 말조선(馬朝鮮)으로 인식되었던 말한(馬韓, 마한)은 신단(辰檀)의 서남쪽에 기준(箕準)이 위만(衛滿)에 쫓기어 건국되었고, 불조선이라 불리던 변진(弁辰)은 신단(辰檀)의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었으니, 삼조선(三朝鮮) 설(說)이 우리 역사에 미치는 폐해가 크다 하겠다.

이제 삼조선(三朝鮮) 설(說)이 틀렸음을 증명하고 《관자》에 보인 발조선(發朝鮮)이 무엇이었는지 그 실체를 파악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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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조선 (三朝鮮) 설(說) 비판

신채호 선생의 삼조선설은 주로 《사기(史記) 조선렬전(朝鮮列傳)》을 근거로 한다.

《사기 조선렬전》

朝鮮王滿者故燕人也. 自始全燕時嘗略屬眞番[一]朝鮮[二]

조선왕 위만은 옛 연국(燕國) 사람이다. 연국(燕國) 전성기 때부터 일찍이 眞番朝鮮(진번조선)을 침략하여 복속시켰다.

위 구절의 주석서인 집해(集解)와 색은(索隱)을 보면 眞番朝鮮(진번조선)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우선 집해(集解)를 보면

[一] 徐廣曰一作莫

서광(徐廣)이 말하기를 眞番(진번)은 眞莫(진막)으로도 쓴다고 하였다.

그리고 색은(索隱)을 보면

[]如淳云燕嘗略二國以屬己也

여순(如淳)이 말하기를 연국(燕國)이 일찍이 두 나라를 침략하여 자신들에 복속시켰다.

신채호 선생은 색은(索隱)의 주석에 眞番朝鮮(진번조선)이 2개의 나라이므로 이것은 眞朝鮮(진조선)과 番朝鮮(번조선)을 나타내며, 집해(集解)에 말하기를 眞番(진번)은 眞莫(진막)으로도 쓰므로 莫朝鮮(막조선)도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삼조선 설은 집해와 색은을 잘 살펴보면 틀린 것을 알 수 있다.[1] 眞番朝鮮(진번조선)이 2개의 나라라는 것은 진번(眞番)과 조선(朝鮮)이 두 개의 나라라는 말이지 진조선(眞朝鮮)과 번조선(番朝鮮)이라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기 조선렬전》에는 故滿得兵威財物侵降其旁小邑眞番臨屯皆來服屬(그래서 위만은 군사의 위세와 재물을 얻게 되어 그 주변의 소읍들을 침략하여 항복시키니, 진번과 림둔도 모두 와서 복속하였다)라는 구절이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眞番朝鮮(진번조선)은 진번(眞番)과 조선(朝鮮)을 나타내는 것이지 진조선(眞朝鮮)과 번조선(番朝鮮)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관자》에 기록된 발조선(發朝鮮)은 과연 무엇인가? 이것을 풀기 위해서는 람이(藍夷)와 풍이(風夷)의 실체를 파악하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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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이(藍夷)와 풍이(風夷)의 실체

《해동역사》에 람이(藍夷)와 풍이(風夷)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해동역사 동이총기》

藍夷卽風夷

람이(藍夷)는 즉 풍이(風夷)이다.

여기서 람이(藍夷)이란 《규원사화(揆園史話)》에 나온 람국(藍國)이 분명하다.

《규원사화》

蚩尤氏之後封于南西之地巨野浩豁海天靚碧曰藍國宅奄慮忽.

치우의 후손에게는 서남쪽의 땅을 봉하였다. 거대하고 광활한 들녘에 바다는 고요하고 하늘은 푸르기에 람국(藍國)이라 이름하고 엄려홀(奄慮忽)에 자리잡아 다스리게 하였다.

《규원사화》에 람국(藍 國)이라 이름한 이유는 하늘이 푸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직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신단(辰檀)의 다른 봉국들은 대부분 우리말을 한자(漢字)로 음차(音借)하였다. 비류 옥저 개마 예 진번 부여 구려 등등 모두 음차하여 나라이름을 지었지만, 유독 람국(藍國)만 藍(람)의 뜻을 빌어 나라이름을 지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으며 《규원사화》의 저자가 藍이란 글자를 해독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좀더 객관적으로 고려해보면, 《규원사화》에 나온 람국(藍國)과 《환단고기 삼한관경본기》에 나온 번한세가(番韓世家)의 공통점이 두 가지가 있다.

-         첫 번째는 초대 임금이 치우의 후손이라는 점이다.

-         두 번째는 그 위치가 신단(辰檀) 도읍으로부터 서남쪽에 존재하였다는 점이다.

이런 공통점이 있는 이유는 《규원사화》에 나온 람국(藍 國)과 《한단고기》에 나온 번조선(番朝鮮)이 같은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환단고기》에서는 번조선(番朝鮮)이라 하였고 《규원사화》에서는 람국(藍國)이라 하였을까요? 그 해답은 앞서 보여준 《해동역사》의 藍夷卽風夷(람이는 즉 풍이다)에 있는 것이다. 風은 “바람”이란 뜻이므로 람국(藍國)은 즉 “바람국”의 “람”을 藍(람)으로 사음(寫音)하여 줄여 쓴 것이다. 그렇기 때문이 藍夷(람이)가 風夷(풍이)라고 적은 것이다.

그렇다면, 《관자(管子)》에 기록된 發朝鮮(발조선)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재야학계에서는 신채호 선생의 설명에 따라 발조선(發朝鮮)을 하나의 나라로 보고 있지만, 발조선(發朝鮮)은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두 개의 나라이다. 즉, 發(발)이란 나라와 朝鮮(조선)이라는 두 개의 나라를 일컬은 것이다.

(발)이라는 나라에 대하여 《사기(史記)우제기(虞 帝紀)》에 이르기를 南撫交阯北發西戎析枝渠廋氐羌北山戎發息愼(남쪽으로 교지(交趾) 북발(北發)을, 서쪽으로 융(戎) 석지(析枝) 거수(渠搜) 저족(氐族) 강족(羌族)을, 북쪽으로 산융(山戎) 발(發) 식신(息愼)을 위무하였다)고 하였으니 發(발)이라는 나라는 진국(秦國)의 북쪽이므로 신단(辰檀)의 서남쪽임이 분명하다. 한편, 지나인들이 사용하는 조선(朝鮮)이란 표현은 단군(檀君)이 건국한 신단을 가리키지 않는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지나인들에게 인식되기를 항상 은국(殷國)에서 망명한 서여(胥餘)와 위만(衛滿)의 조선국(朝鮮國)을 나타냈었던 것이다.

따라서 發(발) 이란 나라는 바로 藍國(람국)이다. 제대로 쓰자면 “바람국”인데 이름 한자로 寫音(사음)하여 發藍國(발람국)으로 쓴 것이나, 《규원사화》에서는 藍으로 썼고 지나인들은 發로 썼으며 《한단고기》에서는 신채호 선생의 이론에 따라 番으로 쓴 것이다. 그러므로 番(번)은 “불”이 아니라 “바람”인 것이며 번한(番韓) 즉 변진(弁辰)은 신단(辰檀)의 서남쪽이 아니라 동남쪽에 있던 나라이다.

치우가 첫 임금이었던 람국(藍國)의 뜻이 “바람국”이었기 때문에《규원사화》에 이런 구절이 존재하는 것이다.

《규원사화》

風夷則卽蚩尤氏之一族也

풍이는 곧 치우씨의 일족이다.

이상 진술한 바에 따라 《한단고기 삼한관경본기》의 이름을 바로잡으면, 〈번한세가〉의 치두남(蚩頭男)에서 소정(小丁)까지는 〈바람국세가〉로 고쳐져야 하며 서여(西余)에서 수한(水韓)까지는 〈바람국본기〉로 고쳐야 한다. 기후(箕詡)에서 기준(箕準)까지는 〈조선국본기〉가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마한세가〉의 마한(馬韓)은 확실하지 않으나 아마도 진번국(眞番國) 군왕들의 역사가 아닌가 하는데 《사기》에 眞番(진번)은 眞莫(진막)으로도 쓴다고 하였으므로 莫(막)을 馬(마)로 사음(寫音)한 것이 아닌가 한다.


왜 바람의 나라인가?

그런데 왜 치우가 첫 임금이었던 나라이름이 바람국(發 藍國)인가 하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하느님 환인(桓仁)의 아들 환웅(桓雄)이 고마족(熊族)과 연합하여 단군(檀君)이 정권을 잡아 나라 이름을 신단(辰檀)이라 하였으니 이는 해(日)와 달(月)과 별(星)들의 광명신(光明神)의 나라이기에 신단(辰檀)이라 하였던 것처럼 치우씨는 환웅(桓雄) 시절에 풍백(風伯)이었기 때문에 바람국이라 이름 한 것이다.

《환단고기》

桓雄天皇使風伯釋提羅雖除鳥獸蟲魚之害

한웅천왕께서 풍백(風伯) 석제라(釋提羅)를 시켜 짐승과 벌레와 물고기의 해를 제거하도록 하였다.

《규원사화》

但此時, 開闢不遠, 隨處草木荒茂鳥獸雜處, 人民艱困殊甚, 且猛獸毒蟲不時衝動, 人民被害不少. 神市氏, 卽命蚩尤氏治之. 

이 때는 개벽한 지 아직 멀지 않은 때인지라, 곳곳에 초목이 무성하고 날짐승이며 들짐승이 어지러이 섞여 있어 사람들의 괴로움이 매우 심하였고, 더욱이 사나운 짐승과 독충들도 때를 가리지 않고 다투었기에 사람들의 피해 또한 적지 않았다. 신시씨는 곧 치우씨(蚩尤氏)에게 명하여 이를 다스리게 하였다.

이 두 개의 기록을 비교하여 보면 짐승들의 해를 제거한 것은 풍백이고 그가 바로 치우임을 알 수가 있다(환단고기에 석제라라고 한 것은 아마 치우가 성씨이고 석제라가 이름이 아닌가 한다).

 



[1]윤내현, 고조선 연구, 일지사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