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잡동사니/남당사료
23. 第二十三世<安原大帝>紀 제23세<안원대제>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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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8. 13. 09:24
원문출처; http://mf.history.go.kr/Pdf/MF0020000/00322323.pdf
◎ 戊午<大藏>八年, 春正月, 辛酉朔, 日食, 停朝. 與<高>皇后, 但饋<婁>氏使于內殿. <柔然><宇古晋>来言;“途逸貢象, 為<高歓>軍所奪.” 上, 方寵<高>皇后, 故以為離間而不問. 後聞, <善見>跨其象而改元<元象>, 不悅, 曰;“不意<高>丞相奪我巨象.” 后, 密使于<婁>氏, 納巨象三頭, 二雌一雄. 上, 與王后, 騎之, 曰; `吾妻象'. <玉陵>妃生上女<紅陵>公主.
二月, 大閱于<黃山>. <契丹>王<好頓>献其盖室・虎皮三百張・羊千匹・牛百匹. 盖效<高歓>之送女也. 上, 嘉納之, 封<好頓>為右大将・<燕山公>.
○ 무오{단기2871/AD538}<대장>8년, 춘정월, 신유일 초하루, 일식이 있어 조례를 미루었다. <고>황후와 함께 다만 내전에서 <루>씨의 사신에게 음식을 대접하였다. <유연>의 <우고진>이 와서 아뢰길; “오는 도중에 공물로 가져오던 코끼리가 도망한 것은 <고환>의 군대에게 털린 것이었습니다.”라 하였는데, 상은 때마침 <고>황후와 정을 나눴던지라 이간하려는 것으로 여기고 {그 정황을} 묻지 않았다. 나중에 들으니, <선견>이 그 코끼리를 타고 다니고 있으며 연호도 <원상>으로 바꾸었다 하니, 마음이 상하여 이르길; “그럴 줄 몰랐는데, <고>승상이 내 코끼리를 빼앗아갔소.”라 하였다. 그러자, 후가 몰래 <루>씨에게 사람을 보내서 코끼리 세 마리를 바치게 하였다. 암컷 두 마리와 수컷 한 마리였다. 상은, 황후와 함께, 그 코끼리를 올라타고 달리면서, 이름을 지어주길 `오처상{내 처의 코끼리}'이라 하였다. <옥릉>비가 상의 딸 <홍릉>공주를 낳았다.
2월, <황산>에서 크게 사열하였다. <거란>왕<호돈>이 그의 개실{게르=천막집}과 호피 300장 및 양 1,000필과 소 100필을 바쳐왔다. 대략 <고환>이 딸을 보낸 것을 본 뜸이었다. 상은 기꺼이 받아들이고, <호돈>을 우대장・<연산공>으로 봉하였다.
◎ 三月, <宇文泰>, 以舍人<元翌>女為<化政>公主妻<頭兵>弟<塔寒>, 又使<宝炬>廢<乙弗>氏為尼, 使<扶風>王<孚>迎<頭兵>[女<郁久閭>]. <頭兵>, 以車七百乘・馬万匹・駝二千匹送至<黑鹽池>遇<泰>所遣<鹵薄儀衛>. <孚>請<郁>南面, <郁>曰; "我未見<魏>主, 姑<柔然>女也.”東面立, 而<魏>使南面. 十七日, <宝炬>, 與<郁久閭>含巹而陰陽不合, 頗思<乙弗>.
<明穠>, 移都於<所夫里>, 以舟艦通于<蕭衍>, 自稱<南夫餘>, 欲得其利器而不軌.
○ 3월, <우문태>는, 사인 <원익>의 딸을 <화정>공주로 삼아서 <두병>의 동생 <탑한>에게 처로 주었으며, 또한 <보거>로 하여금 <을불>씨를 폐하게 하여 비구니로 만들었고, <부풍>왕 <부>를 시켜서 <두병>의 딸 <욱구려>를 마중하게 하였다. <두병>은, 수레 700대와 말 만 필 및 낙타 2천 필을 <흑염지> 부근으로 보내서 <태>가 보낸 <로박의위>를 만나게 하였다. <부>가 <욱>에게 남쪽으로 향하길 청하였더니, <욱>이 말하길; “나는 아직 <위>주를 본 적이 없으니, 이 아녀자는 <유연>의 딸이오.”라 말하고는 동쪽을 향하여 섰고, <위>의 사신은 남쪽을 향하여 섰다. 17일에 <보거>는, <욱구려>와 합근{=合歓=合房}하였으나 음양이 맞질 않자, 자못 <을불>을 그리워하였다.
<명농>이, <소부리>로 도읍을 옮기고, 거룻배와 큰 배편으로 <소연>과 내통하였다. 스스로 <남부여>를 칭하였으며, 그들의 날카로운 무기를 얻어 불궤를 도모하고자 함이었다.
◎ 五月, <宝炬>, 又上書, 言;“臣, 娶<柔然><頭兵>可汗之女為妻. 妻母<才治>后, 乃<鄯善>公主所生<原同>可汗之女也. <原同>可汗之父, 乃<廣開土皇>之子<鯨>太子也. 伏聞, <鯨>太子亦陛下外曾祖, 云. 臣妻, 亦<鯨>太子之曾孫也. 臣夫妻, 俱以陛下之族, 永為臣屛. 故正月, 與臣, 妻父<頭兵>可汗, 献象于陛下, <高歓>掠奪於<碭山>, 心甚缺然. 陛下, 幸勿以<歓>女之致見踈於臣, 臣亦欲納女盡忠.”云云. 上, 厚待其使, 曰;“爾主為外裔, 而我妻亦<魏>公主. <善見>乃我從姪, 而汝主乃我從弟也. 何為而何薄耶. 互守封彊而勿侵. 自有公論之皈正, 不使兄弟相殘, 可也. 至於象之得失, 非吾所意也. <高>丞相豈掠象者哉.”
○ 5월, <보거>가 또 글을 올려 말하길; “신은 <유연><두병>가한의 딸을 처로 들였습니다. 처의 어미는 <재치>후이며 <선선>공주 소생 <원동>가한의 딸입니다. <원동>가한의 아비는 <광개토황>의 아들이신 <경>태자입니다. 엎드려 듣잡건대, <경>태자께서는 역시 폐하의 외증조이시었고, 신의 처는 <경>태자님의 증손입니다. 신의 부처 모두가 폐하의 혈족이오니, 영원히 변방의 병풍이 되겠습니다. 지난 정월에, 신과 함께 처의 아비 <두병>가한이 폐하께 코끼리를 바쳤었는데, <고환>이 <탕산>에서 약탈하였기, 심경이 매우 편안치 않았습니다. 폐하, <환>이 딸을 바친 것으로 인하여 저에게 소원함을 보이지 마시길 원하옵니다. 신 또한 딸을 바치고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라는 등등이 쓰여 있었다. 상이, 그 사신을 후하게 대접하고, 이르길; “자네의 주인은 외가의 후예이고, 내 처 또한 <위>의 공주이오. <선견>은 나의 종질이고, 그대의 주인 또한 내 종제가 되니, 누구의 말은 들어주고 누구에겐 야박할 수 있겠소? 서로들 봉하여진 땅을 지키고 침입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오. 스스로 공론하여 보면 바른 길을 걷게 될 것이고, 형제들 간에 서로 잔혹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오. 코끼리가 내게 왔고 못 왔음에 이르러서는 내가 뜻한 바는 아니었으니, {내가} 어찌 <고>승상을 코끼리를 약탈한 놈이라고 할 수 있겠소.”라 하였다.
◎ 七月, <歓>, 使<候景>・<高敖曹>, 圍<獨孤信>於<金墉>. <景>燒<洛陽>內外官寺・民居, 存者什之二三.
八月, <宇文泰>救<獨孤>而至<穀城>, <歓>将<貸文>・<道元>以千騎恃勇前進, 夜遇<泰>将<李弼>於<孝水>. <弼>命軍士皷噪曳柴揚塵, <貸文>走, <弼>追斬之. <道元>单騎獲免, 千騎盡沒. <泰>軍漸前, <候景>夜解圍而皈. <泰>以輕騎追<景>至<河>上. <景>, 陳於<河橋>・<邙山>之下, 與<泰>合戦. <泰>馬中矢驚逸, <泰>落馬. <歓>兵追至, 左右皆散. 都督<李穆>, 下馬以策打<泰>背, 曰;“籠東軍士, 爾主何在, 而獨留此.” 追者, 不疑其貴人, 捨之而過. <穆>以馬授<泰>而俱逸.
○ 7월, <환>이 <후경>과 <고오조>를 시켜서 <독고신>을 <금용>에서 포위하였다. <경>이 <락양> 안팎의 관사와 백성의 가옥에 불질렀더니, 타지 않고 남은 것은 열에 두셋 정도였다.
8월, <우문태>가 <독고>를 막아내고 <곡성>에 다다랐었더니, <환>의 장수인 <대문>과 <도원>이, 1천 기병으로 용맹함만을 믿고 앞으로 나아갔다가, 밤중에 <태>의 장수 <이필>과 <효수>에서 맞닥뜨렸다. <필>이 군사들에게 명하여 북을 두드려 소란하게 하고 섶을 끌어 먼지가 일게 하였더니, <대문>은 도주하였고, <필>이 쫓아가서 참하였다. <도원> 또한 단기로 잡힘을 면하긴 하였으나, 1천의 기병은 모조리 잃었다. <태>의 군대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더니, <후경>은 밤중에 포위를 풀고 돌아갔다. 이에 <태>는 경기병으로 <경>을 쫓아 <하>상{북변}에까지 다다랐다. <경>은 <하교>와 <망산> 아래에 진을 치고 <태>와 맞붙어 싸웠다. <태>의 말이 화살에 맞아 놀라 달아났더니 <태>는 말에서 떨어졌고, <환>의 군병이 쫓아오니 좌우가 모두 흩어졌는데, 도독 <이목>이 말에서 내려 <태>의 등줄기를 채찍으로 내리치며 이르길; “패잔 군사야! 네 주인은 어디로 가고 너 혼자만 여기 남았느냐?"라 하였다. 추적하여 온 자들은 그가 귀인인가를 의심해보지도 않고 내버려두고 지나쳤다. <목>은 <태>에게 말을 주어 함께 달아났다.
◎ <泰>兵復振, 盖大軍至也. <高敖曹>[輕]<泰>建旗, <泰>軍盡銳攻之. 故一軍皆沒, <敖曹>單騎走<河陽><南城>, 守<高永樂>有怨不入. <敖曹>拔刀穿闔未徹, 追兵至, <敖曹>伏橋下. 追者見其從奴持金帶, 問奴而知. <敖曹>, 知不免, 奮頭, 曰;“來. 與汝開國公.” 追者斬其首, 而去. <歡>, 哀痛, 杖<永樂>二百而不殺, 盖其從祖兄子也. 上, 聞之歎, 曰;“<泰>, 甘籠軍而受策, 免死. <敖曹>建旗陷陳, 奴帶而豪語無敵, 進之. 勇而驕傲, 使人有怨, 非名將也. 宜其死也.”
○ <태>의 군병들이 다시 떨쳐 일어났다. 개략 대군이 답지하였음이었다. <고오조>가 <태>를 우습게 여기고 깃발을 세우자, <태>의 군병이 날램을 다하여 그들을 공격하였더니, 일군이 모조리 무너지고 <오조>는 단기로 <하양><남성>으로 달아났더니, {그곳을} 지키던 <고영락>은 원한이 있었던지라 들이지 않았고, <오조>가 칼을 뽑아 성문에 구멍을 내고 있었는데, 뚫리기도 전에 추병이 다가오자 <오조>는 다리 밑으로 숨었고, 추병들은 그의 하인이 금대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고는 물어서 알아냈다. <오조>는, 목이 떨어짐을 면할 수 없음을 알았는지라, 머리를 불쑥 내밀며 말하길; “와라! 너를 개국공으로 만들어 주겠다!”라 하였더니, 추병이 그의 머리를 잘라서 돌아갔다. <환>은, 이것이 애통하였으나, <영락>을 곤장 200대를 치고 죽이지는 않았다. 대략 자기 종조부 형님의 아들이었음이라. 상이, 이 소식을 듣고, 이르길; “<태>는 패잔군 신세를 감내하며 채찍을 맞고 죽음을 면하였소. <오조>는 깃발을 세웠다가 진을 무너뜨려먹고서도, 놈은 허리띠를 차고 무적을 호언하며 내달았었소. 용맹하긴 하였으나, 교만 방자하여 다른 이의 원한을 샀으니, 명장은 아니었소. 죽어도 쌌었소.”라 하였다.
◎ 時, <泰>軍, 又殺<歓><兗州>刺使, 虜其甲士万五千人, 赴<河>死萬數矣. <邙山>之戦, 諸軍皆共度<河橋>, 獨<万俟洛>勒兵不動, 曰;“<万俟洛>在此, 能来可来.” <泰>軍畏之而去. <高歓>, 甞敬<洛>父, 以殊禮親扶上馬, 故<洛>感其恩而決死戦也. 決死之色見於外, 故<泰>軍畏之也. 戦之勝敗, 不在於軍之多少, 在於決死之固與不固也. <泰>以小軍常勝者, 盖其决死故也. <邙山>之戦, <歓>, 失<高敖曹>而始決死戦, 故得勝也. 自旦至未, 戦數十合, 氣霧四塞莫能相知. 而<歓>軍不退者有所激也, <泰>軍自滿者有所得也. <泰>, 安得自彊, 而不從衆哉. <泰>, 皈<長安>, 所俘<歓>軍據<長安>作亂, 尋潰. 右侍中<梁義臣>生東宮子<夏成>. 上, 不選三品女者, 欲得聖骨. 東宮如是爱<義臣>, 故宗室多不悅.
○ 이 시절, <태>의 군대가 또 <환>의 <연주>자사를 죽이고 그의 정예군사 1만 5천을 사로잡아서 <하>수에 다다랐더니 죽은 이가 만 명을 넘었다. <망산>에서 싸움에서, {<고환>의} 여러 군대가 모두 <하교>을 건넜지만, 유독 <만사락>은 병졸들을 다잡아놓고 움직이지 않으면서 말하길; “<만사락>이 여기 있다! 올 수 있으면 와봐라!”라 하였다. <태>의 군대는 그 남은 군대가 두려워서 물러났다. <고환>은 일찍이 <락>의 아비를 존경하여 각별한 예로써 손수 말위에 오르는 것을 도왔었더니, <락>은 그 은혜에 감복하여 죽기로 싸웠던 것이었고, 죽기로 싸우겠다는 표정이 밖으로 내비쳐졌었더니, <태>의 군대가 두려워하였던 것이었다. 전쟁에서 승패는, 군사의 많고 적음에 따르는 것이 아니고, 죽기로 싸우겠다는 의지가 굳세고 굳세지 않음에 달린 것이었다. <태>가 적은 수의 군대로 매번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들이 죽기로 싸웠기 때문이었다. <환>은, <망산>의 싸움에서 <고오조>를 잃고나서야 비로소 결사적으로 싸웠고, 그리하여 승리를 챙길 수 있었던 것이었다. 동이 틀 무렵부터 미시까지 싸우길 수십 합이 되었고, 날씨가 구름으로 사방이 가려져서 서로를 알아볼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환>의 군대가 물러나지 않은 것은 싸우고자 하였음이었고, <태>의 군대가 자만하여 얻은 것이라고는 <태>가 자신의 강함만을 믿어 무리의 말을 따르지 않는 것이었었다. <태>는 <장안>으로 돌아갔다가, 잡혀 온 <환>군들이 <장안>을 거점으로 난리를 일으킨 바람에,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우시중 <양의신>이 동궁의 아들 <하성>을 낳았다. 상은 3품들의 딸을 택하지 않고 성골을 취하려 하였으나, 동궁이 <의신>을 아끼기가 이러하였더니, 많은 종실들이 달가워하지 않았다.
◎ 十月, <泰>, 送<高敖曹>・<竇泰>・<貸文>之首於<歓>而欲休戦, 築<玉壁城>為界, 險要也. <高歓>, 禁立寺為僧, 盖民避賦役僧尼二百万寺至三万故也. 上亦不禁佛, 故民為僧尼者漸多, 太安之世所不見也. <高澄>, 為吏部尙書, 収拾人物, 與之遊宴, 講論詩賦. 文人多從之.
○ 10월, <태>는, <고오조> 및 <두태>와 <대문>의 머리를 <환>에게 보내 휴전하고자 하였으며, <옥벽성>을 쌓아서 경계로 하였다. 험한 요새였었다. <고환>이 절을 세우고 중이 되는 것을 금하였다. 대략 백성들이 부역을 피하려 하였으며, 비구승이 200만이 되고, 절의 수가 3만이나 되었기 때문이었다. 상 또한 불교를 금하지 않았었더니, 백성이 비구승으로 되는 일이 점차 많아졌다. 태안지세라면 나타나지 말아야 할 일이었다. <고징>이, 리부상서가 되자, 인물들을 거두어들여 그들과 함께 연회를 열고 즐기며 시부{詩賦}를 강론하였더니, 많은 문인들이 그를 따랐다.
◎ 己未<大藏>九年, 春正月, 乙卯朔, 上, 與<高>皇后, 受朝於<獸林>溫宮. 戊辰, <紅>皇后生上子<{岬}
>太子, 命為東宮子.
二月, 上, 如<鯨>太后陵, 宴宗室于<黃山>別宮, 立<鯨>太子讓德碑于陵側.
立<宗女院>, 以<梁義臣>提擧, <谷晨>提敎. <晨>, <瑃>之女也. 時, 年十九. <義臣>之出<■>弟也. <內翰>, 只<容>公主故別立此, 以敎宗女也.
<宇文泰>置行臺. 學生, 旦治吏事, 晩復就講. 盖取我「武藏之制」也. <泰>之為人細密, 聞人之善則必效之. 其使往来必有所見而去.
○ 기미{단기2872/AD539}<대장>9년, 춘정월, 을묘일 초하루, 상이 <고>황후와 함께 <수림>의 「온궁」에서 조례를 받았다. 무진일, <홍>황후가 상의 아들 <갑{岬}>태자를 낳았더니, 명을 내려 동궁의 아들로 하였다.
2월, 상이 <경>태후릉으로 갔다가, 종실들에게 <황산>의 별궁에서 연회를 베풀고, <경>태자 양덕비를 능묘 옆에 세웠다.
<종녀원>을 세우고 <양의신>을 제거로 <곡신>을 제교로 삼았다. <신>은 <춘>의 딸이며, 이때 나이는 열아홉이었다. <의신>이 낳은 <■>의 동생이다. <내한>은, 단지 <용>공주의 연고이어서 이를 별도로 세우고, 종실 여인들을 가르쳤다.
<우문태>가 행대를 두었다. 학생{들}은 해가 뜨면 다스리는 관리로 일을 하고 해가 저물면 돌아와 강론에 참석하였다. 대략 우리의 「무장지제{武藏之制}」를 취한 것이었다. <태>는, 사람됨이 세밀하여, 다른 사람이 잘 하는 것이 있기만 하면, 필히 그것을 본 땄다. 그의 사신이 오갔었으니 반드시 살피고 돌아간 것이 있었을 것이다.
◎ 三月, 上, 如<宗女院>, 幸<谷晨>. 初, <義臣>因<晨>父<瑃>而登用驟貴, 欲報其恩, 敎<晨>以誠. <晨>美而有才. <義臣>, 爱之, 戒勿嫁人, 曰; "吾輩, 當生聖上之子.” 至是春, 深思應聖上而悲歌. 上聞之, 遂如院殿而通, 宗女山呼相慶, 賀物山積. <俶>公主生上女<偃>公主.
五月, <善見>以<歓>女為妻, 年二十. <高>后之姊也. 初, <善見>立, 年才十一, <歓>女年十五, 日侍于左右而相通. 至是, <善見>年己十六, 得娠乃立為后. <善見>, 雖忌<歓>, 爱其妻而忌憂. 上, 遣東宮如<鄴>, 賀其婚而贈其翟. <高>后亦送幣物.
<宝炬>使, 来献黃駝二十匹・<長安>美女二十人・葡萄酒万盆, 請討<高歓>. 上慰諭送之. <高>皇后, 以不絶<泰>使, 怒不食. 上, 以大義, 曉其難絶.
○ 3월, 상이 <종녀원>으로 가서 <곡신>에게 승은을 입혔다. 애초에 <의신>은 <신>의 아비 <곡춘>으로 인하여 등용되고 빠르게 높은 자리에 올랐기에 그 은혜를 보답하고자 성의를 가지고 <신>을 가르쳤다. <신>은 예쁘기도 하고 재주도 있었다. <의신>은, 그녀를 아꼈으며, 다른 사람에게 출가하지 말라 하면서, 말하길; “우리들은 성상의 아들 낳기를 담당하여야 한다.”라 하였었다. 이번 봄 들어 성상을 깊이 사모하고 사랑하여 슬프게 노래를 불렀다. 상이 이를 듣고는 이윽고 원전으로 가서 정을 통하였더니, 종녀들은 만세를 부르며 서로 경하하였고, 축하선물도 산같이 쌓였다. <숙>공주가 상의 딸 <언>공주를 낳았다.
5월, <선견>이 <환>의 딸을 처로 삼았다. 나이 스물이었고, <고>후의 언니였다. 애초에, <선견>은 11살에 보위에 섰었고, <환>의 딸은 15살이었는데 하루는 좌우에 시립하였다가 상통하게 되었었다. 이때에 이르러, <선견>의 나이 16살이 되었고, 임신하게 되자 후로 세운 것이었다. <선견>은, 비록 <환>은 싫어하였었지만, 자신의 처를 아끼더니 걱정하기도 싫어하였다. 상이, 동궁을 <업>으로 보내서, 그들의 혼인을 축하하고, 꿩 깃으로 꾸민 수레를 그녀에게 선물하였다. <고>후 역시 폐물을 보냈다.
<보거>의 사신이 와서 누런 낙타 20필 및 <장안>의 미녀 20명과 포도주 만 동이를 바치고, <고환>을 토벌하여 주십사 청하였더니, 상이 위무하고 타일러서 돌려보냈다. <고>황후는, <태>의 사신을 물리치지 않음에, 화를 내고 음식을 먹지 않았다. 상은, 대의를 들어, 끊어내기 어려움을 그녀에게 깨우쳐주었다.
◎ 九{六}月, <歓>發丁四十万, 城<鄴>四十日. 新宮亦成, 大赦, 改元曰<興和>. <善見>夫妻, 入新宮, 宴百僚.
<蕭衍>, 善善, 不用悪, 悪不去. <朱异>, 阿諛用事三十年, 庻納貨賂欺罔, 視聼園宅, 玩好飮食聲色, 窮一時之盛, 沐浴之日車馬填門.
以<竹內>令<陰震>為「褒孝大夫」. <震>, 以<竹內>令, 治一不孝, 問其不孝, 曰; "子之不孝由父之不慈, 莫問我. 而先審父, 可也.” <震>黙然起入內. 吏, 問何以処之. <震>, 怒, 曰; "彼之不孝, 皆汝等之罪也. 豈有謂父不慈而不孝者乎. 汝等以此為無罪邪. 謂父不慈, 賊之賊也. 養賊之村, 不可不滅.” 遂盡捕其村又執問吏, 吏隸乃惧, 曳出其賊, 而斬之於市. 自是, <竹內>之民, 相戒為孝. 上, 聞之, 曰; "<震>乃治孝之才也. 不使此人褒孝, [孰]能褒孝.” 遂擢大夫.
○ 9{6}월, <환>이 장정 40만을 징발하여 <업>을 성으로 쌓았는데, 40여 일이 걸렸다. 새로운 궁전 또한 완성되었더니, 크게 사면하고 년호도 <흥화>로 고쳤으며, <선견>부처는 새로운 궁으로 들어가서 백료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소연>은, 선행을 잘하고 악한 이를 중용하지 않았지만, 악한 이를 제거하지는 않았었다. 이에, <주이>는 아부하는 이를 정사에 등용하길 30년을 하였더니, 많은 이가 뇌물을 바치며 속이고 숨겼으며, 보고 듣는 것은 동산{정원}과 집 얘기뿐이고, 희롱하고 좋아하는 것은 음식과 성색뿐이었으니, 끝내는 잠시 동안의 흥청거림이거늘, 목욕하는 날엔 거마가 문전에 가득하였었다.
<죽내>령 <음진>을 「포효대부{효자순손을 포상하는 대부}」로 삼았다. <진>은, <죽내>의 수령으로서 한 불효자를 다스리기 위해, 불효하게 된 연유를 물었더니, 답하길; “자식의 불효는 아비의 자애롭지 못함에서 연유하는 것이니, 내게 묻지 말고 먼저 아비를 따져봄이 옳을 것입니다.”라 하였다. 이에 <진>은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안으로 들어갔고, 아전이 그 자를 어찌 처결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진>은 노하여 이르길; “저 놈의 불효는 모두 그대들의 죄요. 어찌 아비가 자애롭지 않았다하여 불효하였노라 말할 수 있소? 그대들은 이 자가 무죄라 여기는가? 아비가 자애롭지 못함을 말하는 것은 도적 중의 도적인 것이다. 도적놈을 길러내는 마을은 없애버리지 않을 수 없겠소.”라 하였다. 이윽고, 그 마을 사람들과 죄를 묻는 아전들도 모조리 잡아들였더니, 아전들은 굴복하기도 하였기만 두렵기도 하여 그 불효한 이를 끌어내어 저자에서 목을 베었다. 이때부터 <죽내>의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깨우쳐주어 효도하게 되었다. 상은 이 소식을 듣더니, 이르길; “<진>은 효를 다스리는데 귀재요. 이 사람을 「포효대부」로 하지 않는다면, 누가 능히 「포효대부」를 할 만하겠소.”라 하고는, 그를 대부자리에 발탁하였다.
◎ 八月, 上始幸<淵華>女<善屛>, 年才十一. 賜公主號以為假女, 才色當世苐一.
設養老宴, 賜國老<馮信>等衣酒, 試才取士, 以「褒孝大夫」<陰震>主其事. 東宮舍人<陰昌>又淫穢事東宮, 又薦民間女三人于東宮, 事發, 下瓊府抵罪. 上, 以至親免, 為<真珠陵>守. <昌>, 皇弟<陰>太子之子也. 其母<寧陽>, <德陽>后之胞妹也. 人以為<陰>則一也. <震>則善, <昌>則悪.
○ 8월, 상이 비로소 <연화>의 딸 <선병>에게 승은을 내렸다. 나이는 열 하나였다. 공주의 호칭을 내려서 수양딸로 삼았는데, 재색이 당대의 제일이었다.
양로연을 열고, 국로인 <풍신> 등에게 옷과 술을 내렸으며, 재능을 시험하여 출사할 이를 골랐다. 이 일은 「포효대부」 <음진>이 주관하게 하였다. 동궁의 사인 <음창>이, 또 음란하고 추잡하게 동궁을 섬겼으며, 또다시 민간의 딸 셋을 동궁으로 천거하였다가 일이 발각되어, 경부로 하옥되어 죄를 받게 되었다. 상은 지친인지라 죄를 면하여 주고, <진주릉>을 지키게 하였다. <창>은, 황상의 동생인 <음>태자의 아들이었으며, 그의 어미 <녕양>은 <덕양>후의 동복 여동생이었다. 사람들은 <음>{씨}가 제일인 것으론, <진>은 선하기로, <창>은 악하기로 그렇다 하였다.
◎ 庚申<大藏>十年, 春正月, 乙酉朔, 受朝於<抱真宮>. 上, 以朱木宮役巨創未成, 汰其匠監五人.
二月, <宝炬>, 思慕<乙弗>, 密令養髮而還. <郁久閭>, 聞之怒, 告于<頭兵>. <頭兵>, 怒, 曰;“見欺亍, <黑獺>也.”遂引兵而下. <宝炬>, 聞之歎, 曰;“豈有為一女而興兵百万者邪.” <泰>促<宝炬>殺<乙弗>. <宝炬>, 不得, 泣而賜死. <乙弗>, 泣, 曰;“妾知此事非陛下意, 雖死無恨. 願, 至尊千万歲, 天下康寧.”乃自縊而死. 鑿<麥積崖>葬之, 號曰<寂陵>. 或云, <宝炬>與<乙弗>密通於外殿, <郁久閭>馳徃殺之. <宝炬>抱<乙弗>而痛哭. <郁久閭>, 欲奪其尸, 觸毒氣而倒疾作而死. 兩妻一時俱沒. 身為萬乘, 與妻密通, 可謂悽也. 諡<乙>曰<文后>, 諡<郁>曰<悼后>. <頭兵>, 聞<乙弗>之死而回軍, 不知其女之死. <高歓>, 因此, 復與<頭兵>約和, <頭兵>之反復如是.
○ 경신{단기2873/AD540}<대장>10년, 춘정월, 을묘일 초하루, <포진궁>에서 조례를 받았다. 상은, 주목으로 궁을 짓는 일이 거창하였기에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장인과 감독하는 이 다섯을 내쳤다.
2월, <보거>가 <을불>이 그리워서 은밀히 령을 내려 머리를 기르고 돌아오라 하였더니, <욱구려>는 이를 듣고 노하여 <두병>에게 일러바쳤다. <두병>은 화가 나서 이르길; “거짓으로 멈칫 한 것을 보니 시커먼 족제비였구나.”라 하고는 군병을 이끌고 남하하였다. 이 소리를 들은 <보거>는 탄식하여 말하길; “어찌 딸 하나를 위하여 백만 군병을 일으킨단 말인가?”라 하였다. <태>는 <보거>에게 <을불>을 죽이라고 재촉하였고, <보거>는 하는 수 없이 울면서 죽으라 하였다. <을불>은 울면서 말하길; “첩은 이 일이 폐하의 뜻이 아님을 알기에, 비록 죽더라도 여한은 없습니다. 원컨대 지존께서는 천만세하시고 천하는 강녕하길 바랍니다.”라 하고는 스스로 목매 죽었다. <맥적애>에 굴을 뚫어 장사하여 주고 <적릉>이라 하였다. 혹자는 <보거>가 <을불>과 바깥의 전각에서 몰래 정을 통하자 <욱구려>가 밀고 들어가서 죽였다 한다. <보거>가 {죽은} <을불>을 껴안고 통곡하자, <욱구려>는 그 시신을 탈취하려다가 독 기운이 묻어서 넘어지더니 병들어 죽었다고 한다. 양 처가 둘 다 일시에 죽었다. 몸은 만승지존이 이었으나, 처와는 몰래 정을 나눠야 하였었으니, 처량하였다 할만 했다. <을>의 시호는 <문후>로, <욱>의 시호는 <도후>로 하였다. <두병>은, <을불>이 죽었다는 소리에 회군하였으니, 자기의 딸이 죽은 것은 알지 못하였다. <고환>은 이 일로 다시금 <두병>과 화친을 약속하였다. <두병>의 변덕스럽기가 이러하였다.
◎ 閏五月, 丁丑朔, 日食. 上, 飮茶潔身, 不御聲色三日, 命放<賊子村>人之在囚者. 時, 以不孝之賊煮面, 以賊子兼治其村人. 怨聲達于上故也.
東宮, 如<晋陽宮>, 逼<高>皇后, 通之. <高>, 避, 不得, 而泣告于上. 上曰;“彼為天子. 汝将何之, 而不欲相悅邪.” <高>, 乃知上意, 而遂與東宮洽好.
<柔然>献獅子二頭, 雌大雄小. 命楽官作歌而舞, 曰<子母曲>・<月面曲>.
七月, <原宗>死. 女<只召>稱制. 其子<深麥>年七歲, <只召>不自立而立<深麥>, 抱而決政事. <原宗>好佛, <只召>好仙. <只召>有夫三人, 曰; <立宗>・<苔宗>・<荒宗>. 逓月, 入侍. <深麥>, <立宗>出. 或云, <原宗>之出也. 上, 以其僣王, 不問.
○ 윤5월, 정축일 초하루, 일식이 있었다. 상은, 차를 마시고 몸을 정결히 하면서 사흘간 성색을 접하지 않더니, 명을 내려 <적자촌>의 사람으로 갇혀있는 이들을 풀어주라 하였다. 이 시절, 불효한 도적놈은 얼굴을 지졌으며, 그 도적놈이 아울러서 그 마을을 다스리게 하였더니, 원망하는 소리가 상에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동궁이 <진양궁>으로 가 <고>황후를 을러서 정을 통하였다. <고>후는, 피하려 하였으나 어쩔 수 없었고, 그리하여 울면서 상에게 고하였더니, 상이 이르길; “그는 천자가 될 것이야. 그대는 장차 그를 어쩌려고, 함께 즐기지 않겠다는 것인가?”이라 하였다. 이에 <고>후는, 상의 속뜻을 알게 되었고, 이후 동궁과 함께 흠뻑 좋아지냈다.
<유연>이 사자 두 마리를 바쳐왔는데, 암컷은 크고 수컷은 작았다. 악관에게 명하여 노래를 짓게 하고 춤을 추었으니, <자모곡>과 <월면곡>이었다.
7월, <원종>이 죽었다. 딸 <지소>가 다스리게 되었다. 그녀의 아들 <심맥>은 나이 일곱이었는데도, <지소>는 스스로 보위에 서지 않고, <심맥>을 세워서 품에 안고 정사를 처결하였다. <원종>은 불도를 좋아하였고 <지소>는 선도를 좋아하였다. <지소>에게는 지아비가 셋이 있었다. <입종> 및 <태종>과 <황종>이 그들이며, 달마다 번갈아서 입시하였다. <심맥>은 <입종>의 아들이다. 혹자는 <원종>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상은 그가 왕을 참칭하여도 불문에 붙였다.
◎ 九月, <燕會>, 與<牛山城>主爭界, 将兵一万来侵. <牛山城>主<王息>以五千騎迎擊大破之. <明穠>遣使来謝罪, 械<燕會>去.
十一月, 上, 遣使如<鄴>, 祭<淸河><文宜王><亶>. <亶>, <高>皇后假父而<玉陵>之兄也. <高>皇后欲見母而皈, 不許. <華陽>生上女<白陵>公主.
十二月, <泰>, 與<吐谷渾>通而欲制<柔然>使之討<歓>. 其計可謂窮矣. 上納<善屛>為三品茶儀. 時, 年十二. 寵傾後宮. <高>皇后生女<汾陽>公主, <歓>使来賀進貢. 東宮如<椘雲宮>又如<晋陽宮>.
<柔然>, 與<吐谷渾>, 不睦. <吐>王<夸呂>居<靑河>之西<伏俟城>, 其官「僕射」・「尙書」等如<漢>制.
○ 9월, <연회>가, <우산성>주와 경계를 다투더니, 일 만병을 이끌고 침입하였다. 이에 <우산성>주 <왕식>이 5천의 기마병으로 맞닥뜨려 쳐서 대파하였다. <명농>이 사신을 보내 사죄하였다. <연회>를 차꼬를 채워서 돌려보냈다.
11월, 상이, 사신을 <업>으로 보내서, <청하>의 <문의왕><단>을 제사하였다. <단>은 <고>황후의 양아비로 <옥릉>의 오빠다. <고>황후가 어미가 보고 싶어 돌아가고자 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화양>이 상의 딸 <백릉>공주를 낳았다.
12월, <태>가, <토곡혼>과 상통하더니, <유연>을 조정하여서 그들이 <환>을 토벌하게 하고자 하였으니. 그 계책이라는 것이 가위 궁색한 것이었다. 상이 <선병>을 맞이하여 3품 다의로 삼았다. 이때 나이는 열둘이었다. 총애는 후궁으로 기울었다. <고>황후가 딸 <분양>공주를 낳았더니, <환>의 사신이 와서 축하하고 공물을 바쳤다. 동궁이 <초운궁>을 들렀고, 또 <진양궁>도 들렀다.
<유연>이 <토곡혼>과 사이가 나빠졌다. <토>왕 <과려>는 <청하>의 서쪽인 <복사성>에 있었으며, 그의 관리 「복야」와 「상서」 등은 <한>의 제도와 같았다.
◎ 辛酉<大藏>十一年, 春正月, 癸酉朔, 上, 與<紅>皇后・東宮, 受朝於<牛頭殿>. <吐谷渾>王<夸呂>, 遣其禮部尙書<乙弗熙>, 入貢汗血馬三十匹・黃駝五十匹・<西王母>「碧海裙」及不老酒等, 自稱<美川>之裔, 請叙族相婚. 上, 遣<興文>太子, 皇弟, 如其國.
二月, <高歓>使来献絹紬・薬材・玉器等. <明穠>, 得<梁>人画工・楽器, 與<深麥>更和. <深麥>, 以<異斯夫>為兵部令, 委以兵事. 乃<只召>之情夫<苔宗>也.
<淵華>生上女<京>公主. 或云, <文藏>女也. 其母<義臣>生東宮女<白鸞>公主.
<柔然>来請献女為臣國. 上, 以路遠難救, 辞之. <柔然>, 以其秘圖, 指其間道, 可以徃来. 是為<北漢路>.
○ 신유{단기2874/AD541}<대장>11년, 춘정월, 계유일 초하루, 상은 <홍>황후와 동궁을 데리고 <우두전>에서 조례를 받았다. <토곡혼>의 왕 <과려>가 그의 례부상서 <을불희>를 보내어 입조하고 한혈마 30필, 누런 낙타 50필, <서왕모>의 「벽해군{바다같이 넓은 푸른 치마}」 및 불로주 등을 공물로 바치면서, <미천>의 후예임을 자칭하였으며, 귀한 혈족간에 서로 혼인하기를 청하였다. 상은 황상의 동생인 <흥문>태자를 보내어 그 나라로 가게 하였다.
2월, <고환>의 사신이 와서 명주실과 약재 및 옥기 등을 바쳐왔다. <명농{백제}>이, <양> 사람인 화공과 악기를 얻게 되었으며, <심맥{신라}>과는 다시금 화친하였다. <심맥>은 <이사부>를 병부령으로 삼아 병사{兵事}를 맡겼다. <이사부>는 <지소>의 정부로 <태종>이다.
<연화>가 상의 딸 <경>공주를 낳았다. <문장>의 딸이라 하기도 한다. 그 어미 <의신>은 동궁의 딸 <백란>공주를 낳았다.
<유연>이 찾아와 딸을 바치고 신하의 나라가 되겠다고 청하였다. 상은 길이 멀어서 구원하여 주지 못하니 사양 하겠다고 하였더니, <유연>의 사신은 비밀지도를 내어놓고 손으로 사잇길을 짚어 보이며 왕래가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 길이 바로 <북한로>이다.
◎ 三月, 遣太僕卿<芙星>於<柔然>, 以白馬為幣, 以聖上「金溺盆」賜<柔然>公主. <谷晨>生上子<昷>.
五月, 命<陰震>褒「五部」孝子・烈女・忠奴・義友等四十八人. 加爵, 賜衣・酒・車馬及譽傘.
十月, 幸<西河>, 賜酒父老, 以慰勤農. 賞農技之士二十人為「農師」.
十二月, <高歓>子<澄>妻<馮翊>生子<孝琬>, 遣鴻矑卿<高銀>徃賜衣及<高>皇后私贈衣饌.
○ 3월, 태복경 <부성>을 <유연>으로 보내서, 백마를 예물로 내주고, 성상의 금뇨분{금으로 만든 뇨강}을 <유연>의 공주에게 하사하였다. <곡신>이 상의 아들 <온>을 낳았다.
5월, <음진>에게 명하여 「5부」의 효자・열녀・충노・의우 등 48인을 포상하였다. 작위를 더해주고 옷과 술 및 거마와 영예로운 일산을 주었다.
10월, <서하>로 거둥하여 부로에게 술을 내려서 농사에 부지런하였음을 위로하였다. 농사기술이 좋은 20인을 상을 내려 「농사」로 삼았다.
12월, <고환>의 아들 <징>의 처 <풍익>이 아들 <효완>을 낳았다기에, 홍로경 <고은>을 보내서 옷을 하사하고 <홍>황후가 사사로이 보낸 옷과 음식도 선물하였다.
◎ 壬戌<大藏>十二年, 春正月, 丁卯朔, <齊雲>公主薨. <仁宗>女也. 享年八十五. 廢朝臨丧. 其子<雲連>, <連>氏之主也.
<紅>皇后生東宮女<白雉>公主. 鴻矑卿, 自<鄴>還, 言, <山東>大豊, 斛至九錢. 上, 命<爾朱彦>貿<山東>穀舟運<南口>.
三月, 東宮如<善屛>宮. 大風拔木飛瓦. <俶>公主生東宮女<仙>公主.
四月, 雹. 上, 减饍, 求言, 自禱于天. <南越>人<趙信>等五十七人漂来皈化.
○ 임술{단기2875/AD542}<대장>12년, 춘정월, 정묘일 초하루, <제운>공주가 죽었다. <인종{仁宗}>의 딸{또는, 어진 종실녀}이었고, 향년 85세였다. 조례를 폐하고 상청을 지켰다. 그녀의 아들 <운연>은 <연>씨의 주인{공경대부}이다.
<홍>황후가 동궁의 딸 <백치>공주를 낳았다. 홍로경이 <업>에서 돌아와 아뢰길; “<산동>땅에 큰 풍년이 들어 {곡물} 한 가마니의 값이 9전이었다.”고 하였다. 상이 <이주언>에게 명하여 <산동>땅의 곡물을 사들여서 거룻배로 <남구>로 실어 나르게 하였다.
3월, 동궁이 <선병>의 궁으로 갔다. 큰바람으로 나무가 뽑히고 기와가 날렸다. <숙>공주가 동궁의 딸 <선>공주를 낳았다.
4월에 우박이 내렸다. 상은, 음식을 줄이고, 조언을 구하기도 하였으며, 스스로 하늘에도 빌었다. <남월>사람 <조신> 등 57인이 표류하여왔다가 귀화하였다.
◎ 五月, <興文>太子, 尙<夸呂>女<乙弗>氏, [而]来. 是為<靑海>公主. <吐>國, 東西四千里南北二千里, 有鹽池・沃野, 牧畜盛行. 其<伏俟城>多<漢>人, 文物完備, 冠爵一依<漢>制, 勝於<柔然>. 其王・公, 皆<慕容廆>之兄後. 而今王<夸呂>, <美川帝>之十世孫, 云.
<芙星>, 與<柔然>王子<宇雷近>, 陪<聂>公主来. 上, 迎于<西河>行宮合巹. 公主, 年十二, 容色絶美・善歌舞. 黃駝千頭・白象雌雄・馬万匹・香車七百乘・侍臣三百人, 置之公主宮外新起邸宅. <宇雷近>, 說上, 曰;“<夸呂>多詐, 不可信. 請却其婚.” 上曰;“旣娶之女, 何可棄乎. 且非吾妻, 勿慮之.” 自是, 上, 如<淸海宮>, 不使<蠕蠕宮>人知之.
○ 5월, <흥문>태자가 {<토욕혼>} <과려>의 딸 <을불>씨와 혼인하여 돌아왔다. 이이가 <청해>공주가 된다. <토>국은 동서가 4천 리에 남북으로 2천 리였다. 염지{소금물 호수 또는 연못}와 기름진 벌판이 있으며, 목축이 성행하였다. 그들의 <복사성>은 <한>인들이 많았으며, 문물을 완전히 갖추고 있었고, 관작은 <한>의 제도 하나에 의존하고 있었으나, <유연>보다는 나았다. 그 곳의 왕과 공경 들은 모두 <모용외> 형의 후예들인데, 지금의 왕 <과려>는 <미천제>의 10세손이라 하였다.
<부성>이, <유연>의 왕자 <우뢰근>과 더불어, <섭>공주를 배종하여 왔다. 상은 <서하>의 행궁에서 맞아들였고 합근{합환}하였다. 공주는 나이가 12살이었으며, 얼굴과 모습이 절세미인이었고 가무도 잘 하였다. 누런 낙타 천 두, 흰 코끼리 암수, 말 만 필, 꽃마차와 7백 대의 수레, 시신 3백 인이 딸려 왔다. 이들을 공주의 궁 밖의 새로이 저택에 머무르게 하였다. <우뢰근>이 상께 아뢰길; “<과려>는 속임수가 많으니 믿어서는 아니 됩니다. 청컨대 혼인을 물리시지요.”라 하였더니, 상이 이르길; “이미 혼인한 여인인데, 어찌 저버릴 수 있겠나? 게다가 {<을불>은} 나의 처도 아니니{<과려>의 딸 <을불>씨는 <흥문>태자와 혼인했음}, 염려하지 말게나."라 하였다. 이 이후로 상은 <청해궁{<을불>씨의 궁}>에 가더라도 <연연궁{=<유연궁>=<섭>공주의 궁}>의 사람들이 알아채게 하지 않았다.
◎ 十一月, 以<談緯>子<薀>, 為上假子, 如<魏>娶<詡>女<{橾}陽>公主. 年十五. 聞<高歓>圍<玉壁>九日, 遇大雪而還. <高歓>, 以<李元忠>欲為僕射. <澄>曰;“<元忠>, 飮酒過度, 不可為僕射.” <元忠>之子諫其父, 曰;“節酒何如.” <元忠>曰;“吾見僕射不如酒. 汝若愛僕射, 其勿飮酒.” 人稱酒僕射.
○ 11월, <담위>의 아들 <온>이 상의 수양아들이 되어 <위>로 가서 <후>의 딸 <{수}양>공주와 혼인하였는데, 나이는 열다섯이었다. <고환>이, <옥벽>을 포위하고 있길 9일 만에, 큰 눈을 만나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환>이 <이원충>을 「복야」로 삼고자 하였는데, <징>이 아뢰길; “<원충>은 술을 지나치게 마시니 「복야」로 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 하였고, <원충>의 아들은 자신의 아비에게 간하기를; “술을 삼가는 게 어떠신가요?”고 하였더니, <원충>은; “내가 보기엔 「복야」가 술만 못하다. 네가 만약 「복야」가 되고 싶다면, 너나 술을 마시지 말거라.”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그를 「주복야」라고 불렀다.//(계속)

◎ 戊午<大藏>八年, 春正月, 辛酉朔, 日食, 停朝. 與<高>皇后, 但饋<婁>氏使于內殿. <柔然><宇古晋>来言;“途逸貢象, 為<高歓>軍所奪.” 上, 方寵<高>皇后, 故以為離間而不問. 後聞, <善見>跨其象而改元<元象>, 不悅, 曰;“不意<高>丞相奪我巨象.” 后, 密使于<婁>氏, 納巨象三頭, 二雌一雄. 上, 與王后, 騎之, 曰; `吾妻象'. <玉陵>妃生上女<紅陵>公主.
二月, 大閱于<黃山>. <契丹>王<好頓>献其盖室・虎皮三百張・羊千匹・牛百匹. 盖效<高歓>之送女也. 上, 嘉納之, 封<好頓>為右大将・<燕山公>.
○ 무오{단기2871/AD538}<대장>8년, 춘정월, 신유일 초하루, 일식이 있어 조례를 미루었다. <고>황후와 함께 다만 내전에서 <루>씨의 사신에게 음식을 대접하였다. <유연>의 <우고진>이 와서 아뢰길; “오는 도중에 공물로 가져오던 코끼리가 도망한 것은 <고환>의 군대에게 털린 것이었습니다.”라 하였는데, 상은 때마침 <고>황후와 정을 나눴던지라 이간하려는 것으로 여기고 {그 정황을} 묻지 않았다. 나중에 들으니, <선견>이 그 코끼리를 타고 다니고 있으며 연호도 <원상>으로 바꾸었다 하니, 마음이 상하여 이르길; “그럴 줄 몰랐는데, <고>승상이 내 코끼리를 빼앗아갔소.”라 하였다. 그러자, 후가 몰래 <루>씨에게 사람을 보내서 코끼리 세 마리를 바치게 하였다. 암컷 두 마리와 수컷 한 마리였다. 상은, 황후와 함께, 그 코끼리를 올라타고 달리면서, 이름을 지어주길 `오처상{내 처의 코끼리}'이라 하였다. <옥릉>비가 상의 딸 <홍릉>공주를 낳았다.
2월, <황산>에서 크게 사열하였다. <거란>왕<호돈>이 그의 개실{게르=천막집}과 호피 300장 및 양 1,000필과 소 100필을 바쳐왔다. 대략 <고환>이 딸을 보낸 것을 본 뜸이었다. 상은 기꺼이 받아들이고, <호돈>을 우대장・<연산공>으로 봉하였다.
◎ 三月, <宇文泰>, 以舍人<元翌>女為<化政>公主妻<頭兵>弟<塔寒>, 又使<宝炬>廢<乙弗>氏為尼, 使<扶風>王<孚>迎<頭兵>[女<郁久閭>]. <頭兵>, 以車七百乘・馬万匹・駝二千匹送至<黑鹽池>遇<泰>所遣<鹵薄儀衛>. <孚>請<郁>南面, <郁>曰; "我未見<魏>主, 姑<柔然>女也.”東面立, 而<魏>使南面. 十七日, <宝炬>, 與<郁久閭>含巹而陰陽不合, 頗思<乙弗>.
<明穠>, 移都於<所夫里>, 以舟艦通于<蕭衍>, 自稱<南夫餘>, 欲得其利器而不軌.
○ 3월, <우문태>는, 사인 <원익>의 딸을 <화정>공주로 삼아서 <두병>의 동생 <탑한>에게 처로 주었으며, 또한 <보거>로 하여금 <을불>씨를 폐하게 하여 비구니로 만들었고, <부풍>왕 <부>를 시켜서 <두병>의 딸 <욱구려>를 마중하게 하였다. <두병>은, 수레 700대와 말 만 필 및 낙타 2천 필을 <흑염지> 부근으로 보내서 <태>가 보낸 <로박의위>를 만나게 하였다. <부>가 <욱>에게 남쪽으로 향하길 청하였더니, <욱>이 말하길; “나는 아직 <위>주를 본 적이 없으니, 이 아녀자는 <유연>의 딸이오.”라 말하고는 동쪽을 향하여 섰고, <위>의 사신은 남쪽을 향하여 섰다. 17일에 <보거>는, <욱구려>와 합근{=合歓=合房}하였으나 음양이 맞질 않자, 자못 <을불>을 그리워하였다.
<명농>이, <소부리>로 도읍을 옮기고, 거룻배와 큰 배편으로 <소연>과 내통하였다. 스스로 <남부여>를 칭하였으며, 그들의 날카로운 무기를 얻어 불궤를 도모하고자 함이었다.
◎ 五月, <宝炬>, 又上書, 言;“臣, 娶<柔然><頭兵>可汗之女為妻. 妻母<才治>后, 乃<鄯善>公主所生<原同>可汗之女也. <原同>可汗之父, 乃<廣開土皇>之子<鯨>太子也. 伏聞, <鯨>太子亦陛下外曾祖, 云. 臣妻, 亦<鯨>太子之曾孫也. 臣夫妻, 俱以陛下之族, 永為臣屛. 故正月, 與臣, 妻父<頭兵>可汗, 献象于陛下, <高歓>掠奪於<碭山>, 心甚缺然. 陛下, 幸勿以<歓>女之致見踈於臣, 臣亦欲納女盡忠.”云云. 上, 厚待其使, 曰;“爾主為外裔, 而我妻亦<魏>公主. <善見>乃我從姪, 而汝主乃我從弟也. 何為而何薄耶. 互守封彊而勿侵. 自有公論之皈正, 不使兄弟相殘, 可也. 至於象之得失, 非吾所意也. <高>丞相豈掠象者哉.”
○ 5월, <보거>가 또 글을 올려 말하길; “신은 <유연><두병>가한의 딸을 처로 들였습니다. 처의 어미는 <재치>후이며 <선선>공주 소생 <원동>가한의 딸입니다. <원동>가한의 아비는 <광개토황>의 아들이신 <경>태자입니다. 엎드려 듣잡건대, <경>태자께서는 역시 폐하의 외증조이시었고, 신의 처는 <경>태자님의 증손입니다. 신의 부처 모두가 폐하의 혈족이오니, 영원히 변방의 병풍이 되겠습니다. 지난 정월에, 신과 함께 처의 아비 <두병>가한이 폐하께 코끼리를 바쳤었는데, <고환>이 <탕산>에서 약탈하였기, 심경이 매우 편안치 않았습니다. 폐하, <환>이 딸을 바친 것으로 인하여 저에게 소원함을 보이지 마시길 원하옵니다. 신 또한 딸을 바치고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라는 등등이 쓰여 있었다. 상이, 그 사신을 후하게 대접하고, 이르길; “자네의 주인은 외가의 후예이고, 내 처 또한 <위>의 공주이오. <선견>은 나의 종질이고, 그대의 주인 또한 내 종제가 되니, 누구의 말은 들어주고 누구에겐 야박할 수 있겠소? 서로들 봉하여진 땅을 지키고 침입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오. 스스로 공론하여 보면 바른 길을 걷게 될 것이고, 형제들 간에 서로 잔혹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오. 코끼리가 내게 왔고 못 왔음에 이르러서는 내가 뜻한 바는 아니었으니, {내가} 어찌 <고>승상을 코끼리를 약탈한 놈이라고 할 수 있겠소.”라 하였다.
◎ 七月, <歓>, 使<候景>・<高敖曹>, 圍<獨孤信>於<金墉>. <景>燒<洛陽>內外官寺・民居, 存者什之二三.
八月, <宇文泰>救<獨孤>而至<穀城>, <歓>将<貸文>・<道元>以千騎恃勇前進, 夜遇<泰>将<李弼>於<孝水>. <弼>命軍士皷噪曳柴揚塵, <貸文>走, <弼>追斬之. <道元>单騎獲免, 千騎盡沒. <泰>軍漸前, <候景>夜解圍而皈. <泰>以輕騎追<景>至<河>上. <景>, 陳於<河橋>・<邙山>之下, 與<泰>合戦. <泰>馬中矢驚逸, <泰>落馬. <歓>兵追至, 左右皆散. 都督<李穆>, 下馬以策打<泰>背, 曰;“籠東軍士, 爾主何在, 而獨留此.” 追者, 不疑其貴人, 捨之而過. <穆>以馬授<泰>而俱逸.
○ 7월, <환>이 <후경>과 <고오조>를 시켜서 <독고신>을 <금용>에서 포위하였다. <경>이 <락양> 안팎의 관사와 백성의 가옥에 불질렀더니, 타지 않고 남은 것은 열에 두셋 정도였다.
8월, <우문태>가 <독고>를 막아내고 <곡성>에 다다랐었더니, <환>의 장수인 <대문>과 <도원>이, 1천 기병으로 용맹함만을 믿고 앞으로 나아갔다가, 밤중에 <태>의 장수 <이필>과 <효수>에서 맞닥뜨렸다. <필>이 군사들에게 명하여 북을 두드려 소란하게 하고 섶을 끌어 먼지가 일게 하였더니, <대문>은 도주하였고, <필>이 쫓아가서 참하였다. <도원> 또한 단기로 잡힘을 면하긴 하였으나, 1천의 기병은 모조리 잃었다. <태>의 군대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더니, <후경>은 밤중에 포위를 풀고 돌아갔다. 이에 <태>는 경기병으로 <경>을 쫓아 <하>상{북변}에까지 다다랐다. <경>은 <하교>와 <망산> 아래에 진을 치고 <태>와 맞붙어 싸웠다. <태>의 말이 화살에 맞아 놀라 달아났더니 <태>는 말에서 떨어졌고, <환>의 군병이 쫓아오니 좌우가 모두 흩어졌는데, 도독 <이목>이 말에서 내려 <태>의 등줄기를 채찍으로 내리치며 이르길; “패잔 군사야! 네 주인은 어디로 가고 너 혼자만 여기 남았느냐?"라 하였다. 추적하여 온 자들은 그가 귀인인가를 의심해보지도 않고 내버려두고 지나쳤다. <목>은 <태>에게 말을 주어 함께 달아났다.
◎ <泰>兵復振, 盖大軍至也. <高敖曹>[輕]<泰>建旗, <泰>軍盡銳攻之. 故一軍皆沒, <敖曹>單騎走<河陽><南城>, 守<高永樂>有怨不入. <敖曹>拔刀穿闔未徹, 追兵至, <敖曹>伏橋下. 追者見其從奴持金帶, 問奴而知. <敖曹>, 知不免, 奮頭, 曰;“來. 與汝開國公.” 追者斬其首, 而去. <歡>, 哀痛, 杖<永樂>二百而不殺, 盖其從祖兄子也. 上, 聞之歎, 曰;“<泰>, 甘籠軍而受策, 免死. <敖曹>建旗陷陳, 奴帶而豪語無敵, 進之. 勇而驕傲, 使人有怨, 非名將也. 宜其死也.”
○ <태>의 군병들이 다시 떨쳐 일어났다. 개략 대군이 답지하였음이었다. <고오조>가 <태>를 우습게 여기고 깃발을 세우자, <태>의 군병이 날램을 다하여 그들을 공격하였더니, 일군이 모조리 무너지고 <오조>는 단기로 <하양><남성>으로 달아났더니, {그곳을} 지키던 <고영락>은 원한이 있었던지라 들이지 않았고, <오조>가 칼을 뽑아 성문에 구멍을 내고 있었는데, 뚫리기도 전에 추병이 다가오자 <오조>는 다리 밑으로 숨었고, 추병들은 그의 하인이 금대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고는 물어서 알아냈다. <오조>는, 목이 떨어짐을 면할 수 없음을 알았는지라, 머리를 불쑥 내밀며 말하길; “와라! 너를 개국공으로 만들어 주겠다!”라 하였더니, 추병이 그의 머리를 잘라서 돌아갔다. <환>은, 이것이 애통하였으나, <영락>을 곤장 200대를 치고 죽이지는 않았다. 대략 자기 종조부 형님의 아들이었음이라. 상이, 이 소식을 듣고, 이르길; “<태>는 패잔군 신세를 감내하며 채찍을 맞고 죽음을 면하였소. <오조>는 깃발을 세웠다가 진을 무너뜨려먹고서도, 놈은 허리띠를 차고 무적을 호언하며 내달았었소. 용맹하긴 하였으나, 교만 방자하여 다른 이의 원한을 샀으니, 명장은 아니었소. 죽어도 쌌었소.”라 하였다.
◎ 時, <泰>軍, 又殺<歓><兗州>刺使, 虜其甲士万五千人, 赴<河>死萬數矣. <邙山>之戦, 諸軍皆共度<河橋>, 獨<万俟洛>勒兵不動, 曰;“<万俟洛>在此, 能来可来.” <泰>軍畏之而去. <高歓>, 甞敬<洛>父, 以殊禮親扶上馬, 故<洛>感其恩而決死戦也. 決死之色見於外, 故<泰>軍畏之也. 戦之勝敗, 不在於軍之多少, 在於決死之固與不固也. <泰>以小軍常勝者, 盖其决死故也. <邙山>之戦, <歓>, 失<高敖曹>而始決死戦, 故得勝也. 自旦至未, 戦數十合, 氣霧四塞莫能相知. 而<歓>軍不退者有所激也, <泰>軍自滿者有所得也. <泰>, 安得自彊, 而不從衆哉. <泰>, 皈<長安>, 所俘<歓>軍據<長安>作亂, 尋潰. 右侍中<梁義臣>生東宮子<夏成>. 上, 不選三品女者, 欲得聖骨. 東宮如是爱<義臣>, 故宗室多不悅.
○ 이 시절, <태>의 군대가 또 <환>의 <연주>자사를 죽이고 그의 정예군사 1만 5천을 사로잡아서 <하>수에 다다랐더니 죽은 이가 만 명을 넘었다. <망산>에서 싸움에서, {<고환>의} 여러 군대가 모두 <하교>을 건넜지만, 유독 <만사락>은 병졸들을 다잡아놓고 움직이지 않으면서 말하길; “<만사락>이 여기 있다! 올 수 있으면 와봐라!”라 하였다. <태>의 군대는 그 남은 군대가 두려워서 물러났다. <고환>은 일찍이 <락>의 아비를 존경하여 각별한 예로써 손수 말위에 오르는 것을 도왔었더니, <락>은 그 은혜에 감복하여 죽기로 싸웠던 것이었고, 죽기로 싸우겠다는 표정이 밖으로 내비쳐졌었더니, <태>의 군대가 두려워하였던 것이었다. 전쟁에서 승패는, 군사의 많고 적음에 따르는 것이 아니고, 죽기로 싸우겠다는 의지가 굳세고 굳세지 않음에 달린 것이었다. <태>가 적은 수의 군대로 매번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들이 죽기로 싸웠기 때문이었다. <환>은, <망산>의 싸움에서 <고오조>를 잃고나서야 비로소 결사적으로 싸웠고, 그리하여 승리를 챙길 수 있었던 것이었다. 동이 틀 무렵부터 미시까지 싸우길 수십 합이 되었고, 날씨가 구름으로 사방이 가려져서 서로를 알아볼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환>의 군대가 물러나지 않은 것은 싸우고자 하였음이었고, <태>의 군대가 자만하여 얻은 것이라고는 <태>가 자신의 강함만을 믿어 무리의 말을 따르지 않는 것이었었다. <태>는 <장안>으로 돌아갔다가, 잡혀 온 <환>군들이 <장안>을 거점으로 난리를 일으킨 바람에,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우시중 <양의신>이 동궁의 아들 <하성>을 낳았다. 상은 3품들의 딸을 택하지 않고 성골을 취하려 하였으나, 동궁이 <의신>을 아끼기가 이러하였더니, 많은 종실들이 달가워하지 않았다.
◎ 十月, <泰>, 送<高敖曹>・<竇泰>・<貸文>之首於<歓>而欲休戦, 築<玉壁城>為界, 險要也. <高歓>, 禁立寺為僧, 盖民避賦役僧尼二百万寺至三万故也. 上亦不禁佛, 故民為僧尼者漸多, 太安之世所不見也. <高澄>, 為吏部尙書, 収拾人物, 與之遊宴, 講論詩賦. 文人多從之.
○ 10월, <태>는, <고오조> 및 <두태>와 <대문>의 머리를 <환>에게 보내 휴전하고자 하였으며, <옥벽성>을 쌓아서 경계로 하였다. 험한 요새였었다. <고환>이 절을 세우고 중이 되는 것을 금하였다. 대략 백성들이 부역을 피하려 하였으며, 비구승이 200만이 되고, 절의 수가 3만이나 되었기 때문이었다. 상 또한 불교를 금하지 않았었더니, 백성이 비구승으로 되는 일이 점차 많아졌다. 태안지세라면 나타나지 말아야 할 일이었다. <고징>이, 리부상서가 되자, 인물들을 거두어들여 그들과 함께 연회를 열고 즐기며 시부{詩賦}를 강론하였더니, 많은 문인들이 그를 따랐다.
◎ 己未<大藏>九年, 春正月, 乙卯朔, 上, 與<高>皇后, 受朝於<獸林>溫宮. 戊辰, <紅>皇后生上子<{岬}
>太子, 命為東宮子.
二月, 上, 如<鯨>太后陵, 宴宗室于<黃山>別宮, 立<鯨>太子讓德碑于陵側.
立<宗女院>, 以<梁義臣>提擧, <谷晨>提敎. <晨>, <瑃>之女也. 時, 年十九. <義臣>之出<■>弟也. <內翰>, 只<容>公主故別立此, 以敎宗女也.
<宇文泰>置行臺. 學生, 旦治吏事, 晩復就講. 盖取我「武藏之制」也. <泰>之為人細密, 聞人之善則必效之. 其使往来必有所見而去.
○ 기미{단기2872/AD539}<대장>9년, 춘정월, 을묘일 초하루, 상이 <고>황후와 함께 <수림>의 「온궁」에서 조례를 받았다. 무진일, <홍>황후가 상의 아들 <갑{岬}>태자를 낳았더니, 명을 내려 동궁의 아들로 하였다.
2월, 상이 <경>태후릉으로 갔다가, 종실들에게 <황산>의 별궁에서 연회를 베풀고, <경>태자 양덕비를 능묘 옆에 세웠다.
<종녀원>을 세우고 <양의신>을 제거로 <곡신>을 제교로 삼았다. <신>은 <춘>의 딸이며, 이때 나이는 열아홉이었다. <의신>이 낳은 <■>의 동생이다. <내한>은, 단지 <용>공주의 연고이어서 이를 별도로 세우고, 종실 여인들을 가르쳤다.
<우문태>가 행대를 두었다. 학생{들}은 해가 뜨면 다스리는 관리로 일을 하고 해가 저물면 돌아와 강론에 참석하였다. 대략 우리의 「무장지제{武藏之制}」를 취한 것이었다. <태>는, 사람됨이 세밀하여, 다른 사람이 잘 하는 것이 있기만 하면, 필히 그것을 본 땄다. 그의 사신이 오갔었으니 반드시 살피고 돌아간 것이 있었을 것이다.
◎ 三月, 上, 如<宗女院>, 幸<谷晨>. 初, <義臣>因<晨>父<瑃>而登用驟貴, 欲報其恩, 敎<晨>以誠. <晨>美而有才. <義臣>, 爱之, 戒勿嫁人, 曰; "吾輩, 當生聖上之子.” 至是春, 深思應聖上而悲歌. 上聞之, 遂如院殿而通, 宗女山呼相慶, 賀物山積. <俶>公主生上女<偃>公主.
五月, <善見>以<歓>女為妻, 年二十. <高>后之姊也. 初, <善見>立, 年才十一, <歓>女年十五, 日侍于左右而相通. 至是, <善見>年己十六, 得娠乃立為后. <善見>, 雖忌<歓>, 爱其妻而忌憂. 上, 遣東宮如<鄴>, 賀其婚而贈其翟. <高>后亦送幣物.
<宝炬>使, 来献黃駝二十匹・<長安>美女二十人・葡萄酒万盆, 請討<高歓>. 上慰諭送之. <高>皇后, 以不絶<泰>使, 怒不食. 上, 以大義, 曉其難絶.
○ 3월, 상이 <종녀원>으로 가서 <곡신>에게 승은을 입혔다. 애초에 <의신>은 <신>의 아비 <곡춘>으로 인하여 등용되고 빠르게 높은 자리에 올랐기에 그 은혜를 보답하고자 성의를 가지고 <신>을 가르쳤다. <신>은 예쁘기도 하고 재주도 있었다. <의신>은, 그녀를 아꼈으며, 다른 사람에게 출가하지 말라 하면서, 말하길; “우리들은 성상의 아들 낳기를 담당하여야 한다.”라 하였었다. 이번 봄 들어 성상을 깊이 사모하고 사랑하여 슬프게 노래를 불렀다. 상이 이를 듣고는 이윽고 원전으로 가서 정을 통하였더니, 종녀들은 만세를 부르며 서로 경하하였고, 축하선물도 산같이 쌓였다. <숙>공주가 상의 딸 <언>공주를 낳았다.
5월, <선견>이 <환>의 딸을 처로 삼았다. 나이 스물이었고, <고>후의 언니였다. 애초에, <선견>은 11살에 보위에 섰었고, <환>의 딸은 15살이었는데 하루는 좌우에 시립하였다가 상통하게 되었었다. 이때에 이르러, <선견>의 나이 16살이 되었고, 임신하게 되자 후로 세운 것이었다. <선견>은, 비록 <환>은 싫어하였었지만, 자신의 처를 아끼더니 걱정하기도 싫어하였다. 상이, 동궁을 <업>으로 보내서, 그들의 혼인을 축하하고, 꿩 깃으로 꾸민 수레를 그녀에게 선물하였다. <고>후 역시 폐물을 보냈다.
<보거>의 사신이 와서 누런 낙타 20필 및 <장안>의 미녀 20명과 포도주 만 동이를 바치고, <고환>을 토벌하여 주십사 청하였더니, 상이 위무하고 타일러서 돌려보냈다. <고>황후는, <태>의 사신을 물리치지 않음에, 화를 내고 음식을 먹지 않았다. 상은, 대의를 들어, 끊어내기 어려움을 그녀에게 깨우쳐주었다.
◎ 九{六}月, <歓>發丁四十万, 城<鄴>四十日. 新宮亦成, 大赦, 改元曰<興和>. <善見>夫妻, 入新宮, 宴百僚.
<蕭衍>, 善善, 不用悪, 悪不去. <朱异>, 阿諛用事三十年, 庻納貨賂欺罔, 視聼園宅, 玩好飮食聲色, 窮一時之盛, 沐浴之日車馬填門.
以<竹內>令<陰震>為「褒孝大夫」. <震>, 以<竹內>令, 治一不孝, 問其不孝, 曰; "子之不孝由父之不慈, 莫問我. 而先審父, 可也.” <震>黙然起入內. 吏, 問何以処之. <震>, 怒, 曰; "彼之不孝, 皆汝等之罪也. 豈有謂父不慈而不孝者乎. 汝等以此為無罪邪. 謂父不慈, 賊之賊也. 養賊之村, 不可不滅.” 遂盡捕其村又執問吏, 吏隸乃惧, 曳出其賊, 而斬之於市. 自是, <竹內>之民, 相戒為孝. 上, 聞之, 曰; "<震>乃治孝之才也. 不使此人褒孝, [孰]能褒孝.” 遂擢大夫.
○ 9{6}월, <환>이 장정 40만을 징발하여 <업>을 성으로 쌓았는데, 40여 일이 걸렸다. 새로운 궁전 또한 완성되었더니, 크게 사면하고 년호도 <흥화>로 고쳤으며, <선견>부처는 새로운 궁으로 들어가서 백료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소연>은, 선행을 잘하고 악한 이를 중용하지 않았지만, 악한 이를 제거하지는 않았었다. 이에, <주이>는 아부하는 이를 정사에 등용하길 30년을 하였더니, 많은 이가 뇌물을 바치며 속이고 숨겼으며, 보고 듣는 것은 동산{정원}과 집 얘기뿐이고, 희롱하고 좋아하는 것은 음식과 성색뿐이었으니, 끝내는 잠시 동안의 흥청거림이거늘, 목욕하는 날엔 거마가 문전에 가득하였었다.
<죽내>령 <음진>을 「포효대부{효자순손을 포상하는 대부}」로 삼았다. <진>은, <죽내>의 수령으로서 한 불효자를 다스리기 위해, 불효하게 된 연유를 물었더니, 답하길; “자식의 불효는 아비의 자애롭지 못함에서 연유하는 것이니, 내게 묻지 말고 먼저 아비를 따져봄이 옳을 것입니다.”라 하였다. 이에 <진>은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안으로 들어갔고, 아전이 그 자를 어찌 처결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진>은 노하여 이르길; “저 놈의 불효는 모두 그대들의 죄요. 어찌 아비가 자애롭지 않았다하여 불효하였노라 말할 수 있소? 그대들은 이 자가 무죄라 여기는가? 아비가 자애롭지 못함을 말하는 것은 도적 중의 도적인 것이다. 도적놈을 길러내는 마을은 없애버리지 않을 수 없겠소.”라 하였다. 이윽고, 그 마을 사람들과 죄를 묻는 아전들도 모조리 잡아들였더니, 아전들은 굴복하기도 하였기만 두렵기도 하여 그 불효한 이를 끌어내어 저자에서 목을 베었다. 이때부터 <죽내>의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깨우쳐주어 효도하게 되었다. 상은 이 소식을 듣더니, 이르길; “<진>은 효를 다스리는데 귀재요. 이 사람을 「포효대부」로 하지 않는다면, 누가 능히 「포효대부」를 할 만하겠소.”라 하고는, 그를 대부자리에 발탁하였다.
◎ 八月, 上始幸<淵華>女<善屛>, 年才十一. 賜公主號以為假女, 才色當世苐一.
設養老宴, 賜國老<馮信>等衣酒, 試才取士, 以「褒孝大夫」<陰震>主其事. 東宮舍人<陰昌>又淫穢事東宮, 又薦民間女三人于東宮, 事發, 下瓊府抵罪. 上, 以至親免, 為<真珠陵>守. <昌>, 皇弟<陰>太子之子也. 其母<寧陽>, <德陽>后之胞妹也. 人以為<陰>則一也. <震>則善, <昌>則悪.
○ 8월, 상이 비로소 <연화>의 딸 <선병>에게 승은을 내렸다. 나이는 열 하나였다. 공주의 호칭을 내려서 수양딸로 삼았는데, 재색이 당대의 제일이었다.
양로연을 열고, 국로인 <풍신> 등에게 옷과 술을 내렸으며, 재능을 시험하여 출사할 이를 골랐다. 이 일은 「포효대부」 <음진>이 주관하게 하였다. 동궁의 사인 <음창>이, 또 음란하고 추잡하게 동궁을 섬겼으며, 또다시 민간의 딸 셋을 동궁으로 천거하였다가 일이 발각되어, 경부로 하옥되어 죄를 받게 되었다. 상은 지친인지라 죄를 면하여 주고, <진주릉>을 지키게 하였다. <창>은, 황상의 동생인 <음>태자의 아들이었으며, 그의 어미 <녕양>은 <덕양>후의 동복 여동생이었다. 사람들은 <음>{씨}가 제일인 것으론, <진>은 선하기로, <창>은 악하기로 그렇다 하였다.
◎ 庚申<大藏>十年, 春正月, 乙酉朔, 受朝於<抱真宮>. 上, 以朱木宮役巨創未成, 汰其匠監五人.
二月, <宝炬>, 思慕<乙弗>, 密令養髮而還. <郁久閭>, 聞之怒, 告于<頭兵>. <頭兵>, 怒, 曰;“見欺亍, <黑獺>也.”遂引兵而下. <宝炬>, 聞之歎, 曰;“豈有為一女而興兵百万者邪.” <泰>促<宝炬>殺<乙弗>. <宝炬>, 不得, 泣而賜死. <乙弗>, 泣, 曰;“妾知此事非陛下意, 雖死無恨. 願, 至尊千万歲, 天下康寧.”乃自縊而死. 鑿<麥積崖>葬之, 號曰<寂陵>. 或云, <宝炬>與<乙弗>密通於外殿, <郁久閭>馳徃殺之. <宝炬>抱<乙弗>而痛哭. <郁久閭>, 欲奪其尸, 觸毒氣而倒疾作而死. 兩妻一時俱沒. 身為萬乘, 與妻密通, 可謂悽也. 諡<乙>曰<文后>, 諡<郁>曰<悼后>. <頭兵>, 聞<乙弗>之死而回軍, 不知其女之死. <高歓>, 因此, 復與<頭兵>約和, <頭兵>之反復如是.
○ 경신{단기2873/AD540}<대장>10년, 춘정월, 을묘일 초하루, <포진궁>에서 조례를 받았다. 상은, 주목으로 궁을 짓는 일이 거창하였기에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장인과 감독하는 이 다섯을 내쳤다.
2월, <보거>가 <을불>이 그리워서 은밀히 령을 내려 머리를 기르고 돌아오라 하였더니, <욱구려>는 이를 듣고 노하여 <두병>에게 일러바쳤다. <두병>은 화가 나서 이르길; “거짓으로 멈칫 한 것을 보니 시커먼 족제비였구나.”라 하고는 군병을 이끌고 남하하였다. 이 소리를 들은 <보거>는 탄식하여 말하길; “어찌 딸 하나를 위하여 백만 군병을 일으킨단 말인가?”라 하였다. <태>는 <보거>에게 <을불>을 죽이라고 재촉하였고, <보거>는 하는 수 없이 울면서 죽으라 하였다. <을불>은 울면서 말하길; “첩은 이 일이 폐하의 뜻이 아님을 알기에, 비록 죽더라도 여한은 없습니다. 원컨대 지존께서는 천만세하시고 천하는 강녕하길 바랍니다.”라 하고는 스스로 목매 죽었다. <맥적애>에 굴을 뚫어 장사하여 주고 <적릉>이라 하였다. 혹자는 <보거>가 <을불>과 바깥의 전각에서 몰래 정을 통하자 <욱구려>가 밀고 들어가서 죽였다 한다. <보거>가 {죽은} <을불>을 껴안고 통곡하자, <욱구려>는 그 시신을 탈취하려다가 독 기운이 묻어서 넘어지더니 병들어 죽었다고 한다. 양 처가 둘 다 일시에 죽었다. 몸은 만승지존이 이었으나, 처와는 몰래 정을 나눠야 하였었으니, 처량하였다 할만 했다. <을>의 시호는 <문후>로, <욱>의 시호는 <도후>로 하였다. <두병>은, <을불>이 죽었다는 소리에 회군하였으니, 자기의 딸이 죽은 것은 알지 못하였다. <고환>은 이 일로 다시금 <두병>과 화친을 약속하였다. <두병>의 변덕스럽기가 이러하였다.
◎ 閏五月, 丁丑朔, 日食. 上, 飮茶潔身, 不御聲色三日, 命放<賊子村>人之在囚者. 時, 以不孝之賊煮面, 以賊子兼治其村人. 怨聲達于上故也.
東宮, 如<晋陽宮>, 逼<高>皇后, 通之. <高>, 避, 不得, 而泣告于上. 上曰;“彼為天子. 汝将何之, 而不欲相悅邪.” <高>, 乃知上意, 而遂與東宮洽好.
<柔然>献獅子二頭, 雌大雄小. 命楽官作歌而舞, 曰<子母曲>・<月面曲>.
七月, <原宗>死. 女<只召>稱制. 其子<深麥>年七歲, <只召>不自立而立<深麥>, 抱而決政事. <原宗>好佛, <只召>好仙. <只召>有夫三人, 曰; <立宗>・<苔宗>・<荒宗>. 逓月, 入侍. <深麥>, <立宗>出. 或云, <原宗>之出也. 上, 以其僣王, 不問.
○ 윤5월, 정축일 초하루, 일식이 있었다. 상은, 차를 마시고 몸을 정결히 하면서 사흘간 성색을 접하지 않더니, 명을 내려 <적자촌>의 사람으로 갇혀있는 이들을 풀어주라 하였다. 이 시절, 불효한 도적놈은 얼굴을 지졌으며, 그 도적놈이 아울러서 그 마을을 다스리게 하였더니, 원망하는 소리가 상에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동궁이 <진양궁>으로 가 <고>황후를 을러서 정을 통하였다. <고>후는, 피하려 하였으나 어쩔 수 없었고, 그리하여 울면서 상에게 고하였더니, 상이 이르길; “그는 천자가 될 것이야. 그대는 장차 그를 어쩌려고, 함께 즐기지 않겠다는 것인가?”이라 하였다. 이에 <고>후는, 상의 속뜻을 알게 되었고, 이후 동궁과 함께 흠뻑 좋아지냈다.
<유연>이 사자 두 마리를 바쳐왔는데, 암컷은 크고 수컷은 작았다. 악관에게 명하여 노래를 짓게 하고 춤을 추었으니, <자모곡>과 <월면곡>이었다.
7월, <원종>이 죽었다. 딸 <지소>가 다스리게 되었다. 그녀의 아들 <심맥>은 나이 일곱이었는데도, <지소>는 스스로 보위에 서지 않고, <심맥>을 세워서 품에 안고 정사를 처결하였다. <원종>은 불도를 좋아하였고 <지소>는 선도를 좋아하였다. <지소>에게는 지아비가 셋이 있었다. <입종> 및 <태종>과 <황종>이 그들이며, 달마다 번갈아서 입시하였다. <심맥>은 <입종>의 아들이다. 혹자는 <원종>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상은 그가 왕을 참칭하여도 불문에 붙였다.
◎ 九月, <燕會>, 與<牛山城>主爭界, 将兵一万来侵. <牛山城>主<王息>以五千騎迎擊大破之. <明穠>遣使来謝罪, 械<燕會>去.
十一月, 上, 遣使如<鄴>, 祭<淸河><文宜王><亶>. <亶>, <高>皇后假父而<玉陵>之兄也. <高>皇后欲見母而皈, 不許. <華陽>生上女<白陵>公主.
十二月, <泰>, 與<吐谷渾>通而欲制<柔然>使之討<歓>. 其計可謂窮矣. 上納<善屛>為三品茶儀. 時, 年十二. 寵傾後宮. <高>皇后生女<汾陽>公主, <歓>使来賀進貢. 東宮如<椘雲宮>又如<晋陽宮>.
<柔然>, 與<吐谷渾>, 不睦. <吐>王<夸呂>居<靑河>之西<伏俟城>, 其官「僕射」・「尙書」等如<漢>制.
○ 9월, <연회>가, <우산성>주와 경계를 다투더니, 일 만병을 이끌고 침입하였다. 이에 <우산성>주 <왕식>이 5천의 기마병으로 맞닥뜨려 쳐서 대파하였다. <명농>이 사신을 보내 사죄하였다. <연회>를 차꼬를 채워서 돌려보냈다.
11월, 상이, 사신을 <업>으로 보내서, <청하>의 <문의왕><단>을 제사하였다. <단>은 <고>황후의 양아비로 <옥릉>의 오빠다. <고>황후가 어미가 보고 싶어 돌아가고자 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화양>이 상의 딸 <백릉>공주를 낳았다.
12월, <태>가, <토곡혼>과 상통하더니, <유연>을 조정하여서 그들이 <환>을 토벌하게 하고자 하였으니. 그 계책이라는 것이 가위 궁색한 것이었다. 상이 <선병>을 맞이하여 3품 다의로 삼았다. 이때 나이는 열둘이었다. 총애는 후궁으로 기울었다. <고>황후가 딸 <분양>공주를 낳았더니, <환>의 사신이 와서 축하하고 공물을 바쳤다. 동궁이 <초운궁>을 들렀고, 또 <진양궁>도 들렀다.
<유연>이 <토곡혼>과 사이가 나빠졌다. <토>왕 <과려>는 <청하>의 서쪽인 <복사성>에 있었으며, 그의 관리 「복야」와 「상서」 등은 <한>의 제도와 같았다.
◎ 辛酉<大藏>十一年, 春正月, 癸酉朔, 上, 與<紅>皇后・東宮, 受朝於<牛頭殿>. <吐谷渾>王<夸呂>, 遣其禮部尙書<乙弗熙>, 入貢汗血馬三十匹・黃駝五十匹・<西王母>「碧海裙」及不老酒等, 自稱<美川>之裔, 請叙族相婚. 上, 遣<興文>太子, 皇弟, 如其國.
二月, <高歓>使来献絹紬・薬材・玉器等. <明穠>, 得<梁>人画工・楽器, 與<深麥>更和. <深麥>, 以<異斯夫>為兵部令, 委以兵事. 乃<只召>之情夫<苔宗>也.
<淵華>生上女<京>公主. 或云, <文藏>女也. 其母<義臣>生東宮女<白鸞>公主.
<柔然>来請献女為臣國. 上, 以路遠難救, 辞之. <柔然>, 以其秘圖, 指其間道, 可以徃来. 是為<北漢路>.
○ 신유{단기2874/AD541}<대장>11년, 춘정월, 계유일 초하루, 상은 <홍>황후와 동궁을 데리고 <우두전>에서 조례를 받았다. <토곡혼>의 왕 <과려>가 그의 례부상서 <을불희>를 보내어 입조하고 한혈마 30필, 누런 낙타 50필, <서왕모>의 「벽해군{바다같이 넓은 푸른 치마}」 및 불로주 등을 공물로 바치면서, <미천>의 후예임을 자칭하였으며, 귀한 혈족간에 서로 혼인하기를 청하였다. 상은 황상의 동생인 <흥문>태자를 보내어 그 나라로 가게 하였다.
2월, <고환>의 사신이 와서 명주실과 약재 및 옥기 등을 바쳐왔다. <명농{백제}>이, <양> 사람인 화공과 악기를 얻게 되었으며, <심맥{신라}>과는 다시금 화친하였다. <심맥>은 <이사부>를 병부령으로 삼아 병사{兵事}를 맡겼다. <이사부>는 <지소>의 정부로 <태종>이다.
<연화>가 상의 딸 <경>공주를 낳았다. <문장>의 딸이라 하기도 한다. 그 어미 <의신>은 동궁의 딸 <백란>공주를 낳았다.
<유연>이 찾아와 딸을 바치고 신하의 나라가 되겠다고 청하였다. 상은 길이 멀어서 구원하여 주지 못하니 사양 하겠다고 하였더니, <유연>의 사신은 비밀지도를 내어놓고 손으로 사잇길을 짚어 보이며 왕래가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 길이 바로 <북한로>이다.
◎ 三月, 遣太僕卿<芙星>於<柔然>, 以白馬為幣, 以聖上「金溺盆」賜<柔然>公主. <谷晨>生上子<昷>.
五月, 命<陰震>褒「五部」孝子・烈女・忠奴・義友等四十八人. 加爵, 賜衣・酒・車馬及譽傘.
十月, 幸<西河>, 賜酒父老, 以慰勤農. 賞農技之士二十人為「農師」.
十二月, <高歓>子<澄>妻<馮翊>生子<孝琬>, 遣鴻矑卿<高銀>徃賜衣及<高>皇后私贈衣饌.
○ 3월, 태복경 <부성>을 <유연>으로 보내서, 백마를 예물로 내주고, 성상의 금뇨분{금으로 만든 뇨강}을 <유연>의 공주에게 하사하였다. <곡신>이 상의 아들 <온>을 낳았다.
5월, <음진>에게 명하여 「5부」의 효자・열녀・충노・의우 등 48인을 포상하였다. 작위를 더해주고 옷과 술 및 거마와 영예로운 일산을 주었다.
10월, <서하>로 거둥하여 부로에게 술을 내려서 농사에 부지런하였음을 위로하였다. 농사기술이 좋은 20인을 상을 내려 「농사」로 삼았다.
12월, <고환>의 아들 <징>의 처 <풍익>이 아들 <효완>을 낳았다기에, 홍로경 <고은>을 보내서 옷을 하사하고 <홍>황후가 사사로이 보낸 옷과 음식도 선물하였다.
◎ 壬戌<大藏>十二年, 春正月, 丁卯朔, <齊雲>公主薨. <仁宗>女也. 享年八十五. 廢朝臨丧. 其子<雲連>, <連>氏之主也.
<紅>皇后生東宮女<白雉>公主. 鴻矑卿, 自<鄴>還, 言, <山東>大豊, 斛至九錢. 上, 命<爾朱彦>貿<山東>穀舟運<南口>.
三月, 東宮如<善屛>宮. 大風拔木飛瓦. <俶>公主生東宮女<仙>公主.
四月, 雹. 上, 减饍, 求言, 自禱于天. <南越>人<趙信>等五十七人漂来皈化.
○ 임술{단기2875/AD542}<대장>12년, 춘정월, 정묘일 초하루, <제운>공주가 죽었다. <인종{仁宗}>의 딸{또는, 어진 종실녀}이었고, 향년 85세였다. 조례를 폐하고 상청을 지켰다. 그녀의 아들 <운연>은 <연>씨의 주인{공경대부}이다.
<홍>황후가 동궁의 딸 <백치>공주를 낳았다. 홍로경이 <업>에서 돌아와 아뢰길; “<산동>땅에 큰 풍년이 들어 {곡물} 한 가마니의 값이 9전이었다.”고 하였다. 상이 <이주언>에게 명하여 <산동>땅의 곡물을 사들여서 거룻배로 <남구>로 실어 나르게 하였다.
3월, 동궁이 <선병>의 궁으로 갔다. 큰바람으로 나무가 뽑히고 기와가 날렸다. <숙>공주가 동궁의 딸 <선>공주를 낳았다.
4월에 우박이 내렸다. 상은, 음식을 줄이고, 조언을 구하기도 하였으며, 스스로 하늘에도 빌었다. <남월>사람 <조신> 등 57인이 표류하여왔다가 귀화하였다.
◎ 五月, <興文>太子, 尙<夸呂>女<乙弗>氏, [而]来. 是為<靑海>公主. <吐>國, 東西四千里南北二千里, 有鹽池・沃野, 牧畜盛行. 其<伏俟城>多<漢>人, 文物完備, 冠爵一依<漢>制, 勝於<柔然>. 其王・公, 皆<慕容廆>之兄後. 而今王<夸呂>, <美川帝>之十世孫, 云.
<芙星>, 與<柔然>王子<宇雷近>, 陪<聂>公主来. 上, 迎于<西河>行宮合巹. 公主, 年十二, 容色絶美・善歌舞. 黃駝千頭・白象雌雄・馬万匹・香車七百乘・侍臣三百人, 置之公主宮外新起邸宅. <宇雷近>, 說上, 曰;“<夸呂>多詐, 不可信. 請却其婚.” 上曰;“旣娶之女, 何可棄乎. 且非吾妻, 勿慮之.” 自是, 上, 如<淸海宮>, 不使<蠕蠕宮>人知之.
○ 5월, <흥문>태자가 {<토욕혼>} <과려>의 딸 <을불>씨와 혼인하여 돌아왔다. 이이가 <청해>공주가 된다. <토>국은 동서가 4천 리에 남북으로 2천 리였다. 염지{소금물 호수 또는 연못}와 기름진 벌판이 있으며, 목축이 성행하였다. 그들의 <복사성>은 <한>인들이 많았으며, 문물을 완전히 갖추고 있었고, 관작은 <한>의 제도 하나에 의존하고 있었으나, <유연>보다는 나았다. 그 곳의 왕과 공경 들은 모두 <모용외> 형의 후예들인데, 지금의 왕 <과려>는 <미천제>의 10세손이라 하였다.
<부성>이, <유연>의 왕자 <우뢰근>과 더불어, <섭>공주를 배종하여 왔다. 상은 <서하>의 행궁에서 맞아들였고 합근{합환}하였다. 공주는 나이가 12살이었으며, 얼굴과 모습이 절세미인이었고 가무도 잘 하였다. 누런 낙타 천 두, 흰 코끼리 암수, 말 만 필, 꽃마차와 7백 대의 수레, 시신 3백 인이 딸려 왔다. 이들을 공주의 궁 밖의 새로이 저택에 머무르게 하였다. <우뢰근>이 상께 아뢰길; “<과려>는 속임수가 많으니 믿어서는 아니 됩니다. 청컨대 혼인을 물리시지요.”라 하였더니, 상이 이르길; “이미 혼인한 여인인데, 어찌 저버릴 수 있겠나? 게다가 {<을불>은} 나의 처도 아니니{<과려>의 딸 <을불>씨는 <흥문>태자와 혼인했음}, 염려하지 말게나."라 하였다. 이 이후로 상은 <청해궁{<을불>씨의 궁}>에 가더라도 <연연궁{=<유연궁>=<섭>공주의 궁}>의 사람들이 알아채게 하지 않았다.
◎ 十一月, 以<談緯>子<薀>, 為上假子, 如<魏>娶<詡>女<{橾}陽>公主. 年十五. 聞<高歓>圍<玉壁>九日, 遇大雪而還. <高歓>, 以<李元忠>欲為僕射. <澄>曰;“<元忠>, 飮酒過度, 不可為僕射.” <元忠>之子諫其父, 曰;“節酒何如.” <元忠>曰;“吾見僕射不如酒. 汝若愛僕射, 其勿飮酒.” 人稱酒僕射.
○ 11월, <담위>의 아들 <온>이 상의 수양아들이 되어 <위>로 가서 <후>의 딸 <{수}양>공주와 혼인하였는데, 나이는 열다섯이었다. <고환>이, <옥벽>을 포위하고 있길 9일 만에, 큰 눈을 만나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환>이 <이원충>을 「복야」로 삼고자 하였는데, <징>이 아뢰길; “<원충>은 술을 지나치게 마시니 「복야」로 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 하였고, <원충>의 아들은 자신의 아비에게 간하기를; “술을 삼가는 게 어떠신가요?”고 하였더니, <원충>은; “내가 보기엔 「복야」가 술만 못하다. 네가 만약 「복야」가 되고 싶다면, 너나 술을 마시지 말거라.”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그를 「주복야」라고 불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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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정월 :献其益室
=>益이 盖자인지 모르겠습니다.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남당 선생이 다른 곳에 쓴 益자와 비교해보면 좋겠습니다. 다만
‘넘쳐나는 여자’라는 표현이 조금 어색해서 그렇게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개실’이라면 ‘덮는 집’이라는 뜻이니 초원에서 치고
사는 ‘천막집’을 말하지 않나 합니다. 이것을 ‘게르(ger)'라고 한다니 어쩌면 ’게르‘의 음차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3월 :使<扶風>王<孚>迎<頭兵>閭女<郁久>=>원서에 따르면 이것이 맞겠는데, 원서에 남당 선생이 이 글자 옆에 표식을 한 것으로 추측컨대 ‘頭兵女郁久閭’가 맞을 듯합니다. 아래를 봐도 그렇고요. ‘두병의 딸 욱구려’ ·<郁>曰; "我未見<魏>主.” 姑, <柔然>女也 =>女也까지 따옴표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욱이 말하길 ‘내가 아직 위주를 보지 못했으니 지금은(여전히) 유연의 딸이다.’라 하고 동쪽을 향하여 서고~”라고 해석해봅니다. ·17일은 ‘17일 후’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합니다. ·頗思<乙弗>몹시도 생각이 <을불>에게로 기울었다. =>‘을불 생각이 간절했다.’고 하면 더 낫지 않을까요? ·5월 :陛下幸, 勿以<歓>女之致, 見踈於臣, 臣亦欲納女盡忠 폐하의 승은이 <환>의 딸이 미치는 곳으로 행하지 않고, 멀리 떨어진 신에게 나타나신다면, 신 또한 딸을 바치고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之致는 ‘~의 결과’ 정도의 뜻이니 여기서는 따로 해석을 안 붙여도 무방할 듯합니다. 見踈는 ‘소원함을 보이다’의 의미니 ‘멀리하다’로 해석하면 적당하지 않을까 합니다. 따라서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환>의 딸로 인하여 저를 멀리하지 마십시오. 저 또한 납녀진충하고자 합니다.”라고 해석해봅니다. ·7월 :<景>燒<洛陽>內外官·寺·民居 =>官을 宮으로 바꾸는 것이 맞을 듯합니다. ·<弼>命軍士皷㯺曳柴揚塵 =>여기 이상한 글자는 噪가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鼓噪’가 북을 두드리면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것이겠죠. ·8월 :;<籠東>軍士爾主何在 =>籠東이 왜 그런 쓰임이 생겼는가는 모르지만 관용어로 ‘참패하다’는 의미가 있군요. “참패한 병사야, 네 주인은 어디에 있느냐?” ·뚫리지 않았다. 추병이 다가오자 =>未의 쓰임을 생각해서, ‘다 뚫기 전에’라고 해석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의 하인이 금대를 차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持가 ‘차고 있는’ 것이 아니라 ‘들고 있는’ 것이죠. 하인 주제에 금대를 차다니... ·<泰>, 甘<籠>軍而受策免死. =>"<태>는 패잔병을 감수하여 채찍만 맞고 죽음을 면하였다."고 해석해봅니다. ·自旦至未戦數十合 =>‘아침부터 미시까지’ ·<泰>皈<長安>所俘 =><태>가 포로를 장안으로 돌려보냈다고 해야 맞을 겁니다. 그래야 머리를 돌려보내고, 요새를 쌓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요. ·而欲伏戦 =>원서를 보니 伏을 休로 해야겠네요. ‘휴전’ ·9년 :<紅>皇后生上子<{忄+甲}>太子, 命為東宮子 =>찾아보니 忄+甲자의 독음이 ‘합’이군요. ·3월 : 上, 以大義, 曉其難絶. =>‘상이 대의를 들어 끊기 어려움을 깨닫게 했다(설득했다).’로 해야겠습니다. ·9월 :<朱异>阿諛用事三十年 =>‘<주이>’ ·汝等以此為無罪, 邪 =>“너희들은 이 자가 무죄라고 생각하느냐?” 여기서도 邪를 ‘삿되다’고 해석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上聞之, 曰; "<震>乃治孝之才也. 不使此人「褒孝」, 熟能「褒孝遂□大夫」.” =>여기는 원서에 오자가 있습니다. 熟은 孰(누구 숙)으로 해야 옳겠습니다. 그리고 궐자는 擢(뽑다 탁)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바꾸고 해석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上聞之, 曰; “<震>乃治孝之才也. 不使此人 褒孝孰能褒孝?” 遂擢大夫 상이 듣고 말하길 “<진>은 효를 가르치는 재주꾼이다. 이런 사람을 포효로 삼지 않고 누구를 포효로 삼는단 말이냐?”하고 드디어 대부로 발탁하였다. ·10년 :豈有為一女而興兵百万者, 邪. =>여기서도 ‘삿되다’를 빼야 합니다. ‘豈~邪’의 구조입니다. ·賜死 :사약을 내린 것은 아닙니다. ·妾知此事, 非陛下意, 雖死無恨 =>뜻은 같으나 문법에 따라 정확히 해석하자면 ‘저는 이 일이 폐하의 뜻이 아님을 알기에 비록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兩妻一時惧沒 =>惧를 俱로 바꿔야겠습니다. ·윤5월 :;“彼為天子, 汝将何之. 而不欲相悅, 邪.” =>여기서도 ‘삿되다’는 빼야겠습니다. ‘그가 천자가 되면 너는 장차 어디로 가려고 상열하려 하지 않는단 말이냐?’ ·11년 :金溺盆 =>여기서 溺은 尿의 이체자로 쓰인 것이며 독음도 ‘뇨(요)’로 해야 맞습니다. ·3월 :<谷晨>生上子<昷>.=>해석이 빠졌습니다. ·11월 :聞<高歓>圍<玉壁>, 九日, 遇大雪而還 <고환>이 <옥벽>을 포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으며, 9일엔 큰 눈을 만나자 돌아왔다. =>이렇게 해석하면 누가 대설을 만나 돌아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렇게 해석해봅니다. “<고환>이 <옥벽>을 포위하였는데, 9일 만에 대설을 만나 (병력을) 돌렸다는 소식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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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선생님, 고맙습니다. 제대로 보이지 않거나 해결할 방법이 없어 한참이나 고민했던 부분들을 미끈하게 해결해 주셨습니다. 잠시후 사무실로 나가서 오늘 중으로 정리할 것입니다. 어제는 처음으로 Off-Line 모임에 나갔었습니다. 여러 분들 얼굴을 처음 뵈었습니다. 선생님 존안을 뵙지 못하여 좀 아쉬웠었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날에 뵐 수 있었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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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오 대장8년 3월기사
: <頭兵>閭女<郁久> -> <頭兵>女<郁久閭>, 해석: <두병>의
딸 <욱구>를 마중하게 하였다 -> <두병>의 딸 <욱구려>를 마중하게 하였다 (2) 무오 대장8년 5월기사 : <廣開上皇>之子<鯨>太子也 -> <廣開土皇>之子<鯨>太子也, 해석 : <광개상황>의 아들인 <경>태자입니다 -> <광개토황>의 아들인 <경>태자입니다 (3) 무오 대장8년 8월기사 : 獨<万俟落>勒兵不動 -> 獨<万俟洛>勒兵不動, 氣窮四塞莫能相知 -> 氣霧四塞莫能相知, 해석도 바꾸어야 합니다, 東宮如是愛<義臣> -> 東宮如是爱<義臣>, 築<玉壁城>為險要也 -> 築<玉壁城>為 界 嶮 要也, 収捨人物與之遊宴講論詩賦 -> 収拾人物與之遊宴講論詩賦 (4) 기미 대장9년 2월기사 : 二月, 上與<鯨>太后宴宗室于<黃山>別宮 -> 二月, 上如<鯨>太后陵, 宴宗室于<黃山>別宮, 해석도 바꾸어야 합니다. (5) 기미 대장9년 3월기사 : <義臣>愛之, 戒勿嫁人 -> <義臣>爱之, 戒勿嫁人, <淑>公主生上女<偃>公主 -> <俶>公主生上女<偃>公主, 雖忌<歓>, 愛其妻而忌憂 -> 雖忌<歓>, 爱其妻而忌憂 (6) 기미 대장9년 9{6}월기사 : 遂<震>盡捕其村又執問吏 -> 遂盡捕其村又執問吏, 해석 : 이윽고, <진>은 그 마을 사람들과 -> 이윽고, 그 마을 사람들과 (7) 경신 대장10년 12월기사해석 : <유연>이 <토욕혼>과 사이가 나빠졌다 -> <유연>이 <토곡혼>과 사이가 나빠졌다, 그의 관리 「복야」와「상서」 등은 -> 그의 관리 「복사」와「상서」 등은 (8) 신유 대장11년 춘정월기사 : 上, 與<紅>皇后∇宮 -> 上, 與<紅>皇后 東 宮, 入貢汗血馬三十匹·駝五十匹 -> 入貢汗血馬三十匹·黃駝五十匹, 해석에도 반영하셔야 합니다. (9) 신유 대장11년 12월기사 : <高歓>子<澄>妻<馮翊>生子<孝琓> -> <高歓>子<澄>妻<馮翊>生子<孝琬> (10) 임술 대장12년 춘정월기사 : <齊雲>公主薨. 仁宗女也. -> <齊雲>公主薨. <仁宗>女也., 해석 : 인품이 어질었던 종실의 여자였고, -> 인종{助多}의 딸이었고, (11) 임술 대장12년 3월기사 : <淑>公主生東宮女<仙>公主 -> <俶>公主生東宮女<仙>公主 (12) 임술 대장12년 5월기사 : 上, 迎于<西海>行宮合巹 -> 上, 迎于<西河>行宮合巹, 해석 : 상은 <서해>의 행궁에서 -> 상은 <서하>의 행궁에서 (13) 임술 대장12년 12월기사해석 : 「복야」 -> 「복사」, 세군데 바꾸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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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영채 선생님, 고맙습니다. 1. "교필감수"하신 분으로 존함을 책에 올려도 좋을른지요? 2. 오늘 중으로 바로잡아 놓겠습니다. 3. "僕射"라는 관직명을 "복사"라고 읽어야 하는지요? 여지껏 좌복야 우복야 등으로만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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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셨습니까? 문답란에 올려놓으신 말씀을 보았는데, 미처 답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저에 한정하여 의견을 드리자면 책의 겉장에 교필 감수로 이름을 올리는 것은 감당하지 못하겠고, 서문에 이름석자 첨언하신다면 다행이겠습니다. 바로 위에서 말씀하신 '복야, 복사'에 관한 것은 '복야'가 맞겠습니다. 전에 <미천대제>를 보면서 느낀 것인데, 이 <고구리사략>의 기사중 '중원'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기록한 것은 대부분 <자치통감>에서 발췌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중원"에 대한 내용을 <통감>을 참고로 하는 것이 일을 더 편하게 하고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는 요령이라고 봅니다. 여기의 8년 7월 조도 <통감>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통감>을 대조하고 보니 한두군데의 오류가 보였습니다. '<景>燒<洛陽>內外{宮}·寺·民居, 存者什之二三'에서 전에 제가 '宮'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것은 '官'이 맞았습니다. 관에서 지은 절을 말하는 듯합니다. '<高敖曹>軍. <泰>建旗, <泰>軍盡銳攻之, 故一軍皆沒'에서는 '高敖曹>軍.'에서 軍자 대신 輕자를 넣어야 겠습니다. '<고오조>가 <태>를 가벼이 여기고 깃발을 세우자, ~' '奮頭, 曰;“来與汝開國公'의 대목은 자기가 죽음을 면치 못할 줄 알고 목을 쭉 빼면서 하는 말입니다. '머리를 쭉 내밀고는 "와라! 너에게 '개국공'(이라는 호칭을) 주리라."' '<敖曹>, 建旗陷陳. 奴, 帶而豪語無敵, 追之' 이 문장은 <통감>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남당의 원문을 보니 追를 進으로 고쳐야 할 것 같군요. 여기서 '호언무적 진지'의 주어는 <오조>입니다. '<오조>가 깃발을 세우고서 진을 무너뜨리고 노복에게 대를 맡기며 무적을 호언하며 나아가고,~' <歓>軍不退者, 有所激也. <泰>軍自滿者, 有所得也. ->'<환>의 군대가 퇴각하지 않은 것은 분발한 바가 있었기 때문이고, <태>의 군대가 자만한 것은 (그 동안) 승리를 얻었기 때문이다.' <泰>安得自彊, 而不從衆哉. ->여기서 安은 '어찌, 왜'로 쓰인 것입니다. '<태>가 왜 자신의 강함을 믿고 여러 의견을 따르지 않았던가?' <泰>皈<長安>所俘, <歓>軍據<長安>, 作亂尋潰. ->이 부분의 해석은 잘 해야 합니다. <통감>에 따르면 <태>가 동위 즉 <환>을 치기 위해 군병을 지나치게 징발하는 바람에 장안의 치안이 무너져서 장안에 있던 포로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대목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태>가 <장안>으로 보냈던<환>군의 포로들이 <장안>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켜서 결국 무너졌다.' 제가 하루에 한 번 정도 구이넷에 들어와서 주로 자유게시판을 봅니다. 만일 혹 문의할 내용이 있으셔서 거기에 올려놓으시면 눈에 잘 띌 것입니다. 참고로 이 부분의 <통감>을 여기에 올려드리겠습니다. 東魏侯景、高敖曹等圍魏獨孤信於金墉,太師歡帥大軍繼之;景悉燒洛陽內外官寺 民居,存者什二三。魏主將如洛陽拜園陵,會信等告急,遂與丞相泰俱東,命尚書左僕 射周惠達輔太子欽守長安,開府儀同三司李弼、車騎大將軍達奚武帥千騎為前驅。 八月,庚寅,丞相泰至谷城,侯景等欲整陳以待其至,儀同三司太安莫多婁貸文請 帥所部擊其前鋒,景等固止之。貸文勇而專,不受命,與可硃渾道元以千騎前進。夜, 遇李弼、達奚武於孝水。弼命軍士鼓噪,曳柴揚塵,貸文走,弼追斬之,道元單騎獲免, 悉俘其眾送恆農。 泰進軍瀍東,侯景等夜解圍去。辛卯,泰帥輕騎追景至河上,景為陳,北據河橋, 南屬邙山,與泰合戰。泰馬中流矢驚逸,遂失所之。泰墜地,東魏兵追及之,左右皆散, 都督李穆下馬,以策抶泰背罵曰:「籠東軍士!爾曹主何在,而獨留此?」追者不疑其 貴人,捨之而過。穆以馬授泰,與之俱逸。 魏兵復振,擊東魏兵,大破之,東魏兵北走。京兆忠武公高敖曹,意輕泰,建旗蓋 以陵陳,魏人盡銳攻之,一軍皆沒,敖曹單騎走投河陽南城。守將北豫州刺史高永樂, 歡之從祖兄子也,與敖曹有怨,閉門不受。敖曹仰呼求繩,不得,拔刀穿闔未徹而追兵 至。敖曹伏橋下,追者見其從奴持金帶,問敖曹所在,奴指示之。敖曹知不免,奮頭曰: 「來!與汝開國公。」追者斬其首去。高歡聞之,如喪肝膽,杖高永樂二百,贈敖曹太 師、大司馬、太尉。泰賞殺敖曹者布絹萬段,歲歲稍與之,比及周亡,猶未能足。魏又 殺東魏西兗州刺史宋顯等,虜甲士萬五千人,赴河死者以萬數。初,歡以萬俟普尊老, 特禮之,嘗親扶上馬。其子洛免冠稽首曰:「願出死力以報深恩。」及邙山之戰,諸軍 北度橋,洛獨勒兵不動,謂魏人曰:「萬俟受洛干在此,能來可來也!」魏人畏之而去, 歡名其所營地為回洛。 是日,東、西魏置陳既大,首尾懸遠,從旦至未,戰數十合,氛霧四塞,莫能相知。 魏獨孤信、李遠居右,趙貴、怡峰居左,戰並不利;又未知魏主及丞相泰所在,皆棄其 卒先歸。開府儀同三司李虎、念賢等為後軍,見信等退,即與俱去。泰由是燒營而歸, 留儀同三司長孫子彥守金墉。 王思政下馬,舉長槊左右橫擊,一舉輒踣數人。陷陳既深,從者盡死,思政被重創, 悶絕。會日暮,敵亦收兵。思政每戰常著破衣弊甲,敵不知其將帥,故得免。帳下督雷 五安於戰處哭求思政,會其已蘇,割衣裹創,扶思政上馬。夜久,始得還營。 平東將軍蔡祐下馬步鬥,左右勸乘馬以備倉猝,祐怒曰:「丞相愛我如子,今日豈 惜生乎!」帥左右十餘人合聲大呼,擊東魏兵,殺傷甚眾。東魏人圍之十餘重,祐彎弓 持滿,四面拒之。東魏人募厚甲長刀者直進取之,去祐可三十步,左右勸射之,祐曰: 「吾曹之命,在此一矢,豈可虛發!」將至十步,祐乃射之,應弦而倒,東魏兵稍卻, 祐徐引還。魏主至恆農,守將已棄城走,所虜降卒在恆農者相與閉門拒守,丞相泰攻拔 之,誅其魁首數百人。蔡祐追及泰於恆農,夜,見泰,泰曰:「承先,爾來,吾無憂 矣。」泰驚不得寢,枕祐股,然後安。祐每從泰戰,常為士卒先。戰還,諸將皆爭功, 祐終無所言。泰每歎曰:「承先口不言勳,我當代其論敘。」泰留王思政鎮恆農,除侍 中、東道行台。 魏之東伐也,關中留守兵少,前後所虜東魏士卒散在民間,聞魏兵敗,謀作亂。李 虎等至長安,計無所出,與太尉王盟、僕射周惠達等奉太子欽出屯渭北。百姓互相剽掠, 關中大擾。於是沙苑所虜東魏都督趙青雀、雍州民於伏德等遂反,青雀據長安子城,伏 德保鹹陽,與鹹陽太守慕容思慶各收降卒以拒還兵。長安大城民相帥以拒青雀,日與之 戰。大都督侯莫陳順擊賊,屢破之,賊不敢出。順,崇之兄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