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잡동사니/남당사료

23. 第二十三世<安原大帝>紀 제23세<안원대제>기(2)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8. 13. 09:23
       원문출처; http://mf.history.go.kr/Pdf/MF0020000/00322323.pdf

◎ 甲寅<大藏>四年, 春正月, 甲午朔, 受朝於<獣林>溫宮. 上, 與<俶>公主・<玉陵>公主, 賭碁而裸舞, 親自割肉而食兩主. 朦宮, 如<椘雲宮>.  上, 又如<河陽宮>, 禱<魏>祚宮, 歌之, 曰;“我年五十九, 猶喜鳳輩来, 春到花心坼, 蟻驚戶自開.”
 二月十日, <魏>, <永寧寺>大火, <百丈塔>灰, 観者皆哭, 聲震城闕. <胡>太后丙申所建, 十八年而亡. 九層浮屠, 每十丈, 上有刹十丈, 又有丈八金像. 上, 聞其災, 與<華陽>・<玉陵>・<太原>・<金陽>等, 設<胡>太后道場七日, 飯僧千人, 佛敎復興.

○ 갑인{단기2867/AD534}<대장>4년, 춘정월, 갑오일 초하루, <수림>「온궁」에서 조례를 받았다. 상은, <숙>공주 및 <옥릉>공주와, 내기바둑을 하며 벌거숭이 춤을 추었으며, 손수 칼로 고기를 끊어다 두 공주를 먹였으며, <동궁>에게 명하여 <초운궁>으로 가보게 하였다.  상은 또 <하양궁>으로 가더니 <위>의 황궁이 복 받길 기원하고는, 노래하여 이르길; “내 나이 쉰아홉이 되니, 오직 반가운 것은 봉새 무리{꼬리 긴 옷을 입은 귀한 여인들}가 찾아오는 것뿐이고, 봄이 되니 모란꽃도 가슴을 열고 놀란 개미도 문을 활짝 여는구나.”라 하였다.
 2월, <위>의 <영녕사>에 큰 불이 나서 <백장탑>이 재가 되어 보는 이들이 모두 통곡하니 울음소리가 성궐을 흔들었다. <호>태후가 병신년에 세운 것인데, 18년을 있다가 사라진 것이었다. 9층 불탑으로 층마다 열 길이었고, 꼭대기엔 열 길 크기의 절과 여덟 길 크기의 금불상이 있었다. 상은, 이 화재 소식을 듣더니, <화양>・<옥릉>・<태원>・<금양>공주들과 함께, <호>태후를 기리는 7일 도장을 열고, 승려 천 명을 먹였다. 불교가 부흥하였다.

◎ 三月, 東宮, 與<玉陵>, 如<魏>. 叙族<脩>欲得我援而累請相逢故也. 東宮, 見<脩>, 稱阿兄, 情意繆密.  <宇文泰>自<夏州>入<平凉>統<賀拔岳>之衆. <脩>, 以<泰>為大都督, 送<李虎>於<洛陽>.
 四月, 癸丑朔, 日食. 上, 與<德陽>, 如<椘雲宮>.  甲寅, 先帝第二皇后<鯨>公主崩, 春秋七十. 后, <鯨>后所生<壽皇>女也. 事<太宗>及先帝, 飭身甚正, 自先帝末剃髮為尼, 至是, 崩. 與上同母而情愛心篤. 生上子<鯉>・<陵>兩太子. 葬于<鯨>太后陵側, 命<鯉>太子主之.
 <宇文泰>伐<矦莫陳悅>, <悅>縊于野. <泰>乃定<秦>・<隴>而入都<関中>. <高歡>欲結<泰>而遣使厚禮, <泰>不受送其書於<脩>. 於是, <脩>・<泰>相結, 而<歡>・<脩>相隔.

○ 3월, 동궁이 <옥릉>을 데리고 <위>에 갔다. 서족{처족?}인 <수>가 우리의 도움을 받고자 누차 만나길 부탁하였던 때문이었다. 동궁이, <수>를 만나서, 친근하게도 {阿兄; 또래끼리의 존칭}이라고 불렀더니, 정의가 한데 묶인 삼단처럼 친밀하였다.  <우문태>가 <하주>에서 <평량>으로 들어가 <하발악>의 무리를 통솔하게 되었더니, <수>가 <태>를 대도독으로 삼아서 <이호>를 <락양>으로 보냈다.
 4월, 계축일 초하루에 일식이 있었다. <상>이, <덕양>을 데리고, <초운궁>으로 갔다.  갑인일에 선제의 제2황후였던 <경>공주가 춘추 70에 죽었다. 후는 <경>후 소생인 <수황{<長壽大帝>}>의 딸이었으며, <태종{<明治帝>}>과 선제{<安藏大帝>}를 섬겼었으며, 몸을 삼가길 매우 바르게 하더니, 선제 말년부터는 머리 깎고 비구니가 되었다가 지금 죽은 것이었다. 상과는 같은 어머니 소생이어서 보살피고 아끼는 마음들이 도타웠었다. 상의 아들 <리>와 <릉> 두 태자를 낳았다. <경>태후 무덤 옆에 장사하고, <리>태자가 맡아 모시라 명하였다.
 <우문태>가 <후막진열>을 쳤더니, <열>이 들판에서 목을 매어 죽었다. <태>가 이윽고 <진>과 <롱>땅을 평정하고 <관중>으로 들어가 도읍하였다. <고환>이 <태>와 화친하고자 후하게 예를 갖추어 사신을 보냈지만, <태>는 받아들이지 않고 그 문서를 <수>에게 보냈다. 이로 인해 <수>와 <태>는 서로 결친하고, <고환>과 <수>는 서로 멀어지게 되었다.

◎ 五月, <脩>, 徵<河南>兵, 大閱於<洛陽>, 南臨<洛水>北際<邙山>. 以我東宮, 為<晋陽王>・左驃騎大将軍同閱其軍, 而外稱伐<梁>, 內實討<歓>之計也.
 <羅>, <哲夫>死. 能文字有雄略, 云.  <淵華>生東宮子<喜>.
 六月, <高歓>, 稱除君側之惡, 而勒兵南出. 勢不可當, <脩>臣各自圖生而観望無敢拒<歓>者. <脩>, 計窮, 欲奔于<宇文泰>, <裴俠>曰;“圖<歓>有立至之憂, 奔<泰>有将来之慮. <泰>, 為三軍之推, 據百二之地, 已操其矛, 豈肯受柄. 恐是避湯而入火也.”

○ 5월, <수>가 <하남>의 군병을 불러 모아 <락양>에서 크게 사열하였다. 남으로는 <락수>를 북쪽으로는 <망산>을 경계로 하였다. 우리의 동궁을 <진양왕>・좌표기대장군을 삼아서 함께 자신의 군대를 사열하고, 겉으로는 <양>을 치겠다고 하였으나, 속으로는 실제 <환>을 토벌할 속셈이었다.
 <신라>의 <철부>가 죽었다. 글과 글자에 능하였으며 웅장한 지략도 있었다고 한다.  <연화>가 동궁의 아들 <희>를 낳았다.
 6월, <고환>이 주군{=<脩>} 곁의 악한들을 제거하겠다면서 군사를 이끌고 남쪽으로 나갔더니, 그 군세를 감당할 수 없는 <수>의 신하들은 각자가 살아남기를 도모하며 관망할 뿐 감히 <환>을 적대하지 못하였다. 이에 <수>는 계략이 궁하여져서 <우문태>에게로 달아나려 하였더니, <배협>이 아뢰길; “<환>을 도모하면 곧 죽으려 다가가는 것이 되고, <우문태>에게 도망하면 곧 걱정거리가 다가 올 것입니다. <태>는 3군이 받드는 이가 되어 102곳의 땅을 의거하여 이미 창을 잡고 있는 것이니, 어찌 달래서 그 창의 손잡이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이러다가는 끓는 물을 피하려다 불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될 것입니다.”라 하였다.

◎ 七月, <熒惑>入<南斗>. <脩>, 屯兵十余万於<河橋>, 聞<高歓>數日行九百余里已至<河>北十余里. 人心洶洶, 軍失戦意. <脩>, 将棄<洛陽>而西奔, 勧我東宮皈國. 東宮, 不得已, 與公主幷馬而行, 使<芬長>・<華栢>立戟而出. 夜, 已初鼓城中, 聞<脩>西奔, 亡者過半. 宗室大乱, 暴民因乱强辱宗室婦女, 哭聲振天. 宗室之来皈於東宮者漸多, 不得遠行. <高歓>, 聞之, 慮有變, 遣兵護我東宮還國. 諸公主, 聞變號哭, 不知誰為元匈. 上, 謂公主子女, 曰;“<脩>之殺<恭>以至於此. 唯我國, 祖宗以来, 孝友為本, 兄弟不相殘. 天下万古之所, 可法也. 此法若絶則何異於<魏>. 汝等戒之, 苟非其位之人, 勿妄爭而相殘.”

○ 7월, <형혹성>이 <남두성>으로 들어갔다. <수>는 <하교>에 10여 만병을 둔치고 있었는데, <고환>이 수일동안에 900여 리를 행군하여 이미 <하>의 북변 10여 리에 다다랐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심은 흉흉해지고 군병들은 싸울 뜻을 잃었다. <수>는, 곧 <락양>을 버리고 서쪽으로 도망할 생각에, 우리 동궁에게는 귀국하기를 권하였다. 동궁은, 부득이 하여, 공주를 데리고 말과 나란히 걸었으며, <분장>과 <화백>을 시켜 미륵창을 세우고 길을 나섰다. 밤이 되자 이미 성중에선 북소리가 시작되었으며, <수>는 서쪽으로 도망하였고, 죽은 이가 반을 넘었다 들었다. 종실은 크게 어지러워졌으며, 성난 백성들은 난리를 피우며 종실 부녀를 억지로 능욕하였더니, 곡성이 하늘을 울렸다. 종실들 중에 동궁에게로 찾아와 의지하려는 이들이 점차로 많아지니 먼 길을 떠날 수도 없어졌다. 그런데 <고환>이, 이 소식을 듣고는 변고가 생길까를 걱정하여, 병사를 보내서 우리 동궁을 호위하여 환국하게 하였다. 여러 공주들은, 변고가 생겼음을 듣자 울부짖을 뿐, 누가 원흉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이에 상이 여러 공주들과 그 아들딸들에게 이르길; “<수>가 <공>을 죽인 일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 오직 우리나라만이, 조종이 계신 이래로 효도와 우애를 근본으로 삼았더니, 형제간에 서로 잔혹함이 없었다. 천하 만고 어느 곳에서나 법으로 삼을만한 것이다. 이런 법도가 끊겼었다면 어찌 <위>와 다름이 있었겠느냐? 너희들은 망령되게 싸우거나 서로를 잔혹하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라 하였다.

◎ 八月, <脩>, 入<長安>, 以其妹<馮翊>公主妻<宇文泰>. <高歓>, 追<脩>不及, 攻<潼関>拔之, 進屯<華陰>, 使<候景>伐<荊州>拔之.
 十月, <歓>, 以<善見>為帝. <玉陵>之侄也. 時, 年十一. <善見>父<亶>, 不得立而子為君, 遂成心疾. <亶>, <懌>之子也. <玉陵>之異母兄也.
 <宇文泰>, 攻還<潼関>, 獲其戌七千而<脩>. <泰>以爲大丞相. <歡>, 以<洛陽>, 西逼于<泰>, 南近於<梁>, 遷都于<鄴>. 三日之內移其戶四十万, 狼狼之状, 蔑有紀極.

○ 8월, <수>는, <장안>으로 들어가더니, 자신의 여동생 <풍익>공주를 <우문태>에게 처로 주었다. <고환>은, <수>를 추격하였으나 잡지 못하자, <동관>을 공격하여 빼앗고 전진하여 <화음{<화산>북쪽}>에 주둔하였으며, <후경>을 보내서 <형주>를 쳐서 빼앗았다.
 10월, <환>이 <선견>을 제로 삼았다{<東魏>성립}. <옥릉>의 조카였으며, 나이는 열 하나이었다. <선견>의 아비 <단>은, {자신이} 제위에 오르지 못하고 아들이 임금이 되자, 뒤이어서 마음의 병이 생겼다. <단>은 <역>의 아들이고, <옥릉>의 이복 오빠였다.
 <우문태>가 <동관>을 공격하여 되찾고 지키던 병사 7천과 <수>를 사로잡더니, <태>는 대승상이 되었다. <환>은 <락양{洛陽}>이 서쪽으로는 <태{泰}>에게 압박을 받고 남쪽으로는 <양{梁}>과 가까이 있게 되어서 <업{鄴}>으로 천도하였다. 사흘 이내에 40여만 호를 옮겼더니, 어지러운 이리떼 같은 모습이 한도 끝도 없이 줄을 이었었다.

◎ 閏十二月, <宇文泰>鴆殺<脩>, 年二十五, 殯于佛寺. 是稱<孝武帝>. 諫議大夫<宋球>慟哭歐血数日. <泰>, 以其名儒, 不敢罪之. 立<脩>之從兄<宝炬>為帝. 先是, <宝炬>妹<平原>有美色, <脩>納後宮. <泰>亦密通, <脩>怒[欲]殺<泰>, 與<宝炬>議之. <宝炬>惧禍乃告于<泰>. <泰>, 以<脩>奸從妹三人而又奸其妻<馮翊>, 不可為帝, 幽于佛寺, 尋殺之. <脩>, 才不足而氣有餘, 圖<歓>而奔, 圖<泰>而死, 不知命者也.  奸妹三人之說不過是<泰>之所唱也.
 賜, 孝子・孝孫, 養親錢百兩及衣・酒. 良妻・賢夫・慈父・慈母・爱父・爱母・義兄・義弟等, 衣・酒・米・肉. 百官讀書者, 大燭各二百柄. 義父・義子之賢者, 亦皆褒賞.
 <宇文泰>, 使<獨孤信>・<楊忠>攻<荊州>, 為<候景>所逐而奔于<梁>.

○ 윤12월, <우문태>가 <수>를 짐독으로 죽였다. 나이 스물다섯이었으며, 시신은 불사로 옮겨졌다. 이가 <효무제>이다. 간의대부 <송구>가 통곡하며 피를 토하기 수일이 되었어도, <태>는 그가 유명한 유학이어서 감히 죄를 줄 수 없었다. <수>의 종형인 <보거>를 임금 자리에 앉혔다{<西魏>成立}. 이에 앞서서, <보거>의 여동생 <평원>이 미색이어 <수>가 후궁으로 들였는데 <태> 또한 몰래 통정하였더니, <수>가 노하여 <태>를 죽이려고 이를 <보거>와 상의 하였었더니, <보거>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 한 나머지 <태>에게 알렸었다. <태>는 <수>를, 종매 세 명과 간음하고 또한 자기 처 <풍익>을 간음하였기에, 제로 삼을 만하지 못하다고 하면서 불사에 가두었다가 끝내는 죽였다. <수>는, 재질은 미치지 못하면서도 기백은 남아돌아서, <환>을 도모하려다가 도망하였었고, <태>를 도모하려다가 죽었으니, 자신의 목숨이 어찌 될지를 몰랐던 사람이었다. 세 자매를 간음했다는 얘기는 <태>가 떠든 말에 불과 한 것이었다.
 효자와 효손에게 양친전{효도하라고 주는 돈} 100냥 및 옷과 술을 하사하였고, 양처・현부・자부・자모 및 애부・애모하는 자와 의형・의제 하는 이들에게는 옷과 술 및 쌀과 고기를 하사하였고, 백관으로 글을 읽는 이들에게는 큰 초를 각자에게 200자루씩을 하사하였으며, 의부・의자 하는 현명한 이들에게도 상을 내렸다.
 <우문태>는, <독고신>과 <양충>을 시켜서 <형주>를 공격하다가, <후경>에게 쫓겨 <양>으로 도망하였다.

◎ 乙卯<大藏>五年, 春正月, 戊申朔, 上, 與東宮<椘雲>・<德陽>・<俶>・<玉陵>, 受朝於大宮. 接藩使七人.
 <高歓>, 擊<稽胡><劉蠡升>破之, 而還其子<澄>. 時, 年十四, 常烝其母<婁>氏, 因<歓>之不在十五夜, 犯其父妾<鄭>氏. <鄭>恐<歓>罪之哀乞, <澄>不勝獣慾而强奸之, 連歓数夜. <鄭>甞叱其婢, 有含毒者知其陰事, 欲殺<鄭>而待<歓>皈而告之. <歓>, 恐為人所嘲, 杖<澄>一百而幽之, 又絶<婁>氏. <司馬子如>入見<歓>, 曰;“吾子亦奸吾妾. 子發則犯母, 女發則犯父, 人之常情也. 此等事正可掩之, 何信奸婢之言而危其大本耶. <澄>是大柱也.” <歓>, 然之, 殺其告婢, 復爱<婁>・<澄>如故, 曰;“全吾妻子者, <子如>也.” 乃賜金三十斤, 任<澄>恣<鄭>・<婁>, 無忌憚. 皆<歓>之杖<澄>非真意也. 徒為人耳目者也. <歓>, 使<子如>, 攻<潼関>, 襲<華州>乘梯, 而刺使<王熊>驚起以梃却之.  <宝炬>以<乙弗>氏為妻.

○ 을묘{단기2868/AD535}을묘<대장>5년, 춘정월, 무신일 초하루, 상이 동궁・<초운>・<덕양>・<숙>・<옥릉>을 데리고 대궁{大宮=平壤大宮}에서 조례를 받았으며, 번국의 사신 일곱을 접대하였다.
 <고환{<東魏>丞相}>이 <계호{山戎, 奚族}>인 <류이승>을 쳐서 깨뜨리고는 자기 아들 <징>을 되찾아왔다. <징>은 당시 나이 열 넷이었는데, 끄떡하면 제 어미 <루>씨를 치붙었고, 아비가 밖으로 나가 있었던 보름동안엔 밤마다 아비의 첩인 <정>씨를 범하였다. <정>은 <환>에게서 죄를 받을까 무서워서 애걸하였었지만, <징>은 짐승 같은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억지로 그녀를 통음하였고, 연거푸 여러 날을 즐겼다. <정>은 일찍이 자신의 여종들을 꾸짖었던지라, 마음에 독기를 품은 이가 이 음탕한 일을 알고는 <정>을 죽이려고 <환>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일러바쳤다. <환>은, 세인들이 조롱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징>을 곤장 100대를 쳐서 가두었으며, <루>씨와도 끊고 살았다. <사마자여>가 들어와 <환>을 찾아보고 말하길; “제 아들도 제 첩을 통음하였습니다. 아들이 커서 어미를 범하고 딸이 커서 아비를 범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이런 일들은 덮어두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어찌 간악한 비첩의 말을 믿어 대본{보위의 후계}을 위험하게 하십니까? <징>은 바로 큰 기둥{보위의 후계}입니다.”라 하였더니, <환>도 그렇다고 여겨서 고변한 여종을 죽이고 <루>와 <징>을 이전과 같이 아끼게 되었으며, 이르길; “<자여>가 내 처자를{또는, 나와 처자를} 온전하게 하였다.”라 하면서, 금 서른 근을 하사하였다. <징>이 <정>과 <루>를 자행하여도 내버려두었고, 미워하거나 화내지도 않았다. 모두들 <환>이 <징>에게 곤장 친 것은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었으며, 다만 사람들의 이목 때문이었다고 여겼다.  <환>이 <자여{<東魏>大行台·尚書}>를 시켜 <동관>을 공격하였고, {또} <화주>를 습격하여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더니, 자사 <왕웅>이 놀라서 잠에서 깨어나더니 몽둥이로 이들을 물리쳤다.  <보거>는 <을불>씨를 처로 삼았다.

◎ 二月, <蕭衍>, 因<晋冠>使, 献金佛・檀香・鳳茶・橘糖等. 時, <冠>與<梁>交易物貨, 船舶徃来不絶.
 三月, <高歓>, 與<蠡升>約和, 許以女妻之, 見其不備而襲之, 其<北部王>斬<蠡升>而降. 餘衆復立其子<南海王>, <歓>進擊檎之, 其皇后・諸王・公卿以下四百余人及華・夷五万余戶皈之.
 卄六日, <歓>以<脩>妻[妻]<彭城王><韶>. <韶>, <子攸>兄<劭>之子也. 與<脩>為再從兄弟. <韶>, 皃美, 柔如婦女. 故<脩>妻, 徃来通之者久矣, 聞<脩>被殺, 遂為<韶>妻. 乃<歓>長女也.
 <宇文泰>以<蘇綽>為左丞. <綽>, 以<宋>出墨, 入之帳, 得名. <泰>, 與語於観漁<倉池>, 忘罟而還.

○ 2월, <소연>이, <진관>의 사신을 통하여, 금불상과 단향 및 용봉차와 귤당 등을 바쳤다. 이 시절, <진관>은 <양>과 토산물 및 재화를 교역하였고, 왕래하는 선박이 끊이지 않았었다.
 3월, <고환>이, <이승>이에게 화친을 약속하고 딸을 처로 주기로 하였더니, 그가 방비를 하지 않기에 그를 습격하였더니, 그의 <북부왕>이 <승>이의 목을 베어 투항하였다. 남은 무리들이 <승>이의 아들 <남해왕>을 다시금 세우기에, <환>이가 진격하여 <남해왕>을 사로잡았더니, 그의 황후 및 여러 왕과 공경들 이하 400여명과 화족 및 이족 5만여호가 <환>에게 귀부하였다.
 26일, <환>이 <수>의 처를 <팽성왕><소>에게 처로 주었다. <소>는 <자유>의 형인 <소>의 아들이었으며, <수>와는 재종{6촌} 형제간이었다. <소>는 용모가 예쁘고 부녀자 같이 여렸기에, <수>의 처가 그에게 오가면서 상통한지 오래였으나, <수>가 피살되었단 소리를 듣더니 <소>의 처가 되기에 이르렀다. <환>의 장녀이다.
 <우문태>가 <소작>을 좌승으로 삼았다. <작>은, <송>에서 묵형{墨刑=刺字刑}을 받고 쫓겨나자, <태>의 휘하로 들어갔었으며, 새 이름도 얻었다. <태>는 <창지>로 물고기 잡이를 나가서, 함께 얘기를 나누다가, 그물을 잊어버리고 돌아갔다.

◎ 四月, <高歓>使<高敖曹>・<候景>等伐<梁>一進一退. <宇文泰>數<歓>二十罪. <歓>, 亦以<泰>為逆徒, 而發兵百万以期西討.
 五月, <安平>・<章武>諸郡, 大雨, 洪水大漲, 漂沒民屋, 甚多. 死者二百余人, 命皆賑恤.  <寅陽>公主生上子<孝成>太子. <寅陽>, <德陽>之胞妹也. 時, 年二十四. 初, 為<晋>太子妃. 至是, 上寵漸隆, 生上子二子<義成>・<孝成>. 上, 爱之, 欲封皇后. <德陽>止之, 不可奪<晋>之妻. 上, 乃以<平山>公主妻<晋>太子. <德陽>后所生上女也. 時, 年十五. <晋>太子, 喜甚, 遂以其妻<寅陽>献于上. <平山>, 明美伶俐, 上爱之, 不肯下嫁, 特賜于<晋>. 賞賜珍宝甚多.

○ 4월, <고환>이 <고오조>와 <후경> 등을 시켜서 <양>을 토벌하며 일진일퇴하였다. <우문태>가 <환>의 죄 20가지를 주워섬겼더니, <환{<東魏>}> 또한 <태{<西魏>}>를 역도라 하면서 100만 군병을 일으켜서 서쪽{=西魏}을 토벌하겠다고 기약하였다.
 5월, <안평>과 <장무>군 모두 큰 비가 내리자 홍수가 크게 일어 매우 많은 백성들의 집이 물에 뜨고 무너졌으며, 죽은 이들이 200여 사람이나 되었다. 명을 내려 진휼하게 하였다.  <인양>공주가 상의 아들 <효성>태자를 낳았다. <인양>은 <덕양>의 동복 여동생으로, 이때 나이는 스물넷이었다. 애초엔 <진>태자비가 되었었는데, 요즈음 들어서 상의 총애함이 점차 극진하여 졌었고, 상의 두 아들 <의성>과 <효성>을 낳은 것이다. 이에 상은 그녀를 아껴서 황후로 봉하고자 하였더니, <덕양>이 <진>의 처를 빼앗는 것은 할 일이 아니라 하며 말렸다. 그러자 상은 <평산>공주를 <진>태자에게 처로 주었으며, <덕양>후의 소생인 상의 딸이었고, 당시 나이는 열다섯이었다. <진>태자는 심히 즐거워하였고, 이어서 자신의 처 <인양>을 헌상하였다. <평산>은, 명랑하고 예뻤으며 영리하였더니, 상이 그녀를 아껴서 하가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가, <진>에게 특별히 내린 것이었다. 상으로 내린 진보도 엄청 많았다.

◎ 七月, <義臣>生東宮子<春成>, 以其母微, 不得為太子, 只稱小公, 賜衣如太子例.
 八月, <高歓>, 自春, 發民十万, 撤<洛陽>宮殿, 運材入<鄴>. 又發七万六千人作新宮於<鄴>.
 <宇文泰>, 使<趙剛>, 誘<高歓>之臣<李愍>, 以<東荊州>投于<泰>. 又徃<蕭衍>, 說勧令送<賀拔勝>・<獨孤信>等.  <泰>母侄<王超世>, 為<秦州>刺使, 驕而贘貨. <泰>加法殺之, 人稱寒毒及內兄.
 十月, <東都>地震. 上, 命修歷代帝・后山陵, 而嚴其守護. 適有夢兆, 而地且震故也.

○ 7월, <의신>이 동궁의 아들 <춘성>을 낳았다. 그녀의 어미가 한미한지라 태자가 되지는 못하였으며, 다만 소공이라고 부르게 하였고, 옷은 태자의 예와 같이 하여 하사하였다.
 8월, <고환>이 봄부터 백성 10만 명을 징발하여 <락양>의 궁전을 헐어서 그 자재를 <업>으로 실어 들였으며, 또한 7만 6천명을 징발하여 <업>에 새로운 궁전을 지었다.
 <우문태>가, <조강>을 시켜서, <고환>의 신하인 <이민>을 유혹하길 ‘<동형주>를 가지고 <태>에게 투항하라.’하였고, 또한 <소연>에게로 가서 설득하여 부추기길 <하발승>과 <독고신> 등을 보내라고 령을 내리라 하였다.  <태> 어미의 조카인 <왕초세>가 <진주{秦州}>자사가 되더니 교만하여져서 재물을 상으로 나누어주었다. <태>가 법령을 가중하여 그를 죽였더니, 사람들은 차가운 독기가 내종형{외4촌}에게 미쳤음이라고 하였다.
 10월, <동도{初都}>에 지진이 일었다. 상은 역대의 제와 후들의 산릉을 수리하고 엄히 수호하라 명하였다. 마침 꿈에 조짐을 보았었고, 땅 또한 흔들렸기 때문이었다.

◎ 十一月, <高歓> 以其次子<洋>為驃騎大将, 儀同<太原公>. 時, 年才八歲, 其志可知也. <洋>, 甞治乱絲以刀断之, 曰;“乱絲唯断之耳.” <歓>, 稱其賢, 曰;“勝於我.” <歓>以断為治歟. <洋>之暴悪, 皆<歓>所養者也. <桀>・<紂>之罪亦在乎, 其父之不敎子也. 人主之敎子, 不可如<歓>之放<洋>也. <楊愔>為<洋>司馬.

○ 11월, <고환>이 둘째 아들 <양>을 표기대장으로 삼았고, 의전은 <태원공>과 같게 하였다. 이 때 나이는 여덟 살이었으니, 그 속뜻이야 알 만하였다. 일찍이 <양>은, 헝클어진 실을 다스림에 칼로 잘라놓고, 말하길; “헝클어진 실은 잘라버리는 것입니다.”라 하였더니, <환>은 <양>을 현명하다 추켜 칭찬하며 이르길; “나보다 낫구나.”라 하였다. <환>이는 잘라버림으로 다스리겠단 말인가? <양>의 포악함은 모두 <환>이가 그리 만들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걸>과 <주>의 죄 또한 살펴보면 그 아비가 아들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람의 임금 된 자의 아들 교육은 <환>이 <양>을 내버려 둔 것 같아서는 아니 될 것이다. <양음>이 <양>의 사마가 되었다.

◎ 十二月, 雷, 大疫. 上命, 送醫藥于民, 愼色減饌而禱, 悤疫救民, 設道場.  <玉陵>生女<靑陵>公主. 上撫爱<玉陵>過度, <玉陵>常入帝寢受幸者久矣.
 <宝炬>, 遣使来献駿馬・玉・帛, 曰;“臣是陛下之外裔, 而臣妻<乙弗>系<吐谷>亦出於<乙弗大帝>. 是臣夫妻, 俱以陛下家人. 遭時, 不休, 為<高歓>所迫, 不能東皈. 願, 陛下矜憐臣請. 若借一臂之力, 回復七庙, 永保舅甥之義, 云. 上, 厚遺, 而送之. 時, <歓>・<泰>交媎来棹, 而上堅守不偏不入其渦.  <柔然>王<頭兵>請婚於<高歓>, <歓>, 以<常山王>妹為<蘭陵>公主以妻<頭兵>, 使之伐<泰>. <泰>, 亦婚於<柔然>, 其媸態莫甚, 可謂陋矣.

○ 12월, 우레가 일었고, 돌림병이 크게 돌았다. 상은 의원과 약재를 백성들에게 보내라 명하였으며, 색사에 조심하고 음식을 줄였으며 신명에게 빌었다. 급히 질병을 멎게 하여 백성을 구하고자, 도장을 열었다.  <옥릉>이 딸 <청릉>공주를 낳았다. 상이 <옥릉>을 위무하고 아끼는 것이 지나쳤더니, <옥릉>이 날마다 제의 침소로 들어가 총애를 받아내는 것이 오래도록 이어졌다.
 <보거>가, 사신을 보내 준마와 옥 및 비단을 바치며, 아뢰길; “신은 폐하의 외가 자손이오며, 신의 처 <을불>은 <토곡>을 잇고 있으며 또한 <을불대제>로부터 나왔습니다. 이러한즉 신의 부처 둘은 폐하의 집안사람인 것입니다. {지난번} 서로 만나 뵈었을 땐 쉴 겨를도 없었고, <고환>에게 핍박을 당하느라 동쪽으로 찾아 뵐 수도 없었습니다. 폐하께서는 신의 청을 불쌍하고 가엽게 여겨주시길 바라옵니다. 팔 한 쪽의 힘을 빌려주신다면 7묘{七廟; 黃帝國의 초기 7대조의 사당}를 회복하고 영원토록 구생{외삼촌과 생질}간의 예의를 지키겠습니다.”라 하였다. 상은 후하게 음식을 먹여서 돌려보냈다. 이 시절, <환>과 <태>는 여색외교{女色外交}로 노를 저어 다가왔으나, 상은 든든히 지키면서 어느 쪽을 편들지도 않아서 그 와류에 빠져들지도 않았다.  <유연>왕 <두병>이 <고환>에게 청혼하였고, <환>은 <상산왕>의 여동생을 <란릉>공주로 삼아서 <두병>에게 처로 주고는 <두병>을 시켜서 <태>를 치라고 하였다. 이에 <태> 또한 <유연>과 혼인하였으니, 그 추한 작태는 막심하였고, 천박하다 할 만하였다.

◎ 丙辰<大藏>六年, 春正月, 壬寅朔, 受朝[於]<龍山><溫宮>. <奚>王<[梪]出>, 入朝, 言, 其從弟<劉蠡升>之寃. 上曰;“<蠡>, 妄自尊大, 以致滅亡. 汝, 宜謹守封域, 慎勿妄動.”
 上, 與<華陽>・<玉陵>, 如<河陽宮>設宴献壽. 后, 以故國之難, 辞之. 上曰;“女子當從夫家享樂, 何憂親家也.” <河陽>, 十五, 皈<太宗>, 生五子七女, 為<魏>公主之宗. 時, 當紀甲, 內外進賀之莭, 燦然備矣. 是夜, 上親擧「燈戱」.
 <蕭衍>, 為其父作<皇基寺>. 誣<弘>氏為劫而殺之, 歿其巨材為寺. <衍>其孝乎.

○ 병진{단기2869/AD536}<대장>6년, 춘정월, 임인일 초하루, <용산>의 「온궁」에서 조회를 받았다. <해>왕 <[두]출>이 입조하여 자신의 종제{4촌동생}인 <류이승>의 원통함을 털어놓자, 상이 이르길; “<이>는 망령되게도 스스로를 존대하려 하였다가{稱帝하였다가} 멸망한 것이오. 그대는 의당 삼가 봉역을 지키고, 신중히 처신하여 허튼 움직임을 하지 마시오.”라 하였다.
 상이 <화양>과 <옥릉>을 데리고 <하양궁>으로 가서 연회를 열고 오래 사시라고 술을 올렸다. 후는 고국{친정 나라}의 어려움을 들어 사양하였었으나, 상이 이르길; “아녀자는 응당 지아비 집안을 좇아 향락하는 것인데, 어찌 친정집을 걱정하십니까?”라 하였다. <하양>은 나이 열다섯에 <태종{<明治帝>}>에게로 와서 5남 7녀를 낳았으며, <위>의 공주 출신 가운데 우두머리였다. 이때, 환갑을 맞이하였더니, 내외의 사람들이 축하하는 때인지라 빛나게끔 준비를 하였었고, 이날 밤엔 상이 친히 「등희{燈戱; 등불놀이? 등을 켜고 하는 인형극?, 연등놀이? }」를 거행하였다.
 <소연{蕭衍; 南朝의 宋을 멸한 齊를 멸하고 선 梁의 太祖武帝}>이 자신의 아비를 위해 <황기사>를 지었다. <홍>씨를 무고하여 겁박하고 죽였으며, 그녀 집의 거대한 목재를 몰수하여 절을 지은 것이었다.  <소연>은 그것을 효행이라 여겼단 말인가!

◎ 二月, <高歓>, 以其子<澄>為<幷州>刺使, 年十五, 尋加尙書令領軍・「京畿」大都督. 用法嚴峻, 事無凝滯, 中外震慓. <幷州>別駕<崔暹>為左丞.  丙子, <紅>皇后生<桂陰>公主.
 三月, 八日, <齊>, <陶弘景>沒于<丹陽>之<茅山>. 有詩, 曰;“<夷甫>任㪚誕, <平叔>坐論空. 豈悟<昭陽殿>遂作<単于宮>.” <齊>, 人不習武事, 競談云理. <王衍>・<何晏>等是也. <昭陽>, 後為<后景>所據.

○ 2월, <고환>이 자신의 아들 <징>을 <병주>자사로 삼았다. 나이 열다섯이었으며, 좀 있다가 상서령영군・「경기」대도독을 얹어주었다. 사람의 임용과 법을 집행함에 엄준하고, 일을 처리함에 엉거주춤함이 없었더니, 안팎이 놀라서 움직임이 빨라졌다. <병주>별가<최섬>이 좌승이 되었다.  병자일에 <홍>황후가 <계음>공주를 낳았다.
 3월, 8일, <제{齊; =南齊}>땅의 <도홍경{陶弘景; 梁武帝의 신하}>이 <단양{丹陽}>땅의 <모산{茅山=三茅山=句曲山}>에서 죽었다. 시 한 수를 남겼는데; “<이보>는 사람 쓰기가 흩어져 산만하고, <평숙>은 앉아서 말만하니 공허하다. 세월이 지나면 <소양전>이 <선우궁>이 되는 것을 어찌 깨달을 수 있겠는가!” <제>의 사람들은 무사{武事}는 익히지 않고 다투어 도리{道理}만을 이야기하였다. <왕연>과 <하안> 등이 그러하였었다. <소양>은 이후 <후경>의 의거처가 되었다.

◎ 五月, 上, 以春夏旱, 祈雨, 曰;“朕無德, 去年大水, 今年旱魃.” 命皇太子監國, 而出居行宮减饍自責. 東宮, 年雖十九, 能决大事. 况有<義臣>之補佐, 故事無狼狽. 上, 遂委政於東宮及<義臣>, 日與后妃以詩酒, 自娛徃来於山宮・水樓・溫水・茂林. <義臣>, 雖是淫穢之女, 能任賢使, 能不失時政, 故百僚安之.

○ 5월, 상은 봄・여름이 내내 가물었더니 기우제를 올리고, 이르길; “짐이 덕이 없어, 지난해엔 물난리가 났고, 올해엔 가뭄이 들었다.”라 하더니, 황태자에게 명하여 감국 하게하고, 밖으로 나가 행궁에 머물면서 감선하고 자책하였다. 동궁은, 나이가 비록 열아홉이었으나, 큰 정사를 능히 처결하였고, 아울러서 <의신>의 보좌함이 있었더니, 낭패 된 일이 없었다. 이에 상은, 동궁과 <의신>에게 정사를 맡기고는, 날마다 후비들과 더불어서 시나 읊고 술 마시며, 산궁 및 수루와 온수 및 무림 간을 오가며 스스로 즐거이 지냈다. <의신>은, 음란하고 거친 여인이긴 하였으나, 능히 현명한 이에게 일을 주어, 시시때때로 생기는 정사에 잘못됨이 없었으니, 백료들이 그녀를 좋아하였다.

◎ 八月, 大蝗. 東宮, 與<義臣>, 出郊捕蝗而食, 發倉賑民, 放官牛賜民無食者.  <高歓>, 使其次子<洋>, 来献宝器・法酒・駿馬・明珠等, 請献其女. <洋>, 時年九歲, 夙成如成人. 上, 厚待, 送之.  <俶>公主生東宮女<俊>公主. <繭>公主生上女<蝴>氏.

○ 8월, 황충이 크게 일자, 동궁은 <의신>과 함께 교외로 나가서 황충을 잡아서 먹었으며, 창고를 열어 백성을 진휼하였고, 관청의 소를 풀어서 먹을 것이 없는 백성에게 하사하였다.  <고환>이 둘째 아들 <양>을 시켜서 옥기・법주・준마・명주 등을 바쳐왔으며, 딸을 바치겠다고 청하였다. <양>은, 당시 나이 아홉이었으나, 조숙하여 성인 같아보였다. 상이 후하게 대접하여 돌려보냈다.  <숙>공주가 동궁의 딸 <준>공주를 낳았고, <견>공주가 상의 딸 <호>씨를 낳았다.

◎ 九月, <頭兵>使<宇古晋>, 来献不老酒及黃駝三十匹. 来言;“<天山>之北, 有仙人, 能使冬不寒夏不暑. 神兵護之, 雖<突厥>之槍不得貫通.”
 <原宗>, 僣稱帝, 改元曰<建元>. 上, 怒欲伐之, 曰;“<太宗>以来修文之弊至於此, 不伐無以懲.” <義臣>, 諫, 曰;“今若伐之, 必有備, 墮其術中, 不如且驕其志以待天誅.” 時, <明穠>亦僣號, 然遣使来稱臣而献如故, 不伐.
 <賀拔勝>等自<梁>皈<長安>. <蕭衍>餞于南苑. <勝>, 感恩, 途見禽獸南向者, 不射. <候景>逼之, 棄舟山行, 凍餒道死者太半. 得皈者亦曰;“[心已奪而徒身皈, 可也].”
 <関中>大飢, 人相食, 死者十之七八. 上, 聞之, 歎, 曰;“飢之甚至於斯邪. 我國, 從古, 無相食之变. <芻牟>之德, 豈不大乎.” <高歓>, 其仍飢, 而欲伐<泰>, 與<梁>約和, 進至<潼関>.  <善見>父<亶>訃至. 上, 與<玉陵>擧哀于<檀宮>, 命<隆>太子如<鄴>吊賻如例.

○ 9월, <두병{<柔然>}>의 사신 <우고진>이 와서 불로주와 누런 낙타 30필을 바쳤다. 와서 아뢰길; “<천산> 북쪽에 선인이 있는데, 겨울을 춥지 않게 여름을 덥지 않게 할 수 있으며, 신병들이 그를 호위하고 있어서 <돌궐>의 창으로도 그를 관통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원종>이 제를 참칭하고 년호를 <건원>이라 고쳤다. 이에 상이 화가 나서 <원종>을 정벌하고자 하며, 이르길; “<태종> 이래로 글을 중시하였던 폐단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소. 정벌하지 않으면 징계할 수 없을 것이오.”라 하였더니, <의신>이 간하여 아뢰길; “지금 그를 정벌한다면, 필시 대비하고 있을 것이어, 그의 술수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니, 잠시 그의 뜻이 교만하게 놓아두어서 하늘이 벌하기를 기다림만 같지 못할 것입니다.”라 하였다. 이때, <명농>은, 역시 함부로 제를 칭하긴 하였었으나, 사신을 보내와서 신하를 칭하며 바치기가 지난날과 같아서, 정벌하지 않았다.
 <하발승> 등이 <양>에서 <장안>으로 돌아갔다. <소연>이 남쪽 동산에서 연회를 열어 전송하였더니, <승>은, 은혜가 고마워서, 도중에 금수를 만났어도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는 것은 쏘지 않았다. <후경>이 <승>을 협박하자 {<승>은} 배를 버리고 산으로 도망하였으며, 얼고 굶주려 길에서 죽은 자가 태반이었다. 살아 돌아간 자가 또한 말하길; “얼은 이미 빠졌고, 몸뚱이만 돌아오는 것도 가하구나.”라 하였다.
 <관중>에 큰 기근이 들어 사람들이 서로를 뜯어먹었더니 죽은 이가 열에 일곱 여덟이나 되었다. 상은 이 소식을 듣더니 탄식하며 이르길; “기근이 심하기가 그 같은 지경에 다다랐단 말이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서로를 뜯어먹는 변란은 없었소. <추모>의 덕이 어찌 크지 않았겠소?” <고환>이 기근으로 인하여 <태>를 치고자, <양>과는 화친을 약조하여 놓고, <동관>으로 진격하였다.  <선견>의 아비 <단>의 부음이 다다랐다. 상은, <옥릉>과 함께 <단궁>에서 애도하고, <륭>태자에게 명하여 <업>으로 가서 조상하고 법식에 맞게 부의하라 하였다.

◎ 丁巳<大藏>七年, 春正月, 丁酉朔, <文藏>妻<淵華>生上女<唐>公主, 停朝.  上, 如<牛山陵>, 行<安藏>大祭, 以慰<漢王>夫妻.  <高歓>軍至<蒲坂>. <宇文泰>, 不與<歓>戦, 潛出小関, 擊<竇泰>殺之. <歓>, 以<河>氷薄, 不能救而退. <高敖曹>, 獨所向無前, 攻<上洛>拔之. 被矢通三, 創甚而還<洛州>, 遂潰而皈<泰>. <泰>得神璽于<槐里>而大赦.
 三月, 東宮, 與<銀>公主, 巡行郡邑, 賑民加療. 時, 倉有十年之糧, 醫有十分之薬, 雖有旱蝗, 民無飢者, 病亦多救焉.  立<安藏搭>五層于<牛山>.
 六月, <高歓>至<汾陽>之<天池>, 奇石隐起文, 曰;“六王三川以為奄, 有関<洛>之兆. 郞中<杜弼>勧<歓>受褝, <歓>擧杖以走之.”

○ 정사{단기2870/AD537}<대장>7년, 춘정월, 정유일 초하루, <문장>의 처 <연화>가 상의 딸 <당>공주를 낳아서, 조례를 미루었다.  상이 <우산릉>으로 가서 <안장>대제를 올려서 <한왕{漢王; 漢中?땅을 다스린 高句麗의 官爵}> 부처를 위안하였다.  <고환>의 군병이 <포판>에 다다랐다. <우문태>는 <환>과 맞싸우지 않고 작은 관문을 몰래 빠져나가 <두태>를 공격하여 죽였다. <환>은 <하>가 얇게 얼어 구원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고오조> 혼자만은, 앞으로는 향할 곳이 없어서 <상락>을 공격하여 빼앗았다. 그러나 화살을 세 곳이나 맞아 상처가 심하였기에 <락주>로 돌아갔다가, 끝내는 무너지자, <태>에게 귀의하였다. <태>는 <괴리>에서 신성한 옥새를 얻자 크게 사면하였다.
 3월, 동궁이 <은>공주와 함께 군과 읍을 순행하여 백성을 진휼하고 치료하였다. 이 시절, 창고엔 10년 치의 양식이 있었고, 의원에는 10번이나 쓸 수 있는 약재가 있었으니, 설사 가물고 황충이 일어도 백성들은 아무도 굶지 않았으며, 병이 들어도 많은 이를 구할 수 있었다.  <우산>에다 <안장탑>을 5층으로 세웠다.
 6월, <고환>이 <분양><천지>에 이르렀더니 기이하게도 돌들이 점괘 문양을 숨기어 솟아있었는데, 여섯 왕과 물귀신 셋을 숨기고 있는 것이 락서{洛書}와 관련된 조짐{兆朕}이었다. 랑중 <두필>이 <환>에게 선위 받으라고 꼬였더니, <환>은 지팡이 높이 쳐들어서 그를 쫓아버렸다.

◎ 七月, <高歓>遣<李諧>於<蕭衍>. <衍>, 與語大驚, 曰;“<鄴>亦有人. 自是, 南北, 通好, 必以才地禮贈甚崇. 以舌戦制勝, 為一時勝事.”  <獨孤信>・<楊忠>自<梁>皈<泰>, <信>棄父母於<山東>而不顧, 曰;“事君, 不可懷二心.” <衍>, 使<泰>・<歓>相爭, 而觀其微处乃其所長也.
 八月, <泰>皈<歓>.  恒農<于謹>為前鋒, 又使<柔然>侵<歓>.
 <蕭衍>, 出<阿育塔>, 爪髠而設「無礙會」, 大赦. <宇文泰>之<槐里>神璽, <高歓>之六王三川, <頭兵>之<天山>仙人, <衍>之塔髠, 皆, 是不經之事, 而迷於此, 可謂豚犬輩也.  <江陰>公主下嫁<楊義德>.

○ 7월, <고환>이 <이해>를 <소연>에게 보냈다. <연>이, 함께 얘기를 나누고 나서, 크게 놀라며 말하길; “<업>에도 뛰어난 인재가 있으니, 이제부터는 남과 북이 좋게 지내면서, 반드시 재주와 지위에 맞게 예를 표하고 선물도 하면서 지극히 존중합시다. 말만으로 잘 된 것은 잘 되었다하여도 잠시만의 잘 되었음일 뿐이오.”라 하였다.  <독고신>과 <양충>이 <양>에서 나와 <태>에게 귀의하였다. <신>은, 부모를 <산동>땅에 내버려두고 마음에 두지도 않은 채, 말하길; “주군을 섬기면서 두 마음을 품을 수는 없습니다.”라 하였다. <연>은, <태>와 <환>이 서로 다투게 해놓고, 그들의 후미진 곳과 그들의 뛰어난 점을 살폈다.
 8월, <태{<西魏>}>가 <환{<東魏>}>에게 귀의하였기에, 꾸준히 농사하던 <우근>을 전봉으로 삼고, 또한 <유연>을 시켜서, {합쳐져 힘이 커진} <환>을 치게 하였다.
 <소연{<梁>}>이, <아육탑>으로 나가서 삭발하고 「무애회{無礙會;모든 것에 구애됨이 없는 모임}」를 열어서, {서로를} 크게 용서하였다. <우문태>가 <괴리>의 신성한 옥새를 취한 것, <고환>의 6왕3천의 건, <두병>의 <천산>선인 건, <연>이 탑을 짓고{<황기사>와 <아육탑>을 짓고} 삭발한 건, 이 모두는 불경스러운 일이었고, 그것들에 미혹되었으니, 개돼지{미련한} 무리이었다고 할 만하였음이다.  <강음>공주가 <양의덕>에게 하가하였다.

◎ 九月, <泰>與<柔然>約婚. <柔然>, 娶<蘭陵>而背信, 侵<歓>之<汾陽><三堆>. <歓>, 出擊走之, 與其左右議其鎮柔之策. 皆曰;“<柔然>服於東皇. 若得東皇之詔, 則可不戦而鎮之.” <歓>, 深然之, 乃使<李挻>来献宝・馬・香・薬, 復請納女. 上, 辭, 以老不能娶. <挺>曰;“陛下, 春秋尙冨, 龍躬豊壮. 何憂一媵, 而負臣之孤忠歟. 是, 無異於拒来, 而與人也. 窃, 不取也.” 上, 乃與宗室議之, 遂送皮·幣于<歓>. <歓>, 大悅, 與妻, 相議, 曰;“東帝, 七尺五寸, 鴻壮大力, 女可堪乎.” <婁>, 笑, 曰;“<虞美>雖孱能銷<項王>, 况君之女乎.” <歓>戒女;“幸, 善事夫帝, 勿以老嫌.” 女曰;“臣死於君, 妻死於夫, 豈敢曰老乎. 唯父所命, 女當甘從.” <歓>, 喜, 撫之. <真賀>, <六渾>之女也, 乃以為<善見>之假妹, 封<淸河>公主, 以香車百兩馬車千乘送之, 威儀之盛曠古未有. 上, 遣畏部尙書<松>太子・鴻矑卿<談緯>, 徃迎于境上. 時, <泰>使, 亦至, 請與<柔然>合兵以伐<歓>, 共分其地. 上曰;“<柔然>, 娶<蘭陵>而背<歓>, 不可信也.” 遂不許.

○ 9월, <태>가 <유연>과 혼인을 약속하였다. <유연>은 <란릉>과 혼인하고 나서도 배신하고 <환>의 <분양><삼퇴>를 침략하였다. 이에 <환>이, 출격하여 쫓아내고, 측근들을 불러서 그를 진정시키고 말 잘 듣게 할 방도를 상의하였더니, 모두들 “<유연>은 동쪽의 황상에게는 복종하고 있으니, 동쪽 황상의 조서를 얻을 수 있다면, 싸우지 않고도 진압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 하였다. <환>이는, 정말로 그렇겠다고 여기어, <이정>을 시켜 찾아와서 보물 및 말과 향 및 약재를 바치고, 다시금 딸을 바치겠다고 청하였다. 이에 상이 이제 늙어서 장가들 수 없다고 사양하였더니, <정>이 아뢰길; “폐하께서는, 춘추가 오히려 넉넉하시고 용체는 건장하시며 여유로우신데, 어찌 잉첩 하나를 걱정하시어서 신의 외로운 충정을 짐스러워 하십니까? 그리하시면, 알아서 찾아오는 것을 거절하시는 것과 다름이 없고, 남들과는 빼앗기만 하시고 받지는 않으심이 됩니다.”라 하였다. 상은, 종실들과 의논하더니, 피륙과 비단을 <환>이에게 보냈다. <환>이는, 크게 들떠서, 처와 상의하며, 말하길; “동쪽의 황제께서는 7척 5촌의 키에 엄청나게 건장하고 힘도 세신데, 우리 딸이 감당하겠소?”라 하였더니, <루>가 웃으며 말하길; “<우미>는 연약하였어도 능히 <항왕{초 패왕 항우}>을 녹였는데, 항차 임금의 딸이야 어떠하겠습니까?”라 하였다. <환>이 딸에게 훈계하길; “승은은 입을 때는, 지아비 되시는 황제를 잘 섬길 것이며, 나이 드셨음을 싫어하지 말거라.”라 하였더니, 딸이 아뢰길; “신하는 주군을 위해 죽고, 처는 지아비를 위하여 죽습니다. 어찌 감히 늙었다고 마다하겠습니까? 오로지 아버님이 명을 내리시면, 딸은 응당 즐거이 따를 것입니다.”라 하였다. <환>은 기뻐서 딸을 어루만져주었다. <진하>는 <육혼>의 딸이었기에, <선견>의 수양누이동생으로 삼아서 <청하>공주로 봉하여, 꽃마차 100대에 말 마차 1000대를 딸려서 보냈더니, 그 위풍 성대함이 아직까지 들어본 적 없었다. 상이 외부상서 <송>태자와 홍로경 <담위>를 보내 국경언저리로 가서 맞이하게 하였다. 이때, <태>의 사신 또한 찾아와서 <유연>과 군병을 합쳐서 <환>을 토벌하고 그 땅을 함께 나누어 가지겠다고 청하였더니, 상은 “<유연>은 <란릉>과 혼인하고서도 <환>을 배반하였으니, 믿을 수 없겠다.”고 일렀고, 끝내 들어주지 않았다.

◎ 閏九月, 壬戌朔, 上, 與<寧陽>公主・<陰>太子, 迎<淸河>公主于<南口>. 時, <歓>引兵二十万攻<泰>之<蒲津>. <泰>飢将士不過万人, 皆以為難保. 八日, 上, 與<淸河>公主, 過於<白岩>. 公主, 見上風神灑落皓鬚下, 復不覺, 欣喜, 曰; "吾夫来, 何遲乎. 離家以来, 夜夜夢之.” 上, 大喜, 曰;“真吾妻也.” 抱入帳中. 群臣山呼, 聲動天地. 上, 遂與公主, 合歓于行宮之神殿. 公主, 宝齡十三, <高歓>之第三女也. 其母<婁>氏, <師德>之族也. 賜陪臣酒食. 翌日, 上與公主受朝於神殿, 曰;“新皇后, 為朕, 遠来. 爾等可禱壽福多男子.” 十一日, 發<白岩>至<內市>. 與同輦而起卧. 公卿以下扶輦者七十人, 選貞男女盛裝而曵之. 所過州郡, 皆免今年租稅.

○ 윤9월, 임술일 초하루, 상이, <녕양>공주와 <음>태자를 대동하고, <남구>에서 <청하>공주를 맞아들였다. 이때, <환>은 20만병을 이끌고 <태>의 <포진>을 공격하였으며, <태>는 기근으로 인하여 장수와 사졸이 만 명을 넘지 못하였으니, 모두가 나서도 막아내기 어려웠다. 8일, 상이, <청하>공주를 데리고, <백암>을 지나는데, 공주는 상의 풍채가 영묘하게도 흰 수염을 시원스레 드리우고 있음을 보고서도 아직도 알아채지 못한 채로 기쁨에 들떠서 말하길; “내 지아비께서는 오시는 것이 왜 이리 더디시나요? 집을 떠나온 내내 밤마다 꿈을 꾸었는데.”라 하였다. 상은 크게 기쁜 나머지 “진정 내 처로구나.”라고 하면서 품에 안고 장막으로 들어갔다. 군신들이 만세를 부르니 천지가 진동하였다. 이윽고 상이 공주와 함께 행궁 신전에서 합환하였다. 공주는 보령 열 셋으로, <고환>의 셋째 딸이고, 그 어미 <루>씨는 <사덕>의 혈족이었다. 배신{=딸려온 신하}들에게는 술과 먹을 것을 주었다. 다음날, 상은 공주를 데리고 신전에서 조례를 받으며, 이르길; “새 황후는 나를 위해 멀리에서 찾아왔소. 그대들은 수복과 아들 많이 낳길 빌어주어야 할 것이오.”라 하였다. 11일, <백암>을 떠나 <내시>에 이르렀다. 함께 같은 련에서 눕고 일어났으며, 공경 이하 련을 곁에서 따르는 이가 70인이었고, 정결한 남녀를 가려 뽑고 성장시켜서 수레를 끌게 하였었다. 행렬이 지나간 주와 군은 금년 조세를 면하여 주었다.

◎ 十月, 封<淸河>公主為苐三皇后, 而如<卒本>, 宴宗室及<魏>公主等.
 <歓>, 與<泰>戦於<沙苑>, 大敗而皈. 上, 恐新后悲之, 不告以實. 后日望吉報, 上曰;“汝為吾妻, 唯以事夫為務, 何苦念親家事乎. 生子生女以悅其夫, 妻之道也. 盡思夜度, 只可在於我, 何暇于他. 親父亦外人, 勿深慮之.” 后, 乃謝之, 不復問戦, 晝則冶容禱子, 夜則献媎枕席為務.
 十一月, 以<梁義臣>為右侍中, <文藏>太子為吏部尙書. <義臣>頣使<文藏>如小兒.
 <華陽>生上女<紅陽>公主. 新后為之製衣, <華陽>曰;“妹, 與我, 同事一夫. 豈意万里復見骨肉. 但, 恐<高>丞相不保吾.” 侄后曰;“兄, 勿疑之. 他真忠臣也. 况使我結為兄妹者乎.”

○ 10월, <청하>공주를 제3황후로 봉하고, <졸본>으로 가서 종실과 <위>의 공주 등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환>이는, <태>와 <사원>에서 싸우다가, 크게 지고 돌아갔다. 상은 새 황후가 슬퍼할까 걱정되어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으며, 황후는 날마다 좋은 소식을 기다렸었다. 이에 상은 “자네는 나의 처가 되었으니, 오로지 지아비 섬기기를 힘써야 하거늘, 어찌 친정집 일을 골똘히 생각하는고? 아들 낳고 딸을 낳아 지아비를 즐겁게 하는 것이 처 된 자의 도리이니, 정성을 다하여 밤의 법도를 생각하며 단지 나만을 생각하여야 할 것이데, 얼마나 한가하면 타인을 생각한 달 말인고? 친정 아비 또한 외인이니 깊게 걱정하지 말 것이야.”라 하였다. 그랬더니, 후는 사죄하고 나서 다시는 싸움에 대하여 묻지 않았으며, 낮이면 용모를 다듬고 아들 낳기를 기원하였으며, 밤이면 잠자리에서 교태로써 모시기를 힘썼다.
 11월, <양의신>을 우시중으로, <문장>태자를 리부상서로 삼았더니, <의신>은 <문장>을 작은 아이를 부리듯 쉽게 부렸다.
 <화양>이 상의 딸 <홍양>공주를 낳았다. 새 황후가 <홍양>을 입힐 옷을 만들었더니, <화양>이 말하길; “동생은 나와 함께 한 지아비를 모시고 있네. 어찌 만 리 먼 곳에서 골육을 다시 만나는 것을 생각이나 하였겠는가. 부질없겠지만, <고>승상이 우리를 돌봐주지 않을까봐 걱정되네.”라 하였더니, 조카인 후가 답하길; “형님께서는 그를 의심하지 마세요. 그는 진정 충신입니다. 더군다나, 저를 형님의 동생이 되게 맺어준 사람이잖습니까.”라 하였다.//{계속}




강영구 (2008-01-18 18:28:08)  
·4년 4월 :餝身甚正 =>飭身甚正 “몸을 삼가기를 매우 바르게 했다.”
·而入都<関中> 다음에 빠진 문장이 있습니다. ‘<高歡>欲結<泰>而遣使厚禮 <泰>不受 送於其書於<脩> 於是 <脩><泰>相結而<歡><脩>相隔’ “고환은 태와 결친하고자 후례하여 사신을 보냈지만, 태는 받아들이지 않고 그 문서를 수에게 보냈다. 이로 인해 수와 태는 서로 결친하고 환과 수는 서로 멀어졌다.”
·六月, <高歓>, 稱除君側之惡, 而勒兵南出, 勢不可當<脩>臣, 各自圖生而観望無敢拒. <歓>者, <脩>計窮, 欲奔于<宇文泰>. <裴俠>曰;“圖<歓>有立, 至之憂. 奔<泰>, 有将来之慮. <泰>, 為三軍之推, 據百二之地, 已操其矛, 豈肯受柄. 恐是避湯而入火也.” =>선생님처럼 해석하면 <고환>이 <수>를 당할 수 없는데, <수>가 <우문태>에게 달아나려고 하는 이상한 상황이 됩니다. 이 문장의 해석은 달리해야 합니다. 일단 ‘세불가당수신’에서 ‘수신’은 앞에서 끊고 아래에 붙여 해석해야 합니다. 그리고 ‘입지’와 ‘지지우’는 붙여서 해석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恐은 ‘두려워하다’의 의미보다는 ‘아마, 의심스럽다’는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6월 <고환>이 군측의 악인을 제거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병사들을 이끌고 남쪽으로 출병하니 그 세를 당할 수 없었다. <수>의 신하들은 각자 살길을 모도하며 관망만 할 뿐 감히 <환>의 군대에 대적하지 못했다. <수>는 계책이 다하여(다른 방도가 없이) <우문태>에게 달아나려고 했다. (그 때) <배협>이 말하길 ‘<환>을 도모하자니 당장(여기에서 立은 ‘곧, 당장’의 의미이고 至는 ‘이르다’는 뜻이니 ‘당장 이르다’의 의미입니다) 눈앞에 근심이 있고(환을 당할 수 없다는 뜻이죠), <태>에게 달아나면 장차 다가올 염려가 있습니다. ~’라고 했다.”
·7월 :不知誰為凢匈 =>凡자가 아니라 元자군요. ‘누가 원흉인지 알지 못했다.’
·汝等戒之苟, 非其位之人, 勿妄爭而相殘. :苟(진실로)를 아래에 붙여야겠습니다. “너희들은 명심해야 한다. 진실로 그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면 망쟁하여 상잔하지 말하야 할 것이다.”
·8월 :<歓>以<洛陽>西逼于<泰>南近於<梁> <환>은, <락양>으로 하여금 서쪽을 위협하여 <태>의 남쪽이 <양>과 가까이 되게 하고는=>마치 낙양이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태>의 남쪽과 <양>이 가까워진다는 것도 이상합니다. “<환>이 낙양에서 서쪽으로는 <태>를 위협하고, 남쪽으로는 <양> 가까이 이르렀다.”
·윤12월 :<泰>, 以<脩>奸從妹三人而又奸其妻<馮翊>, 不可為帝 <태>는 <수>의 간교한 종매 세 명과 또한 간교한 그의 처 <풍익> 때문에 제위에 오르지 못하였으며 =>이것은 ‘以a爲b' 구조의 문장으로 보입니다. 즉 “<태>는 <수>가 종매 3인과 간음하고 또 그 처(태의 처를 말하겠죠) <풍익>과도 간음하였느니 황제의 자격이 없다고 하면서~”라고 해석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래에도 나오지만 <태>가 <수>를 제거하기 위한 핑계로 떠들어댄 것이죠.
그래서 ‘奸妹三人之說’도 ‘종매 3인과 간음했다는 얘기는’이라고 풀어야 할 것입니다.
·5년 :戊申朔 =>무신 삭
·接藩使七人 :해석이 빠졌습니다. ‘번국의 사신 7인을 접대하였다.’
·因<歓>之不在十五夜, =>“<환>이 없는 15일 동안 밤마다”라고 해석해봅니다.
·于絶<婁>氏 =>于를 又로 고쳐야겠습니다. ‘또한 <루>씨와도 끊었다.’
·<宝炬>以<乙弗>氏為妻. =>해석이 빠졌습니다.
·2월 :因<晋冠>使 =>‘<진관>의 사신을 통하여’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부드러울 듯합니다.
·7월 :說勧今送<賀拔勝>·<獨孤信>等 =>今을 令으로 바꾸고 해석에서 ‘지금’이라는 말은 빼야겠습니다.
·10월 :適有夢兆而地且震故也. =>뜻에 대차가 없으나 이렇게 해석해봅니다. ‘마침 꿈에 조짐을 보았는데, 또 지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6년 :歿其巨材為事. 行其孝乎. =>원서를 보니 事는 寺로 바꿔야겠고, 行은 衍으로 바꿔야겠군요. ‘衍其孝乎’는 옛날 해석 방식을 빌리자면 ‘그 효가 지나친 것인뎌!’로군요. 이것도 이름(衍)을 기롱한 말인 듯싶습니다.
·8월 :<{萠}>公主生上女<蝴>氏. =>繭公主. 이번에는 고치(繭)에서 나비(蝴)가 나왔군요.
·9월 :;“心已奪, 身徒皈者也, 可而.” =>여기서 ‘可而’는 잘못 들어간 글자가 아닌가 합니다. ‘마음은 이미 빼앗기고 몸만 돌아온 것이다.’라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군요.
·飢之甚至於欺. 邪 =>欺는 斯의 오자로군요. ‘飢之甚至於斯邪’ ‘기근이 이 지경에 이르도록 심한가!’ 이런 쓰임에서 邪를 ‘삿되다’로 해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我國從古 =>여기서 ‘從古’는 ‘예로부터’라고 해석해야 합니다.
·7년 7월 :<衍>, 與語大驚, 曰;“<鄴>亦有人. 自是, 南北通好, 必以才地禮. 贈甚崇以舌戦, 制勝為一時勝事.” =>‘얘기를 듣고’보다는 ‘더불어 얘기를 나누고 나서’라고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군요. “<업>에도 인물이 있었군요. 이후로 남북이 통호하고 반드시 재주와 지위에 맞게 예우하고 선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예우와 선물이) 너무 성대하고 설전으로 이기는 것은 한 때의 이기는 일일뿐입니다.”라고 해석해봅니다. 그러나 어색하군요. ‘贈’이 '벼슬을 준다‘라고 쓸 때는 죽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니, 여기서는 조금 어색하지 않나 합니다.
·“<宇文泰>之<槐里>神璽, <高歓>之六王三川, <頭兵>之<天山>仙人, <衍>之塔髠.” 皆, 是不經之事而迷於此, 可謂豚犬輩也. =>여기서 ‘따옴표’는 불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상 네 가지가 모두 불경한 일이고 이런 일에 미혹된 그들이 개돼지 같은 놈들이라는 말이 되겠지요.
·9월 : 何憂一膢而負臣之孤忠歟. =>膢자는 媵(잉첩 잉)으로 써야 맞겠군요. 잉첩이니까 여기서는 ‘후궁’으로 해석하면 될 듯합니다. “어찌 후궁 하나 부담스러워서 저의 외로운 충심을 저버리려하십니까?”
·窃, 不取也 =>窃은 ‘훔치다’는 뜻인데, ‘훔치되 취하지 않는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虞美>雖屛能銷<項王> =>屛은 孱(잔약한, 나약한 잔)으로 바꿔야 맞겠습니다. “<우미>가 비록 나약하였지만 <항왕>을 능히 녹였습니다.”라고 해석해야 되겠습니다.
·윤9월 :"吾夫来, 何逮乎 =>逮를 遲(늦은, 느린 지)로 바꿔야겠습니다.
·11월 :頣使 :턱으로 부린다는 뜻으로, 남을 마음대로 부림을 이름.
·但恐<高>丞相不保吾.” 侄后曰;“兄, 勿疑之. =>따옴표를 侄까지 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조카가 兄이라고 하는 것이 조금 어색합니다. 다만 ‘우리 조카’가 누군지는 모르겠습니다.
김성겸 (2008-01-18 19:16:08)  
고맙습니다. 정말 숨돌릴 틈이 없습니다.
내일 오시면 뵙겠습니다.
김성겸 (2008-01-18 23:57:13)  
1. 조카가 兄이라고 하는 것이 조금 어색합니다.=> 친정 나라에서는 조카이나, 시댁 나라에서는 동서간입니다.
2. 心已奪, 身徒皈者也, 可而. ==> 心已奪身, 徒皈者也, 可而.
살아서 돌아 온 이들이 죽은 자들의 마음은 이미 시신인 육체를 벗어나서 모두들 고향으로 돌아왔을 것이고 편안하여 있을 것이다라는 의미일 것으로 봅니다....
강영구 (2008-01-19 17:15:53)  
윤 12월에 '又奸其妻<馮翊>'에서 <풍익>이 고환의 아들인 징의 마누라군요. (3)편을 보다가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妻는 婦를 남당 선생이 오기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心已奪, 身徒皈者也, 可而 '에서 제가 많은 공부를 한 것은 아니지만 여기와 같은'可而'의 쓰임을 보지 못했기에 감히 연문이 아닌가 하고 여쭙는 것입니다.
또 선생님께서는 '心已奪身, 徒皈者也'로 보셨는데, 徒가 여기서 '단지, 다만'으로 쓰인 것인데, '정신이 몸에서 빠져나가고 단지 돌아왔다'고 하는 것보다는 '정신은 빠지고 몸뚱아리만 돌아왔다'고 한 제 해석이 더 바르지 않나 하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강영구 (2008-01-19 17:49:19)  
'豈意万里復見骨肉. 但恐<高>丞相不保吾侄'
이 부분을 다시 생각해보았습니다. 지금 황후들은 모두 '위'에서 온 사람들이고, '위'의 왕이 바로 이 황후들의 조카가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찌 만 리 밖에서 다시 골육(위에 있는 부모형제가 되겠지요)을 볼 생각을 하는가(이제는 다시 만날 수는 없다는 의미)! 다만 <고> 승상(이때 고환이 '위"의 실권을 쥐고 있죠)이 우리 조카('위'의 왕)을 보호하지 못할까 두렵구나."
강영구 (2008-01-19 17:57:12)  
(4)편을 막 보니 <풍익>이 또 <고환>의 처로 나오네요. 정말 不知케라.
김성겸 (2008-01-20 12:59:09)  
1. 得皈者亦曰心已奪身徒皈者也可而 는
得皈者亦曰;“心已奪身, 徒皈者也. 可而."라 하였던 것을
得皈者亦曰;“心已奪, 身徒皈者也.” 可而.로 하여
살아서 돌아 온 이들도 또한 말하길; "얼은 이미 빠졌고, 몸뚱이만 살아왔습니다."라 하였다.
{찬자가 보기에도} 그럴만 하였겠다. ??라고 사족?을 붙인 것 아닌가요?

2. <풍익>은 오빠인 <수>가 AD535년 8월에 <우문태>에게 처로 삼아주었었는데,
얼마 후? AD535년 윤12월 이전에
<수>가 종매 3명을 간음할 적에 자신의 여동생인 <태>의 처 <풍익>을 간음하여,
주었다가 빼앗는 통에 <수>는 처남인 <수>를 죽이려 하였고,
AD535년 윤12월에 <태>가 <수>를 가두었다가 짐독으로 죽인 것으로 읽힙니다.
<풍익>은 그 후로 언젠가 이미 <고환>의 아들 <징>의 처가 되어있다가
AD541년 12월에 <징>의 자식인 <효원>을 낳은 것으로 읽힙니다.//
김영채 (2008-02-10 11:33:47)  
(1) 갑인 대장4년 춘정월기사 : 上, 與<淑>公主 -> 上, 與<俶>公主, 朦宮如<椘雲宮> -> 命 東宮如<椘雲宮>
(2) 갑인 대장4년 3월기사 : 生上子<鯨>․<陵>兩太子 -> 生上子<鯉>․<陵>兩太子
(3) 갑인 대장4년 7월기사 해석 : 동궁은 부득이 하여 공주를 데라고 말과 나란히 걸었다. -> 동궁은 부득이 하여 공주를 데리고 말과 나란히 걸었다., ꡒ<수>가 <공>을 -> “<수>가 <공>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ꡓ라 하였다. ->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라 하였다.
(4) 갑인 대장4년 8월기사 해석 : <우경>을 보내서 <형주>를 쳐서 빼앗았다. -> <후경>을 보내서 <형주>를 쳐서 빼앗았다.
(5) 을묘 대장5년 춘정월기사 : 上, 與東宮<椘雲>․<德陽>․<淑>․<玉陵> -> 上, 與東宮<椘雲>․<德陽>․<俶>․<玉陵>, 復愛<婁>․<澄>如故 -> 復爱<婁>․<澄>如故, <王態>驚起以梃却之 -> <王熊>驚起以梃却之, 해석 : <왕태>가 놀라 일어나서 -> <왕웅>이 놀라 일어나서
(6) 을묘 대장5년 5월기사 : 上愛之, 欲封皇后 -> 上爱之, 欲封皇后, 上愛之, 不肯下嫁 -> 上爱之, 不肯下嫁
(7) 을묘 대장5년 11월기사 : 祭<紂>之罪亦在乎 -> 桀<紂>之罪亦在乎, 해석도 수정되어야 합니다.
(8) 을묘 대장5년 12월기사 : 上撫愛<玉陵>過度 -> 上撫爱<玉陵>過度
(9) 병진 대장6년 춘정월기사 : <奚>王<査出>入朝言 -> <奚>王<梪出>入朝言, 해석 : <해>왕 <사출>이 입조하여 -> <해>왕 <두출>이 입조하여
(10) 병진 대장6년 8월기사 : <淑>公主生東宮女<준>公主 -> <俶>公主生東宮女<俊>公主, 해석 : <{균}>공주가 상의 딸 <호>공주를 낳았다. -> <{견}>공주가 상의 딸 <호>씨를 낳았다.
(11) 병진 대장6년 9월기사 : <善見>父<丹>訃至 -> <善見>父<亶>訃至
(12) 정사 대장7년 9월기사 : <真賀>, <大渾>之女也 -> <真賀>, <六渾>之女也, 해석: <진하>는 <대혼>의 딸이어서 -> <진하>는 <육혼>의 딸이어서
(13) 정사 대장7년 11월기사 해석 : <화양>이 상의 딸 <호양>공주를 낳았다 -> <화양>이 상의 딸 <홍양>공주를 낳았다
김성겸 (2008-02-11 16:49:49)  
김 선생님, 고맙습니다. 곧 교정해 놓겠습니다.
김영채 (2008-04-04 20:58:29)  
병진<대장>6년 8월기사 : <俶>公主生東宮女<繭>公主 -> <俶>公主生東宮女<俊>公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