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잡동사니/남당사료
문(文)과 선(仙) - communication society 형성의 두 가지 방법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1. 18. 11:22
/ 사천(史穿) 김성겸 님
새로운 일사(逸史)의 대륙인 남당(南堂) 선생의 유고(遺稿) 가운데, 고구리(高句麗) 부분을 해석하는 대장정(大長征)의 길을 사천(史穿) 선생께서 열고 계신 점에 대해, 좌계 머리숙여 고마움을 표합니다. 이는 ‘정성일 님’께서 백제서기에 도전한 것과 같이 ‘사학(史學)-아고라’인 coo2.net의 큰 홍복(洪福)이 아닐수 없습니다.
* 문(文)과 선(仙)의 구분에 대해서...
사천(史穿) 선생의 해석문을 통해서 또한번, “백제서기에서 뿐만이 아니라, 고구리(高句麗)까지도 이런 인식(認識)이 있었나?!”하는 강한 느낌을 주는 구절(句節)을 말씀드리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1. 문자(文字)에 대한 기피-문명
먼저 백제서기(百濟書記)에 나오는 글로써 운(云)을 떼는 것이 편할 듯 합니다.
(*) 百濟俗重武而不修 ‘文’且多忌諱. 故久無史至近肖古王時高興始作史曰書記
좌계가 볼 때, 위 인용문 가운데, 문(文)의 의미는 학문(學文)혹은 학문(學問)의 뜻이 아니라, 순수한 직역(直譯)인 ‘글’ 즉 문자(文字)로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위 인용문 가운데 핵심적인 구절은 [不修 ‘文’且多忌諱.]로 생각됩니다.
백제의 문화는 문자(文字)를 배우고, 가르키는 것을 꺼리는 즉 기휘(忌諱)하는 것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이런 ‘문자’를 꺼리는 기휘(忌諱)와 또다른 기휘(忌諱)들이 있어서, 대륙에 있으면서도, 문명(文明)및 문화의 ‘독자성’을 지니게 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武)에 관해서는 중국대륙에 있는 화하(華夏)의 노우-하우(know-how)를 꺼리지 않음이 있었기에 위와 같은 기록이 가능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좌계의 견해를 투영시켜) 해석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백제의 풍속은 (중국대륙의 있는 화하(華夏)의 문물(文物)가운데) 무(武)에 관해서는 (화하(華夏)의 것도) 중요시했으나, ‘글자’를 비롯한 (다른 여러 가지 사안(事案)에 대해서는 화하(華夏)에 대해 거리낌(=기휘(忌諱))가 많았다. 이런 (문화의 독자성을 위한 거리낌은 전통적이어서 자연히 오래끌고 (그 결과) 역사책이 없었는데, - 물론 노랫말 비슷하게 구전(口傳)해서 전승되었겠지만 - 이는 근초고왕(近肖古王)때 까지 이르렀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근초고왕때 고흥(高興)이 처음으로 (문자(文字)로써) 역사책을 짓기 시작했는데, 이를 서기(書記)라고 칭(稱)했다. ”
2. 왜 문자를 기피했는가?
중요한 것은 역사학자들이 신화시대와 역사시대를 구분하는 그 기준선을 문자(文字)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를 ‘극력 억제’하는 어떤 ‘꺼리낌’이 있었고, 이런 ‘꺼리낌’에 의해서, 백제(百濟)가 중국대륙에 있으면서도, 그 독자성(獨自性)이 지켜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좌계가 볼때에는 백제를 비롯한 고구리, 신라 모두가 여러 다양한 종족의 모국어(母國語)를 존중하면서, 이를 결승(結繩)으로 나타내어 ‘급속히 사회화’함에 있어, 문자(文字)가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오래된 경험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즉 문자(文字)는 아무리 상형(象形)중심으로 표현할려고 하더라도, 발달과정에서 어휘(語彙) 표현이 힘들어져서 ‘특정 언어’를 중심으로 ‘획일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어(言語)라는 것은 문화와 사상의 ‘그릇’입니다.
따라서 문자는 다양한 모국어를 쓰는 ‘문화의 다양성’을 하나의 ‘중심문화’로 귀속시키는 ‘꺼리낌’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백제는 ‘문자(文字)’를 기휘(忌諱)- 꺼리끼는 것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3. 왜 그토록 문(文)과 선(仙)을 엄격히 구분지었는가?
그런데, 사천(史穿) 선생께서 해석하신 문장가운데, 12년 을미(乙未)년 10월(月) 조(條)에 보면 특이한 기사(記事)가 나옵니다.
원문(原文)
上謂<天>曰: "<黃龍>文而淫,汝國仙而淫. 文仙皆好道,過卽敗食色,皆好道,過卽傷, 汝知之乎." <天> 頭請命,命居<湖>上養氣.
사천(史穿) 선생의 해석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천 선생의 해석)
상(上: 고주몽을 뜻함)이 <천(天) :조천(朝天)을 뜻함>에게 이르길: "<황룡(黃龍)>은 ‘학문(學文)’하나 음란하고, 너의 나라는 선(仙)을 하나 음란하다. ‘학문’과 선(仙)은 모두 도(道)를 즐기는 것이나, 지나치면 먹고 탐하지도 못하게 되고, 둘 다 도(道)를 즐기나, 지나치면 상(傷)하는 법이다. 너는 그것을 아느냐?" 하니, <천(天)>은 머리를 숙이고 처분만 바랐고, 상(上)은 <조천(朝天)>에게 <호(湖)>상에 살면서 기운을 북돋우라고 하였다.
가. 문(文)은 학문(學文, 學問)이 아니라, 문자(文字)이다.
좌계 생각에는 위 글에서 ‘<黃龍>文而淫’의 문(文)과 ‘文仙皆好道’의 문(文)의 뜻이 학문(學文, 學問)이 아니라, 문자(文字)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 문장은 “엄청난 사료(史料)로써의 가치가 있다.”고 좌계는 생각합니다.
나. 포획된 적장(敵將)이 꾸중을 듣고, 또한 ‘달램’도 받는 이상한 구절
왜냐하면, 그 전(前) 구절이 바로 ‘十月,<摩離>拔<海山>虜<朝天>.’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뜻은 사천(史穿) 선생께서 해석하신 대로 “10월, <마리(摩離)>가 <해산(海山)>을 쳐서 <조천(朝天)>을 사로잡았다.”입니다.
그런데, 이는 분명히 전쟁을 해서 적장(敵將)을 포획한 기사(記事)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나오는 기사(記事)에서는 고주몽-동명성왕께서 일종의 훈계(訓戒) 내지 ‘꾸중’을 하시는 말씀이 위에 원문(原文)을 소개한 글이라는 것입니다.
더욱더 신기한 것은 꾸중 내지 훈계(訓戒)하는 내용이 신기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라는 점입니다.
이를 문(文)의 뜻을 학문(學文)이 아니라, 문자(文字)로 고쳐서 사천 선생의 해석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겠지요.
문(文)을 문자(文字)로 고친 사천(史穿) 선생의 해석(解釋)
: “상(上: 고주몽을 뜻함)이 <천(天) :조천(朝天)을 뜻함>에게 이르길: "<황룡(黃龍)>은 ‘문자’를 쓰나 음란하고, 너의 나라는 선(仙)을 하나 음란하다. ‘문자를 씀’과 선(仙)은 모두 도(道)를 즐기는 것이나, 지나치면 먹고 탐하지도 못하게 되고, 둘 다 도(道)를 즐기나, 지나치면 상(傷)하는 법이다. 너는 그것을 아느냐?" 하니, <천(天)>은 머리를 숙이고 처분만 바랐고, 상(上)은 <조천(朝天)>에게 <호(湖)>상에 살면서 기운을 북돋우라고 하였다.”
이 문장이 신기한 것은 고주몽께서 포획된 적장(敵將)에게 하는 말이 ‘문자(文字)가 일으키는 사회적 현상과 선(仙)- 아마도 모국어(母國語)를 쌍방향적으로 결승(結繩)으로 시각화시키는 문화를 대비시키면서’ --- “이 점을 너는 아느냐?!”하고 말했고, 더욱더 신기한 것은 이런 훈계를 듣자, “잘못했습니다.”라는 뜻으로 ‘고개를 숙이고 “명(命)대로 하겠습니다.”는 뜻의 ‘<天> 頭請命’이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인류의 전쟁사(戰爭史)에서 ‘포획된 적장(敵將)’과 ‘승리한 왕(王)’이 만나서 한 대담(對談)치고는 굉장히 신기한 장면이라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조천(朝天)의 태도를 보고, 고주몽-동명성왕은 더욱더 신기하게도, ‘미안해 하는 조천(朝天)’에게 “그렇다고해서 그토록 기(氣)가 죽을 필요까지 있겠는가?!”하는 식으로 “<호수(湖水)> 위(=上)에 살면서 기운(氣運)을 북돋우라!”고 이야기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좌계가 위지(魏志) 동이(東夷) 마한(馬韓)을 읽어본 바에 의하면, ‘소도(蘇塗)는 호수(湖水)와 그 주변’이었습니다.
따라서 위 고주몽-동명성왕의 말씀은 “소도(蘇塗)에 가서 기운(氣運)을 북돋우시게...”라고 달랬던 말로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라. 선(仙)이란 무엇인가?
아무튼, 이런 이상한 문장을 보면, 확실해지는 것이 고주몽-동명성왕 시절에는 문명 사회를 형성하는 두 가지 분야가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첫째는 문자(文字)에 의해서 ‘중심언어’를 세워서 이에 의지해 문명을 교류하는 세계가 - 이것이 문(文)임 - 있고,
둘째는 결승(結繩) - ‘가림토’에 의해서 ‘모국어’를 시각화하여 ‘특별한 중심언어’없이 쌍방향적으로 상호 문명을 교류시키는 세계 - 이것이 선(仙)임 -로 누구나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런 사실이 중요한 것은 우리 사서(史書)에 등장하는 선(仙)의 개념을 전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 있다고 좌계는 생각합니다.
(1) 선인(仙人) 왕험(王險)의 경우.
일단 우리는 고조선을 일으켰다는 왕검 혹은 왕험(王險) 앞에 꼭 ‘선인(仙人)’이라는 용어를 붙인다는 사실입니다.
(2) 비류국(沸流國)의 송양(宋讓)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고주몽-동명성왕이 ‘천제(天帝)의 아들’로 소개함에 비해, 비류국(沸流國)의 송양(宋讓)은 선인(仙人)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문자(文字)에 의해서 문명(文明)을 교류시키지 않고, ‘결승-가림토’에 의해서 문명을 교류시키는 그런 ‘컴뮤니케이션(communication) 사회(Society)’를 고대에는 널리 선(仙)이라고 칭했을 가능성을 진지하게 검토해 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3) 모든 피라미드(Pyramid) 문명에는 신기하게도 결승(結繩)의 흔적이 있다.
사천(史穿) 김성겸 님.
좌계는 ‘결승(結繩)-가림토’를 연결짓는 태고시대의 어떤 체계가 한결같이 피라미드(Pyramid)문명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주의깊게 살펴보고 있습니다.
즉 잉카문명에서 결승(結繩)인 큐푸(quipu)가 있음은 물론, ‘이집트’에서도 오늘날 암수의 표현으로 되는 것이 실제로는 앙크(Ank)라는 이름의 결승(結繩) ‘고리’를 - 따라서 암컷임 - 낙시형 갈고리로 - 따라서 숫컷임 - 걸어서 합(合)치고, 때로는 분리시키는 어떤 연산체계와 관련있음을 보고 그 공통성에 몹시 놀란 적이 있습니다.
심지어 “ ‘바벨 탑’도 그 높은 곳에 ‘결승(結繩)을 걸어 놓은’ 탑이고, 이에 의해서 ‘모국어를 유지하면서도 통화가 가능케한’ 흔적이 아닌가 ?!”하는 상상도 해보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 세계의 거석문명 - 피라미드(Pyramid) 문명이 고조선(古朝鮮)에서 번져나갔으며, 이는 ‘결승-가림토’라는 문명의 기본적인 속성을 지녔다고 볼수 있으며, 나아가 한단고기(桓檀古記)의 ‘가림토’는 더욱더 현실성을 띤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3. 황룡국(黃龍國) 미스테리(Mystery)
사천(史穿) 김성겸 님.
더욱 놀라운 것은 사천 선생께서 해석하신 ‘시조 추모대제기(始祖<芻牟大帝>紀)’에 놀랍게도 황룡국(黃龍國)이야기가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이 황룡국(黃龍國)의 이야기가 중요한 것은 고구리 2대왕인 ‘유리명왕(瑠璃明王)’때 황룡국에서 보내온 활을 당시 해명(解明)태자께서 부러트리자, 유리왕께서 친히 자살을 하게하는 그 사건을 일으킨 나라라는 점입니다.
삼국사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 이하 삼국사기의 기록 -
유리왕 28년(서기 9년) 봄 3월에 왕은 사람을 보내 해명에게 말하였다.
"내가 천도(遷都)한 것은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나라를 튼튼하게 하려는 것이다. 너는 나를 따르지 않고 힘센 것을 믿고 이웃 나라와 원한을 맺었으니, 자식된 도리가 이럴 수 있느냐?"
그리고 칼을 주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였다.
-이상 삼국사기 기록 인용 마침 -
이 기록도 사실 따지고 보면 놀라운 기록입니다.
설혹 외교상 ‘보낸 활을 부러트린 실례(失禮)’라고 할지라도, “그런 실례를 왜 자살(自殺)을 할 정도로 ‘고구리 왕가(王家)’에서는 중시여겼는가?”가 당장 문제되니깐 말입니다.
가. 황룡국(黃龍國)의 위치
사천(史穿) 김성겸 님.
이 황룡국(黃龍國)의 위치를 남당(南堂) 선생의 사료(史料)에 의하면, 서하(西河) 즉 장춘(長春)으로 비정하고 있습니다.
- 올린 자료의 해당부문 -
원문(原文) :
十二年乙未,正月,親至<長岺>觸氣而還. 七月,親征<西河(長春)>拔之,本<黃龍>地,與<長岺>共反者也.
사천(史穿) 선생의 해석 ) :
12년(단기2308년/BC26)을미, 정월, 친히 <장령>에 이르러 (독)기운을 느끼고 돌아왔다. 7월, <서하(西河)(장춘(長春))>를 친정하여 멸하였는데, 본래 <황룡>의 땅이었고, <장령>과 함께 반란한 적이 있다.
- 이상 올린 자료 인용 마침 -
1) 강남(江南) 사람이 북연(北燕)을 왜 황룡국(黃龍國) 이라고 부르나?!
그런데, 이 황룡국(黃龍國)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사료(史料)도 있습니다.
그것은 황룡국(黃龍國)이 ‘409 ~ 436 후연(後燕)의 장군 풍발(馮跋)이 세운 한인(漢人)왕조(409~438).’인 북연(北燕)이라는 것입니다.
(좌계는 이 황룡국에 대한 사료(史料)를 ‘도불원인 님’이 올린 글에서 처음 본 것 같은데, coo2.net에서 찾으려고 하는데 잘 안 찾아서 다른 곳에서 옮깁니다.)
- 황룡국에 대한 설명 인용 -
5호16국(五胡十六國)의 하나이다. 409년 연왕(燕王) 모용 운(慕容雲)이 근신에 의해 살해되자, 한인(漢人)인 풍발이 천왕(天王)으로 즉위하여 북연을 세우고 도읍을 용성(龍城:遼寧省 朝陽)으로 정하였다. 천왕(天王)은 거란족(契丹族)을 선무하여 농업을 장려하였으나, 항상 북위(北魏)로부터 위협을 받아 국세를 떨치지 못하였다. 그의 아우 홍(弘)이 천왕의 자리를 잇자, 연(燕)의 백성으로 북위에 붙는 자가 많았다. 홍은 강남의 송(宋)과 동맹하여 스스로 번(藩)으로 칭하면서 조공(朝貢)을 바쳐 송으로부터 관작(官爵)을 받았는데,
“ (*) 당시 강남에서는 이 나라를 황룡국(黃龍國)이라 하였다.(*)”
-황룡국에 대한 설명 인용 마침 -
좌계는 위 문장 가운데서 “당시 강남에서는 이 나라를 황룡국(黃龍國)이라고 칭했다.”라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왜냐? 당시 강남(江南) 사람이면, 삼한(三韓)의 후예인 백제나 신라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풍발’이 한인(漢人)이라고 칭하는 것도, 강남 사람 즉 백제나 신라 사람들의 칭호 - 로 보면, 사천(史穿) 성생께서 주창한 ‘한반도 = 대한국(大漢國)설’의 그 한인(漢人)일 확률이 크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강남(江南)에 사는 사람들이 만주 장춘(長春)에 있는 북연(北燕)을 보고 “저 나라는 황룡국(黃龍國)이야...”라고 말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즉 강남 사람들이 잘아는 황룡국(黃龍國)의 후예가 만주에도 북연을 만들자.. “아 황룡국(黃龍國) 후예의 나라가 생겼구나...”라는 감각이 투영된 걸로 보이는 것입니다.
2) 마한(馬韓)의 짝인 황룡국
아무튼, “황룡국(黃龍國)은 마한(馬韓)과 ‘짝(partner)’가 되는 국가가 아니였겠는가?”하는 것이 좌계의 의견입니다.
즉 마한(馬韓)이 한반도를 통해서 장춘(長春) 지방의 황룡국(黃龍國)과 ‘접속’이 되는 한편, 또 중국대륙에서 양자강의 최대 지류인 한수(漢水)와 섬서성의 태백산(太白山)에 자리잡은 황룡국을 동시에 접속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의견인 것입니다.
따라서 황룡국(黃龍國)은 마한과 마찬가지로 최대의 해운(海運)국가이자 육운(陸運) 국가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황룡국(黃龍國)이 보낸 활을 해명태자가 당겨 뿌러트리자, ‘거발환 환웅’이래 중요한 거점인 태백산의 구지(衢地) - 손자병법에도 나오듯이 사통오달(四通五達)하는 지리적 요충-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자살(自殺)을 강요해 황룡국에게 사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나. 섬서성 태백산(太白山)의 황룡국(黃龍國)은 고주몽-동명성왕 등장시 결승(結繩)이 쇠퇴하고 문자(文字)를 통한 ‘컴뮤니케이션 소사이어티(communication-society)’로 깊숙이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고주몽-동명성왕께서 ‘<黃龍>文而淫’이라고 평(評)을 한 것을 보아서, 섬서성 태백산에 있는 당시대 황룡국(黃龍國)은 ‘결승-가림토’ 체계가 급속히 쇠퇴해 있었고, 이를 문자를 통한 ‘정보소통’을 하는 사회였을 개연성이 큰 것으로 좌계는 봅니다.
그러다가 고주몽-동명성왕이 등장하자, 고조선 이래의 ‘결승-가림토’ 문화로 돌아가려는 강력한 ‘르네쌍스’ 운동이 황룡국(黃龍國) 내부에서 보이고, 이의 모델(model)인 백제에 활을 보내는등 우호적인 자세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태자인 해명(解明)이 이를 부러트리자, 유리명왕께서는 대로(大怒) - 자살을 명령하신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4. 고주몽-동명성왕의 훈계(訓戒) 내용은?
이런 면에서 보면, 고주몽-동명성왕께서 ‘포획된 적장(敵將)’인 조천(朝天)에게 훈계(訓戒)한 내용은 무척 중요해 집니다.
왜냐하면, 이는 그 당시의 여러 국가가 “다시 고조선-문명을 일으켜야한다.”는 자각이 있었고, 이 자각의 구심점에 고주몽-동명성왕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볼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포획된 적장(敵將)’에게 훈계(訓戒)하고, 이를 들은 조천(朝天)이 마치 잘못을 범한 학생(學生)처럼 머리를 숙일수도 없고, 또 이를 본 고주몽-동명성왕께서도 “알면 되었지, 그렇게 상심(傷心)할 필요까지 있나?! 소도(蘇塗)가 있는 호수(湖水)에 가서 기운을 채리시게...”는 달램은 있을수 없는 일이니깐 말입니다.
가. 원문(原文)의 문화인류학적인 해석
사천(史穿) 김성겸 님.
이제 우리는 고대 아시아에 ‘컴뮤니케이션-소사이어티(communication-society)’를 형성하는 방법으로 ‘문자(文字)에 의한’ 문(文)의 세계와 ‘결승-가림토’에 의한 선(仙)의 세계로 양분한다면, 고주몽-동명성왕이 말씀하신 의미를 문화인류학적으로 재해석해볼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이 해석에서 사천(史穿) 선생께서 잘 아시다시피, 음(淫)이란 용어가 한자(漢字)에서는 ‘과잉 성(性ㅂ sex)탐익’이란 일반적인 뜻 이외에 ‘너희들끼리 밀교(密敎)적으로 노는’이란 뜻도
있음을 아실 겁니다.
좌계가 생각할 때에는 고주몽-동명성왕께서 말씀하실 때의 음(淫)은 후자(後者)쪽인 듯 합니다.
이제 좌계는 이런 음(淫)의 뜻으로 문화인류학적인 차원에서 고주몽-동명성왕의 말을 해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원문(原文)
上謂<天>曰: "<黃龍>文而淫,汝國仙而淫. 文仙皆好道,過卽敗食色,皆好道,過卽傷, 汝知之乎." <天> 頭請命,命居<湖>上養氣.
문화인류학적 해석(解釋)
고주몽-동명성왕께서 ‘포획된 해산(海山)국의 적장(敵將)이었던 조천(朝天)에게 말씀하셨다.
- 여기까지 ‘上謂<天>曰’의 뜻임 -
“ 황룡국(黃龍國)은 (마한(馬韓)의 짝이 될 정도로 해운(海運)이나 육운(陸運)을 담당하고, ‘거발한 황웅’이래 섬서성 태백산(太白山)을 관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승-가림토’의 선(仙)의 세계에서 점차 이탈해서)
‘문자(文字)에 의한 컴뮤니케이션-소사이어티(communicatiuon-society)’를 저희들끼리 형성하는 음(淫)한 상태에 빠지고, 또 너희들 나라에서는 ‘결승-가림토’에 의해 컴뮤니케이션-소사이어티를 형성하고 있지만, (극히 만주 일부분 지역의 언어만 소화시켜서) 저희들끼리만 노는 음(淫)한 사태에 빠지었다. - 여기까지가 ‘<黃龍>文而淫,汝國仙而淫’의 뜻임 -
(그러나 사회를 문자(文字)나 ‘결승-가림토’에 의해서 컴뮤니케이션-소사이어티를 형성하는 것은 모두 인류에게 좋은 길(=호도(好道))인 것임에는 틀림없다.
- 여기까지가 ‘文仙皆好道’의 뜻임 -
그러나 이러한 노력을 지나치게 하면, 먹고 사는 경제생활(=식(食))이나, 성적(性的) 교섭(交涉)에 의해 형성되는 ‘공동체적 정체성(=색(色))’ 자체를 낭패(狼狽)함에 빠지게 한다
- 여기까지가 ‘文仙皆好道,過卽敗食色’의 뜻임 -
(내 이야기의 핵심은) ‘문자에 의해서 문명사회를 형성하든, 결승-가림토에 의해 문명사회를 형성하든 모두 좋은 길이지만, 그것이 한쪽으로 과(過)하게 쏠리면, 사회 내부에 상처(傷處)가 생긴다는 뜻이다. 너는 이를 알고 있지 않는가?!”
- 여기까지가 ‘皆好道,過卽傷, 汝知之乎’의 뜻임 -
이 말을 들은 조천(朝天)은 “고개를 숙이며 명(命)대로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 여기까지가 ‘<天> 頭請命’의 뜻임 -
(이 모습을 본 고주몽-동명성왕께서는) 명령(命令) 하시기를 “ (소도(蘇塗)가 있는) 호수(湖水) 위(上)에서 (‘결승-가림토’로써 서로 다른 모국어(母國語)를 쓰는 사람과 소통하고, 또 배달화백을 통해서 고구리-연합국을 만드는데 힘을 쓰면, 이미 내가 말한 것처럼 ‘文仙皆好道 ....過卽傷’의 상태를 벗어날 수 있으니) ‘사회의 기운(氣運)을 기를수 있을걸세..”라고 말씀하셨다.
- 이상 ‘命居<湖>上養氣’의 뜻임.
나. 이미 널리 수용된 고주몽-동명성왕의 ‘인류 문화(文化)에 대한 소신(所信)
사천(史穿) 김성겸 님.
좌계의 이런 해석은 좀 엉뚱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는 고주몽-동명성왕께서 고구리(高句麗)를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겠다.”는 확고한 방침이고, 이 방침을 고주몽-동명성왕 당시에 이미 여러 나라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방침이었음이 들어나기 때문입니다.
이의 원문(原文)과 사천 선생의 해석을 보면 명백해집니다. 좌계가 해당부분에 (***)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원문(原文) :
六年乙丑,正月,<桂>后生女<曼>. 五月,幸<質陽(通江)><沿滸( 蘭河)><作沾>而功<朝天>,遁于<北棘(克山)>. 七月,<芬奴>定<荇南(蘭西肇□安達等地)>進駐<滸原(□通□)><天>都也. <黃龍>修文而 酒,<荇人>好仙而荒淫. 十月,拔<北棘>. <天>走<海山(仙人山)>,以<荇人國>爲<荇東><荇西><荇南>三郡
사천(史穿) 선생의 해석(解釋) :
6년(단기2302년/BC32)을축, 정월, <계(桂)>후(后)가 딸 <만(曼)>을 낳았다. 5월, <질양(質陽)(통강)><연호(호란하)><작첨>에 행차하여 <조천(朝天)>을 치니, <북극(극산)>으로 피하여 숨어들었다. 7월, <분노>가 <행남(난서조□안달등지)>을 평정하고 <호원(□通□)>에 있는 <(조)천>의 도읍으로 나아가 주둔하였다.
(***)<황룡(黃龍)>은 ‘문자(文字)’에 의한 사회-형성을 하는데 흐린 술을 마시며, <행인(荇人)>은 ‘결승-가림토’를 즐겨히 써서 사회-형성을 하는 선(仙)이긴 했지만, (대화하는 부족이 협소하여) 황음(荒淫)하였다. (***)
10월, <북극>을 쳐서 멸하였다. <(조)천>이 <해산(선인산)>으로 달아나, <행인국>을 <행동>, <행서>, <행남>의 세 개의 군으로 만들었다.
- 이상 해석 인용 마침 -
‘결승-가림토’는 연(戀)이란 글자에서 잘 드러나듯이 ‘결승(結繩)으로써 대화를 하다보면, 설혹 언어가 달라도 금시 뜻이 통함은 물론 유난히 상대 부족의 이성(異性)에 대해 성적 매력을 많이 느꼈나 봅니다. 행인국(荇人國)은 그 결과 황음(荒淫)에 빠졌고, “이런 것이 정상 상태는 아니다.”라는 느낌이 있음을 알고, 고주몽-동명성왕은 나중에 ‘포획된 적장(敵將) 조천(朝天)’에게 훈계를 한 것이고, 훈계를 들을 때, 고개를 숙인 이유가 들어나는 것입니다.
또한 만약에 고주몽-동명성왕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소도(蘇塗)가 있는 호수(湖水)에서 결승(結繩)-가림토를 운용하게 되면, 전혀 모르는 언어가 결승(結繩)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언어의 습득에 정신을 쓰느라고, 연애감정에야 빠지겠지만, 황음(荒淫)에 빠질 정도는 아니게 되는 것이 분명한 것이지요. 행인국은 주변 국가끼리만 결승(結繩)-가림토를 운영했기 때문에, 기본 언어는 이미 통용된 상태에서 야(野)한 내용이 오고 가서 결국 황음에 빠졌다고 보는 것입니다.
또한 원래 결승-가림토 문화가 있었던 황룡국(黃龍國)에서는 ‘모르는 외국어’를 죄다 표의(表意)인 한자(漢字)로 오고 가기 때문에, 이러한 컴뮤니케이션 과정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 ‘여린 술을 나눌 수 밖에 없었던 것’ (=<黃龍>修文而酒)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5. 장도(壯途)에 머리 숙이며.
사천(史穿) 김성겸 님.
원래 해석(解釋)이란, 한자(漢字)와 한문(漢文) 문법(文法)에 능(能)하다고 해서, 잘 할수 있는 것이 아님을 잘 아시고 계실 겁니다.
‘독특한 전문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있어야만 해석이 용이(容易)한 것이고, 이 점 좌계는 사천(史穿) 선생께 한 두 번 신세를 진 정도가 아닐 정도로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좌계가 볼 때, 고주몽-동명성왕 때, 이미 “인간의 사회를 문(文)과 선(仙)으로 나누는 기준(基準)이 있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사실입니다.
남당(南堂) 박창화 선생의 일사(逸史)의 대륙을 개척하기 위해, 대 장도(長途)를 떠남을 좌계 머리숙여 깊은 경외감을 표합니다.
* 송준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5-31 06:38)

새로운 일사(逸史)의 대륙인 남당(南堂) 선생의 유고(遺稿) 가운데, 고구리(高句麗) 부분을 해석하는 대장정(大長征)의 길을 사천(史穿) 선생께서 열고 계신 점에 대해, 좌계 머리숙여 고마움을 표합니다. 이는 ‘정성일 님’께서 백제서기에 도전한 것과 같이 ‘사학(史學)-아고라’인 coo2.net의 큰 홍복(洪福)이 아닐수 없습니다.
* 문(文)과 선(仙)의 구분에 대해서...
사천(史穿) 선생의 해석문을 통해서 또한번, “백제서기에서 뿐만이 아니라, 고구리(高句麗)까지도 이런 인식(認識)이 있었나?!”하는 강한 느낌을 주는 구절(句節)을 말씀드리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1. 문자(文字)에 대한 기피-문명
먼저 백제서기(百濟書記)에 나오는 글로써 운(云)을 떼는 것이 편할 듯 합니다.
(*) 百濟俗重武而不修 ‘文’且多忌諱. 故久無史至近肖古王時高興始作史曰書記
좌계가 볼 때, 위 인용문 가운데, 문(文)의 의미는 학문(學文)혹은 학문(學問)의 뜻이 아니라, 순수한 직역(直譯)인 ‘글’ 즉 문자(文字)로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위 인용문 가운데 핵심적인 구절은 [不修 ‘文’且多忌諱.]로 생각됩니다.
백제의 문화는 문자(文字)를 배우고, 가르키는 것을 꺼리는 즉 기휘(忌諱)하는 것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이런 ‘문자’를 꺼리는 기휘(忌諱)와 또다른 기휘(忌諱)들이 있어서, 대륙에 있으면서도, 문명(文明)및 문화의 ‘독자성’을 지니게 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武)에 관해서는 중국대륙에 있는 화하(華夏)의 노우-하우(know-how)를 꺼리지 않음이 있었기에 위와 같은 기록이 가능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좌계의 견해를 투영시켜) 해석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백제의 풍속은 (중국대륙의 있는 화하(華夏)의 문물(文物)가운데) 무(武)에 관해서는 (화하(華夏)의 것도) 중요시했으나, ‘글자’를 비롯한 (다른 여러 가지 사안(事案)에 대해서는 화하(華夏)에 대해 거리낌(=기휘(忌諱))가 많았다. 이런 (문화의 독자성을 위한 거리낌은 전통적이어서 자연히 오래끌고 (그 결과) 역사책이 없었는데, - 물론 노랫말 비슷하게 구전(口傳)해서 전승되었겠지만 - 이는 근초고왕(近肖古王)때 까지 이르렀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근초고왕때 고흥(高興)이 처음으로 (문자(文字)로써) 역사책을 짓기 시작했는데, 이를 서기(書記)라고 칭(稱)했다. ”
2. 왜 문자를 기피했는가?
중요한 것은 역사학자들이 신화시대와 역사시대를 구분하는 그 기준선을 문자(文字)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를 ‘극력 억제’하는 어떤 ‘꺼리낌’이 있었고, 이런 ‘꺼리낌’에 의해서, 백제(百濟)가 중국대륙에 있으면서도, 그 독자성(獨自性)이 지켜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좌계가 볼때에는 백제를 비롯한 고구리, 신라 모두가 여러 다양한 종족의 모국어(母國語)를 존중하면서, 이를 결승(結繩)으로 나타내어 ‘급속히 사회화’함에 있어, 문자(文字)가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오래된 경험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즉 문자(文字)는 아무리 상형(象形)중심으로 표현할려고 하더라도, 발달과정에서 어휘(語彙) 표현이 힘들어져서 ‘특정 언어’를 중심으로 ‘획일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어(言語)라는 것은 문화와 사상의 ‘그릇’입니다.
따라서 문자는 다양한 모국어를 쓰는 ‘문화의 다양성’을 하나의 ‘중심문화’로 귀속시키는 ‘꺼리낌’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백제는 ‘문자(文字)’를 기휘(忌諱)- 꺼리끼는 것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3. 왜 그토록 문(文)과 선(仙)을 엄격히 구분지었는가?
그런데, 사천(史穿) 선생께서 해석하신 문장가운데, 12년 을미(乙未)년 10월(月) 조(條)에 보면 특이한 기사(記事)가 나옵니다.
원문(原文)
上謂<天>曰: "<黃龍>文而淫,汝國仙而淫. 文仙皆好道,過卽敗食色,皆好道,過卽傷, 汝知之乎." <天> 頭請命,命居<湖>上養氣.
사천(史穿) 선생의 해석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천 선생의 해석)
상(上: 고주몽을 뜻함)이 <천(天) :조천(朝天)을 뜻함>에게 이르길: "<황룡(黃龍)>은 ‘학문(學文)’하나 음란하고, 너의 나라는 선(仙)을 하나 음란하다. ‘학문’과 선(仙)은 모두 도(道)를 즐기는 것이나, 지나치면 먹고 탐하지도 못하게 되고, 둘 다 도(道)를 즐기나, 지나치면 상(傷)하는 법이다. 너는 그것을 아느냐?" 하니, <천(天)>은 머리를 숙이고 처분만 바랐고, 상(上)은 <조천(朝天)>에게 <호(湖)>상에 살면서 기운을 북돋우라고 하였다.
가. 문(文)은 학문(學文, 學問)이 아니라, 문자(文字)이다.
좌계 생각에는 위 글에서 ‘<黃龍>文而淫’의 문(文)과 ‘文仙皆好道’의 문(文)의 뜻이 학문(學文, 學問)이 아니라, 문자(文字)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 문장은 “엄청난 사료(史料)로써의 가치가 있다.”고 좌계는 생각합니다.
나. 포획된 적장(敵將)이 꾸중을 듣고, 또한 ‘달램’도 받는 이상한 구절
왜냐하면, 그 전(前) 구절이 바로 ‘十月,<摩離>拔<海山>虜<朝天>.’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뜻은 사천(史穿) 선생께서 해석하신 대로 “10월, <마리(摩離)>가 <해산(海山)>을 쳐서 <조천(朝天)>을 사로잡았다.”입니다.
그런데, 이는 분명히 전쟁을 해서 적장(敵將)을 포획한 기사(記事)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나오는 기사(記事)에서는 고주몽-동명성왕께서 일종의 훈계(訓戒) 내지 ‘꾸중’을 하시는 말씀이 위에 원문(原文)을 소개한 글이라는 것입니다.
더욱더 신기한 것은 꾸중 내지 훈계(訓戒)하는 내용이 신기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라는 점입니다.
이를 문(文)의 뜻을 학문(學文)이 아니라, 문자(文字)로 고쳐서 사천 선생의 해석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겠지요.
문(文)을 문자(文字)로 고친 사천(史穿) 선생의 해석(解釋)
: “상(上: 고주몽을 뜻함)이 <천(天) :조천(朝天)을 뜻함>에게 이르길: "<황룡(黃龍)>은 ‘문자’를 쓰나 음란하고, 너의 나라는 선(仙)을 하나 음란하다. ‘문자를 씀’과 선(仙)은 모두 도(道)를 즐기는 것이나, 지나치면 먹고 탐하지도 못하게 되고, 둘 다 도(道)를 즐기나, 지나치면 상(傷)하는 법이다. 너는 그것을 아느냐?" 하니, <천(天)>은 머리를 숙이고 처분만 바랐고, 상(上)은 <조천(朝天)>에게 <호(湖)>상에 살면서 기운을 북돋우라고 하였다.”
이 문장이 신기한 것은 고주몽께서 포획된 적장(敵將)에게 하는 말이 ‘문자(文字)가 일으키는 사회적 현상과 선(仙)- 아마도 모국어(母國語)를 쌍방향적으로 결승(結繩)으로 시각화시키는 문화를 대비시키면서’ --- “이 점을 너는 아느냐?!”하고 말했고, 더욱더 신기한 것은 이런 훈계를 듣자, “잘못했습니다.”라는 뜻으로 ‘고개를 숙이고 “명(命)대로 하겠습니다.”는 뜻의 ‘<天> 頭請命’이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인류의 전쟁사(戰爭史)에서 ‘포획된 적장(敵將)’과 ‘승리한 왕(王)’이 만나서 한 대담(對談)치고는 굉장히 신기한 장면이라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조천(朝天)의 태도를 보고, 고주몽-동명성왕은 더욱더 신기하게도, ‘미안해 하는 조천(朝天)’에게 “그렇다고해서 그토록 기(氣)가 죽을 필요까지 있겠는가?!”하는 식으로 “<호수(湖水)> 위(=上)에 살면서 기운(氣運)을 북돋우라!”고 이야기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좌계가 위지(魏志) 동이(東夷) 마한(馬韓)을 읽어본 바에 의하면, ‘소도(蘇塗)는 호수(湖水)와 그 주변’이었습니다.
따라서 위 고주몽-동명성왕의 말씀은 “소도(蘇塗)에 가서 기운(氣運)을 북돋우시게...”라고 달랬던 말로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라. 선(仙)이란 무엇인가?
아무튼, 이런 이상한 문장을 보면, 확실해지는 것이 고주몽-동명성왕 시절에는 문명 사회를 형성하는 두 가지 분야가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첫째는 문자(文字)에 의해서 ‘중심언어’를 세워서 이에 의지해 문명을 교류하는 세계가 - 이것이 문(文)임 - 있고,
둘째는 결승(結繩) - ‘가림토’에 의해서 ‘모국어’를 시각화하여 ‘특별한 중심언어’없이 쌍방향적으로 상호 문명을 교류시키는 세계 - 이것이 선(仙)임 -로 누구나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런 사실이 중요한 것은 우리 사서(史書)에 등장하는 선(仙)의 개념을 전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 있다고 좌계는 생각합니다.
(1) 선인(仙人) 왕험(王險)의 경우.
일단 우리는 고조선을 일으켰다는 왕검 혹은 왕험(王險) 앞에 꼭 ‘선인(仙人)’이라는 용어를 붙인다는 사실입니다.
(2) 비류국(沸流國)의 송양(宋讓)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고주몽-동명성왕이 ‘천제(天帝)의 아들’로 소개함에 비해, 비류국(沸流國)의 송양(宋讓)은 선인(仙人)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문자(文字)에 의해서 문명(文明)을 교류시키지 않고, ‘결승-가림토’에 의해서 문명을 교류시키는 그런 ‘컴뮤니케이션(communication) 사회(Society)’를 고대에는 널리 선(仙)이라고 칭했을 가능성을 진지하게 검토해 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3) 모든 피라미드(Pyramid) 문명에는 신기하게도 결승(結繩)의 흔적이 있다.
사천(史穿) 김성겸 님.
좌계는 ‘결승(結繩)-가림토’를 연결짓는 태고시대의 어떤 체계가 한결같이 피라미드(Pyramid)문명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주의깊게 살펴보고 있습니다.
즉 잉카문명에서 결승(結繩)인 큐푸(quipu)가 있음은 물론, ‘이집트’에서도 오늘날 암수의 표현으로 되는 것이 실제로는 앙크(Ank)라는 이름의 결승(結繩) ‘고리’를 - 따라서 암컷임 - 낙시형 갈고리로 - 따라서 숫컷임 - 걸어서 합(合)치고, 때로는 분리시키는 어떤 연산체계와 관련있음을 보고 그 공통성에 몹시 놀란 적이 있습니다.
심지어 “ ‘바벨 탑’도 그 높은 곳에 ‘결승(結繩)을 걸어 놓은’ 탑이고, 이에 의해서 ‘모국어를 유지하면서도 통화가 가능케한’ 흔적이 아닌가 ?!”하는 상상도 해보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 세계의 거석문명 - 피라미드(Pyramid) 문명이 고조선(古朝鮮)에서 번져나갔으며, 이는 ‘결승-가림토’라는 문명의 기본적인 속성을 지녔다고 볼수 있으며, 나아가 한단고기(桓檀古記)의 ‘가림토’는 더욱더 현실성을 띤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3. 황룡국(黃龍國) 미스테리(Mystery)
사천(史穿) 김성겸 님.
더욱 놀라운 것은 사천 선생께서 해석하신 ‘시조 추모대제기(始祖<芻牟大帝>紀)’에 놀랍게도 황룡국(黃龍國)이야기가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이 황룡국(黃龍國)의 이야기가 중요한 것은 고구리 2대왕인 ‘유리명왕(瑠璃明王)’때 황룡국에서 보내온 활을 당시 해명(解明)태자께서 부러트리자, 유리왕께서 친히 자살을 하게하는 그 사건을 일으킨 나라라는 점입니다.
삼국사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 이하 삼국사기의 기록 -
유리왕 28년(서기 9년) 봄 3월에 왕은 사람을 보내 해명에게 말하였다.
"내가 천도(遷都)한 것은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나라를 튼튼하게 하려는 것이다. 너는 나를 따르지 않고 힘센 것을 믿고 이웃 나라와 원한을 맺었으니, 자식된 도리가 이럴 수 있느냐?"
그리고 칼을 주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였다.
-이상 삼국사기 기록 인용 마침 -
이 기록도 사실 따지고 보면 놀라운 기록입니다.
설혹 외교상 ‘보낸 활을 부러트린 실례(失禮)’라고 할지라도, “그런 실례를 왜 자살(自殺)을 할 정도로 ‘고구리 왕가(王家)’에서는 중시여겼는가?”가 당장 문제되니깐 말입니다.
가. 황룡국(黃龍國)의 위치
사천(史穿) 김성겸 님.
이 황룡국(黃龍國)의 위치를 남당(南堂) 선생의 사료(史料)에 의하면, 서하(西河) 즉 장춘(長春)으로 비정하고 있습니다.
- 올린 자료의 해당부문 -
원문(原文) :
十二年乙未,正月,親至<長岺>觸氣而還. 七月,親征<西河(長春)>拔之,本<黃龍>地,與<長岺>共反者也.
사천(史穿) 선생의 해석 ) :
12년(단기2308년/BC26)을미, 정월, 친히 <장령>에 이르러 (독)기운을 느끼고 돌아왔다. 7월, <서하(西河)(장춘(長春))>를 친정하여 멸하였는데, 본래 <황룡>의 땅이었고, <장령>과 함께 반란한 적이 있다.
- 이상 올린 자료 인용 마침 -
1) 강남(江南) 사람이 북연(北燕)을 왜 황룡국(黃龍國) 이라고 부르나?!
그런데, 이 황룡국(黃龍國)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사료(史料)도 있습니다.
그것은 황룡국(黃龍國)이 ‘409 ~ 436 후연(後燕)의 장군 풍발(馮跋)이 세운 한인(漢人)왕조(409~438).’인 북연(北燕)이라는 것입니다.
(좌계는 이 황룡국에 대한 사료(史料)를 ‘도불원인 님’이 올린 글에서 처음 본 것 같은데, coo2.net에서 찾으려고 하는데 잘 안 찾아서 다른 곳에서 옮깁니다.)
- 황룡국에 대한 설명 인용 -
5호16국(五胡十六國)의 하나이다. 409년 연왕(燕王) 모용 운(慕容雲)이 근신에 의해 살해되자, 한인(漢人)인 풍발이 천왕(天王)으로 즉위하여 북연을 세우고 도읍을 용성(龍城:遼寧省 朝陽)으로 정하였다. 천왕(天王)은 거란족(契丹族)을 선무하여 농업을 장려하였으나, 항상 북위(北魏)로부터 위협을 받아 국세를 떨치지 못하였다. 그의 아우 홍(弘)이 천왕의 자리를 잇자, 연(燕)의 백성으로 북위에 붙는 자가 많았다. 홍은 강남의 송(宋)과 동맹하여 스스로 번(藩)으로 칭하면서 조공(朝貢)을 바쳐 송으로부터 관작(官爵)을 받았는데,
“ (*) 당시 강남에서는 이 나라를 황룡국(黃龍國)이라 하였다.(*)”
-황룡국에 대한 설명 인용 마침 -
좌계는 위 문장 가운데서 “당시 강남에서는 이 나라를 황룡국(黃龍國)이라고 칭했다.”라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왜냐? 당시 강남(江南) 사람이면, 삼한(三韓)의 후예인 백제나 신라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풍발’이 한인(漢人)이라고 칭하는 것도, 강남 사람 즉 백제나 신라 사람들의 칭호 - 로 보면, 사천(史穿) 성생께서 주창한 ‘한반도 = 대한국(大漢國)설’의 그 한인(漢人)일 확률이 크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강남(江南)에 사는 사람들이 만주 장춘(長春)에 있는 북연(北燕)을 보고 “저 나라는 황룡국(黃龍國)이야...”라고 말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즉 강남 사람들이 잘아는 황룡국(黃龍國)의 후예가 만주에도 북연을 만들자.. “아 황룡국(黃龍國) 후예의 나라가 생겼구나...”라는 감각이 투영된 걸로 보이는 것입니다.
2) 마한(馬韓)의 짝인 황룡국
아무튼, “황룡국(黃龍國)은 마한(馬韓)과 ‘짝(partner)’가 되는 국가가 아니였겠는가?”하는 것이 좌계의 의견입니다.
즉 마한(馬韓)이 한반도를 통해서 장춘(長春) 지방의 황룡국(黃龍國)과 ‘접속’이 되는 한편, 또 중국대륙에서 양자강의 최대 지류인 한수(漢水)와 섬서성의 태백산(太白山)에 자리잡은 황룡국을 동시에 접속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의견인 것입니다.
따라서 황룡국(黃龍國)은 마한과 마찬가지로 최대의 해운(海運)국가이자 육운(陸運) 국가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황룡국(黃龍國)이 보낸 활을 해명태자가 당겨 뿌러트리자, ‘거발환 환웅’이래 중요한 거점인 태백산의 구지(衢地) - 손자병법에도 나오듯이 사통오달(四通五達)하는 지리적 요충-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자살(自殺)을 강요해 황룡국에게 사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나. 섬서성 태백산(太白山)의 황룡국(黃龍國)은 고주몽-동명성왕 등장시 결승(結繩)이 쇠퇴하고 문자(文字)를 통한 ‘컴뮤니케이션 소사이어티(communication-society)’로 깊숙이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고주몽-동명성왕께서 ‘<黃龍>文而淫’이라고 평(評)을 한 것을 보아서, 섬서성 태백산에 있는 당시대 황룡국(黃龍國)은 ‘결승-가림토’ 체계가 급속히 쇠퇴해 있었고, 이를 문자를 통한 ‘정보소통’을 하는 사회였을 개연성이 큰 것으로 좌계는 봅니다.
그러다가 고주몽-동명성왕이 등장하자, 고조선 이래의 ‘결승-가림토’ 문화로 돌아가려는 강력한 ‘르네쌍스’ 운동이 황룡국(黃龍國) 내부에서 보이고, 이의 모델(model)인 백제에 활을 보내는등 우호적인 자세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태자인 해명(解明)이 이를 부러트리자, 유리명왕께서는 대로(大怒) - 자살을 명령하신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4. 고주몽-동명성왕의 훈계(訓戒) 내용은?
이런 면에서 보면, 고주몽-동명성왕께서 ‘포획된 적장(敵將)’인 조천(朝天)에게 훈계(訓戒)한 내용은 무척 중요해 집니다.
왜냐하면, 이는 그 당시의 여러 국가가 “다시 고조선-문명을 일으켜야한다.”는 자각이 있었고, 이 자각의 구심점에 고주몽-동명성왕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볼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포획된 적장(敵將)’에게 훈계(訓戒)하고, 이를 들은 조천(朝天)이 마치 잘못을 범한 학생(學生)처럼 머리를 숙일수도 없고, 또 이를 본 고주몽-동명성왕께서도 “알면 되었지, 그렇게 상심(傷心)할 필요까지 있나?! 소도(蘇塗)가 있는 호수(湖水)에 가서 기운을 채리시게...”는 달램은 있을수 없는 일이니깐 말입니다.
가. 원문(原文)의 문화인류학적인 해석
사천(史穿) 김성겸 님.
이제 우리는 고대 아시아에 ‘컴뮤니케이션-소사이어티(communication-society)’를 형성하는 방법으로 ‘문자(文字)에 의한’ 문(文)의 세계와 ‘결승-가림토’에 의한 선(仙)의 세계로 양분한다면, 고주몽-동명성왕이 말씀하신 의미를 문화인류학적으로 재해석해볼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이 해석에서 사천(史穿) 선생께서 잘 아시다시피, 음(淫)이란 용어가 한자(漢字)에서는 ‘과잉 성(性ㅂ sex)탐익’이란 일반적인 뜻 이외에 ‘너희들끼리 밀교(密敎)적으로 노는’이란 뜻도
있음을 아실 겁니다.
좌계가 생각할 때에는 고주몽-동명성왕께서 말씀하실 때의 음(淫)은 후자(後者)쪽인 듯 합니다.
이제 좌계는 이런 음(淫)의 뜻으로 문화인류학적인 차원에서 고주몽-동명성왕의 말을 해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원문(原文)
上謂<天>曰: "<黃龍>文而淫,汝國仙而淫. 文仙皆好道,過卽敗食色,皆好道,過卽傷, 汝知之乎." <天> 頭請命,命居<湖>上養氣.
문화인류학적 해석(解釋)
고주몽-동명성왕께서 ‘포획된 해산(海山)국의 적장(敵將)이었던 조천(朝天)에게 말씀하셨다.
- 여기까지 ‘上謂<天>曰’의 뜻임 -
“ 황룡국(黃龍國)은 (마한(馬韓)의 짝이 될 정도로 해운(海運)이나 육운(陸運)을 담당하고, ‘거발한 황웅’이래 섬서성 태백산(太白山)을 관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승-가림토’의 선(仙)의 세계에서 점차 이탈해서)
‘문자(文字)에 의한 컴뮤니케이션-소사이어티(communicatiuon-society)’를 저희들끼리 형성하는 음(淫)한 상태에 빠지고, 또 너희들 나라에서는 ‘결승-가림토’에 의해 컴뮤니케이션-소사이어티를 형성하고 있지만, (극히 만주 일부분 지역의 언어만 소화시켜서) 저희들끼리만 노는 음(淫)한 사태에 빠지었다. - 여기까지가 ‘<黃龍>文而淫,汝國仙而淫’의 뜻임 -
(그러나 사회를 문자(文字)나 ‘결승-가림토’에 의해서 컴뮤니케이션-소사이어티를 형성하는 것은 모두 인류에게 좋은 길(=호도(好道))인 것임에는 틀림없다.
- 여기까지가 ‘文仙皆好道’의 뜻임 -
그러나 이러한 노력을 지나치게 하면, 먹고 사는 경제생활(=식(食))이나, 성적(性的) 교섭(交涉)에 의해 형성되는 ‘공동체적 정체성(=색(色))’ 자체를 낭패(狼狽)함에 빠지게 한다
- 여기까지가 ‘文仙皆好道,過卽敗食色’의 뜻임 -
(내 이야기의 핵심은) ‘문자에 의해서 문명사회를 형성하든, 결승-가림토에 의해 문명사회를 형성하든 모두 좋은 길이지만, 그것이 한쪽으로 과(過)하게 쏠리면, 사회 내부에 상처(傷處)가 생긴다는 뜻이다. 너는 이를 알고 있지 않는가?!”
- 여기까지가 ‘皆好道,過卽傷, 汝知之乎’의 뜻임 -
이 말을 들은 조천(朝天)은 “고개를 숙이며 명(命)대로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 여기까지가 ‘<天> 頭請命’의 뜻임 -
(이 모습을 본 고주몽-동명성왕께서는) 명령(命令) 하시기를 “ (소도(蘇塗)가 있는) 호수(湖水) 위(上)에서 (‘결승-가림토’로써 서로 다른 모국어(母國語)를 쓰는 사람과 소통하고, 또 배달화백을 통해서 고구리-연합국을 만드는데 힘을 쓰면, 이미 내가 말한 것처럼 ‘文仙皆好道 ....過卽傷’의 상태를 벗어날 수 있으니) ‘사회의 기운(氣運)을 기를수 있을걸세..”라고 말씀하셨다.
- 이상 ‘命居<湖>上養氣’의 뜻임.
나. 이미 널리 수용된 고주몽-동명성왕의 ‘인류 문화(文化)에 대한 소신(所信)
사천(史穿) 김성겸 님.
좌계의 이런 해석은 좀 엉뚱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는 고주몽-동명성왕께서 고구리(高句麗)를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겠다.”는 확고한 방침이고, 이 방침을 고주몽-동명성왕 당시에 이미 여러 나라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방침이었음이 들어나기 때문입니다.
이의 원문(原文)과 사천 선생의 해석을 보면 명백해집니다. 좌계가 해당부분에 (***)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원문(原文) :
六年乙丑,正月,<桂>后生女<曼>. 五月,幸<質陽(通江)><沿滸( 蘭河)><作沾>而功<朝天>,遁于<北棘(克山)>. 七月,<芬奴>定<荇南(蘭西肇□安達等地)>進駐<滸原(□通□)><天>都也. <黃龍>修文而 酒,<荇人>好仙而荒淫. 十月,拔<北棘>. <天>走<海山(仙人山)>,以<荇人國>爲<荇東><荇西><荇南>三郡
사천(史穿) 선생의 해석(解釋) :
6년(단기2302년/BC32)을축, 정월, <계(桂)>후(后)가 딸 <만(曼)>을 낳았다. 5월, <질양(質陽)(통강)><연호(호란하)><작첨>에 행차하여 <조천(朝天)>을 치니, <북극(극산)>으로 피하여 숨어들었다. 7월, <분노>가 <행남(난서조□안달등지)>을 평정하고 <호원(□通□)>에 있는 <(조)천>의 도읍으로 나아가 주둔하였다.
(***)<황룡(黃龍)>은 ‘문자(文字)’에 의한 사회-형성을 하는데 흐린 술을 마시며, <행인(荇人)>은 ‘결승-가림토’를 즐겨히 써서 사회-형성을 하는 선(仙)이긴 했지만, (대화하는 부족이 협소하여) 황음(荒淫)하였다. (***)
10월, <북극>을 쳐서 멸하였다. <(조)천>이 <해산(선인산)>으로 달아나, <행인국>을 <행동>, <행서>, <행남>의 세 개의 군으로 만들었다.
- 이상 해석 인용 마침 -
‘결승-가림토’는 연(戀)이란 글자에서 잘 드러나듯이 ‘결승(結繩)으로써 대화를 하다보면, 설혹 언어가 달라도 금시 뜻이 통함은 물론 유난히 상대 부족의 이성(異性)에 대해 성적 매력을 많이 느꼈나 봅니다. 행인국(荇人國)은 그 결과 황음(荒淫)에 빠졌고, “이런 것이 정상 상태는 아니다.”라는 느낌이 있음을 알고, 고주몽-동명성왕은 나중에 ‘포획된 적장(敵將) 조천(朝天)’에게 훈계를 한 것이고, 훈계를 들을 때, 고개를 숙인 이유가 들어나는 것입니다.
또한 만약에 고주몽-동명성왕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소도(蘇塗)가 있는 호수(湖水)에서 결승(結繩)-가림토를 운용하게 되면, 전혀 모르는 언어가 결승(結繩)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언어의 습득에 정신을 쓰느라고, 연애감정에야 빠지겠지만, 황음(荒淫)에 빠질 정도는 아니게 되는 것이 분명한 것이지요. 행인국은 주변 국가끼리만 결승(結繩)-가림토를 운영했기 때문에, 기본 언어는 이미 통용된 상태에서 야(野)한 내용이 오고 가서 결국 황음에 빠졌다고 보는 것입니다.
또한 원래 결승-가림토 문화가 있었던 황룡국(黃龍國)에서는 ‘모르는 외국어’를 죄다 표의(表意)인 한자(漢字)로 오고 가기 때문에, 이러한 컴뮤니케이션 과정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 ‘여린 술을 나눌 수 밖에 없었던 것’ (=<黃龍>修文而酒)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5. 장도(壯途)에 머리 숙이며.
사천(史穿) 김성겸 님.
원래 해석(解釋)이란, 한자(漢字)와 한문(漢文) 문법(文法)에 능(能)하다고 해서, 잘 할수 있는 것이 아님을 잘 아시고 계실 겁니다.
‘독특한 전문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있어야만 해석이 용이(容易)한 것이고, 이 점 좌계는 사천(史穿) 선생께 한 두 번 신세를 진 정도가 아닐 정도로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좌계가 볼 때, 고주몽-동명성왕 때, 이미 “인간의 사회를 문(文)과 선(仙)으로 나누는 기준(基準)이 있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사실입니다.
남당(南堂) 박창화 선생의 일사(逸史)의 대륙을 개척하기 위해, 대 장도(長途)를 떠남을 좌계 머리숙여 깊은 경외감을 표합니다.
* 송준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5-31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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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계선생님께! 항상 같은 경제학전공자로서 선생님의 글을 고맙게 보고 있습니다. 이번 결승문자/선에 대한 말씀은 정말 중요한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벨탑의 언어가 소통하지 않게 되어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설화는 선생님의 해석에 기대어 새롭게 바라봐야 할것 같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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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좌계님의 사려깊은 글을 읽으면서 꾸준히 배워가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좌계님, 혹시 계속 연구해 오신 배달/화백의 의사결정 방식을 현재의 정치시스템에 도입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신 적이 없으신지 궁금해서 몇 자 적어 봅니다. 실질적으로 지역주민의 의사를 국가경영에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하고자 하는 생각도 없어 보이는..) 국회의원들에게 모든 걸 맡기는 현재의 입법시스템이 제 기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나 이를 대체할만한 방법 또한 마땅하게 거론된 게 없다시피 한데요. 제 짧은 소견에는, 좌계님의 언급하셨던 방식과 인터넷기반을 활용하여 국민 각자의 의견을 직접 반영하는 시스템밖을 모색하는 방법 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여쭤 봅니다. 잠시 생각해 본 바로는, 모든 국정에 국회의원등을 거치지 않고 자신의 의사를 직접 행사할 수 있도록 하되 자신이 행사할 수 있는 한 표를 분야별로 나누어서 누군가에게 위임할 수 있도록 하면 될 듯 한데요. 물론, 보안의 문제나 컴맹자에 대한 문제, 새로운 비리유형의 발생 등도 고민해 봐야겠지만 제 머리로는 제일 해결이 안되는 문제가 위임받은 의결권이 순환될 경우이네요. 정리하자면요.. 인터넷을 통해서 국민 각자가 모든 국정(국가대사에서부터 해당지역의 소소한 문제까지 모두..)에 자신의 의견을 직접 개진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되 자신 없거나 스스로 생각할 때 더욱 현명한 사람이라고 판단(적어도 그 분야에 관해서는..)되는 이에게 해당부문에 관한 의결권을 넘겨줄(지명도가 높아진 사람에게 특정건의 투표시점에서 몇백만, 몇천만의 표에 대한 투표권이 몰릴 수도 있겠죠..) 수 있도록 하는 식의 시스템이, 오랫동안 집합적인 의사결정 방법에 대해 연구해 보신 경험으로 볼 때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지.. 또는 다른 더 좋은 방안을 생각해 두신 게 있으신지.. 여쭤 보고 싶습니다. 갑자기 엉뚱한 글 올려서 죄송하구요..^^;; 이 글에서는 '드러나다'라고 맞게 쓰셨군요. 계속 '들어나다'라는 틀린 표현을 써오셔서 말씀을 드릴까, 말까..하는 고민을 잠깐 하기도 했었습니다. 건강하시고.. 항상 행복하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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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ment 님. 1. 먼저 좌계가 경제학, 경제인류학에 관련된 딱딱한 이야기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깊은 관심을 보인 점에 대해서, 좌계 스스로 놀람을 고백드립니다. 2. 선(仙)이란 글자와 관련된 좌계의 솔직한 견해는 이는 ‘선(仙)=산(山)+인(人)’으로 볼수 있는데, 이 때의 산(山)을 좌계는 ‘피라미드’로 보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피라미드’에 사는 사람들을 고대 아시아에서는 선(仙)으로 칭했을 개연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물론 나중에는 ‘자연 피라미드’인 mountain 에서도 선가(仙家)가 발생하였으리라 보고 있습니다. 거석문명, 선(仙), 결승(結繩)을 ‘하나의 관찰대상’으로 보는 좌계의 시각을 이해해 주어서 고맙기 짝이 없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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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호 님 1. 먼저 ‘드러나다’라고 써야할 것을 ‘들어나다’로 쓴 것을 님께서 ‘너무 늦게’ 귀뜸을 해주셨습니다. 이런 ‘귀뜸’ ‘충고’는 사실 ‘옥(玉)의 티’를 지적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좌계를 옥(玉)으로 인정해주는 것과 다름 아닙니다. 이점 앞으로도 ‘댓글’로써 충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2. 서정호 님께서 겸손하시 게도 ‘엉뚱한 질문’이라고 말씀하신 문제에 대해서, 일단 머리숙여 고마움을 표합니다. 가. 화백(和白)의 ‘사회적 명상’에 대해서... 먼저, 인터넷(internet)을 통해서 일반 백성들이 직접 의견을 제시하고, ‘지지표’에 해당하는 ‘말발’을 실어주고, 빼올 수 있는 방법으로 전산화하면, 오늘날의 기술로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이 ‘의견을 제시한 사람 - 하세(下世)한 사람’의 아이디어(Idea)를 ‘사회적으로 공유’하면서, 이를 지켜보는 사람이 ‘말발(지지표)’만 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Idea)가 떠올랐을때, 하세(下世)해서 자신의 의견을 첨가할 권리를 주는 것입니다. 이를 고전(古典)에서는 ‘사회적 명상’이라고 하는데, ‘말발(지지표)’가 주었다가 빼고, 또한 다른 사람에게 자유롭게 이동시킬 수 있는 규칙을 지켜야합니다. 현대의 정보통신 기술로써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회의방식이 철저히 ‘직접 민주주의’ 방법이라는데 있습니다. 나. 기존의 대의(代議) 씨스템(system) - 국회의원과 연계(連繫)시키는 문제에 대해. 그런데, 서정호 님께서는 이런 ‘직접 민주주의 방법’과 기존의 대의(代議)-민주제와 연계시키는 차원에서의 아이디어(Idea)도 품고 계십니다. 이런 님의 아이디어의 핵심을 고대 - 아시아에서는 ‘더 넓은 정치무대’에 나가서 ‘말발’을 받을 권리와 연계(連繫)시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자신의 지역구(地域區)에서 ‘일반 시민’의 말발을 받아서 자신의 대의권(大議權)을 비로서 사용(使用)하는 룰(rule)을 받아들이면, ‘아시아’나 혹은 ‘세계’의 보다 큰 정치무대(政治舞臺)에 나가서 세계시민의 ‘말발’을 받을 권리를 주는 것을 뜻합니다. 서정호 님. 지금까지 좌계가 coo2.net에서 소개한 화백(和白)은 주로 ‘리레이(relay)’하면서 주제(主題)별로 ‘말발’을 받아 합의를 유도하는 영산화백(靈山和白)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국회의원과 ‘보다 큰 정치무대’를 연결시키는 것은 배달화백(倍達和白)의 개념을 응용해서 설명드리는 것입니다.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이 배달화백(倍達和白)에 대한 내용도 이곳에 올릴 생각이 있습니다. 3. 현실적인 적용문제에 대해서 영산화백(靈山和白)이든, 배달화백(倍達和白)이든 이는 전부 신시(神市)라고 칭해지는 ‘보다 큰 경제-씨스템’인 Supra-system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전일적(全一的)인 Supra-system이 체제의 자기완결성(自己完結性)을 지탱해줄 때, 비로서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이 지금까지 좌계의 연구결과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이런 현실적인 적용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런 화백(和白)과 신시(神市)에 대한 충분한 교육과 ‘사회적 투자’가 따러야 하는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님이 이미 눈치 채셨듯이 대안성(代案性)은 있지만, 이에 대한 사전준비도 많이 있어야한다는 것이지요. 현실적 적용까지 생각해 주시는 서정호 님의 관심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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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못 보시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바로 답변을 남겨주셨네요. 일일이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좌계님의 다음 글들도 꾸준히 읽어가면서, 좌계님의 현명함을 조금씩이라도 닮아 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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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호님의 의견은 지금 시험단계로 보입니다 당내 경선 과정에서 일반 국민의 표를 반영하는 경선 방식이 서정호 님이 말씀하신 방법의 한 단계로 보입니다 인터넷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는 정책 결정의 직접 결정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럼 국회는 기능은 살아 있데 축소 되거나 폐기 되리라 봅니다 외려 정책의 이해 당사자가 대표가 되는 누구나 대표가 될수있는 그런 형태가 되지 않을까 예측해 봅니다 좌계님 님이 언급하신 仙을 피라믿을 관리하고 결승을 하는 집단으로 보셨는데 그럼 피라믿을 신시로 보시는지요? 아님 평소 언급하신 열기구 이착륙장으로 보시는지요 열기구 이착륙장으로는 피라믿이 제격이거든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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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계님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님이 언급하신 열기구를 나타내는 한자가 무었인지요 혹시 崑<곤>을 열기구로 보시는건가요? 전 巡을 열기구로 보고 싶거든요 瞬눈 깜박일 순은 다른 이동체로 보이고요 님이 보시기엔 어떠십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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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국환 님 님께서 질문을 남긴 것을 ‘백송님’에 대한 ‘답글’을 쓰느라고 지금에서야 읽게 되었습니다. “‘열기구’를 고대에 어떤 글자로 나타냈는가?”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좌계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님께서 ‘순(巡)’으로 생각한다는 말씀은 매우 지적(知的)인 자극괴 기예(起豫 : hint)를 주는 면이 있습니다. 즉 글자 구성(構成) 자체가 ‘착(辶)+천(巛)’으로 되어있고, 이 착(辶)은 ‘뛰다’ ‘미끄러지다’등의 이동(移動)의 개념이고, 천(巛)은 어떤 기류(氣流)를 형상한 모습으로 보이니깐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순(巡)은 ‘열기구를 타고 공기(空氣)의 흐름을 타고 미끄러지는 것’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엄준한 지형(地形)을 넘어서 ‘순찰(巡察)’할 수도 있었겠지요. 이처럼 어떤 아이디어(Idea) - 예를 들어 열기구(熱器具)에 대한 아이디어가 성립하면, 이와 관련된 문자(文字)-인류학적인 고찰을 해서 ‘고대 동양 사회’를 ‘낯설자 않게 하는’ 것도 바람직한 학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좌계 생각에도 “‘적석총’을 비롯한 일체의 ‘피라미드’가 열기구에 의해서 쌓아졌으며, 또한 착륙장(着陸場)이었다.”는 것은 님과 완전히 일치되는 생각입니다. 아무튼 님의 착안(着眼)이 빛났고 많은 암시를 주고 있으며, 이점 좌계는 존중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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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계님 님의 정심한 답에 감사를 올립니다. 님의 연구가 제 추론에 힘이 되심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