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
남당 박창화...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를 베끼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2. 16. 11:57
남당의 고구려사초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稱摩帝以酒多干[舒弗邯牛角干]
마제를 酒多干(주다간)이라 칭하였다. [酒多干(주다간)이란 舒弗邯(서불한) 혹은 牛角干(우각간)이라 한다.]
* 角干
이것은 "각간"이라 읽은 것이 아니라 "뿔간"이라 읽는 것이죠.
중세국어를 따르자면 "ㅃ"이 아니라 "ㅅㅂ"입니다.
중세국어를 따르자면 "ㅃ"이 아니라 "ㅅㅂ"입니다.
즉, "간"으로 읽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채호선생께서는 角干(각간)의 다른 명칭이 舒弗邯(서불한)이므로 舒를 "소" 혹은 "쇠"의 음사로 보고 角을 현대 글자인 "뿔"로 해석하여 角干의 角은 꼭 "쇠뿔"로 읽어야 한다고 하셨죠. 그래서 角干의 뿔은 오직 소牛의 뿔에 해당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채호선생의 설명을 틀렸는데 왜냐하면 角은 "뿔"로 읽는 것이 아니라 중세국어의 ㅽ을 이용하여 ""로 읽어야하기 때문이죠.
* 舒弗邯
고대에 한자로 우리말을 표기할때 어려운 것은 어디까지가 초성이고 중성이고 종성인지 구별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舒弗邯은 쇠뿔한이 아니라 舒의 초성인 "ㅅ"을 따고 弗은 그냥 "불"을 따서 "ㅅ불" 즉 ""로 읽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읽으면 角을 훈독한 것과 똑같아 지는 것입니다.
* 酒多
酒는 옛 말이 "수불"이고 多의 옛 말은 "한"이므로 酒多역시도 "한"의 초기 표현인 것입니다.
삼국사기에는 酒多라고 처음에는 불리다가 후에 角干이라고 한다고 하였으니 "수불한"의 첫글자 '수'의 모음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탈락되어 발음 되면서 "한"이 되고 이것이 角干으로 표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구려사초 주석에는 酒多에 干을 붙였으니 틀린 것이고, 더군다나 角干에 牛을 붙였으니 신채호선생의 이론에따라 주석을 달은 것입니다.
角干은 소뿔한이 아니라 '수불한酒多'의 첫 글자 모음이 탈락된 형태인 "한"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