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잡동사니/남당사료

남당유고 고구려사초 고구려사략 소수림대제기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1. 29. 12:46

第十七世<小獣林大帝>紀 제17세<소수림대제>기

傳曰; 帝, 諱<丘夫>, 亦曰<小觧>. 初稱<朱留大王>, 母<觧>太后夢見<大武帝>而生故也. 身長大, 有雄略, 而能知政要. 亦善弓馬・用兵之道, 具以孝友仁睦聞.

전하여 오길, 제의 휘는 <구부> 또는 <소해>이다. 초기에는 <주유대왕>으로 불렸는데, 모친 <해>태후가 꿈에 <대무제>를 보고나서 낳았기 때문이었다. 체격은 장대하였고, 웅대한 계략이 있었으며, 정사의 개요를 능히 꿰뚫었다. 아울러 궁마와 병법에도 능하였으며, 효성과 우애가 있었고, 어질고 화목하였다는 평을 들었다.

◎ 元年辛未, 十一月, 以<觧克>為中畏大夫・執政, 命三輔佐<克>.  <馬發>左輔, <高成>右輔.  太后與<天原公><琳>入山宮.  以<天原公>女<天罡>為皇后.

○ 원년{단기2704년/AD371}신미, 11월, <해극>을 중외대부・집정으로 삼았으며, 3보들에게 명하여 <극>을 보좌하게 하였다.  <마발>을 좌보로, <고성>을 우보로 삼았다.  태후는 <천원공><림>과 함께 산궁으로 들어갔다.  <천원공>의 딸 <천강>을 황후로 삼았다.

◎ 二年壬申, 正月, <烽山>崩.  二月, 葬大行于<故國原>.
三月, 祭鹿于<龍山>, 頒獣于宗戚・公卿.
四月, <折益>大福大師, <桓芝>大壽大師.
六月, <秦>王<苻堅>遣僧<順道>. 上, 迎于郊外, 設舘待之. <順道>曰;“<秦>以佛興, <燕>以仙亡. 陛下, 亦崇信佛法, 則可以王天下.” 上曰;“神仙, 祖宗之所尊也. 然, 佛力洪大, 則亦可奉之.” 乃以<順道>為王師, 命宗室子女受經. 時, <堅>, 滅<燕>取<儁>子<淸河>及<冲二>嬖, 乃<津>女<草>氏生女也. <堅>, 好色, 聞我國多[美]女, 送佛及經而請婚. 上, 乃以<觧明>為賓部大兄, 與<祖背>・<桓芝>, 如<秦>謝之.
九月, <順道>, 說上, 曰;“臣觀陛下之國, 尙武好鬼, 下民多愚, 大夫淫乱. 請立大學以敎文字・禮義.” 上, 與太后, 議之, 宗戚多以為不便. 上, 以<苻堅>之送, 姑試之.
<羅>, 以旱・飢, 賑不足, 故民多[皈]我.  <近肖古>通<晋>.  西南地震.

○ 2년{단기2705년/AD372}임신, 정월, <봉산>이 무너졌다.  2월, 대행을 <고국원{옛 나라의 언덕, 또는 나라의 옛터에 있는 언덕}>에 장사하였다.
3월, <용산>에서 사슴제를 지내고, 고기{제사음식}는 종척 및 공경들에게 나누어 보냈다.
4월, <절익>을 대복대사로, <환지>를 대수대사로 삼았다.
6월, <진{西秦}>왕 <부견>이 승려 <순도>를 보내와서, 상이 교외에서 맞이하였으며 객사를 만들어 그를 대접하였다. <순도>가 아뢰길; “<진{西秦}>은 불도로 인하여 흥하였으며, <연{前燕}>은 선도로 인하여 망하였습니다. 폐하 역시 불법을 받들어 믿고 계신즉 천하의 왕을 할 만 하십니다.”라 하였더니, 상이 이르길; “신선은 조종들께서 받드셨던 바이며, 불력 또한 넓고 크니 섬길 만 한 것이오.”라 하고는 <순도>를 왕사로 삼았으며, 종실의 자녀들에게는 불경을 받아들이게 하였다. 이 시절, <부견>이 <연{前燕}>을 멸하고 <준>의 아들 <청하>와 <충이>를 취하여 마냥 아꼈더니만 <진{津}>의 딸 <초>씨가 딸을 낳았다. <견>은 호색하는지라, 우리나라엔 [미]녀가 많다는 소릴 듣고, 불상과 불경을 보내고는 청혼하였다. 상은 이에 <해명>을 빈부의 대형으로 삼아 <조배> 및 <환지>와 함께 <진{西秦}>에 가서 사례하게 하였다.
9월, <순도>가 상에게 말씀 올리길; “신이 폐하의 나라를 돌아보았더니, 무를 숭상하고 귀신 섬기길 좋아하였으며, 지체 낮은 백성들은 우매하였고, 대부들은 황음하였습니다. 대학을 세우시어 문자와 예의를 가르치시길 청합니다.”라 하였다. 상이 태후와 이를 상의하였는데, 종척들 대다수는 이를 불편하게 여겼다.  상은 <부견>이 보내온 것을 잠시 시험적으로 따라보게 하였다.
<신라>는 가뭄이 들어 굶주렸는데 나누어주는 것이 모자라서 많은 백성이 우리에게 귀의하였다.  {백제의} <근초고>가 <진{東晋}>과 통교하였다.  {우리나라의} 서남 땅에 지진이 있었다.

◎ 三年癸酉, 五月, <周原公><武>薨, 年六十. 勇而無謀. 然, 屈己任人. 故, 累建大功, 得士卒之心.  六月, <楽浪公><松>薨, <仁>代之, <馬發>太輔, <方丹>左輔, <龍白>右輔.
十月, 頒新律令. 先是, 國法太嚴, 犯罪者多死. 自<美川>時雜用「新法」, 先帝時用「倉樊律」 而猶未免死. 上, 至仁好生, 使<觧明>徃<秦>及<晋>觀其刑政, 而[皈]定律令, 死・流・杖・奴三百餘罪. 使評人<司>講之, 又禁擅奴婢・淫母・淫妻. 其杖三十以上者, 自官為之, 而禁擅杖之弊, 民情大洽.  <濟><禿山城>主率其衆三百人降于<羅>, 故<濟>責<羅>曰;“修好之道如是乎.” <羅>云;“不自反省而反責人歟.” 遂相不洽.  是年, <濟>通<晋>而築城於<靑木岺>.

○ 3년{단기2706년/AD373}계유, 5월, <주원공><무>가 나이 60에 죽었다. 용기는 있었으나 지모는 없었다. 그러나 자신을 낮추고 사람을 썼더니 누차 큰 공을 세우게 되었고 병사와 병졸들의 마음도 얻었었다.  6월, <낙랑공><송>이 죽어, <인>이 대신하게 하였으며, <마발>을 태보로, <방단>을 좌보로, <용백>을 우보로 삼았다.
10월, 새로운 율령을 반포하였다. 이에 앞서서는 국법이 크게 엄하였기에 죄지은 이들의 다수가 죽음에 처하여졌다. <미천>시절부터는 새로운 법령을 섞어서 시행하여 왔었고, 선제께서는 <창번>의 율령을 채택하셨으나 아직도 죽임을 면할 수는 없었다. 상께서는 지극히 어질어서 살리길 좋아하셨기에, <해명>을 시켜 <진{前秦}>과 <진{東晉}>으로 가서 그들의 형정이 어떠한 지를 보고 와서 죽이거나 귀양을 보내거나 곤장을 치거나 노비로 삼는 죄 300여 가지의 율령을 다듬게 하였으며, 평인 <사>를 시켜서는 그 율령을 가르치게 하였고, 또한 함부로 노비를 삼거나 어미를 탐하거나 남의 처를 탐하지 못하게 하였다. 곤장 30대를 넘는 죄는 관부가 이를 다스리기 시작하여 함부로 매를 치는 폐단을 없게 하였더니, 백성들은 진정으로 흡족해 하였다.  <백제>의 <독산성>주가 그의 무리 300인을 이끌고 <신라>에 투항하였더니, <백제>는 “서로 간에 잘 지내자는 도리가 이러한 것이더냐!”라 하였고, <신라>는 “스스로 반성은 아니 하고, 오히려 다른 사람을 탓하는가!”라 하였다. 두 나라 간에 불만이 있게 되었다.  이해에 <백제>는 <진{東晋}>과 통교하더니 <청목령>에 성을 쌓았다.

◎ 四年甲戌, 正月, <龍白>左輔, <觧克>右輔.  二月, 命太弟<伊連>, 巡行國中, 檢新法便否.  六月, <楽浪公><仁>薨, <馬發>代之, <柑>太輔, <玟>左輔.  十一月, <天罡>后生<談德>太子, 容皃奇偉. 上, 大喜, 欲名<福>. 時, <阿道>自<晋>来奏, 曰;“天子, 談德而不談利, 談德則福自降.” 上, 嘉其言, 乃名<談德>, 凢十二月而生.  是年七月, <苻堅>, 臣<王猛>死, 禁圖讖.
十二月, <苻堅>, 與<垂>毒<段>氏, 同輦...해독불능...

○ 4년{단기2707년/AD374}갑술, 정월, <용백>을 좌보로, <해극>을 우보로 삼았다.  2월, 태제인 <이련>에게 명하여 나라 안을 순행하여 새로운 법령이 편하지 그렇지 않은지를 점검하게 하였다.  6월, <낙랑공><인>이 죽어, <마발>이 대신하게 하고, <감>을 태보로, <민>을 좌보로 삼았다.  11월, <천강>후가 <담덕>태자를 낳았는데, 용모가 특이하게도 듬직하였다. 상은 기뻐하며 이름을 <복>이라 하고 싶었었는데, 때마침 <아도>가 <진{晉}>에서 들어와 아뢰길; “천자는 덕을 입에 담고 사익은 입에 담지 않습니다. 덕을 입에 담으면 복은 저절로 내려집니다.”라 하였다. 이에 상은 그 말을 반기며 <담덕>이라 이름 지었다. 대략 열두 달을 채워서 태어났다.  이해 7월에 <부견>은, 신하인 <왕맹>이 죽었고, 도참을 금하였다.
12월, <부견>이, <수>와 함께, <단>씨에게 독을 쓰고, 같은 수레....이하 해독불능...

◎ 五年乙亥, 二月, 置「施部」, 掌賑貧療恤. 置「籍院」, 掌仙・軍・鄕三籍. 男女十五歲受籍. 先是, 于台主之. 至是, 上, 以庻民多為豪族傷害施恤不公, 命<伊連>巡視而置此部・院.
以<象院>為<肖門寺>, <順道>法之. <葴胎>為<伊弗蘭寺>, <阿道>法之. 上, 厭王師<封太>・<折益>等淫乱後宮, 以外来之佛主此大院. 以示淸淨可法, 仙人大駭.
四月, <觧玄>死, 年七十三. 以祖皇禮, 葬之. <玄>, 以美皃得幸, 納女配后, 位極至尊無所建設. 一生淫穢而己.
七月, 攻<濟><水谷城({臨}江鎭)>.
<濟>, 以太史<高興>為修史恩率, 編<書記>五十卷・<将鏡>十二卷.
九月, <烽山公><羲>薨, 年五十三. <美川>子也. 為人淸心小慾, 不喜{海}人之在廟王之位, 未常倦...이하 해독불능...

○ 5년{단기2708년/AD375}을해, 2월, 「시부」를 두어 빈한한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병을 치료하여 구휼하는 일을 맡게 하였으며, 「적원」을 두어 선{仙}・군{軍}・향{鄕}의 3적을 관장하게 하였다. 남녀 모두 15세가 되면 적을 받게 되었다. 이전에는 우태가 관장하였었다. 요즈음 들어 상은, 많은 서민들이 호족으로 되어 {또는, 호족들 때문에} 구휼의 공정성에 차질이 생겼기에, <이련>을 시켜서 널리 돌아보고 살피게 하고는, 이러한 부와 원을 둔 것이었다.
<상원>을 <초문사>로 삼아서 <순도>가 설법하고, <침태>는 <이불란사>로 삼아서 <아도>가 설법하였다. 상은 왕사인 <봉태>와 <절익> 등이 후궁을 음란하게 함에 염증을 느끼어 밖에서 들어온 불법으로 이들 큰 학원들을 주관하게 한 것이고, 청정함을 법으로 삼을 수 있음을 내보여서 선인들을 크게 깨우치려 함이었다.
4월, <해현>이 나이 일흔셋에 죽어, 조황의 예로 장사해주었다. <현>은, 미모로 인하여 총애를 받았고, 딸을 바쳐서 후가 되었더니, 지위는 지극히 높아서 새로 더 만들어 댈 수도 없었으나, 일생을 음란하고 추하게 살았다.
7월, <백제>의 <수곡성({임}강진)>을 쳤다.
<백제>는 태사 <고흥>을 사서편찬담당 은솔로 삼아서 <서기> 50권과 <장경> 12권을 편찬하였다.
9월, <봉산공><희>가 나이 53살에 죽었다. <미천>의 아들이며, 사람됨은 마음이 맑고 욕심이 적었으며, {해}인들이 묘왕의 자리에 있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고, 아직 □함에 게으르지 않았었다. 이하 해독불능...

◎ 六年丙子, 十一月, 伐<百濟>北鄙.  十二月, <代>主<什翼犍>為其庻子所殺. <苻堅>, 執而裂之, 分<代>為東・西, 西屬<匈奴><衛辰>, 東屬<庫仁>. <犍>孫<珪>, 與母<賀>氏, 走依<賀訥>. <庫仁>, 尋奉之, 不以廢, 與易意.  <平昜[陽]>生<加連>公主.

○ 6년{단기2709년/AD376}병자, 11월, <백제>의 북변을 쳤다.  12월, <대>주 <십익건>이 자신의 서자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부견>이 , {그 서자를} 잡아서 찢어죽이고, <대>의 땅을 동・서로 나누었다. 서쪽은 <흉노><위진>에게 속하게 하고, 동쪽은 <고인>에게 속하게 하였다.. <십익건>의 손자 <규>가 어미인 <하>씨와 함께 달아나서 <하눌>에 의탁하자, <고인>이 이들을 찾아 모셨으니, 폐하지 않고, 더불어 다스려보려 했었음이었다.  <평양>이 <가련>공주를 낳았다.

◎ 七年丁丑, 十月, 雪{雷}疫.  <濟>兵三萬来侵<平壤>.  十一月, 伐<濟>.  遣使于<苻堅>.  <近仇首>妻父<真高道>, 以內臣佐平, 擅政荒淫.  <罡>后生子<勇德>.

○ 7년{단기2710년/AD377}정축, 10월, 눈{우박?}이 내리고 뇌성이 일었으며, 돌림병이 일었다.  <백제>가 3만병으로 <평양>에 쳐들어왔다. 11월, <백제>를 정벌하였다.  <부견>에게 사자를 보냈다.  <근구수>의 장인 <진고도>가 내신좌평이 되어 정사를 함부로 주무르고 황음하였다.  <천강>후가 아들 <용덕>을 낳았다.

◎ 八年戊寅, 五月, 大旱不稔.  九月, <契丹>入寇<梁貊谷>八部落.  民飢相食.  <苻堅>送<大完馬>二匹, 畜于<龍山>而牸之.

○ 8년{단기2711년/AD378}무인, 5월, 가뭄이 심하여 이삭이 여물지 않았다.  9월, <거란{글안}>이 <양맥곡>의 여덟 부락을 노략하였다.  백성들이 굶주리며 서로를 잡아먹었다.  <부견>이 <대완마> 두 필을 보내왔기에, <용산>에서 기르고 씨를 받게 하였다.

◎ 十年庚辰, 二月, <濟>, 大疫死者相継, 五月, 地裂五丈而三日合. <羅>使<衛頭>入<秦>納女.  <談德>, 曉聞啼鳥, 而問其何鳥. 后曰;“是鳥, 勧布穀, 而旱起啼也.” <談德>曰;“天下苐一好鳥也.” 上闻而異之.

○ 10년{단기2713년/AD380}경진, 2월에 <백제>에 돌림병이 크게 돌더니 죽는 이들이 줄을 이었고, 5월엔 땅이 다섯 길이나 갈라지더니 3일이 지나자 붙었다.  <신라>가 <위두>를 시켜 <진{前秦}>으로 들어가 딸을 바쳤다.  <담덕>이 새벽에 새가 우는 소리를 듣고는 어떤 새냐고 물으니, 후가 답하길; “이 새는 곡종을 널리 펴게 하는{곡식농사를 널리 하게 하는} 새인데, 일찍 일어나서 우는구나.”라 하였고, <담덕>은 “천하에서 가장 좋은 새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상이 이 소릴 듣고는 남다르다고 여겼다.

◎ 十三年癸未, 九月, 星孛西北.  十一月, <謝玄>大破<苻堅>於<肥水>.

○ 13년{단기2716년/AD383}계미, 9월, 살별{혜성}이 서북으로 흘렀다.  11월, <사현>이 <비수>에서 <부견>을 대파하였다.

◎ 十四年甲申, 春三月乙酉朔.... 四月, <近仇首>死. 子<枕流>立. 其母<阿爾>迎胡僧, 于<晋><滅難陀>九月来, 招佛法.
十一月, 畋于<獣林>而不豫, 入「溫湯」而崩⍟, 春秋四十六. 依遺詔, 葬于<小獣林(<卡盆河>邊<牛頭山>)>. 時, 酪・酒・饘・餠・肉・菜・果・茗八家爭遣其子於<晉>, 以習烹飪敎于道場. 大家廚人, 甚倨且多<朱>・<芙>之裔, 與公卿交婚. 至是, 各以其業為姓. 隸于中畏仙人, 故奄有不平之志. 以大行不豫之過, 相嫁而不負, 故皂衣得罪遠流者三十餘人.

○ 14년{단기2717년/AD384}갑신, 4월, <근구수>가 죽자, 그의 아들 <침류>가 섰다. 그의 어미 <아이{阿爾}>가 <진{晋=東晋}>에 있던 호승{胡僧; 북방의 승려}을 맞이하였다. <마라난타{滅難陀}>가 9월에 {<백제>로} 왔다. 불법을 불러들인 것이다.  11월, <수림>에서 사냥하다가 갑자기 몸이 심하게 아파서, 온탕에 들어갔다가 붕어하였다. 춘추 46세였다. 유조{유언}를 따라 <소수림(<잡분하>변<우두산>)>에 장사하였다. 이 시절에 낙・주・전・병・육・채・과・차 여덟 집안이 서로 다투어 <진{晉}>에 자식을 보내서 음식을 삶고 지지는 것을 배워 와서 도장에서 가르쳤다. 큰 집안의 요리사들은 심히 거만하였을 뿐만 아니라, 많은 이가 <주>씨와 <부>씨의 후예들이어서, 공경들과 서로 혼인하였다. 이때부터 각자는 자신의 생업을 성으로 하였다. 중외선인에 예속되어 있어 속으로는 불평하는 마음이 있었고, 대행의 몸이 갑자기 심하게 아프게 된 잘못을 서로가 미루고 책임지지 않았더니, 조의들이 {대신하여} 죄를 받았고, 멀리 유배된 자가 30여명이나 되었다.//끝


강영구 (2008-01-10 17:47:53)      
·是年七月, <苻堅>, 臣<王猛>死, 禁圖讖.이해 7월에 <부견>은 신하인 <왕맹>이 죽자 도참을 금하였다. =><왕맹>이 죽었다. 하고 끊고, 도참을 금하였다. 로 나누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位極至尊無所建設, 一生淫穢而己.지위는 더할 데 없이 높았었고, 일생을 음란하고 추하게 살았다. =>건설에 대한 해석이 빠졌습니다. “지위는 더할 데 없이 높았었지만, 업적은 없었고, ···”
·隸于中畏仙人, 故奄有不{平}之志 중외선인에 예속되어 있었는데, 남들과 같아지기 싫어함이 강하였었다.=> 奄자를 강하다고 해석하셨는데, ‘가리다’는 뜻을 살려 ‘속으로’라고 해석하여 “중외선인에게 예속되어 있어서 속으로 불평하는 마음이 있었다”라고 해석하면 어떨까요? 보통 ‘문득, 갑자기’라는 부사로 쓰이는데 말입니다.
김성겸 (2008-01-11 11:13:11)      
강 선생님, 감사합니다.
교필에 반영합니다.

<부견>과 <왕맹>에 관한 <도참>은
<왕맹>이 <부견>의 조정에서 <도참설>을 들이대는 등등으로 정적을 제압하였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약간 어정쩡하게 마무리하였습니다.
김영채 (2008-01-18 21:08:52)      
(1) 于<晋><滅難陀>九月来 -> 于<晋><摩 羅 難陀>九月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