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잡동사니/남당사료
남당유고 고구려사략 고구려사초 제15대 미천대제기(16년~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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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1. 29. 04:45
○ 16년{단기2648년/AD315}을해, 춘2월, <방부>・<송거>・<고식> 등이
<현도성>을 쳐서 빼앗고, 수장인 <왕애> 등 30인의 목을 베고, 보화도 모조리 빼앗았다.
<방부>를 진서대장군・<현도>태수・<평해공>으로 삼고,
<최체>・<양화(금<곤도>■북계)>・<갈>부(<안국군>이<갈>지
종)・<장령>의 땅도 함께 다스리게 하였다. 5월, <모용외>가 종제인 <구>를 보내 입조하여
토산물과 인삼・감초・단서피 등 50종을 바쳤다. 상이 <구>에게 “네 형이 천명을 알고 있다면, 곧
<하서>의 땅을 바치고서 서로 간의 경계를 지켜야 할 것이다.”라 일렀더니, <구>가 “저희 작은 나라는
큰 <진>의 신하입니다. 어찌 저희 맘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라 아뢰었다. 이에 상이 웃으면서 “우리가 취하려는
것이 그 큰 <진>이다. 돌아가거든 네 형에게 조속히 찾아와 항복하라고 전하라. 그리하지 않으면 <왕애>와
<경회[창?]>의 꼴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고 일렀다. 이에 <구>가 “<최체>와
<양화>는 역시 <하북>의 땅이고, 저희 할아버님이 일어서신 곳입니다. 폐하께서는 무슨 연고로 그곳을
가지려 하십니까?”라 여쭈니, 상이 “우리의 세조이신 <유리명황> 11년에 <부분노>가 그 땅을 평정하여
속령이 된지 오래이다. 너희 할아버지 역시 내 신하가 아니더냐?”라 일렀고, <구>가 “신의 할아버님의 할아버님께서
<자몽천>에서 처음 일어나시고 나서 <우문>의 집안과는 원수가 되어, 잠시 <하서>의 땅으로
옮겼다가, 다시금 <파동>・<오림>・<대극>의 땅으로 내려왔던 즉 <최체> 이남이며,
이들 모두는 저희들의 땅입니다.”라 답하니, 상은 “<하남>땅도 모두가 짐에게 속하지만, <최체>의 작은
땅은 너희에게 내어줄 수 있다.”라 하였다. <구>는 무엇을 얻어 돌아가서 <외>에게 고해야 할지를
몰랐다. <외>는 단단히 화가 나서 화친하기를 그만두었다. 추7월에 상이 <주>황후를 데리고 순시하여
<현도성>에 이르러서 장수와 장사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8월에는 <남소>에 들렀더니 태사가 별자리 변동에
대하여 상주하였다. 9월에는 <서천원>에서 사냥하고 도성으로 돌아왔다. 11월, <을>태후가
<양수{산의 남쪽 동굴무덤}>에서 <백룡대제>를 지냈다. 혜성이 동북에서 나타났다.
第十五世<美川大帝>紀(16년~25년)
◎ 十六年乙亥, 春二月, <方夫>・<松巨>・<高植>等拔<玄菟城>, 斬其守将<王皚>等三十人, 盡獲其宝貨. 以<方夫>為鎭西太将軍・<玄菟>太守・<平海公>兼領<最彘>・<陽化(今<昆 都>■北界)>・<鞨>部(<安國君>移<鞨>之種)・<長嶺>之地. 五月, <慕容廆>, 遣其從弟<[苟]>, 入朝献土物・人蔘・甘草・猯鼠皮等五十種. 上, 謂<苟>, 曰;“汝兄, 若知天命, 則宜以<河西>之地来献互守境界.” <[苟]>曰;“小國乃大<晉>之臣. 何敢擅乎.” 上, 笑, 曰;“吾欲取者, 大<晉>也. 皈語汝兄, 早速来降. 不然, 未免<王皚>・<耿薈[蒼?]>.” <苟>曰;“<最彘>・<陽化>亦是<河北>而臣祖所起之地. 陛下, 何故取之耶.” 上, 曰;“我世祖<琉璃明皇>十一年, <扶芬奴>平此地為屬領久矣. 汝祖, 亦非我臣乎.” <苟>曰;“臣祖之祖始起于<紫蒙川>而與<宇文>世讐, 暫移乎此, 而更下<巴東>・<烏林>・<大棘>則<最彘>以南, 皆吾地.” 上, 曰;“<河南>之地悉屬于朕, 則<最彘>小壤亦讓于汝可也.” <苟>知不可得皈告<廆>. <廆>大怒遂絶和. 秋七月, 上, 與<周>皇后, 巡至<玄菟城>, 勞将士. 八月, 入<南蘇>, 太史奏星. 九月, 畋于<西川之原>而還都. 十一月, <乙>太后行<白龍大祭>于<陽隧>. 孛于東北.
○ 16년{단기2648년/AD315}을해, 춘2월, <방부>・<송거>・<고식> 등이 <현도성>을 쳐서 빼앗고, 수장인 <왕애> 등 30인의 목을 베고, 보화도 모조리 빼앗았다. <방부>를 진서대장군・<현도>태수・<평해공>으로 삼고, <최체>・<양화(금<곤도>■북계)>・<갈>부(<안국군>이<갈>지 종)・<장령>의 땅도 함께 다스리게 하였다. 5월, <모용외>가 종제인 <구>를 보내 입조하여 토산물과 인삼・감초・단서피 등 50종을 바쳤다. 상이 <구>에게 “네 형이 천명을 알고 있다면, 곧 <하서>의 땅을 바치고서 서로 간의 경계를 지켜야 할 것이다.”라 일렀더니, <구>가 “저희 작은 나라는 큰 <진>의 신하입니다. 어찌 저희 맘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라 아뢰었다. 이에 상이 웃으면서 “우리가 취하려는 것이 그 큰 <진>이다. 돌아가거든 네 형에게 조속히 찾아와 항복하라고 전하라. 그리하지 않으면 <왕애>와 <경회[창?]>의 꼴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고 일렀다. 이에 <구>가 “<최체>와 <양화>는 역시 <하북>의 땅이고, 저희 할아버님이 일어서신 곳입니다. 폐하께서는 무슨 연고로 그곳을 가지려 하십니까?”라 여쭈니, 상이 “우리의 세조이신 <유리명황> 11년에 <부분노>가 그 땅을 평정하여 속령이 된지 오래이다. 너희 할아버지 역시 내 신하가 아니더냐?”라 일렀고, <구>가 “신의 할아버님의 할아버님께서 <자몽천>에서 처음 일어나시고 나서 <우문>의 집안과는 원수가 되어, 잠시 <하서>의 땅으로 옮겼다가, 다시금 <파동>・<오림>・<대극>의 땅으로 내려왔던 즉 <최체> 이남이며, 이들 모두는 저희들의 땅입니다.”라 답하니, 상은 “<하남>땅도 모두가 짐에게 속하지만, <최체>의 작은 땅은 너희에게 내어줄 수 있다.”라 하였다. <구>는 무엇을 얻어 돌아가서 <외>에게 고해야 할지를 몰랐다. <외>는 단단히 화가 나서 화친하기를 그만두었다. 추7월에 상이 <주>황후를 데리고 순시하여 <현도성>에 이르러서 장수와 장사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8월에는 <남소>에 들렀더니 태사가 별자리 변동에 대하여 상주하였다. 9월에는 <서천원>에서 사냥하고 도성으로 돌아왔다. 11월, <을>태후가 <양수{산의 남쪽 동굴무덤}>에서 <백룡대제>를 지냈다. 혜성이 동북에서 나타났다.
◎ 十七年丙子, 春正月, 以<萧友>爲「南部」大使者, <劉長句>爲<粘蟬(盤山)>太守, <芙昇>爲<馬川>太守, <周淡><楽浪(海城)>太守, <靑見>左輔, <于豊>右輔, <烏陌南>「中部」于臺. <陌南>, 以<烏伊>之冢孫, 密謀暗殺<仙方>, 事敗. 至是, 復起. <百濟>, 有大星墜其西邊, 而大旱. 三月, <代>王<猗盧>, 愛其少子<比延>欲以爲嗣, 使長子<六脩>出居<新平城(<建興>元年<猗盧>築<新平城>,<唐>謂之新城, 在<朔州>界)>而黜其母. <六脩>有駿馬日行五百里, <猗盧>奪之以與<比延>. <六脩>來朝, <猗盧>, 使拜<比延>, <六脩>不從. <猗盧>, 乃坐<比延>於其步輦(步輦不駕馬使人輓之), 使人導從出遊. <六脩>, 望見, 以爲<猗盧>伏謁路左, 至乃<比延>. <六脩>慙怒而去. <猗盧>, 召之, 不至, 大怒帥衆討之, 爲<六脩>所敗. <猗盧>微服逃民間, 有賤婦人識之, 遂爲<六脩>所弑. <拓跋普根>, 先守外境, 聞難, 來赴攻<六脩>滅之. <普根>代立, 國中大亂. 四月, <普根>卒. 其子<始生>, <普根>母<惟>氏立之(<惟>氏<猗[남쪽오랑캐이름 이]>妻). <百濟>, 四月, 王都大井溢, 黑龍出于其中, 故以爲北國來呑之兆, 云. 五月, <楽浪王><仙方>入朝告<晉>人因<劉曜>之亂, 降者甚多. 命, 皆厚待之. 十一月, <棠山公><高朴兒>薨, 年六十九. <朴兒>, 以<雉祠>之主, 爲扶杜功臣, 位至一品而未甞立朝爭功, 人以爲難. <普根>子死, 從父<鬱律>立.
○ 17년{단기2649년/AD316}병자, 춘정월, <소우>를 <남부>대사자로, <유장구>를 <점선(반산)>태수로, <부승>을 <마천>태수로, <주담>을 <락랑(해성)>태수로, <청견>을 좌보로, <우풍>을 우보로, <오맥남>을 「중부」우대로 삼았다. <맥남>은, <오이>의 종손인데, <선방> 암살을 밀모하였다가 일이 틀어진 후, 이제서 다시 기용된 것이었다. <백제>에서는 큰 별이 서쪽 변방에 떨어지고 큰 가뭄이 있었다. 3월, <대>왕 <의로>는, 어린 아들 <비연>을 아껴서 <비연>으로 후계를 세우려고, 큰 아들 <육수>를 <신평성(<건흥>원년<의로>축<신평성>,<당>위지<신성>,재<삭 주>계)>으로 나가살게 하고 <육수>의 모친도 내쳤으며, <육수>에게는 하루에 5백리를 가는 좋은 말이 있었는데, <의로>가 이것을 빼앗아 <비연>에게 주어버렸다. 이에 <육수>가 조정으로 찾아갔더니, <의로>가 <비연>에게 절하라고 시켰고, <육수>는 따르지 않았다. <의로>가 이윽고 <비연>을 보련(보련불가마사인만지)에 앉혀서 사람들을 앞세우고 뒤따르게 하여 나다니게 하였다. <육수>는 멀리서 바라보다가 그것이 <의로>인 줄로 알고 길 좌측에 엎드려서 보았더니, 다다른 것은 <비연>이었다. <육수>는 이에 참담하고 화가 치밀어 곁을 떠났다. <의로>가 돌아오라 불렀으나 돌아오지 않았고, 이에 <의로>가 무리를 이끌고 <육수>를 토벌하였으나, 오히려 <육수>에게 패하였다. <의로>는 미복으로 민간으로 숨어들었으나, 비천한 아낙에게 들켜서 <육수>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탁발보근>은 우선하여 외부 경계를 서다가, 나라의 꼴이 여의치 않아 보이자, <육수>를 찾아가 쳐서 멸하였다. <보근>이 대신 서니, 나라 안이 크게 어지러웠다. 4월에 <보근>이 죽으니, <보근>의 아들 <시생>을 <보근>의 어미 <유>씨가 세웠다(<유>씨<의이>처). <백제>에서는 4월에 도성의 큰 우물이 흘러넘쳤고, 흑룡이 그 우물에서 나왔다. 이에 사람들은 북쪽의 나라가 쳐들어 와서 나라를 빼앗을 징조라 여겼다고 한다. 5월, <낙랑왕><선방>이 입조하여, <유요>가 난리를 치는 통에 찾아와 투항하는 <진>의 사람들이 심히 많음을 고하였더니, 그들 모두를 후하게 대하라는 명이 있었다. 11월, <당산공><고박아>가 나이 69살에 죽었다. <박아>는 <치사>의 주인으로, 부두공신이 되어 품계가 1품에까지 올랐는데도, 조정에서는 공을 다투지 않았더니, 사람들이 어려워들 하였다. <보근>의 아들이 죽어, <보근>의 종부인 <탁발울률>이 섰다.
◎ 十八年丁丑, 春三月, <周>皇后生子<玟>. <新羅>, 春夏旱, <訖觧>錄囚而原之. 五月, 上, 與<周>皇后, 如<卒本>謁<東明庙>, 巡至<柵城>而還. 命<高植>・<棤>・<于京>等, 伐<東海>, 拔之. 以<植>為太守. 七月, <肖門院>為<象院>, <免>后主. <芙>氏<菱院>主, <乙>太后<白竜院>主. 是年, <司馬睿>以<廆>爲<昌黎公>不受. <廆>, 遣<王濟>浮海詣<建康>, 勧進. <漢>主<聦>, 信譖, 殺其弟<乂>. <廆>庶兄<吐谷渾>卒. 子<吐延>嗣, 長大有勇力, <羌>・<胡>皆畏之.
○ 18년{단기2650년/AD317}정축, 춘3월, <주>황후가 아들 <민>을 낳았다. <신라>는 봄과 여름에 가뭄이 들자 <흘해>가 죄수들의 기록을 다시 살펴 사람들을 풀어주었다. 5월, 상이, <주>황후를 데리고, <졸본>에 가서 <동명묘>를 배알하고, 순행하여 <책성>에 이르렀다가 돌아왔다. <고식>・<석>・<우경> 등에게 명하여 <동해> 땅을 쳐서 빼앗았다. <고식>을 태수로 삼았다. 7월, <초문원>을 <상원>으로 바꾸어 <면>후가 주관하게 하고, <부>씨는 <릉원>을, <을>태후는 <백룡원>을 주관하게 하였다. 이 해에 <사마예>가 <모용외>를 <창려공>을 삼고자 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외>는 <왕제>를 배를 태워 <건강>으로 보내 {북쪽으로} 진격하라고 권하였다. <한{前趙}>주 <유총>은 참소를 믿고 자기 동생 <예>를 죽였다. <모용외>의 이복형 <토곡혼>이 죽자, 그의 아들 <토연>이 뒤를 이었는데, 몸집이 장대하고 용력이 있어, <강{羌}>족과 <호{胡}>족 모두가 범접하지 못하였다.
◎ 十九年戊寅, 春三月, 左輔<靑見>病免, <于豊>代之, <椽方>右輔. 去年, <聦>殺<愍帝>, 年十八. 至是, 凶問至<建康>, <睿>卽{位皇帝}. <遼西公><段疾陸眷>卒. 其子幼, 叔父<涉復辰>自立. <匹磾>自<薊>犇喪至<右北平>, <涉復辰>發兵拒止. <末柸>, 乘虗襲<復辰>, 自稱單于, 迎擊<匹磾>, 敗之. <匹磾>走還<薊>. <訖觧>, 下令國中, 無奪農時. 一切官役, 命皆停之. 夏五月, 遣<玄菟>小守<高卿>, 攻拔<河城>. <平州>刺史<崔毖>, 聞之, 遣使稱臣, 請, 與<宇文>, 共伐<慕容>而分其地. 遣<談河>于<宇文>・<段>氏, 而共謀討<廆>. <段匹磾>殺<劉琨>.
○ 19년{단기2651년/AD318}무인, 춘3월, 좌보 <청견>이 병으로 물러나니, <우풍>이 대신하고, <연방>이 우보가 되었다. 지난해 <유총>이 18살인 <민제{西晉,司馬鄴}>를 죽였는데, 지금에 이르러 그 흉한 소문이 <건강>에 다다랐고, <사마예{東晉,司馬睿}>가 황제위에 올랐다. <요서공><단질육권>이 죽자, 아들이 어려서, 숙부인 <섭복진>이 스스로 보위에 올랐다. <필제>가 <계>로부터 허둥지둥 조상하려 <우북평>으로 달려오니, <섭복진>이 병사를 일으켜 이를 막아섰다. 이에 <말배>는 허술한 틈을 타서 <복진>을 습격하고 스스로 「선우」를 칭하고 <필제>를 맞아 깨뜨렸다. <필제>는 달아나 <계> 땅으로 돌아갔다. <흘해>가 명을 내려 농사철엔 시간을 빼앗지 않게 하였고, 모든 관역은 명에 의해 중지되었다. 하5월, <현도>태수 <고경>을 보내서 <하성>을 쳐서 빼앗았다. <평주{東晉}>자사 <최비>가, 이 소릴 듣고는 사신을 보내와서 신하를 칭하면서, <우문>과 함께 연합하여 <모용>을 쳐서 그 땅을 나누어 가지자고 청을 하였다. 이에 <담하>를 <우문>씨와 <단>씨에게 보내어 <외>를 치자 공모하였다. <단필제>가 <유곤>을 죽였다.
◎ 秋七月, <乙>太后崩, 葬於<咄固大王>陵, 春秋五十八. 性聦敏, 多權術, 顔色佳䴡, 身長七尺, 善歌舞戱. 謣令人喜怒悲懼, 且挾媎術, 柔権貴如泥. 密贊大業, 上卽位, 尊爲太后. 參預政事頗多所失, 而不能禁之. 多畜私臣, 鑄金人, 專事荒淫, 國人鄙之. 是月, <鬱律>, 擊<劉虎>破之, 取其部落. 西取<烏孫>, 東兼<勿吉>以西. <漢>主<聦>死. 子<粲>立烝其母. <靳樊>・<武王>等, 皆年二十. 八月, <靳準>殺<漢>主<粲>, 以璽還<晉>, 曰;“自古, 無<胡>人爲天子.” <劉曜>・<石勒>共伐<靳準>, <準>為其下所殺. 十二月, <石勒>攻<平陽>, <靳明>走<曜>, <曜>盡殺<靳>氏.
○ 추7월, <을>태후가 죽어 <돌고대왕>릉에 장사하였다. 춘추 58세였다. <을>태후는 성품이 총민하고 권모술수가 많았으며, 안색은 예쁘고 고왔고 키는 7척이나 되었다. 노래하며 춤추고 놀기를 잘하였고, 망령된 명을 내리는 바람에 사람들을 희・노・비・구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두루 녹이는 재주가 있어 권력 있거나 귀한 자들을 진흙을 주무르듯 하였다. 대업을 숨어서 도왔다가, 상이 즉위한 뒤에 태후의 자리로 올려졌다. 정사에 끼어들어 일을 그르친 것이 많았는데, 이를 말릴 수도 없었다. 사신{情夫}이 많았고, 금인을 주조하여 놓고는, 황음하기로 일을 삼았으니, 나라사람{나라를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들이 <을>태후를 천하다 여겼다. 이달에 <탁발울률>이 <유호>를 쳐서 깨뜨리고, 그 부락을 취하였다. 서쪽으로는 <오손>의 땅을, 동쪽으로는 <물길>이서의 땅도 취하였다. <한{前趙}>주 <유총>이 죽었다. 아들 <찬{前趙,隱帝}>이 섰는데, 증모하였다. <근번>・<무왕> 등은 모두가 나이 20 살이었다. 8월에 <근준>이 <한>주 <유찬>을 죽이고, 새보를 <진>으로 돌려주면서 “옛날부터 <호{胡}>인들이 천자가 된 적은 없었다.”고 하였다. <유요{前趙,末帝}>와 <석륵{後趙,明帝}>이 함께 <근준>을 쳤고, <근준>은 자기 수하들에게 피살되었다. 12월, <석륵>이 <평양{平陽}>을 공격하니, <근명>은 <유요>에게로 도망하였으나, <유요>가 <근>씨들을 모조리 척살하였다.
◎ 二十年己卯, 春正月, <談河>自<遼東>還, 奏;“<段>氏有內乱, <宇文>最强. 而<慕容>新盛, 其勢不可豫測. 宜観二氏動靜, 而徐拾吾邊, 不失其機, 乃上策也.” 上嘉之. 二月, <石勒>, 遣左長史<王脩>, 献捷於<漢>. <漢>主<曜>, 遣兼司徒<郭汜>, 授<勒>太宰領・太将軍, 進爵<趙王>加殊禮, 出警入蹕如<曹公>輔<漢>故事. 拜<王脩>及其副<劉茂>, 皆爲将軍, 封列侯. <脩>舍人<曹平樂>, 從<脩>至<粟邑>, 因留仕<漢>, 言於<曜>, 曰;“大司馬遣<脩>等来, 外表至誠, 內覘大駕疆弱, 俟其復命, 将襲乘輿.” 時, <漢>兵實疲弊, <曜>信之. 乃追<汜>還, 斬<脩>於市. <勒>還至<襄國>, <劉茂>, 逃皈, 言<脩>死狀. <勒>, 大怒, 曰;“孤事<劉>氏, 於人臣之職, 有加矣. 彼之基業皆孤所為. 今, 旣得志還欲相圖. <趙王>・<趙帝>, 孤自為之. 何待於彼邪. 乃誅<曹平樂>三族.
○ 20년{단기2652년/AD319}기묘, 춘정월, <담하>가 <요동>에서 돌아와 상주하길; “<단>씨는 내란 중이며, <우문>은 가장 강성하여 있고, <모용>은 새로이 번성하여 그 위세를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마땅히 이 둘{<우문>과 <모용>}의 동정을 지켜보면서, 우리의 변방을 조용히 수습하고,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상책일 것입니다.”라 하니, 상이 흡족히 여겼다. 2월, <석륵>이 좌장사 <왕수>를 <한>에 보내 승첩을 바쳤다. <한>주 <유요>가, 사도직을 겸하게 하여 <곽사>를 보내, <석륵>에게 태재령・태장군을 제수하고, <조{후조}>의 왕으로 작위도 올려주고 수례{각별한 의전예법}도 얹어주었다. 나갈 때는 {경호와 의전을 위하여} 길거리 행인을 없애고 들어올 때는 길을 깨끗이 치우게 하여서 <조공{曹操}>이 <동한>을 섬기던 옛 얘기같이 하였다. <왕수>와 <왕수>의 차석인 <유무> 모두는 장군으로 삼고, 열후에 봉하였다. <왕수>의 사인 <조평락>이 <왕수>를 좇아 <속읍>으로 갔다가, 눌러앉아서 <한>을 섬기게 되자, <유요>에게 언질하기를; “대사마{<석륵>}가 <왕수> 등을 보냈는데, 겉으로는 지성을 다하고 속으로는 큰 가마{임금이 타는 수레;<유요>의 나라}의 강하고 약함을 살피다가, 재차 명령이 있기를 기다려서, 장차 타고계신 가마를 엄습하려 합니다.”고 하였다. 이때, <한>은 병력의 실상이 피폐하였기에, <요>는 이 말을 믿었으며, <곽사>가 돌아가는 것을 추격하여 <수>를 저잣거리에서{보란 듯이 드러내어} 참하였다. <석륵>은 <양국{後趙의 都邑}>으로 돌아가 있었는데, <유무>가 도망하여 들어가 <수>가 죽은 상황을 보고하였다. <석륵>은 대노하여; “내가 <유>씨를 섬김에는 신하된 직분을 넘어섰었다. <유요>의 기업은 모두 내가 이루어 준 것이었다. 지금 이미 뜻을 이루었다 하여 도리어 서로를 도모하겠다면, <조>의 왕 자리이든 황제 자리이든 나 스스로가 이룰 것이다. 어찌 저놈에게 기대하겠나?”라 하고는, <조평락>의 3족을 주살하였다.
◎ 三月, 上, 巡至<新城>及<安平>, 使<芙莢>・<高卿>等, 各引步騎出界.
四月, <漢>主<曜>, 還都<長安>, 立妃<羊>氏爲皇后, 以<羊>氏子<熙>爲皇太子. <羊>氏卽故<惠帝>后也. <曜>甚寵之, 頗干預國事. <代>王<鬱律>擊<匹磾>. <匹磾>, 棄妻子, 奔<樂陵>, 依<邵續>. 十月, 命<仙玉>引<休都>・<于京>等, 伐<廆>. <廆>欲納女而和親. 上, 問於<談河>, <河>曰;“<廆>娶妻於<段>氏而取其<徒河>. 是, 其外仁而內險也. 不可親.” 於是, 與<宇文>・<段>國, 幷進. <廆>, 大懼不能出, 密遣饋酒求和. <仙玉>却之, <宇文>獨受之. 時, 天寒師老, <玉>有憂色. 司馬<玄{膝}>說<玉>, 曰;“聼人之言而深入, 不戰. 今, <宇文>忽變, <段>本<廆>族. 不如退而観變. 徐圖之, 不失萬全.” <仙玉>然之乃退. <段>氏亦退.
○ 3월, 상은, 순수하여 <신성>과 <안평>에 이르러서, <부협>과 <고경> 등에게 각자 보병과 기병을 이끌고 국경 밖으로 나가게 하였다.
4월, <한>주 <유요>가 <장안>으로 환도하여, 비로 있던 <양>씨를 황후로 세우고, <양>씨의 아들 <유희>를 황태자로 삼았다. <양>씨는 죽은 <혜제{西晉,司馬衷}>의 후였는데, <유요>가 그녀를 지극히 아꼈더니, 국정에 끼어들어 잘못됨이 많았다. <대>왕 <탁발울률>이 <단필제>를 치니, <필제>는 처자식을 버리고 <락릉>으로 도망하여 <소속>에게 의지하였다. 10월, <선옥>에게 명하여 <휴도>와 <우경>의 군대를 끌고나가 <외>를 쳤더니, <외>는 딸을 바칠 것이니 화친하자고 하였다. 이에 상이 <담하>에게 물으니, <담하>는 “<외>는 <단>씨의 집에 장가를 들고 그 <도하>땅을 취하였으며, 겉은 어질지만 속은 험합니다. 화친은 아니 됩니다.”라 하였다. 이리하여, <우문>국 및 <단>국과 함께 진공하였더니, <외>는 크게 두려운 나머지 나오지는 못하고, 몰래 술과 음식을 보내와 화친을 청하였다. <선옥>은 이를 거절하였고, <우문>만이 이를 수락하였다. 이때, 날씨는 춥고 군사들은 지쳐 있었더니 <선옥>도 걱정스런 낯빛이었다. 사마 <현{슬}>이 <선옥>을 설득하길;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깊숙이 들어는 왔지만, 싸우지 마시오. 지금 <우문>은 갑자기 변심하였고, <단>국은 본래 <모용외>와 한 족속이오. 물러나서 변화를 살피는 것만 못할 것 같소. 서서히 도모하여 만전을 기합시다.”라 하였다. <선옥>도 그것이 좋겠다고 여겨 물러났다. <단>국 또한 물러났다.
◎ <廆>, 與其子<翰>, 襲破<宇文>而進攻<遼東>. <崔毖>, 単身皈我, 而請救. <仙玉>, 出戰為<廆>所敗, 而死. 王, 痛哀之, 命<休都>領其衆. <廆>, 使其子<仁>爲<遼東>太守, 伐<休都>. 我軍連敗, <平郭>失守. 乃以<萧友>為<安平>太守率軍二萬徃救之. 以<靑見>, 爲「南部」大使者, 葬<仙玉>以右輔禮. 賜<玉>妻<弗>氏年穀. <玉>, <方>之弟也. 有{脅力}善射, 佐其兄<方>以成<候山>之功, 奪<尙宝>妻<弗>氏(<中川>女也). <玉>, 勇敢善戰而有輕敵之氣, 常時好罵幕下, 故単騎深入, 竟敗而死. 其下不力戰而救之, 人多惜之.
○ <외>가, 아들 <한>과 함께, <우문>을 습파하고는 <요동>으로 진공하니, <최비{<晉><平州>刺史}>가 홀몸으로 아군으로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에 <선옥>이 나가서 싸우다 <외>에게 패하여 죽었다. 왕이 이를 애통히 여기고는, <휴도>에게 <선옥>의 군사를 이끌게 하였다. <외>가, 아들 <인>을 <요동>태수를 삼아놓고, <휴도>를 쳤다. 우리는 연패하여 <평곽>을 잃었다. 이에 <소우>가 <안평>태수가 되어 2만군을 이끌고 가서 <휴도>의 군대를 구하였다. <청견>을 <남부>대사자로 삼아서, <선옥>을 우보의 예로 장사하여 주었고, <선옥>의 처 <불>씨에게는 매년 곡식을 주게 하였다. <선옥>은 <선방>의 동생으로 상대를 겁주는 힘이 있었고 활을 잘 쏘았다. 형인 <선방>을 도와 <후산>의 공을 세웠고, <상보>의 처 <불>씨를 빼앗았다. <선옥>은 용감하여 싸움은 잘하였으나 적을 얕잡는 기질이 있었고, 평소에 번번이 휘하를 욕하였기에, 혼자만이 말을 몰아 적진 깊숙이 들어갔다가 끝내는 패하여 죽은 것이었다. 그의 휘하들은 힘들여 싸워서 그를 구하려 하지는 않았으니, 사람들이 이를 애석하게 여겼다.
<通鑑>曰;
【★ 十二月, <平州>刺史<崔毖>, 自以中州人望, 鎭<遼東>, 而士民多皈<慕容廆>, 心不平. 数遣使招之皆不至, 意<廆>拘留之, 乃陰說<高句麗>・<段>氏・<宇文>氏, 使共攻之, 約滅<廆>分其地. <毖>所親<勃海><高瞻>力諫, <毖>不從. 三國合兵伐<廆>. 諸将請擊之, <廆>曰;“彼, 爲<崔毖>所誘, 欲邀一切之利. 軍勢, 初合其鋒甚銳, 不可與戰, 當固守以挫之. 彼, 為烏合而來, 旣無統壹, 莫相皈服, 久必攜貳, 一則疑吾與<毖>詐而覇之, 二則三國自相猜忌. 待其人情離貳, 然後擊之, 破之必矣.” 三國進攻<棘城>. <廆>, 閉門自守, 遣使獨以牛酒犒<宇文>氏. 二國, 疑<宇文>氏與<廆>有謀, 各引兵皈. <宇文>大人<悉獨官>曰;“二國雖皈, 吾當獨取之.”
<자치통감>에 쓰여 있기는;
【☆ 12월, <평주>자사 <최비>는, 스스로 중주에서 인망이 있다고 여기고, <요동>에 진을 쳤는데, 많은 인사들과 백성들이 <모용외>에게 귀의하니 마음이 편안치 않았고, 여러 번 사신을 보내서 돌아오라고 불렀으나 모두가 돌아오지 않았다. 이에, <외>가 이들을 붙잡아두었다고 생각하고는, 몰래 <고구리>・<단>씨・<우문>씨를 설득하여, 함께 공격하게 만들고, <외>를 멸하여 그 땅을 나누어 가지자 약속하였었다. <최비{毖}>와 친한 <발해{渤海}>땅의 <고첨{高瞻}>이 힘들여 간언했어도, <최비>는 따르지 않았던 것이다. 3국이 군대를 합쳐서 <외>를 토벌하기에 나섰다. 이에 여러 장수들이 {<고구리>・<단>씨・<우문>씨를} 치자고 청하였더니, <모용외>가 말하길; “저쪽은 <최비>의 꼬임에 빠졌으며, 한데뭉친 이점을 노리고 있다. 저쪽의 군세는 초기엔 합쳐졌으니 심히 날카로울 것이다. 맞싸워서는 아니 되고, 응당 단단히 지켜서 그 예봉을 꺾어야 한다. 저들은 형편없는 군대들이 합쳐져서 왔으며, 아직 한 사람의 지휘 하에 있지 않으니, 서로가 한 사람 아래로 들어가기는 불가할 것이고, 시일이 지나면 필시 사이가 나빠질 것이다. 그리되면, 한편으로는 우리가 <최비>와 함께 속여서 자기들을 이길 것이라 걱정하기도 할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들끼리도 시기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사람들의 마음이 둘로 갈라지기를 기다렸다가, 그들을 공격하면 반드시 저들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3국이 <극성>으로 진공하자, <외>는 성문을 닫고 지키면서, 사람을 보내서 소와 술로 <우문>의 군대만을 먹였다. 이에 다른 두 나라는, <우문>이 <외>와 모의한 것으로 의심하여, 각자의 군대를 이끌고 돌아갔다. <우문>대인 <실독관>은 비록 두 나라가 돌아갔어도, 당당하게 나 혼자서 {<모용>의 땅을} 차지하겠다고 하였다.
★ <宇文>氏士卒数十萬, 連營四十里. <廆>, 使召其子<翰>於<徒河>. <翰>, 遣使白<廆>, 曰;“<悉獨官>擧國為寇, 彼衆我寡, 易以計破, 難以力勝. 今, 城中之衆, 足以禦寇. <翰>, 請為奇兵於外, 伺其間而擊之. 內外俱奪, 使彼震駭不知所備, 破之必矣. 今, 幷兵為一, 彼得專意攻城無復它虞, 非策之得者也. 且, 示衆以怯, 恐士氣不戰先沮矣.”
☆ <우문>씨의 사졸 수십만은 40 리에 걸쳐 연이어서 병영을 세웠다. <외>가 <도하>에 있는 아들 <한>을 불러들이라 시켰더니, <한>이 아뢰길; “<실독관>이 거국적으로 도적질을 하고 있습니다. 저쪽은 수가 많고 저희는 수가 적으니, 계책을 써서 파하기는 쉬워도, 힘으로 이기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 성안의 사람들만 가지고도 적을 막기에 충분하십니다. <한>은 밖에서 기습병력이 되어 때를 노리다가 공격하게 해주시길 청합니다. 안팎에서 함께 치면, 저들은 놀라움에 소란스러워져서 대비할 바를 모르게 되니, 저들을 깨는 것은 필연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병력을 한데 모으면, 저들은 성을 공격하기에만 몰두하며 다른 것은 걱정하지도 않게 될 것이니, {우리에겐} 좋은 계책은 아닐 것입니다. 게다가, 군사의 많음을 시위하게 되면 {우리가} 겁나고 두려워하는 것이 되어, 사기가 싸워보기도 전에 먼저 꺾일까 걱정됩니다.”라 하였다.
★ <廆>猶疑之. <遼東><韓壽>, 言於<廆>, 曰;“<悉獨官>有「憑陵之志」, 将驕卒悽, 軍不堅密. 若奇兵卒起, 掎其無備, 必破之策也.” <廆>乃聼<翰>留<徒河>. <悉獨官>, 聞之, 曰; “<翰>, 素名驍, 果今不入城. 或能為患, 當先取之. 城不足憂.” 乃分遣数千騎襲<翰>. <翰>, 知之, 詐為<段>氏使者, 逆於道, 曰;“<慕容翰>久為吾患, 聞當擊之, 吾已嚴兵相待, 宜速進也.” 使者旣去, <翰>卽出城設伏以待之. <宇文>氏之騎, 見使者, 大喜馳行, 不復設備, 進入伏中. <翰>, 奪擊盡獲之, 乘勝徑進, 遣間使語<廆>出兵大戰.
☆ <외>가 그래도 이를 믿지 않으니, <요동>의 <한수>가 <외>에게 말하길; “<실독관>은 큰 것을 믿고 기댈 생각이겠으나, 장차 우쭐한 병졸들이 처연해지면 군대는 엉성하여 질 것입니다. 그때 느닷없는 군병들이 내달으면, 대비가 없었기에 우왕좌왕 할 것이니, 반드시 이길 수 있는 계책인 것입니다.”라 하였다. 이에 <외>가 <한>을 <도하>에 머물러 있으라고 허락하였다. <실독관>은, 이 소식을 듣고서, 말하길; “<한>은, 평소에 날래기로 이름이 있더니만, 과연 지금 성으로 들어가지 않고 있다. 혹시라도 골칫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니, 응당 먼저 쳐서 잡아야 할 것이다. 성을 {빼앗는 것은} 걱정꺼리도 되지 못한다.”라 하고는, 수천 기를 나누어 보내 <한>을 습격하게 하였다. <한>은, 이리 될 것을 알고는, 가짜 <단{段}>씨 사자를 만들어서 귀로 길에 {<실독관>에게} 얘기하길; “<모용한>은 오래도록 우리에겐 골칫거리였습니다. 소식을 듣는 대로 그를 치십시오. 우리{<단>씨}는 이미 엄중한 병력으로 서로 대치하고 있으니, 속히 진격하여야 할 것입니다.”라 하게 하였었다. 그리고는, 사자가 이윽고 떠나자 곧바로 <한>은 성 밖으로 나가서 매복을 두어 <우문>씨의 군대를 기다리게 하였다. <우문>씨의 기병들은, 사자를 만나보더니, 크게 기뻐하면서 내달려서 제대로 대비를 하지 않은 채 복병이 있는 곳으로 들어왔다. 이에, <한>은, 두들겨 짓이고 사로잡으며, 승승하여 빠르게 진격하였고, 몰래 사자를 <외>에게 보내서 출병하여 큰 싸움을 벌이자고 알렸다.
★ <廆>, 使其子<皝>與長史<裵嶷>, 将精銳為前鋒, 自将大兵継之. <悉獨官>, 初, 不設備, 聞<廆>至, 驚, 悉衆出戰. 前鋒始交, <翰>将千騎, 從旁直入其營, 緃火焚之. 衆皆惶擾, 不知所為. 遂大敗, <悉獨官>僅以身免. <廆>, 盡俘其衆, 獲皇帝玉璽三紐. <崔毖>, 聞之, 懼, 使其兄子<燾>詣<棘城>僞賀. 會三國使者亦至, 請和, 曰;“非我本意. <崔><平州>敎我耳.” <廆>, 以示<燾>, 臨之以兵, <燾>懼首服. <廆>, 乃遣<燾>皈謂<毖>, 曰;“降者上策, 走者下策也.” 引兵隨之. <毖>, 與数十騎, 棄家, 犇<高句麗>, 其衆悉降於<廆>. <廆>, 以其子<仁>為征虜将軍, 鎭<遼東>, 官府市里案堵如故. <高句麗>将, 如<奴子>, 據于<河城>. <廆>, 遣将軍<張統>, 掩擊擒之, 俘其衆千餘家. 以<崔燾>・<高瞻>・<韓恆>・<石琮>皈于<棘城>, 待以客禮.】
☆ <외>는, 자기의 아들 <황>과 장사 <배억>를 시켜 정예병을 끌고 전봉을 서게 하고, 자신은 대군을 이끌고 뒤따랐다. <실독관>은, 애당초 대비가 없었기에, <외>가 다가오고 있음을 듣자 놀라면서, 모든 병사를 나아가 싸우게 하였다. 전봉이 서로 부닥치자, <한>이 1,000기를 거느리고 측면에서 곧바로 영내로 달려들어 모조리 불을 질러 태우니, {<실독관>의} 무리들 모두는 놀라고 두려워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대패하였고, <실독관>은 가까스로 몸을 피하였다. <외>는, 그 무리들을 모조리 사로잡고, 황제 옥새 세 개를 노획하였다. <최비>는, 이 소식을 듣고는 두려워하며, 자기 형의 아들인 <도>를 시켜 <극성>으로 가서 거짓 축하 모임을 하게 하였더니, 세 나라의 사신들 역시 도착하여 화친을 청하며 말하길; “우리들 본시의 뜻은 아니었습니다. <최><평주>가 우리에게 그리 하라고 하였습니다.”라 하였다. <외>가 <도>를 곁에 세워놓고 병사를 시켜 지켜서있게 하였더니, <도>는 두려움에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외>가, <도>를 돌려보내어, <비>에게 이르길; “항복하면 상책이고, 도망하면 하책이다.”라 하고는, 병사를 이끌고 사자의 뒤를 따랐다. <비>는, 수십 기만을 데리고 가속은 버린 채, <고구리>로 도망하였고, 그의 무리들은 모두 <외>에게 투항하였다. <외>가 아들 <인>을 정노장군으로 삼아 <요동>의 진을 치니, 관부와 저자 모두는 옛날과 같아졌다. <{고}노자> 같은 <고구리> 장수 가 <하성>에 진을 치고 있었다. <외>는 <장통>을 보내 엄격하여 그 장수를 사로잡고 그의 무리 천여 가도 사로잡았다. <최도>・<고첨>・<한긍>・<석종>도 <극성>으로 귀부하기에 객례로 대하였다.】라고 한다.
◎ 十二月, <高卿>, 與<張統>戰于<河城>, 敗死. 上, 命<方夫>率<玄菟>軍, 徃救之. <方夫>, 不向<河城>, 而直指<遼東>. <廆>, 使其子<翰>, 救<仁>. <翰>以善戰, 聞乃命<方夫>互相守界, 以為持久之計. <統>率<河城>千余家而皈. <北海><鄭林>皈<廆>. <廆>, 遺以車・ 牛・粟・帛, 皆不受, 躬耕於野. <廆>献三璽於<建康>. <高句麗>数侵<遼東>, <廆>遣<翰>・<仁>禦之. 是歲, <蒲洪>降於<趙>主<劉曜>.
○ 12월, <고경{=<高句麗>将如<奴子>}>이 <하성>에서 <장통>과 싸우다 패하여 죽었다. 상이 <방부>에게 <현도>의 군사를 이끌고 가서 <하성>을 구하라 하였더니, <방부>는 <하성>으로 가지 않고 <요동>으로 곧바로 달려갔고, <외>는 아들 <한>을 시켜 <인>을 구하게 하였으며, <한>은 잘도 싸워냈다. 상은 이 소식을 듣고 <방부>에게 피아간의 경계를 지키라 하였다. 이는 오래 버티기를 하는 계략이었다. <장통>은 <하성>에 있던 천여 가를 이끌고 돌아왔다. <북해>의 <정림>이 <외>에게 귀부하니, <외>는 수레・소・조・비단을 하나도 거두어가지 않았고, 스스로는 들판에서 경작하였다. <외>가 옥새 3개를 <건강>에 바쳤다. <고구리>가 여러 번 <요동>을 쳤으나, <외>가 <한>과 <인>을 보내 막아냈다. 이 해에 <포홍>은 <조{前趙}>주 <유요>에게 투항하였다.
◎ 二十一年庚辰, 正月, <楽浪王><仙方>薨. 上, 哭哀之, 曰;“昨年<仙玉>戰死. 今春, 三父棄我. 何奪朕股肱之甚乎.” 命<槨>返, 葬于<馬山>. 上, 與<周>皇[后], 親臨立祠. <方>, 美風儀, 有權術, 能愛人下士. 中興帝業, 而仍欲簒奪, 為<周>皇后所沮, 遂知天命所在, 務進南西, 事未成而薨, 年六十四. 尙, 多精力而惑於<楽浪>少女, 而沈疾遽劇. 人多惜之. <方>, 能知大體, 而不識禮節, 烝<乙>太后如其妻. 太后, 臨崩, 命<方>殉之. 上, 以其爲重臣, 不可殉於小節, 而止之. 夢, 太后責其負約, 心常缺然. 至是, 夢見太后怒拔其根, 而病劇. <楽浪>女亦暴死. 人以爲太后靈. <于豊>太輔, <椽方>左輔, <談河>右輔. <豊>・<方>皆外戚大家. <河>, 寒微功臣, 人以爲狗尾貂. <周>皇后生子<得>. <劉曜>攻<陣倉>, 拔<草壁>, 又拔<陰密>, 而還<長安>. <段末柸>攻<段匹磾>破之. <匹磾>謂<邵續>, 曰;“吾, 本夷狄, 以慕義破家. 君不忘久要. 請相與共擊<末柸>.” <續>, 許之, 遂相與追擊<末柸>, 大破之. <匹磾>, 與弟<文鴦>, 攻<薊>. <石勒>知<續>勢孤, 遣<虎>圍<厭次>, <孔萇>攻<續>別營十一下之. <續>, 自出擊<虎>, 為<虎>所執, 使降其城, <續>不聼.
○ 21년{단기2653년/AD320}경진, 정월, <낙랑>왕 <선방>이 죽으니, 상이 곡하여 슬퍼하며 말하길; “작년엔 <선옥>이 전사하더니, 이 번 봄에는 친족 부로 세 명이 나를 버렸다. 어찌하여 짐은 고굉지신{팔과 다리 같은 신하}을 앗김이 이리 심한고.”라 하고는, <곽{선방의 아들}>에게 돌아오라 명하였고, <마산>에 묻어주었다. 상과 <주>황후가 친히 왕림하여 사당을 세웠다. <방>은 풍채가 멋졌으며, 권모와 술수도 좋았고, 타인과 아랫사람들을 잘 돌보아주었다. 제를 세우던 중에 찬탈을 획책하기도 하였으나 <주>황후에 의해 저지되었고, 끝내는 천명의 소재를 알았으며, 직무에 임하여서는 남서쪽의 땅을 넓히려 애썼으나 그 일을 이루지 못하고 나이 64살에 죽었다. <방>은 정력이 좋음을 자랑하다가, <낙랑>의 젊은 여인에 미혹되어 병이 깊어지더니 갑자기 심하여졌었다. 사람들이 이를 애석해 하였다. <방>은, 큰일을 잘도 헤쳐 나아갔으나, 예절을 알지 못하여 <을>태후를 자기의 처에게 하듯이 치붙었다. 태후가 죽음에 임박하여 <방>에게 따라죽으라고 명하자, 상은 그가 중신임을 들어 작은 예절을 따라 죽을 필요는 없다고 하여 그의 순사를 막아주었다. 꿈에 태후가 나타나 약조를 어긴 것을 책망하니, 마음이 항상 찜찜하였었는데, 근자에는 꿈에 태후가 노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그의 뿌리를 뽑아버렸더니 병이 심하여졌었다. <낙랑>여인 또한 갑자기 죽었으니, 사람들은 태후의 영령이 그리 한 것으로 여겼다. <우풍>을 태보로, <연방>을 좌보로, <담하>를 우보로 삼았다. <우풍>과 <연방>은 모두 외척 대가 집의 사람이었으나, <담하>는 한미한 출신의 공신이어, 사람들이 그를 구미초{개꼬리로 만든 관식}로 여겼다. <주>황후가 아들 <득>을 낳았다. <유요>가 <진창>을 공격하였다. <초벽>을 빼앗았고 또한 <음밀>도 빼앗고는 <장안>으로 돌아갔다. <단말배>가 <단필제>를 공격하여 깨뜨리니, <필제>가 <소속>에게 “나는, 본시 이적이어, 의를 귀히 여겼다가 집안을 잃었소. 군께서는 서로 힘을 합쳐서 <말배>를 치자고 오랫동안 요청하셨던 것을 잊지 않으셨겠지요?”라 하자, <소속>이 들어주었다. 이윽고 함께 <말배>를 추격하여 대파하였다. <필제>는 아우인 <문앙>과 함께 <계>를 공격하였다. <석륵>은 <소속>의 군세가 외톨이임을 알고는, <석호>을 보내서<염차>를 에워쌌고, <공장>을 보내어 <소속>의 별영 11곳을 쳐서 떨어뜨렸다. <소속>은 스스로 성에서 나와 <석호>를 치다가 <석호>에게 붙잡혔다. <석호>가 성을 항복하게 하라고 시켰으나, <소속>은 듣지 않았다.
◎ 三月, 幸<新城>, 監軍. 六月, <劉曜>, 作<酆明観>・<西宫>・<陵霄臺>. 又營壽陵, 周圍四里, 深三十五丈, 璘為椁, 飾以黃金. 工費累億萬. 諫者, 以是資軍, 足以<平>・<凉>州兼<吳>・<蜀>及<石勒>・<曹薿>也. <曜>乃罷其役. <祖逖>攻<石勒>. <勒>, 患之, 修<逖>祖墓而返其降者. <逖>, 德之, 緩其侵暴. <勒>, 以奸計, 懈<逖>如此. 七月, -- 이하 28~29자 해독 불가 --. 八月, <比流>築射臺于宮西. 朔・望, 佐平以下皆習射應試. <徐龕>, 為<虎>所困, 乞降. <勒>許之. 九月, <慕容仁>復襲<休都>. 我軍失利甚多, <休都>・<于京>死之. 十二月, <方夫>・<松巨>伐<仁>, 不克而還.
○ 3월, <신성>으로 거둥하여 군대를 살폈다. 6월, <유요>가 <풍명관>과 <서궁> 및 <릉소대>를 만들었다. 또한 수릉도 쌓고자 하였는데, 둘레는 4 리가 되고, 깊이는 35 길이나 되었으며, 동{구리}으로 곽을 만들고 황금으로 치장하니, 소요되는 비용은 합치니 수억만 금이나 되었다. 이에 간하는 자가 있어, 그 돈으로 군대를 꾸리면 <평{平}>・<량{涼}>주와 <오>・<촉>의 땅은 물론 <석륵>・<조의> 땅의 군대까지 아우를 수 있겠다 하니, <유요>가 그 공역을 파하였다. <조적>이 <석륵>을 치니, <석륵>은 그것이 골치 아파서 <조적>의 할아버지 무덤을 고쳐 쌓아주고는 투항하였던 자들도 돌려주었다. <조적>은, <륵>을 덕이 잇다고 여기어, 침입하여 난폭하게 함이 적어졌다. <석륵>이 간계로써 <조적>을 누그러뜨리려고 함이 이러 하였었다. 7월, -- 이하 28~29자 해독 불가 --. 8월, <비류>가 궁의 서쪽에 사대를 쌓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좌평 이하 모든 이들에게 활쏘기 훈련과 시험에 참여케 하였다. <서감>이, <석호>때문에 곤혹스러워서, 투항하겠다고 청하였더니, <석륵>이 들어주었다. 9월, <모용인>이 재차 <휴도>를 습격하여 왔다. 아군이 패하여 잃은 것이 심히 많았고, <휴도>와 <우경>이 거기서 죽었다. 12월에 <방부>와 <송거>가 <모용인>을 쳤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왔다.
◎ 二十二年辛巳, 春二月, 內裏大兄<觧玄>, 以<周>皇后寵, 擢為殿注簿, 與后共決政事. 太輔<于豊>諫;“<慕容廆>, {以}心腹之患, 其諸子皆英勇無比. 陛下, 太子皆幼, 嬖臣執政. 恐<廆>得知. 上, 大慚, 命<玄>出居于外. <比流>, 以庻弟<優福>爲內臣佐平, 乃其嬖臣也, 國人不悅. 果有太白昼見, 而蝗其國南.
○ 22년{단기2654년/AD321}신사, 춘2월, 내리대형 <해현>이 <주>황후의 총애를 받아 전주부{殿注簿}로 발탁되더니, 후와 함께 정사를 처결하였다. 태보 <우풍>이 간하길; “<모용외>는 심복들의 우환을 다스렸으며 그의 모든 아들들은 비할 데 없이 영특하고 용맹합니다만, 폐하께서는, 태자들 모두가 어리고, 폐신{정부의 노릇을 하는 신하}이 집정하고 있습니다. <외>가 이를 알아차릴까 두렵습니다.”라 하였더니, 상이 크게 뉘우치고는 <해현>에게 밖으로 나가서 거처하라고 명하였다. <비류>가 서제인 <우복>을 내신좌평으로 삼았는데, 이 자가 폐신이어서, 국인들이 흔쾌하게 여기지 않았다. 과연 태백성이 낮에 나타나고, 그 나라의 남쪽에서는 황충이 일었다{또는, 점괘가 태백성이 낮에 나타나고 남쪽에서는 황충이 일 것이라고 나왔다}.
◎ 三月, <石勒>攻<幽州>刺史<段匹磾>於<厭次>, <孔萇>攻其統內諸城, 悉拔之. <文鴦>力戰死之, <匹磾>爲<石勒>所殺, <幽>・<冀>・<幷>三州皆入於<後趙>. 十二月, <廆>, 立子<皝>爲世子, 作東橫, 以<平原><劉讚>爲祭酒. 使<皝>, 與諸生, 同受業. <廆> 得暇, 亦親臨, 聼之. <皝>, 雄毅, 多權略, 喜經術, 國人稱之. <廆>, 徙<慕容翰>鎭<遼東>, <慕容仁>鎭<平郭>. <翰>, 撫安民・夷, 甚有威惠. <仁>亦次之.
○ 3월, <석륵>이 <유주>자사 <단필제>를 <염차>에서 공격하고, <공장>이 <단필제>의 통치 안에 있던 모든 성을 쳐서 빼앗았다. <문앙>은 힘써 싸우다 죽었고, <필제>는 <석륵>에게 죽었으며, <유주>・<기주>・<병주>의 세 주는 모두 <후조>의 차지가 되었다. 12월, <모용외>가 아들 <황>을 세자로 삼았고, 궁의 동쪽에 학당을 만들고, <평원><유찬>을 제주로 삼았으며, <황>은 모든 소생들과 함께 수업하게 하였고, <외>도 짬을 내어 친히 참석하여 들었다. <황>은 뜻이 크고 굳세었으며, 권략도 풍부하고 경술 배우기를 좋아하였기에, 나라사람들이 <황>을 칭송하였다. <외>는 <모용한>을 <요동>으로 옮겨서 진을 치게 하고, <모용인>은 <평곽>에 진을 치게 하였다. <한>은 민간과 이인들{동쪽 사람들}을 다독이고 편안케 함에 있어 위엄과 사랑이 심히 그득하였다. <인>은 그 다음이었다.
◎ <拓跋猗[남쪽오랑캐이름 이]>妻<惟>氏, 忌<代>王<鬱律>之疆, 恐不利於其子, 乃殺<鬱律>而立其子<賀傉>, 大人死者数十人. <鬱律>之子<什翼犍>, 幼在襁褓, 其母<王>氏匿於袴中, 祝之, 曰;“天苟存汝, 則勿啼.”久之, 不啼, 乃得免. <惟>氏, 專制國政, 遣使聘<後趙>, <後趙>人謂之女國使. 以<于卓>女<腆>為東宮妃, <乙>太后出也. 行其遺命.
○ <탁발의이>의 처 <유>씨는, <대>왕 <탁발울률>이 강성함을 싫어하였으며, 자기의 아들에게 불리 할 것을 두려워하여 끝내 <울률>을 죽이고는, 자기 아들을 세웠더니, 이때 죽은 대인들이 수십 인이었다. <울률>의 아들 <십익건>은, 어려서 강보에 싸여 있었는데, 그의 어미 <왕>씨가 치마 속에 숨기고는 기원하길 “천명이 구차하나마 너에게 있으니, 오래도록 울지 말거라.”라고 하였는데, 울지 않아서 결국 죽음을 면하였다. <유>씨가 국정을 움켜쥐고 <후조>에 <사신>을 보내서 예의를 차리니, <후조>사람들은 여자가 다스리는 나라의 사신이라 하였다. <우탁>의 딸 <전>을 동궁비로 삼았다. <을>태후 소생이었다. 유명을 따른 것이었다.
◎ 二十三年壬午, 春正月, 太輔<于豊>薨, <椽方>代之, <談河>左輔, <方夫>右輔, <方象><玄菟>太守. 二月, <後趙>王<勒>, 立子<弘>為世子, 遣<石虎>将精卒四萬擊<徐龕>, <龕>堅守不戰, <虎>築長圍守之. 四月, <劉曜>妻<羊>后卒, 謚曰<献文>. 七月, <石虎>, 拔<泰山>, 執<徐龕>送<襄國>. <石勒>, 盛之以囊, 於百尺樓上撲殺之. 命<王伏都>等妻子刳而食之, 阬其降卒三千人. 十二月, <劉曜>, 葬其父母於<粟邑>, 大赦. 陵, 下周二里, 上高百尺, 計用六萬夫, 作之百日乃成. 役者夜作, 継以脂燭. 民甚苦之, <遊>子<遠>諫, 不聼. <皝>, 伐<段末柸>于<令支>, 掠千戶而皈.
○ 23년{단기2655년/AD322}임오, 춘정월, 태보 <우풍>이 죽어, <연방>이 대신하고, <담하>가 좌보를, <방부>가 우보를 맡고, <방상>이 <현도>태수가 되었다. 2월, <후조>왕 <석륵>이 아들 <홍>을 세자로 삼았다. <석호>에게 정예병졸 4만을 주어서 <서감>을 치게 하였다. <서감>은 굳게 지키고 싸우려들지 않으니, <석호>는 길게 진을 둘러치고 지켰다. 4월, <유요>의 처 <양>후가 죽었다. 시호를 <헌문>으로 하였다. 7월, <석호>가 <태산>을 빼앗고 <서감>을 붙잡아 <양국>으로 보내니, <석륵>은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하여, 자루에 처넣어 백 척 루상으로 올려 두들겨 죽이고, <왕복도> 등의 처자식에게 살점을 도려내어 먹게 하였으며, 항복한 병졸 3천은 땅에 묻어버렸다. 12월, <유요>가 자신의 부모를 <속읍>에 장사하고, 널리 사면하였다. 무덤은 아래 둘레가 2 리에 높이는 100척이나 되었고, 비용을 합산하면 장정 6만 명을 써서 100일 걸려서 완성하였다. 역부들은 밤이 되면 짐승기름으로 불을 밝히며 계속하였다. 민초들이 심히 고통스럽다고, <유>의 아들 <원>이 간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모용황>이 <령지>에서 <단말배>를 토벌하고 1,000호를 약탈하여 돌아갔다.
◎ 二十四年癸未, 三月, <高喜>女生<觧玄>女. 是為<觧>太后. <勒>遣使於<慕容廆>, <廆>執送<建康>. 四月, <烽山>后生皇子<羲>. 六月, <周>皇后生皇子<錫>. 七月, 太輔<椽方>薨, <萧友>代之. <棤>, <安平>太守. <趙>主<曜>, 自将圍<隴城>, 別遣兵圍<上邽>陣. <安>, 頻出戰, 輙敗. 右軍将軍<劉幹>, 攻<平襄>, 克之. <隴>上諸縣悉降. <安>, 留其将<楊伯支>・<姜冲兒>守<隴城>, 自帥精騎突圍出奔<陝中>. <曜>, 遣将軍<平先>等追之. <安>, 左揮七尺大刀, 右運丈八蛇矛, 近則刀矛俱發輙殪五六人, 遠則左右馳射而走. <先>, 亦勇捿如飛, 與<安>搏戰, 三交, 遂奪其蛇矛. 會日暮雨甚, <安>, 棄馬, 與左右匿於山中. <趙>兵, 索之, 不知所在. 明日, <安>遣其将<石容>覘<趙>兵, <趙>兵輔威将軍<呼延靑人>獲之, 拷問<安>所在, <容>卒不肯言, <靑人>殺之. 雨霽, <靑人>尋其迹, 獲<安>於<澗曲>, 斬之. <安>, 善撫将士, 與同甘苦, 及死, <隴>上人思之, 為作<壮士之歌>. [八月], <石虎>圍<曹嶷>於<廣固>, <嶷>出降, 送<襄國>殺之.
○ 24년{단기2656년/AD323}계미, 3월, <고희>의 딸이 <해현>의 딸을 낳았다. 이 아이가 {자라서 후에} <해>태후가 된다. <석륵>이 <모용외>에게 사신을 보냈는데, <모용외>는 이 사신을 잡아서 <건강>으로 보냈다. 4월, <봉산>후가 황자 <희>를 낳았다. 6월, <주>황후가 황자 <석{錫}>을 낳았다. 7월, 태보 <연방>이 죽어, <소우>가 이를 대신하고, <석{棤}>이 <안평>태수가 되었다. <조{前趙}>주 <유요>가, 스스로 장수가 되어 <롱성>을 포위하고, 따로 군병을 보내 <상규>를 포위하여 진을 치니, <안>이 빈번히 나와서 싸웠으나 번번이 패하였다. 우군장군 <유간>이 <평양{平襄}>을 쳐서 이겼다. <롱>상의 모든 현들이 항복하였다. <안>은, 장수 <양백지>와 <강충아>를 남겨서 <롱성>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정예기병을 이끌고 포위를 뚫고 도망하여 <섬중>으로 숨어들었다. <유요>가 장군 <평선> 등을 보내 추적하였다. <안>은 왼손으로는 7척 대도를 휘두르고 오른손으로는 한 길 길이 팔사모를 썼으니, 가까운 적은 한꺼번에 칼과 창으로 대여섯을 베었고, 멀리 있는 적은 좌우로 활을 쏘아대며 치달렸다. <평선> 또한 용맹하고 빠르기가 나르는 것 같았는데, <안>과 맞붙어 3합을 싸워서, 그의 창을 탈취하였다. 저녁이 되고 비가 심하게 내리자, <안>은 말을 버리고 측근과 함께 산중으로 숨어들었다. <조>병들은 수색하였으나 숨은 곳을 알 수 없었다. 다음날, <안>이 장수 <석용>을 시켜 <조>의 군병을 살피게 하였더니, <조>병의 보위장군 <호연청인>이 <석용>을 사로잡았고, <안>의 소재를 고문하였으나 <석용>이 죽어도 말하려 하지 않으니 <청인>이 그를 죽였다. 비가 멎자, <청인>이 흔적을 더듬어 <간곡>에서 <안>을 붙잡아서 죽였다. <안>은 장수와 병사들을 잘 다독거렸고, 그들과 동고동락하다 함께 죽었으니, <롱>상의 사람들은 그를 사모하여 <장사지가>를 지었다. <석호>가, <광고>에서 <조억>을 포위하였더니, <억>이 나와서 항복하기에, <양국>으로 보내서 죽였다.
◎ 九月, 畋于<杜訥原>. 左輔<談河>薨, <方夫>代之. <再生>右輔, <再生>婿<椽檍>代<再生>理<北部>. 以婿代理之風, 始此. <腆>生<完(<斯由>長子)>.
○ 9월, <두눌원>에서 사냥하였다. 좌보 <담하>가 죽어, <방부>가 이를 대신하고, <재생>이 우보가 되었다. 이에 <재생>의 사위 <연억>이 <재생>을 대신하여 <북부>를 다스렸는데, 이로써 사위로 하여 대신 다스리는 풍조가 시작되었다. <전>이 <완(<사유>장자)>을 낳았다.
◎ 二十五年甲申, 二月, 太輔<萧友>薨, <方夫>代之, <再生>左輔, <烏陌南>右輔, <陌南>婿<棰>代<陌南>理「中部」. 是歲, <代>王<賀傉>始親國政. 以諸部多未服, 乃築城於<東木根山>, 徙居之.
○ 25년{단기2657년/AD324}갑신, 2월, 태보 <소우>가 죽어, <방부>가 이를 대신하고, <재생>이 좌보가, <오맥남>이 우보가 되었다. <맥남>의 사위 <추>가 <맥남>을 대신하여 「중부」를 다스렸다. 이 해에, <대>에서는 왕인 <하녹>이 직접 국정을 살피기 시작하였다. 모든 부 중에 여럿이 아직 복속하지 않고 있어서, <동목근산>에 성을 쌓고 옮겨 살았다. (계속)//

第十五世<美川大帝>紀(16년~25년)
◎ 十六年乙亥, 春二月, <方夫>・<松巨>・<高植>等拔<玄菟城>, 斬其守将<王皚>等三十人, 盡獲其宝貨. 以<方夫>為鎭西太将軍・<玄菟>太守・<平海公>兼領<最彘>・<陽化(今<昆 都>■北界)>・<鞨>部(<安國君>移<鞨>之種)・<長嶺>之地. 五月, <慕容廆>, 遣其從弟<[苟]>, 入朝献土物・人蔘・甘草・猯鼠皮等五十種. 上, 謂<苟>, 曰;“汝兄, 若知天命, 則宜以<河西>之地来献互守境界.” <[苟]>曰;“小國乃大<晉>之臣. 何敢擅乎.” 上, 笑, 曰;“吾欲取者, 大<晉>也. 皈語汝兄, 早速来降. 不然, 未免<王皚>・<耿薈[蒼?]>.” <苟>曰;“<最彘>・<陽化>亦是<河北>而臣祖所起之地. 陛下, 何故取之耶.” 上, 曰;“我世祖<琉璃明皇>十一年, <扶芬奴>平此地為屬領久矣. 汝祖, 亦非我臣乎.” <苟>曰;“臣祖之祖始起于<紫蒙川>而與<宇文>世讐, 暫移乎此, 而更下<巴東>・<烏林>・<大棘>則<最彘>以南, 皆吾地.” 上, 曰;“<河南>之地悉屬于朕, 則<最彘>小壤亦讓于汝可也.” <苟>知不可得皈告<廆>. <廆>大怒遂絶和. 秋七月, 上, 與<周>皇后, 巡至<玄菟城>, 勞将士. 八月, 入<南蘇>, 太史奏星. 九月, 畋于<西川之原>而還都. 十一月, <乙>太后行<白龍大祭>于<陽隧>. 孛于東北.
○ 16년{단기2648년/AD315}을해, 춘2월, <방부>・<송거>・<고식> 등이 <현도성>을 쳐서 빼앗고, 수장인 <왕애> 등 30인의 목을 베고, 보화도 모조리 빼앗았다. <방부>를 진서대장군・<현도>태수・<평해공>으로 삼고, <최체>・<양화(금<곤도>■북계)>・<갈>부(<안국군>이<갈>지 종)・<장령>의 땅도 함께 다스리게 하였다. 5월, <모용외>가 종제인 <구>를 보내 입조하여 토산물과 인삼・감초・단서피 등 50종을 바쳤다. 상이 <구>에게 “네 형이 천명을 알고 있다면, 곧 <하서>의 땅을 바치고서 서로 간의 경계를 지켜야 할 것이다.”라 일렀더니, <구>가 “저희 작은 나라는 큰 <진>의 신하입니다. 어찌 저희 맘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라 아뢰었다. 이에 상이 웃으면서 “우리가 취하려는 것이 그 큰 <진>이다. 돌아가거든 네 형에게 조속히 찾아와 항복하라고 전하라. 그리하지 않으면 <왕애>와 <경회[창?]>의 꼴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고 일렀다. 이에 <구>가 “<최체>와 <양화>는 역시 <하북>의 땅이고, 저희 할아버님이 일어서신 곳입니다. 폐하께서는 무슨 연고로 그곳을 가지려 하십니까?”라 여쭈니, 상이 “우리의 세조이신 <유리명황> 11년에 <부분노>가 그 땅을 평정하여 속령이 된지 오래이다. 너희 할아버지 역시 내 신하가 아니더냐?”라 일렀고, <구>가 “신의 할아버님의 할아버님께서 <자몽천>에서 처음 일어나시고 나서 <우문>의 집안과는 원수가 되어, 잠시 <하서>의 땅으로 옮겼다가, 다시금 <파동>・<오림>・<대극>의 땅으로 내려왔던 즉 <최체> 이남이며, 이들 모두는 저희들의 땅입니다.”라 답하니, 상은 “<하남>땅도 모두가 짐에게 속하지만, <최체>의 작은 땅은 너희에게 내어줄 수 있다.”라 하였다. <구>는 무엇을 얻어 돌아가서 <외>에게 고해야 할지를 몰랐다. <외>는 단단히 화가 나서 화친하기를 그만두었다. 추7월에 상이 <주>황후를 데리고 순시하여 <현도성>에 이르러서 장수와 장사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8월에는 <남소>에 들렀더니 태사가 별자리 변동에 대하여 상주하였다. 9월에는 <서천원>에서 사냥하고 도성으로 돌아왔다. 11월, <을>태후가 <양수{산의 남쪽 동굴무덤}>에서 <백룡대제>를 지냈다. 혜성이 동북에서 나타났다.
◎ 十七年丙子, 春正月, 以<萧友>爲「南部」大使者, <劉長句>爲<粘蟬(盤山)>太守, <芙昇>爲<馬川>太守, <周淡><楽浪(海城)>太守, <靑見>左輔, <于豊>右輔, <烏陌南>「中部」于臺. <陌南>, 以<烏伊>之冢孫, 密謀暗殺<仙方>, 事敗. 至是, 復起. <百濟>, 有大星墜其西邊, 而大旱. 三月, <代>王<猗盧>, 愛其少子<比延>欲以爲嗣, 使長子<六脩>出居<新平城(<建興>元年<猗盧>築<新平城>,<唐>謂之新城, 在<朔州>界)>而黜其母. <六脩>有駿馬日行五百里, <猗盧>奪之以與<比延>. <六脩>來朝, <猗盧>, 使拜<比延>, <六脩>不從. <猗盧>, 乃坐<比延>於其步輦(步輦不駕馬使人輓之), 使人導從出遊. <六脩>, 望見, 以爲<猗盧>伏謁路左, 至乃<比延>. <六脩>慙怒而去. <猗盧>, 召之, 不至, 大怒帥衆討之, 爲<六脩>所敗. <猗盧>微服逃民間, 有賤婦人識之, 遂爲<六脩>所弑. <拓跋普根>, 先守外境, 聞難, 來赴攻<六脩>滅之. <普根>代立, 國中大亂. 四月, <普根>卒. 其子<始生>, <普根>母<惟>氏立之(<惟>氏<猗[남쪽오랑캐이름 이]>妻). <百濟>, 四月, 王都大井溢, 黑龍出于其中, 故以爲北國來呑之兆, 云. 五月, <楽浪王><仙方>入朝告<晉>人因<劉曜>之亂, 降者甚多. 命, 皆厚待之. 十一月, <棠山公><高朴兒>薨, 年六十九. <朴兒>, 以<雉祠>之主, 爲扶杜功臣, 位至一品而未甞立朝爭功, 人以爲難. <普根>子死, 從父<鬱律>立.
○ 17년{단기2649년/AD316}병자, 춘정월, <소우>를 <남부>대사자로, <유장구>를 <점선(반산)>태수로, <부승>을 <마천>태수로, <주담>을 <락랑(해성)>태수로, <청견>을 좌보로, <우풍>을 우보로, <오맥남>을 「중부」우대로 삼았다. <맥남>은, <오이>의 종손인데, <선방> 암살을 밀모하였다가 일이 틀어진 후, 이제서 다시 기용된 것이었다. <백제>에서는 큰 별이 서쪽 변방에 떨어지고 큰 가뭄이 있었다. 3월, <대>왕 <의로>는, 어린 아들 <비연>을 아껴서 <비연>으로 후계를 세우려고, 큰 아들 <육수>를 <신평성(<건흥>원년<의로>축<신평성>,<당>위지<신성>,재<삭 주>계)>으로 나가살게 하고 <육수>의 모친도 내쳤으며, <육수>에게는 하루에 5백리를 가는 좋은 말이 있었는데, <의로>가 이것을 빼앗아 <비연>에게 주어버렸다. 이에 <육수>가 조정으로 찾아갔더니, <의로>가 <비연>에게 절하라고 시켰고, <육수>는 따르지 않았다. <의로>가 이윽고 <비연>을 보련(보련불가마사인만지)에 앉혀서 사람들을 앞세우고 뒤따르게 하여 나다니게 하였다. <육수>는 멀리서 바라보다가 그것이 <의로>인 줄로 알고 길 좌측에 엎드려서 보았더니, 다다른 것은 <비연>이었다. <육수>는 이에 참담하고 화가 치밀어 곁을 떠났다. <의로>가 돌아오라 불렀으나 돌아오지 않았고, 이에 <의로>가 무리를 이끌고 <육수>를 토벌하였으나, 오히려 <육수>에게 패하였다. <의로>는 미복으로 민간으로 숨어들었으나, 비천한 아낙에게 들켜서 <육수>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탁발보근>은 우선하여 외부 경계를 서다가, 나라의 꼴이 여의치 않아 보이자, <육수>를 찾아가 쳐서 멸하였다. <보근>이 대신 서니, 나라 안이 크게 어지러웠다. 4월에 <보근>이 죽으니, <보근>의 아들 <시생>을 <보근>의 어미 <유>씨가 세웠다(<유>씨<의이>처). <백제>에서는 4월에 도성의 큰 우물이 흘러넘쳤고, 흑룡이 그 우물에서 나왔다. 이에 사람들은 북쪽의 나라가 쳐들어 와서 나라를 빼앗을 징조라 여겼다고 한다. 5월, <낙랑왕><선방>이 입조하여, <유요>가 난리를 치는 통에 찾아와 투항하는 <진>의 사람들이 심히 많음을 고하였더니, 그들 모두를 후하게 대하라는 명이 있었다. 11월, <당산공><고박아>가 나이 69살에 죽었다. <박아>는 <치사>의 주인으로, 부두공신이 되어 품계가 1품에까지 올랐는데도, 조정에서는 공을 다투지 않았더니, 사람들이 어려워들 하였다. <보근>의 아들이 죽어, <보근>의 종부인 <탁발울률>이 섰다.
◎ 十八年丁丑, 春三月, <周>皇后生子<玟>. <新羅>, 春夏旱, <訖觧>錄囚而原之. 五月, 上, 與<周>皇后, 如<卒本>謁<東明庙>, 巡至<柵城>而還. 命<高植>・<棤>・<于京>等, 伐<東海>, 拔之. 以<植>為太守. 七月, <肖門院>為<象院>, <免>后主. <芙>氏<菱院>主, <乙>太后<白竜院>主. 是年, <司馬睿>以<廆>爲<昌黎公>不受. <廆>, 遣<王濟>浮海詣<建康>, 勧進. <漢>主<聦>, 信譖, 殺其弟<乂>. <廆>庶兄<吐谷渾>卒. 子<吐延>嗣, 長大有勇力, <羌>・<胡>皆畏之.
○ 18년{단기2650년/AD317}정축, 춘3월, <주>황후가 아들 <민>을 낳았다. <신라>는 봄과 여름에 가뭄이 들자 <흘해>가 죄수들의 기록을 다시 살펴 사람들을 풀어주었다. 5월, 상이, <주>황후를 데리고, <졸본>에 가서 <동명묘>를 배알하고, 순행하여 <책성>에 이르렀다가 돌아왔다. <고식>・<석>・<우경> 등에게 명하여 <동해> 땅을 쳐서 빼앗았다. <고식>을 태수로 삼았다. 7월, <초문원>을 <상원>으로 바꾸어 <면>후가 주관하게 하고, <부>씨는 <릉원>을, <을>태후는 <백룡원>을 주관하게 하였다. 이 해에 <사마예>가 <모용외>를 <창려공>을 삼고자 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외>는 <왕제>를 배를 태워 <건강>으로 보내 {북쪽으로} 진격하라고 권하였다. <한{前趙}>주 <유총>은 참소를 믿고 자기 동생 <예>를 죽였다. <모용외>의 이복형 <토곡혼>이 죽자, 그의 아들 <토연>이 뒤를 이었는데, 몸집이 장대하고 용력이 있어, <강{羌}>족과 <호{胡}>족 모두가 범접하지 못하였다.
◎ 十九年戊寅, 春三月, 左輔<靑見>病免, <于豊>代之, <椽方>右輔. 去年, <聦>殺<愍帝>, 年十八. 至是, 凶問至<建康>, <睿>卽{位皇帝}. <遼西公><段疾陸眷>卒. 其子幼, 叔父<涉復辰>自立. <匹磾>自<薊>犇喪至<右北平>, <涉復辰>發兵拒止. <末柸>, 乘虗襲<復辰>, 自稱單于, 迎擊<匹磾>, 敗之. <匹磾>走還<薊>. <訖觧>, 下令國中, 無奪農時. 一切官役, 命皆停之. 夏五月, 遣<玄菟>小守<高卿>, 攻拔<河城>. <平州>刺史<崔毖>, 聞之, 遣使稱臣, 請, 與<宇文>, 共伐<慕容>而分其地. 遣<談河>于<宇文>・<段>氏, 而共謀討<廆>. <段匹磾>殺<劉琨>.
○ 19년{단기2651년/AD318}무인, 춘3월, 좌보 <청견>이 병으로 물러나니, <우풍>이 대신하고, <연방>이 우보가 되었다. 지난해 <유총>이 18살인 <민제{西晉,司馬鄴}>를 죽였는데, 지금에 이르러 그 흉한 소문이 <건강>에 다다랐고, <사마예{東晉,司馬睿}>가 황제위에 올랐다. <요서공><단질육권>이 죽자, 아들이 어려서, 숙부인 <섭복진>이 스스로 보위에 올랐다. <필제>가 <계>로부터 허둥지둥 조상하려 <우북평>으로 달려오니, <섭복진>이 병사를 일으켜 이를 막아섰다. 이에 <말배>는 허술한 틈을 타서 <복진>을 습격하고 스스로 「선우」를 칭하고 <필제>를 맞아 깨뜨렸다. <필제>는 달아나 <계> 땅으로 돌아갔다. <흘해>가 명을 내려 농사철엔 시간을 빼앗지 않게 하였고, 모든 관역은 명에 의해 중지되었다. 하5월, <현도>태수 <고경>을 보내서 <하성>을 쳐서 빼앗았다. <평주{東晉}>자사 <최비>가, 이 소릴 듣고는 사신을 보내와서 신하를 칭하면서, <우문>과 함께 연합하여 <모용>을 쳐서 그 땅을 나누어 가지자고 청을 하였다. 이에 <담하>를 <우문>씨와 <단>씨에게 보내어 <외>를 치자 공모하였다. <단필제>가 <유곤>을 죽였다.
◎ 秋七月, <乙>太后崩, 葬於<咄固大王>陵, 春秋五十八. 性聦敏, 多權術, 顔色佳䴡, 身長七尺, 善歌舞戱. 謣令人喜怒悲懼, 且挾媎術, 柔権貴如泥. 密贊大業, 上卽位, 尊爲太后. 參預政事頗多所失, 而不能禁之. 多畜私臣, 鑄金人, 專事荒淫, 國人鄙之. 是月, <鬱律>, 擊<劉虎>破之, 取其部落. 西取<烏孫>, 東兼<勿吉>以西. <漢>主<聦>死. 子<粲>立烝其母. <靳樊>・<武王>等, 皆年二十. 八月, <靳準>殺<漢>主<粲>, 以璽還<晉>, 曰;“自古, 無<胡>人爲天子.” <劉曜>・<石勒>共伐<靳準>, <準>為其下所殺. 十二月, <石勒>攻<平陽>, <靳明>走<曜>, <曜>盡殺<靳>氏.
○ 추7월, <을>태후가 죽어 <돌고대왕>릉에 장사하였다. 춘추 58세였다. <을>태후는 성품이 총민하고 권모술수가 많았으며, 안색은 예쁘고 고왔고 키는 7척이나 되었다. 노래하며 춤추고 놀기를 잘하였고, 망령된 명을 내리는 바람에 사람들을 희・노・비・구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두루 녹이는 재주가 있어 권력 있거나 귀한 자들을 진흙을 주무르듯 하였다. 대업을 숨어서 도왔다가, 상이 즉위한 뒤에 태후의 자리로 올려졌다. 정사에 끼어들어 일을 그르친 것이 많았는데, 이를 말릴 수도 없었다. 사신{情夫}이 많았고, 금인을 주조하여 놓고는, 황음하기로 일을 삼았으니, 나라사람{나라를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들이 <을>태후를 천하다 여겼다. 이달에 <탁발울률>이 <유호>를 쳐서 깨뜨리고, 그 부락을 취하였다. 서쪽으로는 <오손>의 땅을, 동쪽으로는 <물길>이서의 땅도 취하였다. <한{前趙}>주 <유총>이 죽었다. 아들 <찬{前趙,隱帝}>이 섰는데, 증모하였다. <근번>・<무왕> 등은 모두가 나이 20 살이었다. 8월에 <근준>이 <한>주 <유찬>을 죽이고, 새보를 <진>으로 돌려주면서 “옛날부터 <호{胡}>인들이 천자가 된 적은 없었다.”고 하였다. <유요{前趙,末帝}>와 <석륵{後趙,明帝}>이 함께 <근준>을 쳤고, <근준>은 자기 수하들에게 피살되었다. 12월, <석륵>이 <평양{平陽}>을 공격하니, <근명>은 <유요>에게로 도망하였으나, <유요>가 <근>씨들을 모조리 척살하였다.
◎ 二十年己卯, 春正月, <談河>自<遼東>還, 奏;“<段>氏有內乱, <宇文>最强. 而<慕容>新盛, 其勢不可豫測. 宜観二氏動靜, 而徐拾吾邊, 不失其機, 乃上策也.” 上嘉之. 二月, <石勒>, 遣左長史<王脩>, 献捷於<漢>. <漢>主<曜>, 遣兼司徒<郭汜>, 授<勒>太宰領・太将軍, 進爵<趙王>加殊禮, 出警入蹕如<曹公>輔<漢>故事. 拜<王脩>及其副<劉茂>, 皆爲将軍, 封列侯. <脩>舍人<曹平樂>, 從<脩>至<粟邑>, 因留仕<漢>, 言於<曜>, 曰;“大司馬遣<脩>等来, 外表至誠, 內覘大駕疆弱, 俟其復命, 将襲乘輿.” 時, <漢>兵實疲弊, <曜>信之. 乃追<汜>還, 斬<脩>於市. <勒>還至<襄國>, <劉茂>, 逃皈, 言<脩>死狀. <勒>, 大怒, 曰;“孤事<劉>氏, 於人臣之職, 有加矣. 彼之基業皆孤所為. 今, 旣得志還欲相圖. <趙王>・<趙帝>, 孤自為之. 何待於彼邪. 乃誅<曹平樂>三族.
○ 20년{단기2652년/AD319}기묘, 춘정월, <담하>가 <요동>에서 돌아와 상주하길; “<단>씨는 내란 중이며, <우문>은 가장 강성하여 있고, <모용>은 새로이 번성하여 그 위세를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마땅히 이 둘{<우문>과 <모용>}의 동정을 지켜보면서, 우리의 변방을 조용히 수습하고,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상책일 것입니다.”라 하니, 상이 흡족히 여겼다. 2월, <석륵>이 좌장사 <왕수>를 <한>에 보내 승첩을 바쳤다. <한>주 <유요>가, 사도직을 겸하게 하여 <곽사>를 보내, <석륵>에게 태재령・태장군을 제수하고, <조{후조}>의 왕으로 작위도 올려주고 수례{각별한 의전예법}도 얹어주었다. 나갈 때는 {경호와 의전을 위하여} 길거리 행인을 없애고 들어올 때는 길을 깨끗이 치우게 하여서 <조공{曹操}>이 <동한>을 섬기던 옛 얘기같이 하였다. <왕수>와 <왕수>의 차석인 <유무> 모두는 장군으로 삼고, 열후에 봉하였다. <왕수>의 사인 <조평락>이 <왕수>를 좇아 <속읍>으로 갔다가, 눌러앉아서 <한>을 섬기게 되자, <유요>에게 언질하기를; “대사마{<석륵>}가 <왕수> 등을 보냈는데, 겉으로는 지성을 다하고 속으로는 큰 가마{임금이 타는 수레;<유요>의 나라}의 강하고 약함을 살피다가, 재차 명령이 있기를 기다려서, 장차 타고계신 가마를 엄습하려 합니다.”고 하였다. 이때, <한>은 병력의 실상이 피폐하였기에, <요>는 이 말을 믿었으며, <곽사>가 돌아가는 것을 추격하여 <수>를 저잣거리에서{보란 듯이 드러내어} 참하였다. <석륵>은 <양국{後趙의 都邑}>으로 돌아가 있었는데, <유무>가 도망하여 들어가 <수>가 죽은 상황을 보고하였다. <석륵>은 대노하여; “내가 <유>씨를 섬김에는 신하된 직분을 넘어섰었다. <유요>의 기업은 모두 내가 이루어 준 것이었다. 지금 이미 뜻을 이루었다 하여 도리어 서로를 도모하겠다면, <조>의 왕 자리이든 황제 자리이든 나 스스로가 이룰 것이다. 어찌 저놈에게 기대하겠나?”라 하고는, <조평락>의 3족을 주살하였다.
◎ 三月, 上, 巡至<新城>及<安平>, 使<芙莢>・<高卿>等, 各引步騎出界.
四月, <漢>主<曜>, 還都<長安>, 立妃<羊>氏爲皇后, 以<羊>氏子<熙>爲皇太子. <羊>氏卽故<惠帝>后也. <曜>甚寵之, 頗干預國事. <代>王<鬱律>擊<匹磾>. <匹磾>, 棄妻子, 奔<樂陵>, 依<邵續>. 十月, 命<仙玉>引<休都>・<于京>等, 伐<廆>. <廆>欲納女而和親. 上, 問於<談河>, <河>曰;“<廆>娶妻於<段>氏而取其<徒河>. 是, 其外仁而內險也. 不可親.” 於是, 與<宇文>・<段>國, 幷進. <廆>, 大懼不能出, 密遣饋酒求和. <仙玉>却之, <宇文>獨受之. 時, 天寒師老, <玉>有憂色. 司馬<玄{膝}>說<玉>, 曰;“聼人之言而深入, 不戰. 今, <宇文>忽變, <段>本<廆>族. 不如退而観變. 徐圖之, 不失萬全.” <仙玉>然之乃退. <段>氏亦退.
○ 3월, 상은, 순수하여 <신성>과 <안평>에 이르러서, <부협>과 <고경> 등에게 각자 보병과 기병을 이끌고 국경 밖으로 나가게 하였다.
4월, <한>주 <유요>가 <장안>으로 환도하여, 비로 있던 <양>씨를 황후로 세우고, <양>씨의 아들 <유희>를 황태자로 삼았다. <양>씨는 죽은 <혜제{西晉,司馬衷}>의 후였는데, <유요>가 그녀를 지극히 아꼈더니, 국정에 끼어들어 잘못됨이 많았다. <대>왕 <탁발울률>이 <단필제>를 치니, <필제>는 처자식을 버리고 <락릉>으로 도망하여 <소속>에게 의지하였다. 10월, <선옥>에게 명하여 <휴도>와 <우경>의 군대를 끌고나가 <외>를 쳤더니, <외>는 딸을 바칠 것이니 화친하자고 하였다. 이에 상이 <담하>에게 물으니, <담하>는 “<외>는 <단>씨의 집에 장가를 들고 그 <도하>땅을 취하였으며, 겉은 어질지만 속은 험합니다. 화친은 아니 됩니다.”라 하였다. 이리하여, <우문>국 및 <단>국과 함께 진공하였더니, <외>는 크게 두려운 나머지 나오지는 못하고, 몰래 술과 음식을 보내와 화친을 청하였다. <선옥>은 이를 거절하였고, <우문>만이 이를 수락하였다. 이때, 날씨는 춥고 군사들은 지쳐 있었더니 <선옥>도 걱정스런 낯빛이었다. 사마 <현{슬}>이 <선옥>을 설득하길;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깊숙이 들어는 왔지만, 싸우지 마시오. 지금 <우문>은 갑자기 변심하였고, <단>국은 본래 <모용외>와 한 족속이오. 물러나서 변화를 살피는 것만 못할 것 같소. 서서히 도모하여 만전을 기합시다.”라 하였다. <선옥>도 그것이 좋겠다고 여겨 물러났다. <단>국 또한 물러났다.
◎ <廆>, 與其子<翰>, 襲破<宇文>而進攻<遼東>. <崔毖>, 単身皈我, 而請救. <仙玉>, 出戰為<廆>所敗, 而死. 王, 痛哀之, 命<休都>領其衆. <廆>, 使其子<仁>爲<遼東>太守, 伐<休都>. 我軍連敗, <平郭>失守. 乃以<萧友>為<安平>太守率軍二萬徃救之. 以<靑見>, 爲「南部」大使者, 葬<仙玉>以右輔禮. 賜<玉>妻<弗>氏年穀. <玉>, <方>之弟也. 有{脅力}善射, 佐其兄<方>以成<候山>之功, 奪<尙宝>妻<弗>氏(<中川>女也). <玉>, 勇敢善戰而有輕敵之氣, 常時好罵幕下, 故単騎深入, 竟敗而死. 其下不力戰而救之, 人多惜之.
○ <외>가, 아들 <한>과 함께, <우문>을 습파하고는 <요동>으로 진공하니, <최비{<晉><平州>刺史}>가 홀몸으로 아군으로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에 <선옥>이 나가서 싸우다 <외>에게 패하여 죽었다. 왕이 이를 애통히 여기고는, <휴도>에게 <선옥>의 군사를 이끌게 하였다. <외>가, 아들 <인>을 <요동>태수를 삼아놓고, <휴도>를 쳤다. 우리는 연패하여 <평곽>을 잃었다. 이에 <소우>가 <안평>태수가 되어 2만군을 이끌고 가서 <휴도>의 군대를 구하였다. <청견>을 <남부>대사자로 삼아서, <선옥>을 우보의 예로 장사하여 주었고, <선옥>의 처 <불>씨에게는 매년 곡식을 주게 하였다. <선옥>은 <선방>의 동생으로 상대를 겁주는 힘이 있었고 활을 잘 쏘았다. 형인 <선방>을 도와 <후산>의 공을 세웠고, <상보>의 처 <불>씨를 빼앗았다. <선옥>은 용감하여 싸움은 잘하였으나 적을 얕잡는 기질이 있었고, 평소에 번번이 휘하를 욕하였기에, 혼자만이 말을 몰아 적진 깊숙이 들어갔다가 끝내는 패하여 죽은 것이었다. 그의 휘하들은 힘들여 싸워서 그를 구하려 하지는 않았으니, 사람들이 이를 애석하게 여겼다.
<通鑑>曰;
【★ 十二月, <平州>刺史<崔毖>, 自以中州人望, 鎭<遼東>, 而士民多皈<慕容廆>, 心不平. 数遣使招之皆不至, 意<廆>拘留之, 乃陰說<高句麗>・<段>氏・<宇文>氏, 使共攻之, 約滅<廆>分其地. <毖>所親<勃海><高瞻>力諫, <毖>不從. 三國合兵伐<廆>. 諸将請擊之, <廆>曰;“彼, 爲<崔毖>所誘, 欲邀一切之利. 軍勢, 初合其鋒甚銳, 不可與戰, 當固守以挫之. 彼, 為烏合而來, 旣無統壹, 莫相皈服, 久必攜貳, 一則疑吾與<毖>詐而覇之, 二則三國自相猜忌. 待其人情離貳, 然後擊之, 破之必矣.” 三國進攻<棘城>. <廆>, 閉門自守, 遣使獨以牛酒犒<宇文>氏. 二國, 疑<宇文>氏與<廆>有謀, 各引兵皈. <宇文>大人<悉獨官>曰;“二國雖皈, 吾當獨取之.”
<자치통감>에 쓰여 있기는;
【☆ 12월, <평주>자사 <최비>는, 스스로 중주에서 인망이 있다고 여기고, <요동>에 진을 쳤는데, 많은 인사들과 백성들이 <모용외>에게 귀의하니 마음이 편안치 않았고, 여러 번 사신을 보내서 돌아오라고 불렀으나 모두가 돌아오지 않았다. 이에, <외>가 이들을 붙잡아두었다고 생각하고는, 몰래 <고구리>・<단>씨・<우문>씨를 설득하여, 함께 공격하게 만들고, <외>를 멸하여 그 땅을 나누어 가지자 약속하였었다. <최비{毖}>와 친한 <발해{渤海}>땅의 <고첨{高瞻}>이 힘들여 간언했어도, <최비>는 따르지 않았던 것이다. 3국이 군대를 합쳐서 <외>를 토벌하기에 나섰다. 이에 여러 장수들이 {<고구리>・<단>씨・<우문>씨를} 치자고 청하였더니, <모용외>가 말하길; “저쪽은 <최비>의 꼬임에 빠졌으며, 한데뭉친 이점을 노리고 있다. 저쪽의 군세는 초기엔 합쳐졌으니 심히 날카로울 것이다. 맞싸워서는 아니 되고, 응당 단단히 지켜서 그 예봉을 꺾어야 한다. 저들은 형편없는 군대들이 합쳐져서 왔으며, 아직 한 사람의 지휘 하에 있지 않으니, 서로가 한 사람 아래로 들어가기는 불가할 것이고, 시일이 지나면 필시 사이가 나빠질 것이다. 그리되면, 한편으로는 우리가 <최비>와 함께 속여서 자기들을 이길 것이라 걱정하기도 할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들끼리도 시기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사람들의 마음이 둘로 갈라지기를 기다렸다가, 그들을 공격하면 반드시 저들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3국이 <극성>으로 진공하자, <외>는 성문을 닫고 지키면서, 사람을 보내서 소와 술로 <우문>의 군대만을 먹였다. 이에 다른 두 나라는, <우문>이 <외>와 모의한 것으로 의심하여, 각자의 군대를 이끌고 돌아갔다. <우문>대인 <실독관>은 비록 두 나라가 돌아갔어도, 당당하게 나 혼자서 {<모용>의 땅을} 차지하겠다고 하였다.
★ <宇文>氏士卒数十萬, 連營四十里. <廆>, 使召其子<翰>於<徒河>. <翰>, 遣使白<廆>, 曰;“<悉獨官>擧國為寇, 彼衆我寡, 易以計破, 難以力勝. 今, 城中之衆, 足以禦寇. <翰>, 請為奇兵於外, 伺其間而擊之. 內外俱奪, 使彼震駭不知所備, 破之必矣. 今, 幷兵為一, 彼得專意攻城無復它虞, 非策之得者也. 且, 示衆以怯, 恐士氣不戰先沮矣.”
☆ <우문>씨의 사졸 수십만은 40 리에 걸쳐 연이어서 병영을 세웠다. <외>가 <도하>에 있는 아들 <한>을 불러들이라 시켰더니, <한>이 아뢰길; “<실독관>이 거국적으로 도적질을 하고 있습니다. 저쪽은 수가 많고 저희는 수가 적으니, 계책을 써서 파하기는 쉬워도, 힘으로 이기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 성안의 사람들만 가지고도 적을 막기에 충분하십니다. <한>은 밖에서 기습병력이 되어 때를 노리다가 공격하게 해주시길 청합니다. 안팎에서 함께 치면, 저들은 놀라움에 소란스러워져서 대비할 바를 모르게 되니, 저들을 깨는 것은 필연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병력을 한데 모으면, 저들은 성을 공격하기에만 몰두하며 다른 것은 걱정하지도 않게 될 것이니, {우리에겐} 좋은 계책은 아닐 것입니다. 게다가, 군사의 많음을 시위하게 되면 {우리가} 겁나고 두려워하는 것이 되어, 사기가 싸워보기도 전에 먼저 꺾일까 걱정됩니다.”라 하였다.
★ <廆>猶疑之. <遼東><韓壽>, 言於<廆>, 曰;“<悉獨官>有「憑陵之志」, 将驕卒悽, 軍不堅密. 若奇兵卒起, 掎其無備, 必破之策也.” <廆>乃聼<翰>留<徒河>. <悉獨官>, 聞之, 曰; “<翰>, 素名驍, 果今不入城. 或能為患, 當先取之. 城不足憂.” 乃分遣数千騎襲<翰>. <翰>, 知之, 詐為<段>氏使者, 逆於道, 曰;“<慕容翰>久為吾患, 聞當擊之, 吾已嚴兵相待, 宜速進也.” 使者旣去, <翰>卽出城設伏以待之. <宇文>氏之騎, 見使者, 大喜馳行, 不復設備, 進入伏中. <翰>, 奪擊盡獲之, 乘勝徑進, 遣間使語<廆>出兵大戰.
☆ <외>가 그래도 이를 믿지 않으니, <요동>의 <한수>가 <외>에게 말하길; “<실독관>은 큰 것을 믿고 기댈 생각이겠으나, 장차 우쭐한 병졸들이 처연해지면 군대는 엉성하여 질 것입니다. 그때 느닷없는 군병들이 내달으면, 대비가 없었기에 우왕좌왕 할 것이니, 반드시 이길 수 있는 계책인 것입니다.”라 하였다. 이에 <외>가 <한>을 <도하>에 머물러 있으라고 허락하였다. <실독관>은, 이 소식을 듣고서, 말하길; “<한>은, 평소에 날래기로 이름이 있더니만, 과연 지금 성으로 들어가지 않고 있다. 혹시라도 골칫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니, 응당 먼저 쳐서 잡아야 할 것이다. 성을 {빼앗는 것은} 걱정꺼리도 되지 못한다.”라 하고는, 수천 기를 나누어 보내 <한>을 습격하게 하였다. <한>은, 이리 될 것을 알고는, 가짜 <단{段}>씨 사자를 만들어서 귀로 길에 {<실독관>에게} 얘기하길; “<모용한>은 오래도록 우리에겐 골칫거리였습니다. 소식을 듣는 대로 그를 치십시오. 우리{<단>씨}는 이미 엄중한 병력으로 서로 대치하고 있으니, 속히 진격하여야 할 것입니다.”라 하게 하였었다. 그리고는, 사자가 이윽고 떠나자 곧바로 <한>은 성 밖으로 나가서 매복을 두어 <우문>씨의 군대를 기다리게 하였다. <우문>씨의 기병들은, 사자를 만나보더니, 크게 기뻐하면서 내달려서 제대로 대비를 하지 않은 채 복병이 있는 곳으로 들어왔다. 이에, <한>은, 두들겨 짓이고 사로잡으며, 승승하여 빠르게 진격하였고, 몰래 사자를 <외>에게 보내서 출병하여 큰 싸움을 벌이자고 알렸다.
★ <廆>, 使其子<皝>與長史<裵嶷>, 将精銳為前鋒, 自将大兵継之. <悉獨官>, 初, 不設備, 聞<廆>至, 驚, 悉衆出戰. 前鋒始交, <翰>将千騎, 從旁直入其營, 緃火焚之. 衆皆惶擾, 不知所為. 遂大敗, <悉獨官>僅以身免. <廆>, 盡俘其衆, 獲皇帝玉璽三紐. <崔毖>, 聞之, 懼, 使其兄子<燾>詣<棘城>僞賀. 會三國使者亦至, 請和, 曰;“非我本意. <崔><平州>敎我耳.” <廆>, 以示<燾>, 臨之以兵, <燾>懼首服. <廆>, 乃遣<燾>皈謂<毖>, 曰;“降者上策, 走者下策也.” 引兵隨之. <毖>, 與数十騎, 棄家, 犇<高句麗>, 其衆悉降於<廆>. <廆>, 以其子<仁>為征虜将軍, 鎭<遼東>, 官府市里案堵如故. <高句麗>将, 如<奴子>, 據于<河城>. <廆>, 遣将軍<張統>, 掩擊擒之, 俘其衆千餘家. 以<崔燾>・<高瞻>・<韓恆>・<石琮>皈于<棘城>, 待以客禮.】
☆ <외>는, 자기의 아들 <황>과 장사 <배억>를 시켜 정예병을 끌고 전봉을 서게 하고, 자신은 대군을 이끌고 뒤따랐다. <실독관>은, 애당초 대비가 없었기에, <외>가 다가오고 있음을 듣자 놀라면서, 모든 병사를 나아가 싸우게 하였다. 전봉이 서로 부닥치자, <한>이 1,000기를 거느리고 측면에서 곧바로 영내로 달려들어 모조리 불을 질러 태우니, {<실독관>의} 무리들 모두는 놀라고 두려워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대패하였고, <실독관>은 가까스로 몸을 피하였다. <외>는, 그 무리들을 모조리 사로잡고, 황제 옥새 세 개를 노획하였다. <최비>는, 이 소식을 듣고는 두려워하며, 자기 형의 아들인 <도>를 시켜 <극성>으로 가서 거짓 축하 모임을 하게 하였더니, 세 나라의 사신들 역시 도착하여 화친을 청하며 말하길; “우리들 본시의 뜻은 아니었습니다. <최><평주>가 우리에게 그리 하라고 하였습니다.”라 하였다. <외>가 <도>를 곁에 세워놓고 병사를 시켜 지켜서있게 하였더니, <도>는 두려움에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외>가, <도>를 돌려보내어, <비>에게 이르길; “항복하면 상책이고, 도망하면 하책이다.”라 하고는, 병사를 이끌고 사자의 뒤를 따랐다. <비>는, 수십 기만을 데리고 가속은 버린 채, <고구리>로 도망하였고, 그의 무리들은 모두 <외>에게 투항하였다. <외>가 아들 <인>을 정노장군으로 삼아 <요동>의 진을 치니, 관부와 저자 모두는 옛날과 같아졌다. <{고}노자> 같은 <고구리> 장수 가 <하성>에 진을 치고 있었다. <외>는 <장통>을 보내 엄격하여 그 장수를 사로잡고 그의 무리 천여 가도 사로잡았다. <최도>・<고첨>・<한긍>・<석종>도 <극성>으로 귀부하기에 객례로 대하였다.】라고 한다.
◎ 十二月, <高卿>, 與<張統>戰于<河城>, 敗死. 上, 命<方夫>率<玄菟>軍, 徃救之. <方夫>, 不向<河城>, 而直指<遼東>. <廆>, 使其子<翰>, 救<仁>. <翰>以善戰, 聞乃命<方夫>互相守界, 以為持久之計. <統>率<河城>千余家而皈. <北海><鄭林>皈<廆>. <廆>, 遺以車・ 牛・粟・帛, 皆不受, 躬耕於野. <廆>献三璽於<建康>. <高句麗>数侵<遼東>, <廆>遣<翰>・<仁>禦之. 是歲, <蒲洪>降於<趙>主<劉曜>.
○ 12월, <고경{=<高句麗>将如<奴子>}>이 <하성>에서 <장통>과 싸우다 패하여 죽었다. 상이 <방부>에게 <현도>의 군사를 이끌고 가서 <하성>을 구하라 하였더니, <방부>는 <하성>으로 가지 않고 <요동>으로 곧바로 달려갔고, <외>는 아들 <한>을 시켜 <인>을 구하게 하였으며, <한>은 잘도 싸워냈다. 상은 이 소식을 듣고 <방부>에게 피아간의 경계를 지키라 하였다. 이는 오래 버티기를 하는 계략이었다. <장통>은 <하성>에 있던 천여 가를 이끌고 돌아왔다. <북해>의 <정림>이 <외>에게 귀부하니, <외>는 수레・소・조・비단을 하나도 거두어가지 않았고, 스스로는 들판에서 경작하였다. <외>가 옥새 3개를 <건강>에 바쳤다. <고구리>가 여러 번 <요동>을 쳤으나, <외>가 <한>과 <인>을 보내 막아냈다. 이 해에 <포홍>은 <조{前趙}>주 <유요>에게 투항하였다.
◎ 二十一年庚辰, 正月, <楽浪王><仙方>薨. 上, 哭哀之, 曰;“昨年<仙玉>戰死. 今春, 三父棄我. 何奪朕股肱之甚乎.” 命<槨>返, 葬于<馬山>. 上, 與<周>皇[后], 親臨立祠. <方>, 美風儀, 有權術, 能愛人下士. 中興帝業, 而仍欲簒奪, 為<周>皇后所沮, 遂知天命所在, 務進南西, 事未成而薨, 年六十四. 尙, 多精力而惑於<楽浪>少女, 而沈疾遽劇. 人多惜之. <方>, 能知大體, 而不識禮節, 烝<乙>太后如其妻. 太后, 臨崩, 命<方>殉之. 上, 以其爲重臣, 不可殉於小節, 而止之. 夢, 太后責其負約, 心常缺然. 至是, 夢見太后怒拔其根, 而病劇. <楽浪>女亦暴死. 人以爲太后靈. <于豊>太輔, <椽方>左輔, <談河>右輔. <豊>・<方>皆外戚大家. <河>, 寒微功臣, 人以爲狗尾貂. <周>皇后生子<得>. <劉曜>攻<陣倉>, 拔<草壁>, 又拔<陰密>, 而還<長安>. <段末柸>攻<段匹磾>破之. <匹磾>謂<邵續>, 曰;“吾, 本夷狄, 以慕義破家. 君不忘久要. 請相與共擊<末柸>.” <續>, 許之, 遂相與追擊<末柸>, 大破之. <匹磾>, 與弟<文鴦>, 攻<薊>. <石勒>知<續>勢孤, 遣<虎>圍<厭次>, <孔萇>攻<續>別營十一下之. <續>, 自出擊<虎>, 為<虎>所執, 使降其城, <續>不聼.
○ 21년{단기2653년/AD320}경진, 정월, <낙랑>왕 <선방>이 죽으니, 상이 곡하여 슬퍼하며 말하길; “작년엔 <선옥>이 전사하더니, 이 번 봄에는 친족 부로 세 명이 나를 버렸다. 어찌하여 짐은 고굉지신{팔과 다리 같은 신하}을 앗김이 이리 심한고.”라 하고는, <곽{선방의 아들}>에게 돌아오라 명하였고, <마산>에 묻어주었다. 상과 <주>황후가 친히 왕림하여 사당을 세웠다. <방>은 풍채가 멋졌으며, 권모와 술수도 좋았고, 타인과 아랫사람들을 잘 돌보아주었다. 제를 세우던 중에 찬탈을 획책하기도 하였으나 <주>황후에 의해 저지되었고, 끝내는 천명의 소재를 알았으며, 직무에 임하여서는 남서쪽의 땅을 넓히려 애썼으나 그 일을 이루지 못하고 나이 64살에 죽었다. <방>은 정력이 좋음을 자랑하다가, <낙랑>의 젊은 여인에 미혹되어 병이 깊어지더니 갑자기 심하여졌었다. 사람들이 이를 애석해 하였다. <방>은, 큰일을 잘도 헤쳐 나아갔으나, 예절을 알지 못하여 <을>태후를 자기의 처에게 하듯이 치붙었다. 태후가 죽음에 임박하여 <방>에게 따라죽으라고 명하자, 상은 그가 중신임을 들어 작은 예절을 따라 죽을 필요는 없다고 하여 그의 순사를 막아주었다. 꿈에 태후가 나타나 약조를 어긴 것을 책망하니, 마음이 항상 찜찜하였었는데, 근자에는 꿈에 태후가 노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그의 뿌리를 뽑아버렸더니 병이 심하여졌었다. <낙랑>여인 또한 갑자기 죽었으니, 사람들은 태후의 영령이 그리 한 것으로 여겼다. <우풍>을 태보로, <연방>을 좌보로, <담하>를 우보로 삼았다. <우풍>과 <연방>은 모두 외척 대가 집의 사람이었으나, <담하>는 한미한 출신의 공신이어, 사람들이 그를 구미초{개꼬리로 만든 관식}로 여겼다. <주>황후가 아들 <득>을 낳았다. <유요>가 <진창>을 공격하였다. <초벽>을 빼앗았고 또한 <음밀>도 빼앗고는 <장안>으로 돌아갔다. <단말배>가 <단필제>를 공격하여 깨뜨리니, <필제>가 <소속>에게 “나는, 본시 이적이어, 의를 귀히 여겼다가 집안을 잃었소. 군께서는 서로 힘을 합쳐서 <말배>를 치자고 오랫동안 요청하셨던 것을 잊지 않으셨겠지요?”라 하자, <소속>이 들어주었다. 이윽고 함께 <말배>를 추격하여 대파하였다. <필제>는 아우인 <문앙>과 함께 <계>를 공격하였다. <석륵>은 <소속>의 군세가 외톨이임을 알고는, <석호>을 보내서<염차>를 에워쌌고, <공장>을 보내어 <소속>의 별영 11곳을 쳐서 떨어뜨렸다. <소속>은 스스로 성에서 나와 <석호>를 치다가 <석호>에게 붙잡혔다. <석호>가 성을 항복하게 하라고 시켰으나, <소속>은 듣지 않았다.
◎ 三月, 幸<新城>, 監軍. 六月, <劉曜>, 作<酆明観>・<西宫>・<陵霄臺>. 又營壽陵, 周圍四里, 深三十五丈, 璘為椁, 飾以黃金. 工費累億萬. 諫者, 以是資軍, 足以<平>・<凉>州兼<吳>・<蜀>及<石勒>・<曹薿>也. <曜>乃罷其役. <祖逖>攻<石勒>. <勒>, 患之, 修<逖>祖墓而返其降者. <逖>, 德之, 緩其侵暴. <勒>, 以奸計, 懈<逖>如此. 七月, -- 이하 28~29자 해독 불가 --. 八月, <比流>築射臺于宮西. 朔・望, 佐平以下皆習射應試. <徐龕>, 為<虎>所困, 乞降. <勒>許之. 九月, <慕容仁>復襲<休都>. 我軍失利甚多, <休都>・<于京>死之. 十二月, <方夫>・<松巨>伐<仁>, 不克而還.
○ 3월, <신성>으로 거둥하여 군대를 살폈다. 6월, <유요>가 <풍명관>과 <서궁> 및 <릉소대>를 만들었다. 또한 수릉도 쌓고자 하였는데, 둘레는 4 리가 되고, 깊이는 35 길이나 되었으며, 동{구리}으로 곽을 만들고 황금으로 치장하니, 소요되는 비용은 합치니 수억만 금이나 되었다. 이에 간하는 자가 있어, 그 돈으로 군대를 꾸리면 <평{平}>・<량{涼}>주와 <오>・<촉>의 땅은 물론 <석륵>・<조의> 땅의 군대까지 아우를 수 있겠다 하니, <유요>가 그 공역을 파하였다. <조적>이 <석륵>을 치니, <석륵>은 그것이 골치 아파서 <조적>의 할아버지 무덤을 고쳐 쌓아주고는 투항하였던 자들도 돌려주었다. <조적>은, <륵>을 덕이 잇다고 여기어, 침입하여 난폭하게 함이 적어졌다. <석륵>이 간계로써 <조적>을 누그러뜨리려고 함이 이러 하였었다. 7월, -- 이하 28~29자 해독 불가 --. 8월, <비류>가 궁의 서쪽에 사대를 쌓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좌평 이하 모든 이들에게 활쏘기 훈련과 시험에 참여케 하였다. <서감>이, <석호>때문에 곤혹스러워서, 투항하겠다고 청하였더니, <석륵>이 들어주었다. 9월, <모용인>이 재차 <휴도>를 습격하여 왔다. 아군이 패하여 잃은 것이 심히 많았고, <휴도>와 <우경>이 거기서 죽었다. 12월에 <방부>와 <송거>가 <모용인>을 쳤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왔다.
◎ 二十二年辛巳, 春二月, 內裏大兄<觧玄>, 以<周>皇后寵, 擢為殿注簿, 與后共決政事. 太輔<于豊>諫;“<慕容廆>, {以}心腹之患, 其諸子皆英勇無比. 陛下, 太子皆幼, 嬖臣執政. 恐<廆>得知. 上, 大慚, 命<玄>出居于外. <比流>, 以庻弟<優福>爲內臣佐平, 乃其嬖臣也, 國人不悅. 果有太白昼見, 而蝗其國南.
○ 22년{단기2654년/AD321}신사, 춘2월, 내리대형 <해현>이 <주>황후의 총애를 받아 전주부{殿注簿}로 발탁되더니, 후와 함께 정사를 처결하였다. 태보 <우풍>이 간하길; “<모용외>는 심복들의 우환을 다스렸으며 그의 모든 아들들은 비할 데 없이 영특하고 용맹합니다만, 폐하께서는, 태자들 모두가 어리고, 폐신{정부의 노릇을 하는 신하}이 집정하고 있습니다. <외>가 이를 알아차릴까 두렵습니다.”라 하였더니, 상이 크게 뉘우치고는 <해현>에게 밖으로 나가서 거처하라고 명하였다. <비류>가 서제인 <우복>을 내신좌평으로 삼았는데, 이 자가 폐신이어서, 국인들이 흔쾌하게 여기지 않았다. 과연 태백성이 낮에 나타나고, 그 나라의 남쪽에서는 황충이 일었다{또는, 점괘가 태백성이 낮에 나타나고 남쪽에서는 황충이 일 것이라고 나왔다}.
◎ 三月, <石勒>攻<幽州>刺史<段匹磾>於<厭次>, <孔萇>攻其統內諸城, 悉拔之. <文鴦>力戰死之, <匹磾>爲<石勒>所殺, <幽>・<冀>・<幷>三州皆入於<後趙>. 十二月, <廆>, 立子<皝>爲世子, 作東橫, 以<平原><劉讚>爲祭酒. 使<皝>, 與諸生, 同受業. <廆> 得暇, 亦親臨, 聼之. <皝>, 雄毅, 多權略, 喜經術, 國人稱之. <廆>, 徙<慕容翰>鎭<遼東>, <慕容仁>鎭<平郭>. <翰>, 撫安民・夷, 甚有威惠. <仁>亦次之.
○ 3월, <석륵>이 <유주>자사 <단필제>를 <염차>에서 공격하고, <공장>이 <단필제>의 통치 안에 있던 모든 성을 쳐서 빼앗았다. <문앙>은 힘써 싸우다 죽었고, <필제>는 <석륵>에게 죽었으며, <유주>・<기주>・<병주>의 세 주는 모두 <후조>의 차지가 되었다. 12월, <모용외>가 아들 <황>을 세자로 삼았고, 궁의 동쪽에 학당을 만들고, <평원><유찬>을 제주로 삼았으며, <황>은 모든 소생들과 함께 수업하게 하였고, <외>도 짬을 내어 친히 참석하여 들었다. <황>은 뜻이 크고 굳세었으며, 권략도 풍부하고 경술 배우기를 좋아하였기에, 나라사람들이 <황>을 칭송하였다. <외>는 <모용한>을 <요동>으로 옮겨서 진을 치게 하고, <모용인>은 <평곽>에 진을 치게 하였다. <한>은 민간과 이인들{동쪽 사람들}을 다독이고 편안케 함에 있어 위엄과 사랑이 심히 그득하였다. <인>은 그 다음이었다.
◎ <拓跋猗[남쪽오랑캐이름 이]>妻<惟>氏, 忌<代>王<鬱律>之疆, 恐不利於其子, 乃殺<鬱律>而立其子<賀傉>, 大人死者数十人. <鬱律>之子<什翼犍>, 幼在襁褓, 其母<王>氏匿於袴中, 祝之, 曰;“天苟存汝, 則勿啼.”久之, 不啼, 乃得免. <惟>氏, 專制國政, 遣使聘<後趙>, <後趙>人謂之女國使. 以<于卓>女<腆>為東宮妃, <乙>太后出也. 行其遺命.
○ <탁발의이>의 처 <유>씨는, <대>왕 <탁발울률>이 강성함을 싫어하였으며, 자기의 아들에게 불리 할 것을 두려워하여 끝내 <울률>을 죽이고는, 자기 아들을 세웠더니, 이때 죽은 대인들이 수십 인이었다. <울률>의 아들 <십익건>은, 어려서 강보에 싸여 있었는데, 그의 어미 <왕>씨가 치마 속에 숨기고는 기원하길 “천명이 구차하나마 너에게 있으니, 오래도록 울지 말거라.”라고 하였는데, 울지 않아서 결국 죽음을 면하였다. <유>씨가 국정을 움켜쥐고 <후조>에 <사신>을 보내서 예의를 차리니, <후조>사람들은 여자가 다스리는 나라의 사신이라 하였다. <우탁>의 딸 <전>을 동궁비로 삼았다. <을>태후 소생이었다. 유명을 따른 것이었다.
◎ 二十三年壬午, 春正月, 太輔<于豊>薨, <椽方>代之, <談河>左輔, <方夫>右輔, <方象><玄菟>太守. 二月, <後趙>王<勒>, 立子<弘>為世子, 遣<石虎>将精卒四萬擊<徐龕>, <龕>堅守不戰, <虎>築長圍守之. 四月, <劉曜>妻<羊>后卒, 謚曰<献文>. 七月, <石虎>, 拔<泰山>, 執<徐龕>送<襄國>. <石勒>, 盛之以囊, 於百尺樓上撲殺之. 命<王伏都>等妻子刳而食之, 阬其降卒三千人. 十二月, <劉曜>, 葬其父母於<粟邑>, 大赦. 陵, 下周二里, 上高百尺, 計用六萬夫, 作之百日乃成. 役者夜作, 継以脂燭. 民甚苦之, <遊>子<遠>諫, 不聼. <皝>, 伐<段末柸>于<令支>, 掠千戶而皈.
○ 23년{단기2655년/AD322}임오, 춘정월, 태보 <우풍>이 죽어, <연방>이 대신하고, <담하>가 좌보를, <방부>가 우보를 맡고, <방상>이 <현도>태수가 되었다. 2월, <후조>왕 <석륵>이 아들 <홍>을 세자로 삼았다. <석호>에게 정예병졸 4만을 주어서 <서감>을 치게 하였다. <서감>은 굳게 지키고 싸우려들지 않으니, <석호>는 길게 진을 둘러치고 지켰다. 4월, <유요>의 처 <양>후가 죽었다. 시호를 <헌문>으로 하였다. 7월, <석호>가 <태산>을 빼앗고 <서감>을 붙잡아 <양국>으로 보내니, <석륵>은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하여, 자루에 처넣어 백 척 루상으로 올려 두들겨 죽이고, <왕복도> 등의 처자식에게 살점을 도려내어 먹게 하였으며, 항복한 병졸 3천은 땅에 묻어버렸다. 12월, <유요>가 자신의 부모를 <속읍>에 장사하고, 널리 사면하였다. 무덤은 아래 둘레가 2 리에 높이는 100척이나 되었고, 비용을 합산하면 장정 6만 명을 써서 100일 걸려서 완성하였다. 역부들은 밤이 되면 짐승기름으로 불을 밝히며 계속하였다. 민초들이 심히 고통스럽다고, <유>의 아들 <원>이 간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모용황>이 <령지>에서 <단말배>를 토벌하고 1,000호를 약탈하여 돌아갔다.
◎ 二十四年癸未, 三月, <高喜>女生<觧玄>女. 是為<觧>太后. <勒>遣使於<慕容廆>, <廆>執送<建康>. 四月, <烽山>后生皇子<羲>. 六月, <周>皇后生皇子<錫>. 七月, 太輔<椽方>薨, <萧友>代之. <棤>, <安平>太守. <趙>主<曜>, 自将圍<隴城>, 別遣兵圍<上邽>陣. <安>, 頻出戰, 輙敗. 右軍将軍<劉幹>, 攻<平襄>, 克之. <隴>上諸縣悉降. <安>, 留其将<楊伯支>・<姜冲兒>守<隴城>, 自帥精騎突圍出奔<陝中>. <曜>, 遣将軍<平先>等追之. <安>, 左揮七尺大刀, 右運丈八蛇矛, 近則刀矛俱發輙殪五六人, 遠則左右馳射而走. <先>, 亦勇捿如飛, 與<安>搏戰, 三交, 遂奪其蛇矛. 會日暮雨甚, <安>, 棄馬, 與左右匿於山中. <趙>兵, 索之, 不知所在. 明日, <安>遣其将<石容>覘<趙>兵, <趙>兵輔威将軍<呼延靑人>獲之, 拷問<安>所在, <容>卒不肯言, <靑人>殺之. 雨霽, <靑人>尋其迹, 獲<安>於<澗曲>, 斬之. <安>, 善撫将士, 與同甘苦, 及死, <隴>上人思之, 為作<壮士之歌>. [八月], <石虎>圍<曹嶷>於<廣固>, <嶷>出降, 送<襄國>殺之.
○ 24년{단기2656년/AD323}계미, 3월, <고희>의 딸이 <해현>의 딸을 낳았다. 이 아이가 {자라서 후에} <해>태후가 된다. <석륵>이 <모용외>에게 사신을 보냈는데, <모용외>는 이 사신을 잡아서 <건강>으로 보냈다. 4월, <봉산>후가 황자 <희>를 낳았다. 6월, <주>황후가 황자 <석{錫}>을 낳았다. 7월, 태보 <연방>이 죽어, <소우>가 이를 대신하고, <석{棤}>이 <안평>태수가 되었다. <조{前趙}>주 <유요>가, 스스로 장수가 되어 <롱성>을 포위하고, 따로 군병을 보내 <상규>를 포위하여 진을 치니, <안>이 빈번히 나와서 싸웠으나 번번이 패하였다. 우군장군 <유간>이 <평양{平襄}>을 쳐서 이겼다. <롱>상의 모든 현들이 항복하였다. <안>은, 장수 <양백지>와 <강충아>를 남겨서 <롱성>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정예기병을 이끌고 포위를 뚫고 도망하여 <섬중>으로 숨어들었다. <유요>가 장군 <평선> 등을 보내 추적하였다. <안>은 왼손으로는 7척 대도를 휘두르고 오른손으로는 한 길 길이 팔사모를 썼으니, 가까운 적은 한꺼번에 칼과 창으로 대여섯을 베었고, 멀리 있는 적은 좌우로 활을 쏘아대며 치달렸다. <평선> 또한 용맹하고 빠르기가 나르는 것 같았는데, <안>과 맞붙어 3합을 싸워서, 그의 창을 탈취하였다. 저녁이 되고 비가 심하게 내리자, <안>은 말을 버리고 측근과 함께 산중으로 숨어들었다. <조>병들은 수색하였으나 숨은 곳을 알 수 없었다. 다음날, <안>이 장수 <석용>을 시켜 <조>의 군병을 살피게 하였더니, <조>병의 보위장군 <호연청인>이 <석용>을 사로잡았고, <안>의 소재를 고문하였으나 <석용>이 죽어도 말하려 하지 않으니 <청인>이 그를 죽였다. 비가 멎자, <청인>이 흔적을 더듬어 <간곡>에서 <안>을 붙잡아서 죽였다. <안>은 장수와 병사들을 잘 다독거렸고, 그들과 동고동락하다 함께 죽었으니, <롱>상의 사람들은 그를 사모하여 <장사지가>를 지었다. <석호>가, <광고>에서 <조억>을 포위하였더니, <억>이 나와서 항복하기에, <양국>으로 보내서 죽였다.
◎ 九月, 畋于<杜訥原>. 左輔<談河>薨, <方夫>代之. <再生>右輔, <再生>婿<椽檍>代<再生>理<北部>. 以婿代理之風, 始此. <腆>生<完(<斯由>長子)>.
○ 9월, <두눌원>에서 사냥하였다. 좌보 <담하>가 죽어, <방부>가 이를 대신하고, <재생>이 우보가 되었다. 이에 <재생>의 사위 <연억>이 <재생>을 대신하여 <북부>를 다스렸는데, 이로써 사위로 하여 대신 다스리는 풍조가 시작되었다. <전>이 <완(<사유>장자)>을 낳았다.
◎ 二十五年甲申, 二月, 太輔<萧友>薨, <方夫>代之, <再生>左輔, <烏陌南>右輔, <陌南>婿<棰>代<陌南>理「中部」. 是歲, <代>王<賀傉>始親國政. 以諸部多未服, 乃築城於<東木根山>, 徙居之.
○ 25년{단기2657년/AD324}갑신, 2월, 태보 <소우>가 죽어, <방부>가 이를 대신하고, <재생>이 좌보가, <오맥남>이 우보가 되었다. <맥남>의 사위 <추>가 <맥남>을 대신하여 「중부」를 다스렸다. 이 해에, <대>에서는 왕인 <하녹>이 직접 국정을 살피기 시작하였다. 모든 부 중에 여럿이 아직 복속하지 않고 있어서, <동목근산>에 성을 쌓고 옮겨 살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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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7년 기사 : “<粘蟬(龍山)>太守” -> “<粘蟬(盤山)>太守”, “<樂浪(洛城)>太守” -> “<樂浪(海城)>太守” (2) 19년 기사 해석 : “<연방>이 좌보가 되었다” -> “<연방>이 우보가 되었다” (3) 19년 7월 기사 : “且挾{媚}術” -> “且挾{媎}術” (4) 20년 기사 : “二十年乙卯” -> “二十年己卯”, “內觀大駕疆弱” -> “內覘大駕疆弱” (5) 20년 3월 기사 해석 중 : “이에 <솔우>가 <안평>태수가 되어 2만군을 이끌고 가서” -> “이에 <소우>가 <안평>태수가 되어 2만군을 이끌고 가서” (6) 『通鑑』曰: (가) "【★ 十二月" 기사 중 : “心不平, 遣使招之, 皆不至意. <廆>拘留之乃陰說” -> "心不平數, 遣使招之, 皆不至意. <廆>拘畱之乃陰說", "久必{携}貳" -> "久必{㩗}貳", (나) "☆ <외>가 그래도 이를 믿지 않으니, <요동>의 <한도>가 <외>에게 말하길" -> "☆ <외>가 그래도 이를 믿지 않으니, <요동>의 <한수>가 <외>에게 말하길" (다) “★ <廆>使其子” 기사 중 : “{縱}火焚之” -> “{緃}火焚之”, “奔<高句麗>” -> “奔犇<高句麗>” (7) 20년 12월 기사 중 : “<統>率<河城>千余衆而歸” -> “<統>率<河城>千余家而歸” (8) 21년 기사 : “今春, <玉>父棄我”에서 <玉>은 아닌 듯 합니다. <仙玉>은 <仙方>의 동생니다. , “命槨返” -> “命<槨>返”, <槨>은 <仙方>의 아들임. (9) 21년 3월 기사 : “璘爲槨” -> “銅爲椁” (10) 23년 기사 : “<虎>築長{園}守之” -> “<虎>築長{圍}守之”, “諡曰<獻文>” -> “謚曰<獻文>”, 해석기사 중 “7월, <석륵>이 <태산>을 빼앗고” -> “7월, <석호>가 <태산>을 빼앗고” (11) 24년 기사 : “<安>頻出戰, 輒敗” -> “<安>頻出戰, 輙敗”, “自師精騎突圍出” -> “自帥精騎突圍出”, “近則刀矛俱發輒五六人” -> “近則刀矛俱發輙殪五六人”, “遣其將<石容>觀<趙>兵” -> “遣其將<石容>覘<趙>兵”, “獲<安>於<澗谷>” -> “獲<安>於<澗曲>” (12) 24년 9월 기사 : “<再生>婿<椽櫶>” -> “<再生>婿<椽檍>”, 해석 중 “이에 <재생>의 사위 <연헌>이” -> “이에 <재생>의 사위 <연억>이” (12) 25년 기사 : “是世” -> “是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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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린 것을 뒤늦게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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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陌南>以<烏伊>之{冡}孫,=>{冡}孫->冢孫 즉 嫡孫 ·<六脩>來朝(朝,直遼翻). <猗盧>使拜<比延>, <六脩>不從. <猗盧>乃坐<比延>於其步輦(步輦不駕馬使人輓之), 使人導從(從才用翻)出遊. <六脩>望見, 以爲<猗盧>伏謁路, 左至乃<比延>, =><六脩>來朝 <猗盧>使拜<比延>, <六脩>不從. <猗盧>乃坐<比延>於其步輦 使人導從出遊. <六脩>望見以爲<猗盧> 伏謁路左 至乃<比延> ‘<육수>가 입조하자 <의로>가 <비연>에게 배알하라고 했다. <육수>가 따르지 않자 <의로>는 자신의 보련에 <비연>을 앉히고 여럿 앞 세우고 따르게 하면서 출유하게 하였다. <육수>가 멀리서 보고는 <의로>라 생각하고 길 왼쪽에서 엎드려 배알하였는데, 이르고 보니 <비연>이었다. ·師衆討之 =>師->帥 ·20년 :出警入蹕如<曹公輔><漢>故事. <한>이 옛적에 <조공보>에게 한 것처럼 나갈 때는 {경호와 의전을 위하여} 길거리 행인을 없애고 들어올 때는 길을 깨끗이 치우게 하였다. =>여기서 <조공>은 바로 ‘조조’를 가리키는 것으로, 조조가 후한 말에 위왕에 올랐을 때의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조공>이 <한>을 보위하던 고사’ ·將襲乘輿時.” <漢>兵實疲弊, =>將襲乘輿.” 時, <漢>兵實疲弊, ‘장차 승여를 습격하려 합니다.”라고 하였다. 그때 <한>의 병력은 실로 피폐하였다.’ ·乃追<汜>還, =>‘<사>가 돌아가는 것을 추격하고’ ·孤事<劉>氏, 於人臣之職, 有加矣. 彼之基業, 皆孤所爲. 今, 旣得志還, 欲相圖. <趙王>·<趙帝>, 孤自爲之, 何待於彼邪.내가 <유>씨를 섬겼더니, 인신의 직책에 수례를 얹어주었다. <유요>가 나라의 터를 다진 것은 모두 내가 도운 때문이었다. 지금 이미 뜻을 세우고 돌아왔으니, 서로를 도모할 것이다. <조>의 왕 자리이든 황제 자리이든 나 스스로 이룰 것이다. 어찌 그놈의 간사함을 기다리랴.” =>여기서 邪는 물음표로서 耶의 쓰임과 100% 같습니다. ‘내가 <유>씨를 섬김에 신하의 직분 이상이었다. 그의 기업은 모두 내가 이룬 것이다. 이제 이미 뜻을 이루었다고 해서 도리어(還에 ‘도리어’의 의미가 있습니다) 서로를 도모하려 하니, <조왕>, <조제>는 내가 스스로 이루겠다. 어찌 그에게 기대하겠는가?’ ·10월 :不可親於是.” =>따옴표를 親까지 하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不可親” 於是’ ‘화친하면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聽人之言, 而深入不戰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깊숙이 들어가서 싸우지는 말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깊이 들어와 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통감 :數遣使招之, 皆不至意. <廆>拘留之乃陰說, =>數遣使招之, 皆不至 意<廆>拘留之 乃陰說, ‘자주 사신을 보내 불렀으나 모두 오지 않았다. (그래서) <외>가 그들을 억류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몰래 ~하자고 설득했다.’ ·<毖>所親<勃海><高膽>力諫, <毖>不從, 三國合兵伐<廆>.=>‘<비>와 친한 발해의 <고담>이 힘써 간했으나 <비>는 따르지 않았다. 세 나라가 합병하여 <위>에 쳐들어갔다.’ ·一則疑吾與<毖>詐而覇之,=>覇는 覆으로 바꿔야합니다. ‘하나는 우리와 <비>가 그들을 속여 배반할(覆에 ‘배반하다’의 의미가 있습니다) 것이라고 의심할 것이고’ ·吾當獨取之 =>‘내가 당연히 혼자서 취하겠다.’ ·<翰>遣使白<廆>曰; =>‘<한>이 사신을 보내 <외>에게 아뢰기를’ ·<翰>請爲奇兵於外. 伺其間, 而擊之 =>‘청컨대 저는 밖에서 기습하기 위한 병사(奇兵)를 준비하고 있다가 그들의 틈을 엿보아 공격하겠습니다.’ ·今, 幷兵爲一, 彼得專意攻城, 無復它虞, 非策之得者也. 且示衆以怯恐士氣不戰先沮矣. =>‘이제 병력을 아울러 하나로 만들면 저들은 오로지 성을 공격하려고 할 뿐 다른 걱정은 없게 됩니다. (그러니 병력을 합치는 것은) 올바른 계책이 아닙니다. 또한 많은 병력을 만든 것을 보이면 겁이 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우리 병사들의) 사기가 싸우기도 전에 먼저 꺾일까 걱정스럽습니다.’ 지금 이 대목은 <모용외>가 <도하>를 지키고 있는 아들 <모용한>에게 그의 병사를 이끌고 합류하라고 하는데, <한>은 그것이 상책이 아님을 설득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자신은 성 밖에서 기습을 준비하겠다는 것이죠. ‘示衆以怯’은 직해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 내용은 성안의 병력만으로 <실독관>의 군대를 대적하기에는 <외>가 겁이 나기 때문에 병력을 합쳤다고 우리 군사들이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城不足.” 憂 =>城不足憂” ‘성(을 함락시키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다.’ ·<翰>知之, 詐爲<段>氏使者逆於道, =>‘<한>은 그것을 알고 거짓으로 <단>씨의 사신을 시켜 길에서 만나게 했다.’(逆은 ‘맞이하다’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12월 :<廆>遺以車·牛·粟·帛, 皆不受, 躬耕於野. <외>는 수레·소·조·비단을 하나도 거두어가지 않았고, 스스로는 들판에서 경작하였다. =>‘<외>가 거, 우, 속, 백 등을 보내주었지만 전혀 받지 않고 들에서 몸소 경작하였다.’ <정림>이 이렇게 했다는 것이죠. ·22년 3월 :夷心有威惠.=>心->甚 ·天芶存汝, 則勿啼久之.” 不啼乃得免.=>天苟存汝, 則勿啼” 久之不啼 乃得免. ‘“천명이 너에게 있다면 울지 말아라.” 하였다. 오랫동안 울지 않아서 드디어 면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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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선생님께서 이 해석을 올렸던 부분을 찾아 읽어보았습니다. 23년 조에는 논의된 '<石勒>咸之, 以囊於百尺樓上, 撲殺之'를 남당 선생 원문을 찾아보니 선생님께서 '咸'으로 보신 글자는 '盛'이었습니다. 여기서의 쓰임은 '담는다'는 뜻입니다. <石勒> 盛之以囊於百尺樓上, 撲殺之. <석륵>이 자루에 백 척 누상에서 자루에 담아 쳐 죽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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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선생님, 고맙습니다. 盛자는 남당유고에서 읽어내기 힘든 대표적인 글자 중의 하나였습니다. 더군다니, 전문적인 한자와 한문을 공부도 해보지 못한, 문교 혜택 측면에서도 심각하게 우왕좌왕 하였던, 세대의 일원인 제가 문자를 좌우로 끊고 붙여가며 문장으로 형성하여 문장을 창조?하다시피하며 번역 가까스레 해놓은 것을 이렇게도 친절히 바로잡아주시니 그 고마움을 어찌 갚아야 할지... 그저 난감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머지 않은 날에 한 번 뵙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