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

기자조선은 한씨조선으로 바꿔야 한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 8. 21:37

《潛夫論》卷九
韓西亦姓韓為衛滿所伐遷居海中
韓西 역시 姓이 韓씨인데 衛滿에게 토벌당하여 海中으로 옮겼다.


《路史》卷二十八
韓西, 王肅云涿郡方城縣有韓城是
韓西나라는 王肅이 말하기를 涿郡의 方城縣이라고 하는데 韓城이라는 곳이 있는데 바로 이곳이다.

 

《欽定日下舊聞考》卷一百二十四
補詩曰其追其貊燕師之北國也韓在燕北貊為韓之北國韓既歸于燕韓從而東徙漢初謂之三韓(燕史)
그 追와 그 貊맥... 연나라의 북쪽에 있는 나라이다. 韓은 燕의 북쪽에 있다. 貊은 韓의 북쪽에 있다. 韓이 이미 燕에 귀속하였기 때문에 韓은 동으로 달아났는데 漢 초기에는 이들을 삼한(三韓)이라 불렀다.(燕史에서 인용)


《史記》卷三十四
燕北迫蠻貉内措齊晉崎嶇彊國之間最為弱小
燕國 북쪽은 핍박을 받았는데 만맥(蠻貉)은 연나라 안쪽까지 침투했다. 그래서 齊와 晉에 사이에 끼여 가장 약소국이 되었다


<<임하필기>>
濊國은 본래 막북(漠北, 翰海?)에 있다가 오랑캐에게 쫓겨 지금의 강릉부(江陵府)로 옮겼다.


<<해동역사>>에서 인용한 毛詩正義
한(漢)나라 초기에 이르러서는 그 종족이(즉 예맥족) 모두 동북쪽에 있어서 병주(幷州)의 북쪽에 다시는 맥의 종족이 없었다. 이에 또 말하기를, “그 뒤 追니 맥이니 하는 종족들은 험윤(玁狁)에게 몰려 점차 동쪽으로 옮겨 갔다.” 한 것이다.

 

<<한서>>
한 고조(漢高祖) 4년(기원전 203) 8월에 한왕이 초(楚)를 공격하여 광무(廣武)에 주둔하였는데, 북쪽의 맥(貉)과 [주1]연(燕)에서 날랜 군사를 보내와 한나라를 도왔다.
[주1]안사고(顔師古)가 말하기를 “맥은 동북쪽에 있다. 삼한(三韓)의 족속은 다 맥의 종족이다.” 하였다.

 

지금까지 인용한 구절들은

기자조선이라고 오해받고 있는 韓氏조선설을 뒷받침하는 기록들이다...

삼한이 요동에 있다는 말이 아니다.

 

사서에는 이 한씨조선을 진번조선(진막조선) 혹은 쇠맥조선(남들은 예맥조선이라 하지만 濊는 眞의 轉音이다)으로 썼다.

이들 한씨조선은 燕나라에 한번 패하여 동쪽으로 이동하고 위만조선에 또 패하여 동쪽으로 이동하여 三韓이라 불리게 되었다.

 

濊貊과 濊貃는 "쇠맥" 혹은 "쇠백"등으로 읽혔다.

濊貉은 "쇠맥"으로 읽혔다.

 

사마천은 이를 다른 글자로 써서...

 

濊(쇠)는 眞(zhen, 젠)으로 쓰고

貃(백)은 番(번)으로 썼다.

 

진번조선을 진막조선이라고 하는 이유는 濊貉이 "쇠맥"으로 읽히기때문에 貉을 幕으로 음차하였던 것이다.

즉 眞番조선을 眞莫조선이라도 하는 이유는 濊貊의 貊이 맥으로도 백으로도 불렸기때문이다.

 

毛詩에서는 이를 濊(쇠)외 眞(젠)을 追(추)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