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잡동사니/역사 논설

고죽국의 위치와 요양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2. 17. 11:43

조선(朝鮮)이 나라를 건설하고 고죽(孤竹)을 제후(君)로 삼았다. 그 지역을 고류(高柳)라 하였고 산의 이름은 밀운(密雲)이라 하였다. 

요양(遼陽)은 조(趙) 나라가 찢어 가졌고, 무수(武遂)는 진(秦) 나라가 나누어 가졌다.

【조선(朝鮮)과 고죽(孤竹)에 대한 주석은 이 책의 서론에 보였다. 한서지리지에서 말하기를 대군(代郡) 고류(高柳)는 서부도위(西部都尉)가 다스린다고 하였다. 수서지리지에서 말하기를 안악군(安樂郡) 밀운현(密雲縣)은 후위(後魏)에서 두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후위의) 밀운군은 백단(白檀), 요양(要陽), 밀운(密雲) 3개의 현을 다스린다고 하였다. 요양(遼陽)은 어양(漁陽)으로 의심된다. 사기조세가(史記趙世家) 도양왕(悼襄王) 9년, 조(趙) 나라가 연(燕)나라를 공격하여 리양성(貍陽城)을 취하였다고 하였다. 정의(正義)에서 말하기를 연(燕) 나라는 리양(貍陽)이 없으므로, 리(貍)자는 당연히 어양(漁陽)의 옛 성이다라고 하였는데 단주(檀州) 밀운현(密雲縣) 남쪽 18리에 있는 연(燕) 나라 어양군성(漁陽郡城)이다. 조(趙) 나라의 동쪽 국경은 영주(瀛州)에 이르는데 즉 단주(檀州)가 북쪽에 있다. 조(趙) 나라가 연(燕) 나라을 공격하여 어양성(漁陽城)을 취한 것이다. 지리지(地理志)에서 말하기를 요양(遼陽)은 요동군(遼東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안: 무수(武遂)는 2개가 있다. 하나는 한(韓)에 있고, 또 하나는 연(燕)에 있다. 사기(史記) 한세가(韓世家)에서 말하기를 양왕(襄王) 6년  진(秦) 나라가 다시 한(韓)에게 무수(武遂)를 주었다고 하였다. 9년에 진(秦)은 다시 한(韓)의 무수(武遂)를 취하였다고 하였다. 리왕(釐王) 6년 진(秦)에게 무수(武遂) 땅 200리를 주었다고 하였다. 정의(正義)에서 말하기를 무수(武遂)는 의양(宜陽)에서 가깝다고 하였다. 또한 조세가(趙世家)에서 말하기를 도양왕(悼襄王) 2년, 리목장(李牧將)이 연(燕)을 공격하여 무수(武遂)의 방성(方城)을 빼앗았다고 하였다. 서광(徐廣)이 말하기를 무수(武遂)는 안평(安平)에 속하였다고 하였다. 정의(正義)에서 말하기를 괄지지(括地志)에서는 역주(易州) 수성(遂城)이 전국(戰國)시대에 무수성(武遂城)이라 하였다. 수서지리지에서 말하기를 隋志云 상곡군(上谷郡) 수성(遂城)은 옛말에는 무수(武遂)라 하였고 수나라때에는 모용씨(慕容氏)의 도읍이라 하였으니 연국(燕國)의 것은 모두 연무수성(燕武遂城)이라 하였으므로 한(韓)의 무수(武遂)와는 다르다. 전국(戰國)시대에 연(燕) 나라가 진(秦) 나라에 멸망하여 무수(武遂)는 진(秦)나라가 나누어 가졌다고 한 것이다. 】

* 조선의 봉국 중 하나인 고죽국이 대군(代郡)의 고류현(高柳縣)이라고 말합니다. 지나역사지도집을 보니 대략 산서성 대동시군요.

* 요양(遼陽)은 원래 연나라 어양군인데 조나라가 공격하여 가졌다고 합니다. 주석에 말하기를 연나라 어양군이라고 합니다. 한서지리지를 제가 직접 보니 한나라 어양군 중에 요양현(要陽縣)이 있더군요. 글자만 살짝 바꾸어 요양(要陽)은 어양군에 두고 요동군에다가 요양(遼陽)을 가짜로 만들었군요.




庾子山集巻十四
朝鮮建國, 孤竹為君, 地稱高柳, 山名密雲, 遼陽趙裂, 武遂秦分
【朝鮮孤竹注見本序漢書地理志曰代郡高柳西部都尉治隋書地志云安樂郡宻雲縣後魏置宻雲郡領白檀要陽宻雲三縣遼陽疑作漁陽史記趙世家悼襄王九年趙攻燕取貍陽城正義曰燕無貍陽疑貍字誤當作漁陽故城在檀州宻雲縣南十八里燕漁陽郡城也趙東界至瀛州則檀州在北趙攻燕取漁陽城也地理志云遼陽屬遼東郡按武遂有二其一在韓其一在燕史記韓世家襄王六年秦復與我武遂九年秦復取我武遂釐王六年與秦武遂二百里正義曰上武遂及此武遂皆宜陽近地又趙世家悼襄王二年李牧將攻燕拔武遂方城徐廣曰武遂屬安平正義曰括地志云易州遂城戰國時武遂城也隋志云上谷郡遂城舊曰武遂今云慕容氏本都燕國蓋謂燕武遂城與韓為異也戰國時燕為秦所滅故云武遂秦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