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잡동사니/남당사료
高句麗史略卷之二/第五世<慕本帝>紀 - 초벌번역(**재정정**)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1. 18. 11:26
제4세 민중제기까지 붙여놓은 단기 및 서기 년도가 잘 못되어 어제 모조리 고쳐놓았읍니다.
제대로 해놓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제5세 <모본제>기를 조금 전에 초벌 번역 끝냈읍니다.
제대로 못한 부분은 일별하시면 보이실 것이니, 지도하여 주시길 앙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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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하나씩 올린 것을 삭제하였으면 합니다.
수고스러우시겠지만 지금까지 댓글을 주신 분들께서는
금번에 올린 "모본제기"로 옮겨 주실 수 있으신가요?
십시일반으로 도와주신다면;
이번 주말 이후에, 지금까지 올린 것들을, 초벌번역이지만, 아쉬운대로 하나의 화일로 묶었으면 합니다.
의견 꼬리 부탁드립니다.
특히, ?? - - - -?? 부분은 꼭 살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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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이 잘못 서면 이런 일이 기록되나 봅니다.
第五世<慕本帝>紀
◎帝諱<解憂>, <大武神帝>之子也. 母曰<烏>太后, <烏伊>子<婁>之女也. 容貌美麗, 而能騎射, 善諧 阿諛, 故<武帝>愛之, 以爲正胤, 旣得志, 多亂後宮, 而性頗殘(仁忍). <武帝>臨崩, 命<閔中>, 令行太甲 故事待其改過, 而傳位, 又令<烏>后事<閔中>, 而完其事未幾, <閔中>見其改過之跡, 而欲讓位. <烏>后力止之, 而未得. 常謂左右曰; "吾, 以后, 故未副兄志.", 夜不能寢, 疾作而崩, 以遺命立帝. <烏>后謂帝曰; "汝父欲立汝, 吾力止之者, 猶有未信故也. 今以遺命立汝. 汝其體, 汝二父之心, 而無失天子之德." 帝素有孝行故唯. 唯而卽位.
◎제의 휘는 <해우>이고, <대무신제>의 아들이다. 모친은 <오>태후로서, <오이>의 아들인 <오루>의 딸이다. 용모가 미려하고 말탄채 활쏘기를 잘 하고, 허튼소리와 빌붙기도 잘하니, <무제>가 그(<모본>)를 귀여워 하여 정윤으로 삼았더니, 의기양양하여 후궁들과 어지러이 놀아났고, 성품도 삐딱하고 잔인하였다. <무제>가 죽음을 앞두고 <민중>에게 태갑의 일을 주었었기에, (<모본>이 이제는) 개관천선 하였을 것으로 기대하여 (<민중>이 <모본>에게) 전위한 것이다. 또 (<대무신제>가) <오>후에게 <민중>을 섬기게 하였는데, 그 일을 끝내기도 전에, <민중>이 그(<모본>)가 개과한 흔적을 보인 것으로 알고 양위하려고 하였었다. <오>후는 이를 힘껏 말렸으나 헛일이 되었다. (<민중>은) 늘상 좌우에게 "나는 후(<오>황후)때문에 형(<대무신제>)의 뜻(<모본>에게 보위를 물려주는 것)을 따를 수 없다."고 하더니만, 밤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병이 들어 죽었고, 유명에 따라 (<모본>이) 제위에 섰다. <오>후가 제(<모본>)에게 이르길; "네 아버지(<대무신제>)는 너를 보위에 세우고자 하였었고, 나는 그것을 말렸었는데, 너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지금 유명에 따라 너를 보위에 세운다. 너의 몸은 네 두 아버지(<대무신제>와 <민중제>)의 뜻이니, 천자로서의 덕을 잃어서는 아니된다." 하였다. 제(<모본>)는 평소에 효행을 하였고(하는 체만 하였고...), 오직 효행하였다는 까닭만으로 즉위하였다. ---- 이 부분 정말 어려웠읍니다----.
◎元年戊辰六月, 葬先帝于石窟. 謂;"左右叔父,以我長而賢,欲傳位,二三奸姬托,以母后之命,而拒之. 母后豈惡我, 是乃太輔之過也." 乃罷<麻勁>爲庶人, <松보><乙祥>盖免. <烏希>左輔, <羽眞>右輔委軍國大事. 尊母<烏>氏爲太后, 納<羽眞>女爲皇后. 廢元妃<麻>氏曰;"<勁>以女妻朕, 窘我久矣. 今廢之, 爽然.", <烏>太后曰; **"汝云改過,而復如此.** 汝父有靈必復<閔中>矣. **蓋先帝,常以帝亢<閔中>. 故如是言也."** 七月,復納<烏希>女爲副后. 八月,山崩二十餘所,上有구色,命停采女. 十月,以元子<翊>爲正胤. <翊>時十一. 白其母<麻>氏,出宮,號泣不食, 太后叱帝曰; "汝欲殺子也." 上乃召<麻>氏同寢曰; "使汝出宮者,欲使汝父改過也." 乃慰<翊>而爲嗣者也. 先是上行天祭于神隧. <羽眞>請立<翊>. 上曰; "朕欲以卿女之子爲嗣." <羽眞>; "臣女幼何可待之耳. <翊>有孝行如陛下, 故國人敬之. 陛下,若以<翊>爲臣女之子,不亦好乎." 上感其言而立<翊>. <羽>皇后亦累言, <麻>氏之賢, 而復后, 故以<翊>爲<羽>后之子. <扶余>再亂, <再思><芦花>與<穆卓>往鎭之. 如<曷思宮>. 左輔<烏 >諫不聽.
◎원년(단기2401년/AD68)무진, 6월, 선제를 석굴에 장사하고 나서, 말하길; "신하들과 숙부(<민중>)는 내가 커서 알 만큼 알게 되어, 전위하려 하셨었는데, 두 세 명의 간사한 여자들이 모후의 명령을 핑계로 하여 그것을 막았소. 모후께서는 나를 헐뜯기를 즐기셨는데, 이는 태보가 잘못한 때문이오." 라 하고는, <마경>을 파직하여 서인으로 만들었으며, <송보>와 <을상>은 면직시켰다. <오희>를 좌보로, <우진>을 우보로 하고 군국대사를 맡겼다. 자신의 모친은 태후로 올리고, <우진>의 딸을 받아들여 황후로 삼았다. 원비 <마>씨를 폐하여 말하기를; "<마경>이 자기 딸을 짐에게 처를 삼게 하고는 나를 오래도록 괴롭혔다, 지금 이를 폐하니, 후련하다." 하니, <오>태후가 이르길;** "너는 개과하였다 말하지만, 다시 옛날로 돌아 갔기에, 그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네 아비의 혼령이 있으면 반드시 <민중>을 다시 세울 것이다. **대략 선제(대무)께서 항상 <민중>을 제항(황제들의 귀감)으로 하신 까닭은 바로 이런 때문이다."** 하였다.
7월, 다시금 <오희>의 딸을 불러들여 부후로 삼았다. 8월, 20여 군데의 산이 무너지자 상은 두려운 안색이 되어, 여자들을 뽑아들이는 것을 중지시켰다. 10월, 원자 <익>을 정윤으로 삼았다. <익>의 나이는 11살이었다. <익>의 어미를 출궁하라 하니, 울부짖으며 먹기를 마다하니, 태후가 제에게; "너는 자식을 즉이려 하느냐?" 하고 꾸짖었다. 상은 <마>씨를 불러들여 동침하여 이르길; "내가 당신을 출궁시킨 것은 당신의 아버지가 잘못을 뉘치게 하려 한 것이었오."라 하고, <익>을 위안하고 후사로 삼았다. 이전에 상이 신성한 동굴무덤을 찾아 천제를 지냈다. <우진>이 <익>을 (후사로) 세우길 청하니, 상이 말하길; "짐은 경의 여식이 낳은 아들을 후사로 삼으려 하오>"라 하였고, <우익>이 답하길; "신의 딸은 아직 어린데 어찌 기다릴 수 있습니까? <익>의 효행은 폐하와 같아서 나라 안의 사람들이 존경하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익>을 신의 딸이 낳은 자식으로 여겨 주시면 이 역시 좋지 않겠읍니까?" 라 하니, 상이 그 말에 감복하여 <익>을 세웠다. <우>황후 또한 <마>씨의 어짊을 누차 간하였기에, <마>씨를 후로 복위시켜 주고, <익>을 <익>후의 아들로 삼았다. <부여>에 반란이 다시 일어, <재사>와 <호화>가 <목탁>과 함께 가서 진압하였다. <갈사궁>에 행차하였다. 좌보<오불>이 간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二年己巳, 正月, 擇宗室公卿女七人, 納後宮, 又采民間女七十人, 分屬七宮, 淫荒爲事. 三月, 暴風拔樹. 四月, 霜雹, 上怒天. "旣惡我, 我亦惡天." 命左右射天. 八月, 發倉賑民. 納好童女葦花,再思室也. <曷思宮>生女니之, 曰: "生此, 何爲," 乃名<니>.
◎2년(단기2402년/AD69)기사정월, 종실과 공경 들의 딸 일곱 명을 후궁으로 불러들이고, 백성의 딸 70명을 가려뽑아 일곱 궁에 나누어 두고, 황음하기를 일로 삼았다. 3월, 폭풍에 나무가 뽑혔다. 4월, 서리와 우박이 내리니, 상이 하늘에 노여워하였다. "이미 나를 미워하였으니, 나 역시 하늘을 미워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좌우에 명하여 하늘에 활을 쏘게 하였다. 8월, 창고를 열어 백성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다. 호동의 딸 **<위화>를 불러들였고, 그녀는 <재사>의 여자(再思室)였었다.**
<갈사궁>이 딸을 낳고는, 딸 낳은 것을 부끄러워 하며, **"이걸(아들 대신 딸) 낳았으니, 어쩌나?" 하고는, 이름을 <니>라고 지었다.**
◎三年庚午, 三月, 作<창水>新宮, 極其奢. 後日,會宗戚,命婦飮荒度日. <濟>侵<羅><蛙山>,不克. 六月, <藍>公主薨,年七十八. &&(漢殺其弟□作金□玉鶴罪).&&
◎3년(단기2403년/AD70)경오, 3월, <창수>에 신궁을 지었는데, 사치가 극에 달했다. 후일, 종척들을 불러모아, 부인들에게 명하여 술마시고 음란하기로 세월을 보냈다. <백제>가 <신라>의 <와산>에 침입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6월, <람>공주가 죽었는데, 나이 78살이었다.
&&(한살기제□작금□옥학죄)&&는 해득 못하는 두 글자가 있어 번역을 보류합니다.
◎四年辛未, 二月, 殺內使者<勝人>, <勝人>以美容得幸. 上坐臥席之, <勝人>不能堪其苦, 而動之, 放尻(尿), 上怒格而殺之. 其母<尺>亦以勝之故得寵, 怨其殺子, 而見黜. 自是, 宮人內使之爲**席人**者, 多被殺傷. 上殺副后<烏>氏, <烏>氏生女, 未幾, 使**席人**<杜魯>通之, 疾作而怨上, 上拳之吐血而死. 太后痛哭. 上怒曰, 此老狐促我死耶, 命左右引出之. <羽>后諫之亦見廢. <烏希><羽眞>皆稱病不出, 人心洶洶. <杜魯>等跋扈擅權. <涉得>死, <射旭>立.
◎4년(단기2404년/AD71)신미, 2월, 내사자<승인>을 죽였다. 승인은 예쁜 얼굴 때문에 승은을 입었었다. 상이 <승인>을 눞히고 깔고 앉으니, <승인>이 고통을 참다못해, **움직이다 오줌이 나오니,** 상이 노하여 그를 잡아 죽였다. <승인>의 모친 <척> 역시 <승인>의 일로 하여 승은을 입었는데, 자기 자식이 죽는 것을 보고 원망하자, 쫓겨났다. 이때부터 **궁인과 내사들 중 인간 깔개가 된 여럿이 죽고 상하였다.** 상은 부후인 <오>씨를 죽였는데, <오>씨는 딸을 낳고 몸도 추스르기 전인데도, **인간 깔개인** <두로>를 시켜 통정케 하여, 병이 생기자 상을 원망하자, 상이 <오>후를 주먹질하여 토혈하고 죽었다. (이꼴을 본) 태후가 통곡하니, 상이 노하여 말하기를; "이 노파는 내가 빨리 죽기를 바란다." 하고는 좌우에게 끌어 내라고 명하였다. <우>후가 간하자 역시 폐함을 당하였다. <오희>와 <우진>은 병을 핑계하여 나오지 않았고, 인심이 흉흉해졌다. <두로>등이 발호하여 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렀다. <섭득>이 죽고, 아들 <사욱>이 섰다.
◎五年壬申, 四月, 田<質山>. 五月,<東扶余>屬國<藻那>(尼港)反, 命<穆卓><達賈>等征平之. <卓>以<藻那>王女<창>爲妻. 七月,田<閔中>願. 九月, 採國中美少年,入宮中,爲枕臣**席人,**不如意,則輒射之,或死或傷. <勝人>之弟<崔인>被殺. <烏俊>諫曰;"人命至重何可如是." 上怒亦射之. 人不敢言.
◎5년(단기2405년/AD72)임신, 4월, <질산>에서 사냥하였다. 5월, <동부여>의 소국인 <조나>가 반하니, <목탁>과 <달가>등에 명하여 가서 평정하라 명하였다. <목탁>은 <조나>왕의 딸 <창>을 처로 두고 있었다. 7월, <민중>원에서 사냥했다. 9월, 나라 안의 미소년을 가려뽑아 입궁시켜 **침신이나 인간 깔개로** 삼았다. 시키는대로 따르지 않으려 하면 즉시 쏴버려서 죽거나 다치거나 하였다. <승인>의 남동생 <최인>도 죽임을 당했다. <오준>이 간하여 "사람 목숨은 극히 귀한 것인데, 이러하시면 어찌하십니까?" 말하였더니, 상은 화를 내며 역시 활을 쏘았다. (이리하여) 누구도 감히 말하려 하지 않았다.
◎六年癸酉,二月,<慕本>新宮成,以爲東都,遊幸之所. 以<杜魯>爲枕臣. <魯>,<慕本>民也. 美容而能□, 上自太子時愛之,及卽位,封爲將軍. 有<扶餘>功爵大兄,拜中畏大夫. 皇后<羽>氏<烏>氏<麻>氏皆被其汚. <麻>氏生<杜魯>女. <烏>太后亦與<杜魯>通, 宮中呼. <魯>以小帝. 五月,戊午晦,日食. <杜魯>與<崔 >母<尼滿>交好,而歎曰; "吾命亦不久矣". <尼滿>曰;"小帝,有何不洽,而言如此乎." <魯>曰;"上怒我動搖欲殺之,奈何." <尼滿>曰;"撫我則后,□我則讐. 彼爲無道,殺人與草芥,何不殺彼,而自立耶." <魯>然之,遂有弑逆之心. 上累怒其動罪而戒之,至十一月又動之,上欲射之. <魯>以所藏 刀,刺帝,出血如湧. <魯>見其狀,而悔之,欲自刎,而不得,乃如<麻>后寢而告之. <麻>后與<魯>有私故, 秘其喪欲立<魯>爲帝, 召<麻樂>議之曰;"主上不道,而被弑,當立宗室,<魯>何敢立乎.
◎6년(단기2406년/AD73)계유, 2월, <모본>신궁이 완성되어, 동도로 삼아, 놀이하려 가는 곳으로 하였다. <두로>를 침신으로 삼았다. <로>는 <모본>사람이다. 예쁜 얼굴에 □를 잘하여, 상이 태자시절부터 그를 아꼈고, 즉위한 이후 장군에 봉하였다. <부여>와 전쟁에 공이 있어 대형의 작위를 받고 중외대부에 제수되었다. 황후 <우>씨, <오>씨, <마>씨는 모두 이 인간의 오물을 뒤집어썼다. <마>씨는 <두로>의 딸까지 낳았고, <오>태후도 <두로>와 통음한 것이 궁안에서 말이 돌았다. <로>는 작은 황제로 살았다. 5월, 무오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두로>가, <최인>의 모친 <니만>이 함께 즐기며, 한탄하기를 "내 목숨도 역시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하니, <니만>이 "소제도 어떤 흡족하지 않은 일이 있기에 그런 말을 하시나요?"라 하였고, <로>는 "상이 내게 화가나서 (나를 올라타고) 흔들어서 나를 죽이려 하는데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소."라 하였고, <니만>이 말하길; "내게 잘하여주면 나가 후이지만, 나를 박해하면 원수입니다. 그 인간이 무도하여 사람 죽이기를 초개와 같이 하는데, 왜 그를 죽이고 스스로 보위에 오르지 않으시오?" 하였다. <로>도 그렇다고 여겨, (상을) 시해하여 반역할 마음이 생겼다. 상은 (<두로>가 상의 밑에 깔려서 움직인 죄에 대하여 여러차례 노여워하여 훈계만 하다가, 11월에도 계속하여 움직였다고 <두로>를 쏘아죽이려 하니, <두로>가 숨겨둔 보검으로 제를 칼질하였고, 피가 용솟았다. <로>가 그 모습을 보더니, 후회가 되어 자기 목을 베고 싶었으나, 그리하지 못하고, <마>후의 침소로 가서 사실을 알렸다. <마>후는 <로>와는 특별한 까닭을 가지고 있어, 이를 숨기고는 <로>를 제위에 세우고 싶었고, <마락>을 불러 사의 하니, (<마락>이) 말하길; " 상이 부도하여 살해되었으나, 당연히 종실 사람을 세워야지 어찌 감히 <로>를 세울 수 있오?"라 하였다.
◎<魯>知事敗,而自刎, 乃召<麻勁><松보><烏希><羽眞>等議之 ,皆曰; "<大武>諸子中, 唯<再思>大王最賢." 乃遣<麻樂>于<曷思宮>迎之. <再思>曰;**"寡人年少沒識, 不如立<翊>.",** 固辭不出. <麻>后亦欲立<翊>而請於<勁>, <勁>曰;"立皇以賢,汝何敢言." 遂與<松보 >亦至<曷思宮> 頭請出, <再思>不得已卽位東都新宮. <麻勁>以病固辭. 太輔于<松보>,<보>亦固辭. 上曰; "國之二老如是棄我, 我何敢立.", <보>乃受位曰; "臣有一言敢請." 上曰;"何言." <보>曰;"<勁>以柱石,爲國盡忠. 廢<麻>后而出<茅>,父女之情割矣. 願, 陛下, 抱容爲后何如." 上可之, 乃召庶人<烏>氏<麻>氏于<茅山>, 尋<麻>氏<羽>氏爲宮人葬, 大行于<慕本原>, 埋<杜魯><尼滿>于其側. <尼滿>,<보刀>之主,<崔理>女也(哈爾 河福山屯界).
◎<로>는 일이 실패하였음을 알고는 자기 목을 베어 죽었고, (<마락>이) <마경><송보><오희><우진> 등을 불러들여 상의하니 다들 "<대무>의 아들들 중에 <재사>대왕이 가장 현명하다."하였고, <마락>을 <갈사궁>으로 보내 <재사>대왕을 맞으려 하니, <재사>가 말하길;** "과인은 나이도 적고 아는 것이 없어, <익>을 세우는 것만 못하다."하고는, 고사하고 나서지 않았다.** <마>후 역시 <익>태자를 보위에 세우고 싶어 <마경>에게 부탁하니, <마경>이 답하길; "현명한 이를 황위에 세워야 하는데, 어찌 감히 그런 말씀이십니까?"라 하였다. 그리고는 <송보>와 함께 <갈사궁>으로 가서 머리를 조아려 보위에 오르길 청하매, <재사>가 부득이 동도의 신궁에서 즉위하였다. <마경>이 병 때문에 고사하여, 태보를 <송보>에게 돌리니 <송보>역시 고사하였다. 상이 이르길; "나라의 두 노신이 나를 이렇게 피하는데, 내가 어찌 감히 보위에 서겠소?" 하니, <송보>가 태보의 자리를 받고 말하길; "신에게 감히 청할 말씀 하나가 있습니다." 하였고, 상이 무엇이냐 물으니, <송보>가 아뢰길; "<마경>은 나라의 주춧돌로서 나라에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폐한 <마>후는 <모산>에서 내쫓겨 부녀의 정을 갈라놓았습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마>후를) 끌어안아 후로 삼아주시지 않으시겠읍니까?"하니, 상은 허락하였고, 폐서인 <오>씨와 <마>씨를 <모산>으로 불렀고, <마>씨와 <우>씨를 찾아 궁인의 예로 <모본원>에 성대히 장사하여 주었고, <두로>와 <니만>도 그 곁에 묻어주었다. <니만>은 보검의 주인으로 <최리>의 딸이었다.(哈爾보河福山屯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역시 똑같은 부탁을 드립니다.
* 송준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5-31 06:41)

제대로 해놓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제5세 <모본제>기를 조금 전에 초벌 번역 끝냈읍니다.
제대로 못한 부분은 일별하시면 보이실 것이니, 지도하여 주시길 앙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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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번에 올린 "모본제기"로 옮겨 주실 수 있으신가요?
십시일반으로 도와주신다면;
이번 주말 이후에, 지금까지 올린 것들을, 초벌번역이지만, 아쉬운대로 하나의 화일로 묶었으면 합니다.
의견 꼬리 부탁드립니다.
특히, ?? - - - -?? 부분은 꼭 살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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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이 잘못 서면 이런 일이 기록되나 봅니다.
第五世<慕本帝>紀
◎帝諱<解憂>, <大武神帝>之子也. 母曰<烏>太后, <烏伊>子<婁>之女也. 容貌美麗, 而能騎射, 善諧 阿諛, 故<武帝>愛之, 以爲正胤, 旣得志, 多亂後宮, 而性頗殘(仁忍). <武帝>臨崩, 命<閔中>, 令行太甲 故事待其改過, 而傳位, 又令<烏>后事<閔中>, 而完其事未幾, <閔中>見其改過之跡, 而欲讓位. <烏>后力止之, 而未得. 常謂左右曰; "吾, 以后, 故未副兄志.", 夜不能寢, 疾作而崩, 以遺命立帝. <烏>后謂帝曰; "汝父欲立汝, 吾力止之者, 猶有未信故也. 今以遺命立汝. 汝其體, 汝二父之心, 而無失天子之德." 帝素有孝行故唯. 唯而卽位.
◎제의 휘는 <해우>이고, <대무신제>의 아들이다. 모친은 <오>태후로서, <오이>의 아들인 <오루>의 딸이다. 용모가 미려하고 말탄채 활쏘기를 잘 하고, 허튼소리와 빌붙기도 잘하니, <무제>가 그(<모본>)를 귀여워 하여 정윤으로 삼았더니, 의기양양하여 후궁들과 어지러이 놀아났고, 성품도 삐딱하고 잔인하였다. <무제>가 죽음을 앞두고 <민중>에게 태갑의 일을 주었었기에, (<모본>이 이제는) 개관천선 하였을 것으로 기대하여 (<민중>이 <모본>에게) 전위한 것이다. 또 (<대무신제>가) <오>후에게 <민중>을 섬기게 하였는데, 그 일을 끝내기도 전에, <민중>이 그(<모본>)가 개과한 흔적을 보인 것으로 알고 양위하려고 하였었다. <오>후는 이를 힘껏 말렸으나 헛일이 되었다. (<민중>은) 늘상 좌우에게 "나는 후(<오>황후)때문에 형(<대무신제>)의 뜻(<모본>에게 보위를 물려주는 것)을 따를 수 없다."고 하더니만, 밤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병이 들어 죽었고, 유명에 따라 (<모본>이) 제위에 섰다. <오>후가 제(<모본>)에게 이르길; "네 아버지(<대무신제>)는 너를 보위에 세우고자 하였었고, 나는 그것을 말렸었는데, 너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지금 유명에 따라 너를 보위에 세운다. 너의 몸은 네 두 아버지(<대무신제>와 <민중제>)의 뜻이니, 천자로서의 덕을 잃어서는 아니된다." 하였다. 제(<모본>)는 평소에 효행을 하였고(하는 체만 하였고...), 오직 효행하였다는 까닭만으로 즉위하였다. ---- 이 부분 정말 어려웠읍니다----.
◎元年戊辰六月, 葬先帝于石窟. 謂;"左右叔父,以我長而賢,欲傳位,二三奸姬托,以母后之命,而拒之. 母后豈惡我, 是乃太輔之過也." 乃罷<麻勁>爲庶人, <松보><乙祥>盖免. <烏希>左輔, <羽眞>右輔委軍國大事. 尊母<烏>氏爲太后, 納<羽眞>女爲皇后. 廢元妃<麻>氏曰;"<勁>以女妻朕, 窘我久矣. 今廢之, 爽然.", <烏>太后曰; **"汝云改過,而復如此.** 汝父有靈必復<閔中>矣. **蓋先帝,常以帝亢<閔中>. 故如是言也."** 七月,復納<烏希>女爲副后. 八月,山崩二十餘所,上有구色,命停采女. 十月,以元子<翊>爲正胤. <翊>時十一. 白其母<麻>氏,出宮,號泣不食, 太后叱帝曰; "汝欲殺子也." 上乃召<麻>氏同寢曰; "使汝出宮者,欲使汝父改過也." 乃慰<翊>而爲嗣者也. 先是上行天祭于神隧. <羽眞>請立<翊>. 上曰; "朕欲以卿女之子爲嗣." <羽眞>; "臣女幼何可待之耳. <翊>有孝行如陛下, 故國人敬之. 陛下,若以<翊>爲臣女之子,不亦好乎." 上感其言而立<翊>. <羽>皇后亦累言, <麻>氏之賢, 而復后, 故以<翊>爲<羽>后之子. <扶余>再亂, <再思><芦花>與<穆卓>往鎭之. 如<曷思宮>. 左輔<烏 >諫不聽.
◎원년(단기2401년/AD68)무진, 6월, 선제를 석굴에 장사하고 나서, 말하길; "신하들과 숙부(<민중>)는 내가 커서 알 만큼 알게 되어, 전위하려 하셨었는데, 두 세 명의 간사한 여자들이 모후의 명령을 핑계로 하여 그것을 막았소. 모후께서는 나를 헐뜯기를 즐기셨는데, 이는 태보가 잘못한 때문이오." 라 하고는, <마경>을 파직하여 서인으로 만들었으며, <송보>와 <을상>은 면직시켰다. <오희>를 좌보로, <우진>을 우보로 하고 군국대사를 맡겼다. 자신의 모친은 태후로 올리고, <우진>의 딸을 받아들여 황후로 삼았다. 원비 <마>씨를 폐하여 말하기를; "<마경>이 자기 딸을 짐에게 처를 삼게 하고는 나를 오래도록 괴롭혔다, 지금 이를 폐하니, 후련하다." 하니, <오>태후가 이르길;** "너는 개과하였다 말하지만, 다시 옛날로 돌아 갔기에, 그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네 아비의 혼령이 있으면 반드시 <민중>을 다시 세울 것이다. **대략 선제(대무)께서 항상 <민중>을 제항(황제들의 귀감)으로 하신 까닭은 바로 이런 때문이다."** 하였다.
7월, 다시금 <오희>의 딸을 불러들여 부후로 삼았다. 8월, 20여 군데의 산이 무너지자 상은 두려운 안색이 되어, 여자들을 뽑아들이는 것을 중지시켰다. 10월, 원자 <익>을 정윤으로 삼았다. <익>의 나이는 11살이었다. <익>의 어미를 출궁하라 하니, 울부짖으며 먹기를 마다하니, 태후가 제에게; "너는 자식을 즉이려 하느냐?" 하고 꾸짖었다. 상은 <마>씨를 불러들여 동침하여 이르길; "내가 당신을 출궁시킨 것은 당신의 아버지가 잘못을 뉘치게 하려 한 것이었오."라 하고, <익>을 위안하고 후사로 삼았다. 이전에 상이 신성한 동굴무덤을 찾아 천제를 지냈다. <우진>이 <익>을 (후사로) 세우길 청하니, 상이 말하길; "짐은 경의 여식이 낳은 아들을 후사로 삼으려 하오>"라 하였고, <우익>이 답하길; "신의 딸은 아직 어린데 어찌 기다릴 수 있습니까? <익>의 효행은 폐하와 같아서 나라 안의 사람들이 존경하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익>을 신의 딸이 낳은 자식으로 여겨 주시면 이 역시 좋지 않겠읍니까?" 라 하니, 상이 그 말에 감복하여 <익>을 세웠다. <우>황후 또한 <마>씨의 어짊을 누차 간하였기에, <마>씨를 후로 복위시켜 주고, <익>을 <익>후의 아들로 삼았다. <부여>에 반란이 다시 일어, <재사>와 <호화>가 <목탁>과 함께 가서 진압하였다. <갈사궁>에 행차하였다. 좌보<오불>이 간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二年己巳, 正月, 擇宗室公卿女七人, 納後宮, 又采民間女七十人, 分屬七宮, 淫荒爲事. 三月, 暴風拔樹. 四月, 霜雹, 上怒天. "旣惡我, 我亦惡天." 命左右射天. 八月, 發倉賑民. 納好童女葦花,再思室也. <曷思宮>生女니之, 曰: "生此, 何爲," 乃名<니>.
◎2년(단기2402년/AD69)기사정월, 종실과 공경 들의 딸 일곱 명을 후궁으로 불러들이고, 백성의 딸 70명을 가려뽑아 일곱 궁에 나누어 두고, 황음하기를 일로 삼았다. 3월, 폭풍에 나무가 뽑혔다. 4월, 서리와 우박이 내리니, 상이 하늘에 노여워하였다. "이미 나를 미워하였으니, 나 역시 하늘을 미워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좌우에 명하여 하늘에 활을 쏘게 하였다. 8월, 창고를 열어 백성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다. 호동의 딸 **<위화>를 불러들였고, 그녀는 <재사>의 여자(再思室)였었다.**
<갈사궁>이 딸을 낳고는, 딸 낳은 것을 부끄러워 하며, **"이걸(아들 대신 딸) 낳았으니, 어쩌나?" 하고는, 이름을 <니>라고 지었다.**
◎三年庚午, 三月, 作<창水>新宮, 極其奢. 後日,會宗戚,命婦飮荒度日. <濟>侵<羅><蛙山>,不克. 六月, <藍>公主薨,年七十八. &&(漢殺其弟□作金□玉鶴罪).&&
◎3년(단기2403년/AD70)경오, 3월, <창수>에 신궁을 지었는데, 사치가 극에 달했다. 후일, 종척들을 불러모아, 부인들에게 명하여 술마시고 음란하기로 세월을 보냈다. <백제>가 <신라>의 <와산>에 침입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6월, <람>공주가 죽었는데, 나이 78살이었다.
&&(한살기제□작금□옥학죄)&&는 해득 못하는 두 글자가 있어 번역을 보류합니다.
◎四年辛未, 二月, 殺內使者<勝人>, <勝人>以美容得幸. 上坐臥席之, <勝人>不能堪其苦, 而動之, 放尻(尿), 上怒格而殺之. 其母<尺>亦以勝之故得寵, 怨其殺子, 而見黜. 自是, 宮人內使之爲**席人**者, 多被殺傷. 上殺副后<烏>氏, <烏>氏生女, 未幾, 使**席人**<杜魯>通之, 疾作而怨上, 上拳之吐血而死. 太后痛哭. 上怒曰, 此老狐促我死耶, 命左右引出之. <羽>后諫之亦見廢. <烏希><羽眞>皆稱病不出, 人心洶洶. <杜魯>等跋扈擅權. <涉得>死, <射旭>立.
◎4년(단기2404년/AD71)신미, 2월, 내사자<승인>을 죽였다. 승인은 예쁜 얼굴 때문에 승은을 입었었다. 상이 <승인>을 눞히고 깔고 앉으니, <승인>이 고통을 참다못해, **움직이다 오줌이 나오니,** 상이 노하여 그를 잡아 죽였다. <승인>의 모친 <척> 역시 <승인>의 일로 하여 승은을 입었는데, 자기 자식이 죽는 것을 보고 원망하자, 쫓겨났다. 이때부터 **궁인과 내사들 중 인간 깔개가 된 여럿이 죽고 상하였다.** 상은 부후인 <오>씨를 죽였는데, <오>씨는 딸을 낳고 몸도 추스르기 전인데도, **인간 깔개인** <두로>를 시켜 통정케 하여, 병이 생기자 상을 원망하자, 상이 <오>후를 주먹질하여 토혈하고 죽었다. (이꼴을 본) 태후가 통곡하니, 상이 노하여 말하기를; "이 노파는 내가 빨리 죽기를 바란다." 하고는 좌우에게 끌어 내라고 명하였다. <우>후가 간하자 역시 폐함을 당하였다. <오희>와 <우진>은 병을 핑계하여 나오지 않았고, 인심이 흉흉해졌다. <두로>등이 발호하여 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렀다. <섭득>이 죽고, 아들 <사욱>이 섰다.
◎五年壬申, 四月, 田<質山>. 五月,<東扶余>屬國<藻那>(尼港)反, 命<穆卓><達賈>等征平之. <卓>以<藻那>王女<창>爲妻. 七月,田<閔中>願. 九月, 採國中美少年,入宮中,爲枕臣**席人,**不如意,則輒射之,或死或傷. <勝人>之弟<崔인>被殺. <烏俊>諫曰;"人命至重何可如是." 上怒亦射之. 人不敢言.
◎5년(단기2405년/AD72)임신, 4월, <질산>에서 사냥하였다. 5월, <동부여>의 소국인 <조나>가 반하니, <목탁>과 <달가>등에 명하여 가서 평정하라 명하였다. <목탁>은 <조나>왕의 딸 <창>을 처로 두고 있었다. 7월, <민중>원에서 사냥했다. 9월, 나라 안의 미소년을 가려뽑아 입궁시켜 **침신이나 인간 깔개로** 삼았다. 시키는대로 따르지 않으려 하면 즉시 쏴버려서 죽거나 다치거나 하였다. <승인>의 남동생 <최인>도 죽임을 당했다. <오준>이 간하여 "사람 목숨은 극히 귀한 것인데, 이러하시면 어찌하십니까?" 말하였더니, 상은 화를 내며 역시 활을 쏘았다. (이리하여) 누구도 감히 말하려 하지 않았다.
◎六年癸酉,二月,<慕本>新宮成,以爲東都,遊幸之所. 以<杜魯>爲枕臣. <魯>,<慕本>民也. 美容而能□, 上自太子時愛之,及卽位,封爲將軍. 有<扶餘>功爵大兄,拜中畏大夫. 皇后<羽>氏<烏>氏<麻>氏皆被其汚. <麻>氏生<杜魯>女. <烏>太后亦與<杜魯>通, 宮中呼. <魯>以小帝. 五月,戊午晦,日食. <杜魯>與<崔 >母<尼滿>交好,而歎曰; "吾命亦不久矣". <尼滿>曰;"小帝,有何不洽,而言如此乎." <魯>曰;"上怒我動搖欲殺之,奈何." <尼滿>曰;"撫我則后,□我則讐. 彼爲無道,殺人與草芥,何不殺彼,而自立耶." <魯>然之,遂有弑逆之心. 上累怒其動罪而戒之,至十一月又動之,上欲射之. <魯>以所藏 刀,刺帝,出血如湧. <魯>見其狀,而悔之,欲自刎,而不得,乃如<麻>后寢而告之. <麻>后與<魯>有私故, 秘其喪欲立<魯>爲帝, 召<麻樂>議之曰;"主上不道,而被弑,當立宗室,<魯>何敢立乎.
◎6년(단기2406년/AD73)계유, 2월, <모본>신궁이 완성되어, 동도로 삼아, 놀이하려 가는 곳으로 하였다. <두로>를 침신으로 삼았다. <로>는 <모본>사람이다. 예쁜 얼굴에 □를 잘하여, 상이 태자시절부터 그를 아꼈고, 즉위한 이후 장군에 봉하였다. <부여>와 전쟁에 공이 있어 대형의 작위를 받고 중외대부에 제수되었다. 황후 <우>씨, <오>씨, <마>씨는 모두 이 인간의 오물을 뒤집어썼다. <마>씨는 <두로>의 딸까지 낳았고, <오>태후도 <두로>와 통음한 것이 궁안에서 말이 돌았다. <로>는 작은 황제로 살았다. 5월, 무오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두로>가, <최인>의 모친 <니만>이 함께 즐기며, 한탄하기를 "내 목숨도 역시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하니, <니만>이 "소제도 어떤 흡족하지 않은 일이 있기에 그런 말을 하시나요?"라 하였고, <로>는 "상이 내게 화가나서 (나를 올라타고) 흔들어서 나를 죽이려 하는데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소."라 하였고, <니만>이 말하길; "내게 잘하여주면 나가 후이지만, 나를 박해하면 원수입니다. 그 인간이 무도하여 사람 죽이기를 초개와 같이 하는데, 왜 그를 죽이고 스스로 보위에 오르지 않으시오?" 하였다. <로>도 그렇다고 여겨, (상을) 시해하여 반역할 마음이 생겼다. 상은 (<두로>가 상의 밑에 깔려서 움직인 죄에 대하여 여러차례 노여워하여 훈계만 하다가, 11월에도 계속하여 움직였다고 <두로>를 쏘아죽이려 하니, <두로>가 숨겨둔 보검으로 제를 칼질하였고, 피가 용솟았다. <로>가 그 모습을 보더니, 후회가 되어 자기 목을 베고 싶었으나, 그리하지 못하고, <마>후의 침소로 가서 사실을 알렸다. <마>후는 <로>와는 특별한 까닭을 가지고 있어, 이를 숨기고는 <로>를 제위에 세우고 싶었고, <마락>을 불러 사의 하니, (<마락>이) 말하길; " 상이 부도하여 살해되었으나, 당연히 종실 사람을 세워야지 어찌 감히 <로>를 세울 수 있오?"라 하였다.
◎<魯>知事敗,而自刎, 乃召<麻勁><松보><烏希><羽眞>等議之 ,皆曰; "<大武>諸子中, 唯<再思>大王最賢." 乃遣<麻樂>于<曷思宮>迎之. <再思>曰;**"寡人年少沒識, 不如立<翊>.",** 固辭不出. <麻>后亦欲立<翊>而請於<勁>, <勁>曰;"立皇以賢,汝何敢言." 遂與<松보 >亦至<曷思宮> 頭請出, <再思>不得已卽位東都新宮. <麻勁>以病固辭. 太輔于<松보>,<보>亦固辭. 上曰; "國之二老如是棄我, 我何敢立.", <보>乃受位曰; "臣有一言敢請." 上曰;"何言." <보>曰;"<勁>以柱石,爲國盡忠. 廢<麻>后而出<茅>,父女之情割矣. 願, 陛下, 抱容爲后何如." 上可之, 乃召庶人<烏>氏<麻>氏于<茅山>, 尋<麻>氏<羽>氏爲宮人葬, 大行于<慕本原>, 埋<杜魯><尼滿>于其側. <尼滿>,<보刀>之主,<崔理>女也(哈爾 河福山屯界).
◎<로>는 일이 실패하였음을 알고는 자기 목을 베어 죽었고, (<마락>이) <마경><송보><오희><우진> 등을 불러들여 상의하니 다들 "<대무>의 아들들 중에 <재사>대왕이 가장 현명하다."하였고, <마락>을 <갈사궁>으로 보내 <재사>대왕을 맞으려 하니, <재사>가 말하길;** "과인은 나이도 적고 아는 것이 없어, <익>을 세우는 것만 못하다."하고는, 고사하고 나서지 않았다.** <마>후 역시 <익>태자를 보위에 세우고 싶어 <마경>에게 부탁하니, <마경>이 답하길; "현명한 이를 황위에 세워야 하는데, 어찌 감히 그런 말씀이십니까?"라 하였다. 그리고는 <송보>와 함께 <갈사궁>으로 가서 머리를 조아려 보위에 오르길 청하매, <재사>가 부득이 동도의 신궁에서 즉위하였다. <마경>이 병 때문에 고사하여, 태보를 <송보>에게 돌리니 <송보>역시 고사하였다. 상이 이르길; "나라의 두 노신이 나를 이렇게 피하는데, 내가 어찌 감히 보위에 서겠소?" 하니, <송보>가 태보의 자리를 받고 말하길; "신에게 감히 청할 말씀 하나가 있습니다." 하였고, 상이 무엇이냐 물으니, <송보>가 아뢰길; "<마경>은 나라의 주춧돌로서 나라에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폐한 <마>후는 <모산>에서 내쫓겨 부녀의 정을 갈라놓았습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마>후를) 끌어안아 후로 삼아주시지 않으시겠읍니까?"하니, 상은 허락하였고, 폐서인 <오>씨와 <마>씨를 <모산>으로 불렀고, <마>씨와 <우>씨를 찾아 궁인의 예로 <모본원>에 성대히 장사하여 주었고, <두로>와 <니만>도 그 곁에 묻어주었다. <니만>은 보검의 주인으로 <최리>의 딸이었다.(哈爾보河福山屯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역시 똑같은 부탁을 드립니다.
* 송준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5-31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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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史穿) 김성겸 님. ‘모본제기(<慕本帝>紀)’를 읽어보니 그 동안 애매모호하였던 고구리 초기 역사가 “아..이런 사연이 있어서 그렇게 전개되었구나...”하는 실감(實感)하게 되면서 명료해지는 바가 많습니다. 해석을 일부러 유보(留保)한, ‘六月, <藍>公主薨,年七十八(漢殺其弟□作金□玉鶴罪).’에 대해서 좌계는 비상(非常)한 관심이 쏠리는 군요. 한(漢)나라에서 남(藍)공주의 동생인 ‘괄호’를 죽였는데, 그 이유가 ‘金□玉鶴罪’를 지었기(=작(作)‘때문이라는 것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는 “어쩌면 ‘부여의 옥장(玉葬)’을 고구리가 이어받았고, 이와 관련된 모종의 죄(罪)가 아닌가?”하는 상상을 일으키기 하는 구절입니다. 한(漢) 나라의 역사책을 보면, 이 이음매를 혹시 규명할 자료가 있을런지도 모르겠군요. 매우 의미심장한 구절임에는 틀림없는 듯 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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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史穿) 김성겸 님. - 이미 올리신 글을 지우시지 말기를! 지금까지 해석한 글을 ‘여러 동학(同學)들의 보정(補正)을 받아들여’ 통합본(統合本)을 내시는 것은 매우 좋으신 의견의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미 ‘올리신 글’을 삭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좌계가 이렇게 생각하는 데에는 이유기 있습니다. 좌계가 볼 때에는 통합본이 나오기 까지 ‘설왕설래(說往說來)’ 한 것이야말로, 여기 coo2.net의 가장 ‘의미있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 자체가 하나의 ‘해석의 역사’가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사학(史學) 풍토에는 어찌 된 일인지? ” 해석에 둘러싼 다양한 견해와 이것이 통합하는 과정이 전혀 공개(公開)되지 않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이점을 사천(史穿) 선생께서 남당(南堂) 박창화 선생의 유고(遺稿)와 관련 - 새로운 ‘해석사’의 귀감(龜鑑)이 되는 선례(先例)가 되었다고 봅니다. 감히 부탁드리건데, 이미 올리신 글을 지으시지 말기를 앙청(仰請)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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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史穿) 김성겸 님. ‘납 호동녀 위화 획 사실야(納好童女葦花畵思室也.)’의 해석에 관해서는 .......... “‘호동(好童)의 딸 위화(葦花)를 들게(=납(納))하여 사실(思室)이 (되기를) 획책(劃策)하였다.”임은 분명합니다. 문제는 이 사실(思室)이란 것이 “어떤 직책, 혹은 ‘사회적 지위’인가?”한 문제인듯 싶습니다. 일단 두 가지로 나누어서, 볼수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사실(思室) - ‘생각하는 실(室)’이므로, 위화(葦花)를 고구리 초기의 궁중(宮中) ‘명상 센터’나 ‘종교적 의례’를 관장하는 성직(聖職)으로 볼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안사람’ 즉 부인(婦人, 夫人)의 뜻으로 ‘널리’ 쓰이는 용어라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율곡(栗谷)선생의 ‘인심 도심 설(人心 道心 說)’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입과 몸이 있어서 발동되는 것. 예를 들면, 배고프면 먹고싶고 추우면 입고싶고 힘들면 쉬고싶고 정력(精力)이 차면 ‘결혼할 생각이 나는 것’ 등은 人心입니다.” (有爲口體而發者 如饑欲食寒欲衣勞欲休 精盛‘思室’之類是也 此則謂之人心)이란 문장에 사실(思室)이란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는 ‘결혼할 대상의 여자’ 즉 ‘안사람’의 뜻입니다. 따라서 이 두 번째의 의미로 해석하면, (納好童女葦花畵思室也.)의 의미는 “호동의 딸 위화(葦花)를 들여서 - 결혼할 대상의 여자(=사실(思室))로 획책하였다.”가 됩니다.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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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겸님 너무 충격적인 내용이군요. 끊어 읽기에서 제가 생각하는 내용을 말씀드립니다. <烏>太后曰; "汝云改過,而復如此. 汝父有靈必復<閔中>矣. 盖先帝常以帝□<閔中>. 故如是言也." <오>태후가 이르길; "너는 개과천선하였다고 말했는데, 이제보니 옛날과 같구나. 네 아비의 혼령이 있으면 반그시 <민중>을 다시 세울 것이다. 성스런 선제께서는 항상...<민중>을 제위에 세우고자 하셨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再思>曰;"寡人年少沒識, 不如立<翊>, 固辭不出. <재사>가 말하길; "과인은 나이도 적고 아는 것이 없으므로, <익>을 세우는 것이 더 낫소"라고 말하고는 고사하고 나오지 않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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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계 선생님, 백송 선생님, 반영하겠읍니다, 고맙습니다. 하나로 통합하는 문제와 삭제 문제는 잠시 추이를 지켜보겠읍니다. 설사 삭제하더라도 이미 피력하신 의견들을 모두 옮길 수 있었으면 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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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史穿) 김성겸 님. 특별히 ??로 표시한 사이의 글의 해석에 대해서, 여러 동학(同學)들의 의견을 여쭈었습니다. 그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원문(原文) : <烏>太后曰; **"汝云改過,而復如此.** 汝父有靈必復<閔中>矣. ??盖先帝常以帝□<閔中>. 故如是言也."?? 좌계가 볼때에는 오(烏) 태후(太后)의 말씀이 ‘**"汝云改過,而復如此.** 汝父有靈必復<閔中>矣. ??盖先帝常以帝□<閔中>. 故如是言也."??’이고, 이런 말 가운데 ??로 표시된 부분이 ‘들어있는 것’이 일단 분명한 것 같습니다. 여기서 개(盖)는 ‘숭상(崇尙)하다.’는 뜻이고, 따라서 개선제(盖先帝)는 대무신대제(大武神大帝)임은 분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해석의 핵심적인 문제는 ‘常以帝□<閔中>’에 있고, 또 이 구절에서는 ‘괄호’로 표시된 - 즉 “판독(判讀)이 어려운 글자를 ‘어떤 글자’로 추측하는가?”에 있다고 봅니다. 좌계는 이 ‘괄호’안의 글자가 사(師)가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제사(帝師)로써 ‘임금(황제)가 잘못하면, 권한(權限) 대행(代行)을 하면서, 적절한 교육을 하는 그런 특수한 직위(職位)로 생각됩니다. 따라서 盖先帝常以帝□<閔中>는 ‘개선제상이제사민중(盖先帝常以帝師閔中)’로 재구(再構)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뜻은 “숭상(崇尙)해야할 선제(先帝)는 - 대무신대제(大武神大帝)를 뜻함 - 항시 민중왕(閔中王)을 제사(帝師)로 두어야한다.”라고 봅니다. 이렇게 재구(再構)한 문장을 도입하게 되면, 결국 오(烏) 태후가 말한 말은 “너는 개과천선하였다 말하지만, 지금 보니 다시 옛날로 돌아 갔구나.** 네 아비의 혼령이 있으면 반드시 <민중>을 다시 세울 것이다. 선제는 항시 (네 곁에는) 민중왕(閔中王)을 제사(帝師)로 두어야 (황제답지 못한 행동을 할 때에는 권한대행(權限代行)을 하고, 또한 교육을 시키는 역할을 하게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 같은 사태(事態)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구나”라고 봅니다. 즉 ‘故如是言’은 여시(如是)가 바로 ‘개과천선했다고 하지만 옛날로 돌아간 것’을 지시(指示) 대명사(代名詞)인 시(是)로 받고, 고(故)는 이유(理由)를 뜻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즉 ‘이런 사태를 이유로 해서 말씀하신 것’이 된다고 봅니다. 참고 하시길 바랍니다. 해석(解釋) 주필(主筆)의 ‘힘겨운 작업’을 도맡으시면서, 늘 겸손하신 사천(史穿) 선생의 인품에 좌계 다시한번 감격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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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汝云改過,而復如此.** 汝父有靈必復<閔中>矣 를 번역함에 저는 나는 믿지 않았지만, (거짓으로 개과천선 한 체 하였기에) 민증제와 주변 사람들은 네가 개과천선 것으로 판단하여 원래 네가 개과천선 할 필요가 없었으면 있었을 자리에 지금 네가 돌아와서 앉아 있는데, 하늘 꼴을 보니, 네 친아버지가 살아계시면 다스금 네가 아닌 민중에게 보위를 주게 생겼다는 말을 한 것으로 보아 번역한 것인데, 백송 선생님과 좌계 선생님의 번역이 더 간결하여 보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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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송>선생님, <좌계>선생님, ??蓋先帝常以帝□<閔中>. 故如是言也."?? 의 빈칸에 "亢"자(극진히 하다; 대등하려 하다, 경쟁하다)라는 글짜가 맞을 것 같아보입니다. 그랬으면 보위를 <민중>에게 빼앗기지 않았을 것이기에.... 남당 선생께서 일차 원고를 쓰신 후에 " < " 표시를 하시고 작은 글씨로 보태신 글자인데 아무래도 "亢"자를 쓰신 것으로 보입니다. 의미상으로 하자가 없을른지요? "蓋"를 "盖"로 오타하였기에 이 글짜도 바로잡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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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史穿) 선생님. 원문(原文)의 판독(判讀)을 “蓋先帝常以帝‘亢’<閔中>. 故如是言也”이라고 밝혔습니다. 좌계 생각에는 “常以帝‘亢’<閔中>”의 구절에서 ‘제항(帝亢)’이란 역할이 민중(閔中)과 동격(同格)으로 봅니다. 이는 이미 좌계가 추측한 “제사(帝師) 보다 더욱 뜻이 명료해졌다.”고 봅니다. 주역(周易) 건위천(乾爲天)괘에 ‘항룡유회(亢龍有悔) - 극상(極上)의 하늘 위로 오른 용(龍)은 후회(後悔)가 있다.’라는 구절이 있고, 용(龍)은 임금과 관련된 비유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帝)보다 제항(帝亢)이 더 높은 지위로써 견제(牽制)할 수 있는 위치임을 드러낸다고 봅니다. 또한 개(蓋)로 판독(判讀)했을 경우, 대개(大蓋), 대강(大綱)의 뜻이기 때문에... 위 원문(原文)은 “선제(先帝)께서 민중(閔中)을 제항(帝亢) 으로늘 있게 하는(=常以帝亢) 대강(大綱 = 蓋)을 (세운 것은)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말씀하신 것이구나.”로 해석될 수 있다고 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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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계 선생님, 고맙습니다. 지금의 저는 지뢰밭을 자나는 심점입니다. 겨우 몇 자를 읽을 줄 밖에 모르는 제가 감히 완전히 해독 해득할 수 없음에도 도전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이 작업은 저 혼자의 힘으로만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읍니다. 계속 도움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라디오 님께서도 합세 하실 것으로 보입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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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史穿) 김성겸 님. ‘납호동녀위화재사실야(納好童女葦花再思室也.)’의 해석을 너무 어렵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호동의 딸 위화를 거두었는데 재사의 집에 살았었다. 라고 하시면 됩니다. 왜냐하면 재사와 호동은 동모형제입니다. 즉 재사는 갈사황후(갈사왕 해소의 딸)가 유리명왕에게 시집가서 낳은 아들이고, 유리명왕이 붕어하시자 갈사황후가 따라죽으려 했으나 송황후가 말리어 죽지않고 대무신왕이 다시 거두어 호동을 낳았습니다. 즉, 대무신왕이 취모를 한 것입니다. 호동이 죽자 그 동모형인 재사가 거두어 키웠다는 사실을 기록한 글입니다. 다음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참고문(本紀新編列傳 p48) 曷思太后曷思王女也. 柳花生金蛙子曷思王解素(?)明王在扶余時曷思王庇護之及南來承嗣. 帶素立數窘明王, 曷思王諫止之且又, 以曷思太后送之作親. 戊申生再思後又生公主五人而明王崩欲殉之, 松太后止之曰汝若殉之兩國不睦乃使大武神王復娶之而生好童太子及公主五人而卄四年丙申崩春秋七十七國祖立追尊爲曷思宮神太后. 갈사태후는 갈사왕의 딸이다. 유화와 금와왕 사이에 태어난 갈사왕 해소는 (유리)명왕이 부여에 있을 때 갈사왕이 비호하여 남쪽으로 와서 후계자를 승계하였다. 대소가 왕으로 서자 (유리)명왕이 약간 고생하였다. 갈사왕이 간언하기를 멈추었는데 다시 용서하였다. 이런 까닭에 갈사태후를 보내어 다시 친하여졌다. 무신(A.D.48)년 재사(신선명선제 : 태조대왕의 부친)를 낳은 후에 공주를 5명을 낳았는데 (유리)명왕이 돌아가시자 따라 죽으려고 했다. 송태후가 따라 죽으려는 것을 막으며 말하기를 네가 만약 따라죽으면 양국이 반목하게 된다. 이에 대무신왕으로 하여금 다시 장가들게 하여 호동태자와 공주5명을 낳았는데 (신선명선제) 24년 돌아가셨다. 춘추 77세였다. 국조왕(태조대왕)이 추존하여 갈사궁신태후에 세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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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 선생님, 부탁 하나 드립니다. 저는 지금 번역을 시도하고 있지 해석 또는 해설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사서" 또는 "사략을 해석/해설함에 있어서는 그 저본이었을 수 있는 "사초"를 참조할 수는 있겠으나 "사서"를 번역함에 있어서는 "문장 자체에 엄격해야" 한다는 생각을 저는 가지고 있읍니다. 또한 "사초"에 나온 얘기는 "사서"를 편찬하기 이전에 자료를 모집하는 절차이고, 본 사서 편찬에서는 참고가 될 뿐인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사략"을 번역함에 있어, 모르는 글자나 분명하지 않은 글자가 있으면 "사초"를 찾아 도움을 받거나 하고 보고 있읍니다. 양지하여 주시면 고맙겠읍니다. 단순한 문장 번역에 도움을 주시면 고맙겠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