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助賁紀(조분기) (A.D.292 - A.D.309:재위18년) - 해석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1. 19. 10:39
初玉帽太后夢見白鵲入懷 而生帝 娠産而皆以月明 及長身長而美儀采 臨事明斷 先今委以大政 至是卽位 尊母玉帽爲太后 祖仇道爲太公
처음에 옥모(玉帽)태후의 꿈에 하얀 까치가 날아와 품는 꿈을 꾸고 왕을 낳았다. 임신할 때와 태어날 때 모두 달이 밝았는데 장성함에 이르자 키가 크고, 아름다운 법도를 채택하였으며, (나라의) 일에 임하여 명확한 판단을 내렸다. 선금(先今, 내해)이 대정(大政, 정사)을 맡겼는데 이 때에 이르러 즉위하였다. 어머니 옥모를 높이어 태후로 하고, (외)조부 구도(仇道)를 태공(太公)으로 하였다.

七月 連忠伊伐飡 白仙稟主
7월 연충(連忠)을 이벌찬, 백선(白仙)을 품주로 하였다.

謁祖廟
(왕이) 조상의 무덤을 찾아뵈었다.
≪비교≫ 신라본기 조분이사금 원년 기사
원년 연충을 이찬에 임명하여 군무와 국정을 맡겼다.
7월 왕이 시조묘에 참배하였다.

元年 七月 碧昌伊伐飡 柿忠稟主
원년(A.D.292) 7월 벽창(碧昌)을 이벌찬, 시충(柿忠)을 품주로 하였다.

大赦 賜酺
죄인들을 크게 사면하고, 연회를 베풀었다.

八月 行嘉俳
8월 가배를 행하였다.

二年 正月 行玄牝祭
2년(A.D.293) 정월 현빈제(玄牝=癸丑)를 행하였다.

五月 甘文反 以于老太子爲大將軍 率謁明等 往討之
5월 감문(甘文)국이 반란을 일으켰다. 우노(于老)태자를 대장군으로 하여, 알명(謁明) 등을 거느리고 가서 토벌하였다.
≪견해≫ 감문(甘文)국이 반란을 일으킨 것은 감문국의 주(主)와 세계(世系)가 다르기 때문이다.

七月 碩公伊伐飡 回介稟主
7월 석공(碩公)을 이벌찬, 회개(回介)를 품주로 하였다.

甘文平 以爲郡
감문(甘文)을 평정하여 군(郡)으로 삼았다.

九月 行大場
9월 대장(大場)을 행하였다.
≪비교≫ 신라본기 조분이사금 2년 기사
2년 7월 이찬 우로를 대장군으로 삼아 감문국을 토벌하여 승리하고, 그 땅을 군으로 만들었다.

三年 四月 倭人猝至圍金城 帝親出督戰 賊潰走 興文等率輕騎追擊之 殺獲甚衆
3년(A.D.294) 4월 왜인(倭人)이 갑자기 쳐들어와 금성(金城)을 포위하였다. 왕이 직접 나와 사기를 북돋우었다. 적이 궤멸되어 달아나자 흥문(興文) 등이 가벼운 기병을 거느리고 추격하여 죽이거나 사로잡은 것이 심히 많았다.
≪비교≫ 신라본기 조분이사금 3년 기사
3년 4월 왜인이 갑자기 쳐들어와 금성을 포위하였다. 왕이 직접 나아가 싸웠다. 적이 흩어져 도주하자 정예 기병을 보내 추격하여 1천여 명을 죽였다.

七月 完吉伊伐飡 盤穀稟主 雲己甤主
7월 완길(完吉)을 이벌찬, 반곡(盤穀)을 품주, 운기(雲己)를 유주(甤主)로 하였다.

八月 行嘉俳
8월 가배(嘉俳)를 행하였다.

修桃山及北桃園
도산(桃山)과 북도원(北桃園)을 수리하였다.

四年 四月 大風飛屋瓦
4년(A.D.295) 4월 큰 바람에 불어와 기와가 날렸다.

始置眞經堂 于國中諸都
나라 안의 모든 도시에 처음으로 진경당(眞經堂)을 설치하였다.

五月 倭寇東邊
5월 왜가 동쪽 변경을 약탈하였다.

權妻乳帽生 帝女乳幌 或云園郞覓伊烝出也
권처 유모(乳帽, 내해와 옥모의 딸)가 왕의 딸 유황(乳幌)을 낳았다. 혹은 원랑(園郞) 멱이(覓伊)가 증(烝)하여 낳았다고 한다,

七月 于老率雲良興文等 大破倭人 于沙道 乘風縱火 焚其船楫 賊皆赴水死
7월 우노(于老)가 운량(雲良)과 흥문(興文) 등을 거느리고 사도(沙道)에서 왜인을 대파하였다. 바람을 타고 불을 놓으니 그 배들이 불에 탔다. 적들은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

百健伊伐飡 茶烏稟主
백건(百健)을 이벌찬, 다오(茶烏)를 품주로 하였다.

九月 行大場
9월 대장(大場)을 행하였다.
≪비교≫ 신라본기 조분이사금 4년 기사
4년 4월 큰 바람이 불어와 기와가 날았다.
5월 왜병이 동쪽 변경을 약탈하였다.
7월 이찬 우로가 왜인과 사도에서 싸웠다. 그는 바람을 이용하여 불을 질러 배를 불태웠다. 적들은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

五年 四月 行壤井大祭
5년(A.D.296) 4월 양정대제(壤井大祭)를 행하였다.

冬禮生女登世 或云 登戶潛通而生也
동례(冬禮)가 (왕의) 딸 등세(登世)를 낳았다. 혹은 등호(登戶)가 잠통(潛通)하여 낳았다고 한다.

七月 邊宣伊伐飡 連骨稟主
7월 변선(邊宣)을 이벌찬, 연골(連骨)을 품주로 하였다.

素理生 宣知子宣威
색리(素理)가 선지(宣知)의 아들 선위(宣威)를 낳았다.

八月 行嘉俳
8월 가배(嘉俳)를 행하였다.

加耶王子孝道入朝 以守羅妻之
가야(加耶) 왕자 효도(孝道)가 입조하여, 수라(守羅, 내해와 하라의 딸)를 시집보냈다.

六年 正月 東巡撫恤
6년(A.D.297) 정월 동쪽을 돌아보며 어루만지고 구휼하였다.
≪비교≫ 신라본기 조분이사금 6년 기사
6년 정월 왕이 동쪽으로 순행하여 백성을 위문하고 구제하였다.

淡忠宮主薨 年八十四 繼元女也
담충(淡忠) 궁주가 죽었는데, 춘추 84세였다. (궁주는) 계원(繼元)의 딸이다.

七月 謁明伊伐飡 休介稟主
7월 알명(謁明)을 이벌찬, 휴개(休介)를 품주로 하였다.

七年 二月 骨伐國王阿音夫率衆 來降 賜第宅田莊安之 以其地爲郡
7년(A.D.298) 2월 골벌국(骨伐國)왕 아음부(阿音夫)가 무리를 거느리고 와서 항복하였다. (왕은 그들에게) 제택(第宅, 집과 정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과 전장(田莊, 개인이 소유한 논밭)을 내려 안정시켰다. 그 땅은 군(郡)으로 삼았다.
≪비교≫ 신라본기 조분이사금 7년 기사
7년 2월 골벌국왕 아음부가 무리를 거느리고 항복해왔다. 왕은 그들에게 집과 밭을 주어 편안히 살게 하고, 그 땅을 군으로 만들었다.

五月 西巡撫恤
5월 서쪽을 돌아다니며, 어루만지고 구휼하였다.

玉帽太后率馬徒 行突山大祭
옥모(玉帽)태후가 마도(馬徒)를 거느리고, 돌산대제(突山大祭)를 행하였다.

七月 足老伊伐飡 馬色稟主
7월 족노(足老)를 이벌찬, 마색(馬色)을 품주로 하였다.

八月 行嘉俳
8월 가배(嘉俳)를 행하였다.

十月 行月歌
10월 월가(月歌)를 행하였다.

八年 正月 行土羊祭
8년(A.D.299) 정월 토양제(土羊=己未)를 행하였다.

七月 晋宗伊伐飡 孫蘭稟主
7월 진종(晋宗)을 이벌찬, 손란(孫蘭)을 품주로 하였다.

八月 蝗害穀
8월 메뚜기가 곡식을 해쳤다.
≪비교≫ 신라본기 조분이사금 8년 기사
8년 8월 메뚜기 떼가 곡식을 해쳤다.

九年 正月 行金神祭
9년(A.D.300) 정월 금신제(金神=庚申)를 행하였다.

雲良伊伐飡 孫奉稟主
운량(雲良)을 이벌찬, 손봉(孫奉)을 품주로 하였다.

七月 三洪伊伐飡 馬淡稟主
7월 삼홍(三洪)을 이벌찬, 마담(馬淡)을 품주로 하였다.

八月 行嘉俳
8월 가배(嘉俳)를 행하였다.

九月 麗相倉助弑君 立王侄乙弗爲君
9월 (고구)려 재상 창조(倉助)리가 왕을 죽이고, 왕의 조카 을블(乙弗)을 왕으로 세웠다.

十年 正月 行白鷄祭
10년(A.D.301) 정월 백계제(白鷄=辛酉)를 행하였다.

二月 太公仇道薨 葬以王禮 年八十四 公掌兵權殆四十年 軍主皆出門下
2월 태공(太公) 구도(仇道)가 죽어, 왕례로 장사를 지냈다. 춘추 84세였다. 공이 병권을 맡은 지 거의 40년이고, 군주(軍主)들이 다 문하에서 나왔다.

七月 昌元伊伐飡 聖權稟主
7월 창원(昌元)을 이벌찬, 성권(聖權)을 품주로 하였다.

八月 行嘉俳
8월 가배(嘉俳)를 행하였다.

祀黑齒道生
흑치(黑齒)와 도생(道生)의 제사를 지냈다.

米諳自吳來 孫光請屬詳文臺 而子之
미암(米諳)이 오(吳)로부터 왔다. 손광(孫光)이 상문대(詳文臺)를 맡기기를 청하고, 아들로 삼았다.

十一年 正月 行玄狗祭 狗徒獻蒼瑄 于帝
11년(A.D.302) 정월 현구제(玄狗=壬戌)를 행하였다. 구도(狗徒)가 창선(蒼瑄, 푸른색 도리옥, 도리옥은 여섯 치의 옥구슬)을 왕에게 바쳤다.

板喜伊伐飡 太旺稟主
판희(板喜)를 이벌찬, 태왕(太旺)을 품주로 하였다.

三月 命沾解太子 巡國中 恤民
3월 첨해(沾解)태자에게 명하여, 나라 안을 돌아다니며 백성을 구휼하도록 하였다.

四月 夫余入寇西邊 白興擊退之
4월 부여(夫余)가 서쪽 변두리를 도적질하여, 백흥(白興)이 부딪혀 물러나게 하였다.
≪비교≫ 1. 신라본기 조분이사금 11년 기사
11년 백제가 서쪽 변경을 침범하였다.
         2. 백제본기 고이왕 7년 기사
7년 군사를 보내 신라를 쳤다.

七月 黃公伊伐飡 汗珍稟主
7월 황공(黃公)을 이벌찬, 한진(汗珍)을 품주로 삼았다.

八月 以權妻阿爾兮爲后
8월 권처(權妻) 아이혜(阿爾兮)를 후(后)로 하였다.

九月 行大場
9월 대장(大場)을 행하였다.

十二年 正月 興文伊伐飡 小潛稟主
12년(A.D.303) 정월 흥문(興文)을 이벌찬, 소잠(小潛)을 품주로 하였다.

阿召禮生 帝女達禮
아소례(阿召禮)가 왕의 딸 달례(達禮)를 낳았다.

五月 馬徒奉玉帽太后爲主 沾解太子爲法 帝親行其儀 于南桃 賞賜徒衆
5월 마도(馬徒)가 옥모(玉帽)태후를 주(主)로 삼고, 첨해(沾解)태자를 법(法)으로 삼았다. 왕이 친히 남도에서 그 의식을 행하였다. 마도 무리에게 상을 내렸다.

七月 西解伊伐飡 良其稟主
7월 서해(西解, 내해의 아들)를 이벌찬, 양기(良其)를 품주로 하였다.

八月 行嘉俳
8월 가배(嘉俳)를 행하였다.

九月 行大場
9월 대장(大場)을 행하였다.

狗徒以良其爲主 行阿世大祭
구도(狗徒)가 양기(良其)를 주(主)로 삼고, 아세대제(阿世大祭)를 행하였다.

十月 行月歌
10월 월가(月歌)를 행하였다.

十三年 正月 行靑鼠祭
13년(A.D.304) 정월 청서제(靑鼠=甲子)를 행하였다.

帝問於孫光 曰 “今人多行牛馬羊祭 其意何在” 光曰 “牛母馬夫羊子也” 帝又曰 “狗不預乎” 光曰 “狗爲山王 古艮而今乾 故與牛馬同體 而異位” 帝又曰 “今人以黃馬爲白馬者 何也” 光曰 “古人亦以黃爲白者 只言玄白故也”
왕이 손광(孫光)에게 물어 말하기를 “지금 많은 사람들이 우(牛)마(馬)양(羊)의 제사를 지내는데, 그 뜻이 어디에 있는 것이냐?”라고 하였다. (손)광이 말하기를 “소는 어머니이고, 말은 아버지이고, 양은 아들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또 물어 말하기를 “개는 관계하지 않는 것이냐?”라고 하였다. (손)광이 말하기를 “개는 산중의 왕이다. 옛날에는 간(艮, 괘의 이름, 北東)이었는데, 지금은 건(乾, 괘의 이름, 천(天)·춘(春)·동(東)·인(仁))입니다. 그런 까닭에 우마와 동체(同體, 같은 몸)이지만 방위가 다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또 말하기를 “지금 사람들은 황마(黃馬)를 백마(白馬)라 하는 것은 무슨 이유이냐?”라고 하였다. (손)광이 말하기를 “옛날 사람들이 또한 황(黃)색을 백(白)색이라고 함은, 다만 현백(玄白, 오묘하게 깨끗한?)한 까닭일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견해≫ 현대적인 의미로 풀 수 없는 용어가 많다. 주역하시는 분들이 풀이하여야 할 듯.

三月 阿伊兮生 帝女聖元
3월 아이혜(阿伊兮)가 왕의 딸 성원(聖元)을 낳았다.

七月 板己伊伐飡 水羊稟主
7월 판기(板己)를 이벌찬, 수양(水羊)을 품주로 하였다.

九月 行大場 是年 穀大登 古陀郡進嘉禾一莖九穗 命加其畯官爵祿
9월 대장(大場)을 행하였다. 이해에 풍년이 들었다. 고타군(古陀郡)에서 9개의 이삭이 달린 줄기를 가진 곡식을 바쳤다. 준관(畯官, 농사담당 관리)에게 작위와 녹봉을 더하여 주도록 명하였다.
≪비교≫ 신라본기 조분이사금 13년 기사
13년 가을 큰 풍년이 들었다. 고타군에서 상서로운 벼이삭을 진상하였다.

守羅生 孝道子守克
수라(守羅)가 (가야) 효도(孝道)의 아들 수극(守克)을 낳았다.

十月 行板公大祭
10월 판공대제(板公大祭)를 행하였다.

以良其爲歌仙 行月歌
양기(良其, 국량의 딸)를 가선(歌仙)으로 하여, 월가(月歌)를 행하였다.

十四年 正月 行靑牛祭
14년(A.D.305) 정월 청우제(靑牛=乙丑)를 행하였다.

長萱伊伐飡 述禮稟主 述禮奈音王女也 或云 所非王女也 內禮伐休之孫也
장훤(長萱)을 이벌찬, 술례(述禮, 미추이사금의 어머니)를 품주로 삼았다. 술례는 내음(奈音)왕의 딸이다. 혹은 소비(所非)왕의 딸이다. 내례(內禮)와 벌휴(伐休)의 손녀이다(벌휴와 내례는 외조부모).

四月 行壤井大祭
4월 양정대제(壤井大祭)를 행하였다.

七月 繼達伊伐飡 羊旼稟主
7월 계달(繼達)을 이벌찬, 양민(羊旼)을 품주로 하였다.

十月 行月歌
10월 월가(月歌)를 행하였다.

十五年 正月 行赤虎祭
15년(A.D.306) 정월 적호제(赤虎=丙寅)를 행하였다.

阿召禮生 帝子儒禮 異香滿室 初阿召禮 夜禱樹王 星光入口 而娠也
아소례(阿召禮)가 왕의 아들 유례(儒禮)를 낳았다. 기이한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였다. 처음에 아소례가 밤중에 수왕(樹王)에게 기도하였는데 별빛이 입안으로 들어와 임신을 하게 되었다.
≪비교≫ 신라본기 유례이사금 머리기사
儒禮尼師今立 古記第三第十四二王 同諱 儒理或云儒禮 未知孰是 助賁王長子 母朴氏 葛文王奈音之女 嘗夜行 星光入口 因有娠 載誕之夕 異香滿室
유례 이사금이 섰다. 고기(古記)에는 제3대, 제14대 두 왕의 휘(諱, 죽은 사람을 부르는 이름)가 똑같이 유리(儒理) 혹은 유례(儒禮)라 하였다. 어느 것이 옳은지는 알 수 없다. 그는 조분왕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박씨로, 갈문왕 내음(奈音)의 딸이었다. 그녀가 일찍이 밤길을 가다가 별빛이 입으로 들어와 이로 인하여 임신이 되었다. 유례를 낳던 날 저녁에 기이한 향기가 방에 가득 찼다고 기록하였다.
≪견해≫ 신라본기 내해이사금 12월 정월 기사에서 내음(奈音)은 왕자(王子, 왕의 아들)이라 하였다. 그러나 벌휴이사금 머리기사에서는 아달라가 아들이 없어 후사를 이었다고 한다. 삼국사기는 내음(奈音)을 어느 왕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于老太子伊伐飡兼知軍政 碧忠稟主 年綻十六 其母柿忠攝行事
우노(于老)태자를 이벌찬겸지군정(伊伐飡兼知軍政)으로 하고, 벽충(碧忠)을 품주로 하였다. 꽃봉오리 벌어지는 나이 16살이었다. 그 어머니 시충(柿忠)이 섭행(攝行, 남의 일을 대신함)하였다.
≪견해≫ 신라본기 조분이사금 15년 기사
15년 정월 이찬 우로를 서불한(舒弗邯)에 임명하고, 병마사를 겸하게 하였다.

八月 行嘉俳
8월 가배를 행하였다.

十六年 正月 行赤兎祭
16년(A.D.307) 정월 적토제(赤兎=丁卯)를 행하였다.

大潛伊伐飡 阿夫禮稟主
대잠(大潛)을 이벌찬, 아부례(阿夫禮, 아례의 딸, 아소례의 언니)를 품주로 삼았다.

三月 阿爾兮后生 帝女命元
3월 아이혜(阿爾兮)후가 왕의 딸 명원(命元, 흘해의 어머니)을 낳았다.

七月 白興伊伐飡
7월 백흥(白興)을 이벌찬으로 하였다.

八月 行嘉俳
8월 가배(嘉俳)를 행하였다.

十月 句麗入寇比烈長岺 于老率二路將軍出擊之 我軍不利退 保馬頭柵 夜甚寒 士卒戰慄 于老躬燒柴葉而分暖 解裘被傷卒 群心感激 咸願死戰 賊追襲大敗 我軍乘勝 欲長驅 于老曰 “彼衆我寡可保 而不可侵” 敵聞之 乃退
10월 고구려가 비열(比烈), 장령(長岺)을 침범하였다. 우노(于老)태자가 2로(二路)장군을 이끌고 출격(出擊)하였다. 아군이 불리해지자 물러나 마두책(馬頭柵)을 지켰다. 밤이 깊어지자 추워져 병사들이 벌벌 떨었다. 우로가 몸소 울타리의 나무와 낙엽을 나누어 태워 따뜻하게 해주고, 갓옷을 벗어 다친 병사들을 덮어주었다. 군중의 심리가 감격(感激)하여, 모두 싸워 죽기를 원하였다. 적을 뒤쫓아 추격하여 크게 깨뜨렸다. 아군들이 승리를 타고, 먼 곳까지 쫓아가고자 하였다. 우노가 말하기를 “저들은 우리의 수가 적으나 지켜낼 줄 알고 있으니, 쳐들어오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적이 그 말을 듣고 이에 물러났다.
≪비교≫ 1. 신라본기 조분이사금 16년 기사
16년 10월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침범하자, 우로가 군사를 이끌고 공격하다가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 마두책을 수비하였다. 그 날 밤 날씨가 몹시 추워지자, 우로가 사졸들을 위로하고 직접 장작불을 피워 그들을 따뜻하게 하여 주었다. 사졸들이 진심으로 감격하였다.
         2. 고구려본기 동천왕 19년 기사
19년 10월 군사를 출동시켜 신라 북쪽 변방을 침공하였다.

十七年 正月 碩忠伊伐飡 孫蘭稟主
17년(A.D.308) 정월 석충(碩忠)을 이벌찬, 손란(孫蘭)을 품주로 하였다.

三月 命沾解太子監國
3월 첨해(沾解)태자에게 명하여 나라를 살펴보도록 하였다.

七月 誠萱伊伐飡 學氏稟主
7월 성훤(誠萱)을 이벌찬, 학씨(學氏, 내해의 딸)를 품주로 하였다.

九月 行大場
9월 대장(大場)을 행하였다.

十月 行月歌 于南桃 有白氣 自東南起 如匹練 橫京都而入桃山 孫光曰 “金氏當王后果驗”
10월 남도(南桃)에서 월가(月歌)를 행하였다. 하얀 기운이 동남쪽에서 일어났는데 한 필의 누인 명주 같았다. 경도를 가로질러 도산(桃山)으로 들어왔다. 손광(孫光)이 말하기를 “김(金)씨가 왕후(王后)를 맡아야 영험함이 있다.”라고 하였다.
≪비교≫ 신라본기 조분이사금 17년 기사
17년 10월 동남방에 흰 기운이 한 필의 명주를 펴놓은 것처럼 뻗쳤다.
11월 서울에 지진이 있었다.

十八年 正月
18년(A.D.309) 정월
≪견해≫ 내용이 없다.

四月 行壤井大祭
4월 양정대제(壤井大祭)를 행하였다.

五月 帝與玉帽太后 行突山大祭 得疾 夜夢金神十二人誘 至太淸玉山 鬪草 乃發仙心 命立胞弟沾解太子而禪 沾解乃與阿爾兮后 行祥登祚 初奈解帝夜宴 于骨正宅 醉臥 夢見沾龍 自湯殿捲風而起 乃驚起 如湯殿 時玉帽太后新浴 而理脂 奈帝乃抱而幸之 必生好子 后曰 “妾亦夢呑月珠 已知有此吉” 及誕 皃與奈解酷肖 故寵愛甚隆 命助賁帝與之 共天下 故至是繼嗣之 尊玉帽太后爲馬天太聖母 以孫光子宣德爲伊伐飡 胞妹乳帽爲稟主 帝仙而建月白陵 行大祭 立廟曰明宮 命秀皇爲廟主
5월 왕과 옥모(玉帽)태후가 돌산대제(突山大祭)를 행하고, 병이 얻었다. 꿈에 금신(金神) 12명이 유혹하여 태청옥산(太淸玉山)에 이르러 (신)초를 한데 모았다. 이에 선심(仙心)이 일어나, 포제(胞弟, 같은 어머니의 동생) 첨해(沾解)태자를 세우고 선위하도록 명하였다. 첨해가 이에 아이혜(阿爾兮)와 더불어 상서로운 즉위식을 행하였다. 처음에 내해(奈解)제가 골정(骨正)댁에서 밤늦게 잔치를 하고, 취하여 누워있었다. 꿈에 첨룡(沾龍)을 보았는데 탕전(湯殿)으로부터 회오리바람이 일어났다. 이에 놀라 일어나보니 (꿈처럼) 탕전이 있었다. 이때 옥모(玉帽) 태후가 방금 목욕을 하고 연지를 바르고 있었다. 내해가 이에 (옥모를) 안고 행차하며, 반드시 좋은 아들을 얻을 것이라고 하였다. (옥모)후가 말하기를 “첩 역시 월주(月珠, 붉은 달)를 삼키는 꿈을 꾸어, 이미 이와 같이 길한 일이 있을 줄 알았습니다.”라고 하였다. 태어남에 이르자 용모가 내해와 매우 닮았다. 그런 연유로 (내해가) 총애함이 심히 융성하였다. 조분태자에게 천하를 함께 하도록 명하였다. 그런 까닭으로 이 때에 이르러 후계자로 계승하였다. 옥모태후를 높이어 마천태성모(馬天太聖母)라고 하였다. 손광(孫光)의 아들 선덕(宣德)을 이벌찬으로, 같은 어머니의 동생 유모(乳帽)를 품주로 삼았다. 왕은 신선이 되어 월백릉(月白陵)을 세웠다. 큰 제사를 지내고, 사당을 세워 명궁(明宮)이라 불렀다. 수황(秀皇, 조분의 딸)을 묘주(廟主)로 명하였다.

置馬徒院 命阿召禮主之
마도원(馬徒院)을 두어, 아소례(阿召禮)를 주(主)로 삼았다.
≪비교≫ 신라본기 조분이사금 18년 기사
18년 5월 왕이 붕어하였다.
≪견해≫ 죽지 않은 사람의 무덤을 만들고,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



김영채 (2009-02-15 21:07:43)  
(1) 6년 9월기사가 빠졌네요
九月 行大場 9월 대장(大場)을 행하였다.
(2) 13년 3월기사 : 阿伊兮生帝女聖元 -> 阿爾兮生帝女聖元, 해석: 아이혜(阿伊兮)가 왕의 딸 -> 아이혜(阿爾兮)가 왕의 딸